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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3회 2구간
통리재-태현사-면안등재-고비덕재-
백병산삼거리-백병산정상-큰재-
육백지맥분기점-토산봉-휴양림삼거리-
토산령-호식총-태백고원자연휴양림
20241222
1.삼척시 동해 바다와 백두대간 태백산&함백산
벌써 2024년 송년 산행이다. 올해에 몇 차례나 산행을 하였을까? 월 2회씩이면 24회, 그 중 빠진 것을 감안하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합하여 20회 정도 산행하였고, 월 2회 코리아둘레길을 도보여행하였으니, 전체적으로 40회 넘게 산행과 도보여행을 하였다. 세월이 갈수록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고 몸은 자꾸 낡아가서 산행 속도와 도보 속도가 모두 느리다. 마음이 자꾸 초조해진다.
이번 낙동정맥 3회째 산행은 낙동정맥 2구간 통리재-백병산-토산령 구간이다. 통리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경, 날은 맑고 하늘은 푸르다. 그렇지만 추위가 매섭다. 뺨을 할퀴는 추위를 달래며 산행 준비를 한 뒤 맨 꽁지에서 출발한다. 통리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낙동정맥 1구간 매봉산과 바람의언덕 풍력발전기가 환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1구간 끝 지점의 우보산 능선과 통리역 그리고 눈꽃전망대가 손짓한다. 한 달 전 1구간을 산행하는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히 그려진다.
통리재에서 임도를 따라 태현사 앞으로 올라가서 숲길로 들어가 본격적인 낙동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이어서인지 가파른 비탈길 오르기가 힘겹다. 일행들은 한참을 앞서간 듯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니 드디어 백병산 4.2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또 한 차례 비탈길을 오르면 백병산 3.6km 이정목을 만나고 남쪽에는 가야할 백병산 능선이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산죽밭을 거쳐 또 한 차례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백병산 정상 2.9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1094.2m 산봉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초반의 어려운 곳은 모두 지나게 된다.
면안등재에서 산봉을 올랐다가 내려가면 고비덕재이고 이곳에서 너덜지대와 산죽밭을 거쳐 백병산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점심을 나누고 있는 낙동정맥 종주대원들과 합류하였다. 백병산은 낙동정맥에서 비켜서 삼거리에서 400m 정도 서쪽으로 떨어져 있어서 백병산을 다녀와야 한다. 왕복하는 데 17분이 걸렸다. 백병산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매봉산과 바람의언덕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다. 그런데 배병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병풍바위와 촛대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맨 후미에서 이곳에 다녀오면 종주대원들과 더 멀어질 것 같아 포기하였다.
백병산 삼거리에서 토산령까지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교대로 나타나 힘겹다. 동쪽으로 삼척 지역과 동해 바다를, 서쪽으로 백두대간 함백산과 태백산을 가늠하며 낙동정맥 산줄기를 걷는다. 지도를 통해 살피지만 통과하는 지역의 구체적인 지명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늪목, 황개재, 토산봉, 실제의 토산령, 덕거리봉 등을 분명히 확인하지 못하고 가늠만 해 볼 뿐이다. 서쪽으로 장엄한 백두대간의 태백산 장군봉, 화방재, 함백산이 분명히 모습을 보여주는 곳을 지나 내려가면 이번 낙동정맥 구간 산행의 종점 해발 950m 토산령에 이른다. 지피에스를 살피니 통리재에서 토산령까지 12.3km 거리를 걸어왔다.
토산령에서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숲길은 위태한 몇 곳을 지나 임도에 이른다. 이 골짜기가 버들골이라 이르며 큰덕거리 삼거리로 이어지면 그곳에는 호식총이 자리한다. 겨울 오후의 햇볕이 비치지만 바람은 맵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정문을 빠져 나와 머리골길을 따라가면 매산교를 지나 그 아래쪽에 산악회 임시본부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바람이 더 매섭게 낯을 할퀸다. 과메기 요리가 마련되어 있지만 컵라면에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으로 뒤풀이를 끝냈다. 걸어온 낙동정맥 산길의 지명들이 살아오고, 익히지 못한 곳은 까만 어둠 속에 있다. 그럼에도 삼척시 동해 바다가 넘실거리고 태백시 함백산과 화방재, 태백산 장군봉 산줄기가 장쾌하게 벋어간다. 2024년 모든 산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6.2km
낙동정맥 통리재-토산령 : 12.3km
전체 산행 소요 시간 : 5시간 34분
통리재에서 송전탑 왼쪽의 우보산, 통리역과 눈꽃전망대를 바라본다. 오른쪽 맨 뒤에 매봉산과 바람의언덕이 보인다.
강원 태백시 통동 통리재에서 왼쪽 향촌가든 방향으로 이어간다.
낙동정맥은 정면 위 산줄기로 이어진다. 향촌가든 앞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태현사 앞으로 이어간다.
향촌가든 입구에서 왼쪽 도로표지판이 있는 통리재, 중앙 뒤 우보산, 오른쪽 눈꽃전망대를 다시 뒤돌아본다.
강원도 태백시 통동 통리마을과 왼쪽 뒤 연화산을 가늠한다.
낙동정맥은 중앙 축대 위의 태현사 앞을 거쳐 숲길로 이어간다.
해발 1171.8m 연화산이 오른쪽에, 왼쪽은 투구봉일 것이라 가늠한다.
아래에 통리역의 눈꽃전망대, 왼쪽 맨 뒤에 매봉산과 바람의언덕, 오른쪽 뒤는 덕항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중앙 뒤에 덕항산, 그 왼쪽 뒤에 지각산(환선봉), 그 뒤쪽에 두타산과 청옥산을 어림한다.
태현사에서 숲길로 진입하여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면 백병산 정상 4.2km를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백병산 정상 4.2km 이정목을 니자면 곧바로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오면 고비덕재(헬기장) 2.9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백병산 정상 3.6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건너편에 백병산 정상이 보인다.
북쪽 능선에서 남쪽에서 오른쪽 나무 줄기 뒤의 백병산과 그 오른쪽의 촛대바위를 가늠한다.
산죽밭을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해발 1094.2m 산봉이다.
산죽밭을 거쳐 안부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백병산 정상 2.9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1094.2m 산봉이다.
해발 1094.2m 산봉을 지나면 비석 모양을 한 선바위가 있다.
선바위 능선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중앙에 백병산, 그 오른쪽 아래에 촛대바위가 가늠된다.
백병산 정상 2.4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능선을 지나간다.
참나무 가지에 황금빛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겨우살이가 있다. 황금열매 꼬리겨우살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꼬리겨우살이라고 불린다.
참나무와 밤나무 가지에 기생한다. 가지는 곁가지로 갈라지며, 자줏빛을 띤 갈색으로 윤이 나는데 월동 뒤에 잿빛 부분의 겉껍질이 벗겨진다. 잎은 마주나며 모양은 주걱 같은 긴 타원형으로 끝은 둥글고 밑쪽은 뾰족하다. 잎 길이 2∼3.5cm, 나비 1~1.5cm, 잎자루 길이 1∼4mm이다. 6월에 노란색 꽃이 가지 끝에 수상꽃차례로 드문드문 달린다. 씨방 위에 4∼6개의 화피조각과 4∼6개의 수술이 있다. 씨방은 꽃받침 아래 위치한다. 열매는 장과로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고 길이 5∼6mm로서 9월에 누렇게 익는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신경통·관절통·류머티즘·유산·고혈압 등에 처방한다. 민간에서는 술을 담그어 먹는다. 한국(제주도·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 일본 북부, 중국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 두산백과
긴 나무의자들이 조성되어 있는 쉼터에 백병산 정상 2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산죽밭을 거쳐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내려오면 면안등재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면안등재는 서쪽의 태백시 통동 원통골과 동쪽의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우왕촌을 연결하는 고개라고 한다.
하늘 높이 솟은 철탑이 솟아 있다. 송전탑 같지는 않고, 송신탑 같은데 이 송신탑의 자세한 기능을 알 수 없다.
고비덕재(헬기장) 0.4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고비덕재이다.
고개를 넘어 내려오니 억새풀들이 폐헬기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이 고비덕재이며, 앞쪽의 산봉 뒤쪽에 백병산이 있다.
백병산 정상 0.9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과 고비덕재 설명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고비덕재는 원통골에서 구사리 안쪽 백산들로 가는 고개이다. 고개 꼭대기가 편편한데 이곳에 고비 나물이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고비덕재라고 하고, 옛날 지금의 태백 황지 사람들이 동해안에서 나는 소금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넘나들던 주요 교통로이기도 한다. 통리 또한 내륙과 바다로 통한다고 해서 붙여진 원통골에서 그 지명이 유래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낙엽송 숲을 거쳐 고비덕재로 내려왔다. 오른쪽 동쪽은 삼척시 도계읍, 왼쪽 서쪽은 태백시 통동 지역이다.
고비덕재에서 백병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너덜길이다.
너덜길을 오르면 산죽밭이 펼쳐진다. 산죽밭을 지나와서 뒤돌아보았다.
산죽밭을 지나면 참나무 군락지의 설원이 펼쳐지고 다시 산죽밭이 펼쳐진다.
푸른 산죽밭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백병산 삼거리에 이른다.
백병산 삼거리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으며 백병산으로 오른쪽으로 400m 거리에 있다.
백병산 정상표석과 이정목, 백병산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의 위쪽에 삼각점이 있는 곳이 백병산 실제 정상이다.
통리재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길이 안내되어 있다. 낙동정맥은 백병산 삼거리에서 면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백병산 정상표석이 있는 곳에서 실제 정상을 지나 내려가면 병풍바위와 촛대바위가 있다.
백병산 정상표석은 태백산사랑회에서 2004년 8월에 세웠으며, 백병산은 낙동정맥에서 조금 비켜나 있다.
백병산은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에 위치하는 산이다. 이 산은 과거에 백산(白山)이라 불렸다. 「척주지」에 "삼태산은 우보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가장 높고 크다. 삼태산 동쪽은 백산이고, 백산 너머는 우검산이다. 또 우검산 동쪽은 영은사 뒷산이고 동북쪽은 마라읍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도 백산과 백병산이 같은 산이라는 것이 인정된다. 백산(白山)이란 이름은 산꼭대기의 바위가 흰 빛깔을 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백산(白山)이 백산(栢山)으로 바뀐 경위는 외자를 쓰면 외로워진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백병산(白屛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산은 꼭대기가 바위절벽으로 되어 있고, 그 모습은 흡사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다. 산 이름은 흰 색조와 병풍 같은 형상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지명으로 백산동·백산역·백산분교·백산교·백산골이 있다.
백병산 정상표석이 있는 바로 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백병산 실제의 정상이다.
왼쪽 나뭇가지 뒤에 매봉산과 바람의언덕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백병산 실제 정상에서 백병산 정상표석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내려보았다.
백병산 삼거리에서 백병산 정상에 올랐다가 되돌아오는 데, 17분이 걸렸다.
낙동정맥은 백병산 삼거리에서 면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백병산 삼거리의 쉼터정자 앞에서 낙동정맥 종주대원들과 함께 백병산 산행을 기념한다.
백병산 삼거리의 큰재 1.1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 앞에서 산죽밭을 통과하여 큰재 방향으로 이어간다.
산죽밭에서 백병산 삼거리를 뒤돌아보았다.
산죽밭을 지나와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며 남쪽의 면산 방향을 살폈다.
능선에서 동쪽 삼척 지역과 동해 바다를 조망한다. 앞쪽의 산은 육백산 산줄기가 맞을까?
해발 1087m 큰재에는 우람한 노송이 솟아 있고, 큰재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인근 고비덕재와 더불어 옛날 태백 통리 주민들이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 위해 넘던 길이며,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지고 다니느라 힘이 들어 큰재라 하였다. 인근 골짜기 중에 통리 쪽으로 소금골이라는 골짜기가 존재하며 우리의 조상들은 귀중한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높고 험한 길을 어렵게 다니곤 하였다.
통나무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지난다. 바로 위쪽은 육백지맥 분기점이다.
해발 1073.6m 육백지맥 분기봉을 지난다. 이 산봉에서 육백지맥은 동북쪽으로 벋어 삼척시 오분동 고성산에서 맥을 다한다.
육백지맥(六百枝脈)은 낙동정맥 백병산 남쪽 1.3km지점의 1073.6m 산봉에서 북동쪽으로 가지를 쳐서 삼척 오십천의 동쪽 울타리를 이루며 육백산(1,243m), 응봉산(1,267.9m), 핏대봉(879.4m), 삿갓봉(751.3m), 안개산(703m), 삿갓봉(688.2m), 안항산(359m)을 거쳐 삼척시 오분동 고성산(100m)에서 오십천이 동해 바다로 유입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4 km의 산줄기를 이르는데, 삼척 오십천의 남쪽 산줄기라 하여 삼척 남지맥이라 이른다고도 한다. 삼척시 도계읍에 위치하는 육백산은 일찍이 화전(火田)으로 개간되었고, 산정 일대의 넓은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에 조(粟) 600석을 뿌려도 될 만하다고 하여 산 이름을 육백산(六百山)이라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낙동정맥은 오른쪽 나무줄기 뒤의 토산봉에서 그 왼쪽 뾰족한 덕거리봉을 거쳐 토산령으로 이어진다.
북동쪽으로 벋어가는 삼척의 육백지맥을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한다.
능선에서 남동쪽을 조망하면 삼척시 지역과 그 너머 동해 바다가 보인다.
이곳을 늪목이라 이르는 지역일까?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1064m 산봉인 듯.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면 1064m 산봉인 듯. 오른쪽에 송전탑이 솟아 있다.
오른쪽 뒤 산봉이 토산봉이고, 중앙 뒤 뾰족한 산봉이 덕거리봉인 듯.
능선에서 동쪽을 응시하면 삼척 지역의 산줄기와 그 너머에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송전탑 아래의 자작나무 조림지를 통과하여 소나무 조림지로 이어간다.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 소나무를 두 줄로 가로수처럼 조림한 지역을 통과한다.
소나무 조림지를 지나 황개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간다.
황개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면 산죽밭이 펼쳐지고 오른쪽 뒤에 토산봉, 왼쪽 뒤에 덕거리봉이 보인다.
토산봉을 왼쪽으로 우회해도 되는데 우회하지 않고 토산봉에 올라서 왼쪽의 덕거리봉을 가늠한다.
토산봉을 내려가며 토산봉 정상을 뒤돌아본다.
토산봉 아래의 휴양림 삼거리가 실제의 토산령이라고 한다. 왼쪽 길이 면산 방향 낙동정맥 산줄기이다.
실제의 토산령에서 능선을 따라 덕거리봉을 우회하여 휴양림 삼거리에서 덕거리봉을 뒤돌아본다.
휴양림 삼거리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쉼터는 덕거리봉 남쪽에 있다.
휴양림 삼거리에 이정목과 낙동정맥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지도가 남북이 거꾸로 되어 있다. 현 위치에서 토산령, 구랄산, 면산으로 낙동정맥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휴양림 삼거리를 지나 산죽밭에서 남쪽을 조망하면 정면에 우뚝 솟은 산봉이 보인다. 구랄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산죽밭에서 뒤돌아보면 왼쪽 뒤에 토산봉이 우뚝하다. 오른쪽 뒤에 휴양림 삼거리가 있다.
남쪽 구랄산 방향으로 토산령을 향해 내려간다.
서쪽을 조망하면 왼쪽 뒤에 태백산 장군봉, 중앙에 화방재, 오른쪽 뒤에 함백산이 분명히 보인다.
왼쪽 뒤의 산봉이 구랄산일 것이라 가늠하며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간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와서 다시 산봉을 올라서면 나무토막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아래쪽에 토산령이 있으며, 그 뒤에 솟은 산봉이 해발 1071.6m 구랄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토산령에서 낙동정맥 산행을 마치고 오른쪽 태백고원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한다.
토산령에는 해발 950m 토산령 표석과 설명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낙동정맥 토산령(兎山嶺) 해발 950m : 이곳은 신리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기 전에 삼척시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작은 오솔길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큰길이었다. 당시 이곳에는 유난히 토끼들이 많았다고 해서 '토산령'이라 불렸다.
토산령에서 낙동정맥 통리재-백병산-토산령 구간 산행을 마치고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며 토산령을 뒤돌아보았다.
토산령에서 태백시 철암동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한다. 맨 뒤 서쪽에는 백두대간 태백산 산줄기가 보인다.
토산령에서 계곡의 위태로운 숲길을 내려오면 임도에 이른다.
토산령에서 임도로 내려와서 걸어온 계곡의 숲길을 뒤돌아본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정면을 바라보면 중앙 맨 뒤에 함백산이 솟아 있다.
큰덕거리골 삼거리를 지나서 토산봉에서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큰덕거리골 삼거리를 돌아보았다.
큰덕거리골 삼거리를 지나면 오른쪽에 호식총 표지판이 있다.
호식총의 유래 : 옛날에는 산에 범(호랑이와 표범)이 많았던 우리나라엔 일찍이 산간 지역에서 범에 물려가 죽는 사람도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2년에 경상도에만 수백명이라 했고, 영조 30년에는 경기도 지방에서 한 달 동안 120여명이나 희생됐다고 기록돼 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던 태백, 정선, 삼척, 영월 등의 시군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호식총만 해도 160여기나 된다고 알려져 있다. 호식총이란 호랑이에게 잡혀가 죽은 사람의 무덤을 일컫는 말로, 산간 오지 사람들의 숙명적인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거기에는 처절하다 못해 숭고한 삶의 철학이 배여 있다. 호식을 당한 사람의 주검을 화장해 돌을 쌓아 그 위에 시루를 덮고 시루구멍에 물레에 쓰는 쇠가락을 꽂아 놓은 것이다. 돌을 쌓은 것은 신성한 곳이라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창귀의 발호를 막기 위함이며, 항귀는 호식된 사람의 귀신으로 호랑이의 호위병 노릇을 하면서 늘 사돈네 필촌까지 아는 사람을 찾아다 니며 새 창귀감을 구하여 호랑이에게 데려가 먹이감을 만든 뒤 범의 굴레를 벗어나는 악질이다. 돌로 무덤을 쌓아 이 귀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동시에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도록 해 벌초를 하려다 호식을 당하는 피해를 막고자 함이었다.
호식총의 시루는 '철옹성'임을 뜻하는 동시에 솥 위에 올라앉은 형국으로, 뚫린 구멍과 함께 하늘을 상징한다. 사학함과 불결함, 모든 것을 찌고 삶아 죽이는 시루를 엎어놓으면 창귀도 그 안에서 꼼짝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홉 개의 시루 구멍으로 귀신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벼락을 의미하는 쇠꼬챙이도 꽂았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호랑이의 밥이 되는 것을 무릅쓰고 이토록 깊은 산속에 들어와 살았을까? 공자가 이르기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라 했다. 태백산맥 안으로 들어와 살던 화전민 가운데에는 관리의 횡포와 과중한 세금, 부역 등에 못이겨 도망쳐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범에게 잡혀 먹히더라도 숙명으로 알고 묵묵히 화전을 일구며 마음의 평정을 구했으며, 호식된 상황을 신성한 경지로 승화시켜, 슬픔을 미화하려 했다. 사악한 인간보다는 호랑이가 공포의 대상일망정 너그럽고 포근한 데가 있는 자연을 더 가까이 했던 삶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슬픈 사연이 전해지는 호식총은 현재 태백시 철암동 470번지 태백고원 자연휴양림 내(속칭 버들골)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인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호식총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과 토속신앙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민속자료이오니, 훼손되거나 망실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드리며 눈으로만 보시고 절대 만지지 마시길 당부 드립니다. - 설명안내판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을 따라 내려오면 산림문화휴양관이 있다.
토산령은 고원자연 휴양림을 지나 버들골 끝에 있는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으로 넘어 가는 큰 고개이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오솔길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큰 길이었다고 한다. 토(兎)는 묘(卯)와 같은 뜻으로 12지(十二支)에서 동쪽을 의미한다. 兎山(토산)은 卯山(묘산)이니 東山을 의미하며, 토산령은 태백에서 동쪽으로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머리골길을 따라 오토캠핑장 입구 버들1교를 지나 태백고원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으로 이어간다.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행복이 가득한 숲속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컨셉으로 해발 700m 이상의 고원의 숲속에서 4계절 아름다운 자연과 편안한 쉼터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겨울에는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실 수 있고, 여름에는 전국에서 가장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와 푸른 경치를, 봄과 가을에는 숲속의 맑은 공기와 함께 삼림욕을 즐기실 수 있는 최고의 고원 관광 휴양지입니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서 걸어온 머리골길과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안쪽을 뒤돌아본다.
매산교 건너편에 강원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감자연구소 고원농업시험장이 있다.
머리골길 매산교 아래에 송백산악회 임시본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낙동정맥 통리재-토산령 구간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