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란 부적절한 구절이다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이것은 이른 봄에 고무줄 동요로 자주 불리던 것이 <삼천리강산>이다.
그리고 애국가에 4절까지 반복되는 후렴에 ‘삼천리강산’이 있다.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따라서 우리 머릿속에는 ‘삼천리’,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 삼천리가 어디서 나온 말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 경위도’에서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이를 합하여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삼천리 설은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면 "함경북도의 북쪽 끝에서 제주도의 남쪽 끝까지 삼천리 정도 된다고 하여, 우리나라 전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한반도의 가장 긴 직선 축으로 함경북도 북쪽 끝 두만강 온성에서 제주도 남쪽 마라도까지의 거리(距離)가 약 3천리(三千里)가 된다는 설이다. 이는 실제 거리인 물리적 거리가 아닌, 우리 겨레의 심정적 거리일 것이다. 또 다른 직선거리인 의주-부산 간의 거리가 삼천리라고 하는 것도 실제 거리보다 멀다는 관념적 표현과 같은 것이다. 서울 은평구 양천리에 있는 유래비에는 서울(양천리)에서 의주까지 천리, 경상도 동래까지 천리가 되는 중심지라고 유래비에 적혀있다.
제2설은 우리 국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의주까지 천리,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 천리라 하여 삼천리라고 한다. 간혹 `삼천리강산`이라 할 때,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거리인 것 같지만 실제로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거리는 2천리에 지나지 않는다. 삼천리가 되려면 천리가 더 필요한데 의주-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있는 거리를 천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왜냐면 압록강보다 짧은 두만강의 길이만도 700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국경인 두 강의 양단의 직선거리를 합한다 해도 정확하지 않아서 관념적인 거리개념이라 하겠다.
제3설은 서울에서 의주까지 1000리, 서울에서 부산까지 1000리, 부산에서 제주까지 1000리를 합하여 3000리로 본다는 설이다. 제4설은 한양에서 해남까지 900리, 한양에서 경흥까지 2110리 합하면 3010리가 된다는 설이다. 제5설은 무궁화 3천리'는 원래 우리 국토가 만주까지임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만약 '반도 삼천리'라고 했다면 일제의 반도사관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삼천리'는 원래 한반도 2천리와 만주 1천리를 합한 거리이다. 제6설로서 삼천리강산에 대해 선효후문은 ‘국가, 애국가; 애국가의 “삼천리강산”은 일제의 사주(使嗾)’라고 주장한다.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우리나라의 최초 국가는 대한제국 선포(4230년, 1897년) 무렵에 나왔는데 당시 조선영토는 남북 4000리, 동서 2000리였다. 남북 4000리는 해남 끝에서부터 만주 흑룡강까지 북간도를 포함하고, 동서 2000리(東西二千里)는 동쪽 연해주로부터 서간도까지다. 남북 4000리 동서 2000리를 표기하면 간도 지역이 다 포함된다. 그러나 애국가 3000리는 전남 해남 관두(關頭: 땅끝)에서 함경도 온성까지로 만주(간도) 일대가 포함되지 않는다.
명(明)/청(淸) 사서(史書) 기록을 보면, 명에서 조선에 인정한 영토가 남북 4000리, 동서 2000리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선조 26년(4286/1593) 6월 29일(임자)자 기록에서 조선은 국토 넓이가 동서 2000리이고 남북 4000리임이 나타나고, 고종실록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우리 영토는 남북 4000리 동서 2000리였으며, 대한제국을 선포한 4230(1897) 이후 기록에도 4000리가 여러 번 나온다. 청과 일본의 간도협약(1909)을 체결 이전이므로 4000리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따라 애국가가 최초로 불린 기록은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합세”이다. 오늘날의 애국가는 그 후 안익태가 1930년대 초부터 작곡하던 것을 1936년에 완성해 연주하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 시에 국가로 제정되었다.
이처럼 4000리가 왜 3000리로 고착되었는지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아마도 일제의 식민지 사관, 반도 사관, 관련 찬송가와 같은 외래 조의 영향으로 보인다.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란 논란이 되는 부적절한 구절이다.(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隨想錄 1 개갈 안 나네, 한국문학방송, 2020.07.01: 6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