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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경외받으실 분이십니다
본문 : 시 76:1-12
하나님은 경외 받으실 분이십니다
성도님들 !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상을 우리는 ‘무신론(Atheism)’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무신론자들은 ‘세상 어디에도 신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인 C. R. 도킨슨(Clinton Richard Dawkins)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은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적 신앙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진짜 위험한 무신론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 교회도 다닙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방식대로 축소해서 믿고,...
.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배를 하나님처럼 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사하라의 불꽃』이라는
책을 쓴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다음 카톨릭에 귀의해서
수도사로 사하라 사막에서 원주민에게 선교하다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수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 아마 사람마다 답변이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6편이 ....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묻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6절은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에 알려지셨다는 것을 말하고,....
- 7-12절은 알려지신 그 하나님이 바로 경외 받을 이시라고 노래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에 알려지신 하나님.....
이 시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유다에 알려지셨다”는 선포로 시작합니다.
<본문 1절을 읽어라>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새 번역은 이 부분을 보다 더 실감나게 번역합니다.
“유다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누구랴.
그 명성, 이스라엘에서 드높다.”무슨 말입니까?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아마 줄애굽 사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실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갈라 그들을 바로 왕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애굽과 그 주변 나라들에게도 다 알려졌습니다.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이스라엘 정탐꾼 둘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을 때, 라합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0-11)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에도 하나님이
다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2-3절도 읽어라>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 하셨도다.” ....
여기서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입니다.
그리고 ‘살렘’과 ‘시온’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머무시는 장소, 곧 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곳을
자신의 장막과 처소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예루살렘을 보호하셨습니다. 적군들이 화살과
방패와 칼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지만.....
하나님은 화살을 불쏘시개로 쓰시고,
전쟁 무기를 불살랐습니다.
시편 76편의 역사적인 배경은 분명하지 않지만,
헬라어 번역인 70인역(Septuagint)은 ...
이 시편에 ‘앗수르인에 대한 노래’라는 표제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시편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협하였던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를 물리치신
사건과 잘 어울린다고 설명합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한 후에 예루살렘까지 공격해왔습니다.
엄청난 군사력으로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왕하 19:19)
그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쳐주셨습니다.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날 밤 사자를 보내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진멸하였습니다.(왕하 19:35)
앗수르 왕 산헤립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군사들이 다 송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길로 니느웨로 돌아갔는데,
얼마 후에 그는 신하들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왕하 19:36-37).
그래서 시인은 본문 4-6절에서....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전쟁에서 이기게 하심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이스라엘은
오해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알려지신 하나님....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알려지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을 경험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전쟁에서 이긴 것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교회에서는 ‘기도하고 병이 나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신비한 하나님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도님들에겐 하나님이
어떻게 알려지고 있습니까?
전도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보여 봐라, 그러면 믿겠다!’
‘천국과 지옥 가 보았냐?’라고 반문합니다.
‘눈으로 보게 해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혹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 믿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우리 주위에서 항상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여러 통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살펴보면.....
‘아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늘만 쳐다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잘 모르니까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빌립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셨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바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지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이름과 성품,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글에서 읽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20대의 꿈 많은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청년은 “정말 너무 합니다. 아무 얘기도 없이 부르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항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면 너는
다시 세상에 나가 살도록 해라”하고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 다음에 부르실 때에는
미리 예고 좀 해 주십시요. 잘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그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명의 손자와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그는 또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부르기 전에 미리 알려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놈아! 나는 너에게
수십 번도 더 예고했다. 네가 안 들었을 뿐이지.” ....
그러자 그는 “아니, 언제 말씀하셨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래? 너 한번 잘 생각 좀 해봐라. 네 나이 40이 넘으니까 어떻더냐? .....
‘어! 몸이 옛날 같지 않은데’ 하지 않았느냐? 50이 넘으니까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파서 거울 볼 때마다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60이 넘고 70이 되니까, 의욕도 없고 기력도 없고
네 친구들 죽어가는 거 보면서 ‘나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네 입으로 갈 때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다 내가 너에게 예고한 것이었다.
그만큼 예고했는데도 못 알아들은 것은 바로 너였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예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죽을 줄 모르고, 하나님 계시다는 것도 모르면,
그게 누구 문제이겠습니까?
살아온 삶의 순간들을 살펴보세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 사람을 구원하고,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셨습니까?
그런데도 믿지 못한다면 그게 문제입니다.
이 시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유다에 알려지셨다”는
선포로 시작합니다.
경외받으실 하나님.....
두 번째, 우리 하나님은 경외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7절을 같이 읽어라>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여기에 보면, 시인은 ‘주님은 경외 받을 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주님’(אַתָּה 앝타)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해서,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표준 새 번역은 6절과 7절을 “주님께서 한 번 호령하시면
병거를 탄 병사나 기마병이 모두 기절합니다.
주님, 주님은 두려우신 분, 주님께서 한 번 진노하시면,
누가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라고 번역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 한마디라도 하시면
사람들이 다 믿을 텐데 왜 가만히 계시느냐’ 말합니다.
‘꿈에 나타나서, 너 한번 죽어볼래?
그러면 다 믿을텐데...’라고 말합니다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한 번 하시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끝입니다.
병거를 탄 병사나 기마병이 다 기절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한 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말씀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호령하시면, 그 분 앞에서 버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6장 15-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부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산과 바위가 자기 위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 보다 그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모든 사람을 이끄시는 것은
사실 이렇게 쉬운 일입니다.
말씀 한 번 하시면 끝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켜보실 뿐입니다.
사람들은 별의별 말을 다합니다. 인터넷이나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할 말,....... 못할 말 다 쏟아 놓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 .....‘죽으면 그만이지...’ .....
그러나 그분 앞에 서면 모두가 돌처럼 굳어 버릴 것입니다.
그 때도 “나도 말 좀 합시다.” 하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8절은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결을 선포하실 때 땅은 두려워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 이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9-10절을 같이 읽어라>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여기서 ‘온유한 자’는 세상에서 억눌린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심판하러 일어나십니다.
이것은 시편 75편에서 말하는,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사람들의 분노는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더할 뿐이고, 주님은 그것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이든, 골리앗이든, 앗수르든, 모두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결국 그들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대적자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이 분노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대적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은 더 크게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결국 땅에 있는 자들,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십시오......
그래서 이 시인은 끝으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11-12절)
여기서 ‘서원한 것을 갚으라’, ‘예물을 드릴지로다’라는
말씀은 교회에 헌금 많이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이 시편에서 사용하는 전쟁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하나님 앞에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혹시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
만약 이것이 진짜 믿어진다면.... 그 사람은 이 땅만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만 알고 이기적으로
사는 삶을 버릴 수 있고....., 세상도 두렵지 않고.....
그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고.....,
고난조차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6편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 통치를 위해 시온을
자신의 장막과 거처로 삼았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경외 받을 분이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 누가 감히 맞설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교회와 예수 믿는 저와
성도님들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마치 살렘과 시온처럼 자신의 거처로 삼고,......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들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입니다.
성도님들 !
‘믿는다(believe)’라는 뜻의 라틴어 ‘크레도(credo)’는 ‘
심장을 바친다’라는 뜻을 가진....
‘코르도(cordo)’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코르도’라는 말은 영어로 용기를 뜻하는
‘courag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의지와 생각, 내 감정보다 더 깊은 삶의 중심,......
다시 말해서 내 심장을 바치는 용기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믿는 믿음이 그렇습니다.
영락교회에서 목회하다 2000년 4월 세상을 떠난,
고(故) 한경직 목사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이 있습니다.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을 수상했을 때,....
그는 상금 100만 달러를 받고 즉석에서
선교헌금으로 기탁하면서.......
담담한 어조로,... ‘1분 동안 백만장자가 돼 봤네’라고 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축하연에서, 목사님은 동료 목사들과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투옥되고 순교할 때,
자신은 신사참배를 한 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은퇴 후에 남한산성 기슭에 있는
작은 국민주택에서 생활했는데,....
어느 날 교계의 중진 목사들이 한 목사님 병문안을 갔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님, 모처럼 이렇게
교계 중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충고의 말씀 한마디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자, .......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한 목사님은 간곡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세요.” 그 순간 중진 목사님들은
당황하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성도님들 !
예수님 잘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같은 말로 부탁드립니다.
‘장로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
‘권사님들, 집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어영부영, 대강 믿지 말고, 진짜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 하나님을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경외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 보낸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그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고...,
신뢰하며...,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