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복지회관에서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지금은 쉬고 있다. 처음엔 집에서도 자주 연습하면서 갈 날을 기다렸는데 아직도 갈 날이 막막하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기도 하다.
수강생은 대부분 6, 70대이다. 더디기는 하지만 의욕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우리 반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이는 84세 할머니다. 키가 아담하고 얼굴이 고와서 그 정도로 고령일지는 몰랐다. 옷도 누구보다 예쁘게 차려입고 머리도 늘 단정하다. 머플러나 장신구 치장도 멋스럽게 한다. 눈을 반짝이며 맨 앞에 앉아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배움의 열정이 느껴진다. 선생님도 그런 제자가 귀찮을 법도 한데 일찍 와서 연습하는 그녀를 따로 가르쳐 주기도 한다.
오카리나는 몇 번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같은 악기에 비해 소리도 단조로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퇴직할 때 직원들이 들려 준 오카리나 연주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맑고 깨끗한 음색이 가슴을 파고들어 그 울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뭘 배우냐고 주저했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함께 찾은 게 복지회관이다.
그곳은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강좌가 널려 있다. 약간의 수강료가 있는 것도 있지만 무료도 운영되는 것도 많다. 오카리나는 1년간 초급과정일 때는 무료이지만 중급부터는 학기당 4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주 2회씩 지도를 받는다.
오카리나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코더처럼 구멍만 잘 막으면 소리는 잘 나는 줄 알았다. 낮은 음은 그런대로 체면 유지가 되었지만 높은 음일수록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특히 위에 있는 레, 미, 파 같은 고음은 아예 소리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나를 더욱 오그라들게 했다. 초등학생인 손주는 방과 후 학교에서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다며 내가 더듬거리며 연습하고 있는 곡을 익숙하게 연주하여 초보의 기를 더 꺾어 놓았다. 시작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연습하다 보면 시나브로 익혀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했던 게 벌써 4년 반이 지났다.
남편은 들을 때마다 소리가 좋아진다고 칭찬한다. 헛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어느새 높은 파까지 거침없이 나오고 새소리처럼 청량하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들을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름 정도 동남아 골프 여행을 갈 때는 오카리나와 악보를 먼저 챙기곤 했다. 필드에서 돌아오면 책이나 오카리나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학기말 개인별 연주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남편도 내 권유를 받아들여 기타를 배운다. 결혼 전에 클래식 기타를 하다 말았다는데 그동안 한 번도 들려주지 않은 걸 보면 거의 초보인 것 같다. 우린 서로를 응원하며 깔깔대다가 히죽거리곤 한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 양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나이만 많다고 늙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스무 살이라도 이상을 팽개치거나 열정을 포기하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나이가 쉰이나 예순이라도 마음에 안테나가 세워져 있어서 경이로움이나 아름다움, 희망을 수신하는 동안엔 젊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보이고 도전하는 이들을 보면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늙음이 시작되면 이별에도 익숙해지고 새로운 것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며 떼거리로 과장된 너스레나 추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은 흉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하고 싶은 것도 지레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도 안타깝다. 젊었을 땐 일이나 자식들 뒷바라지로 하지 못한 게 많다. 대부분 직장 생활과 두 아이를 키우는 일에 동분서주하며 3,40대를 정신없이 지나왔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참 대견하다. 자신의 최대 용량을 출력해야만 유지할 수 있던 일이었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을 소진할 만큼 애썼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노후를 즐길만하다.
40대 초반의 딸은 지금도 육아 중이다. 그런데도 둘째가 3살 때부터 해마다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 그때의 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인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바쁜 중에도 아이들과 가고 싶은 곳을 찾는다. 가족이 모두 야구팬이 되어 경기장에서 환호하고 뮤지컬을 보고 미술관을 찾기 위해 열차 여행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공감대를 넓혀가는 딸의 젊음이 새삼 부럽다. 그녀는 젊음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청춘이든 노인이든 마음먹기에 따라서 체감하는 삶의 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이 힘들다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처럼 생각할 것이 아니다. 코로나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어려움을 딛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막혔던 길이 어느 순간 확 트이기도 한다. 현재, 지금을 가장 좋은 시절이라 생각하며 삶을 즐기는 것이다. 황혼기의 나에게도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늘 받아들이도록 안테나를 세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2021년 전남여류문학 연간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