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도 잠들지 않는 희망
차경희
현재 내가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인 시설에는 수 많은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고는 하나 집단생활을 하는 공동체이니 자연스레 나름 의 서열과 위아래의 구분이 확실한 편이다. 그런 데 일명 “박회장님”이라 불리며 서열과 나이를 무 시하고 시설의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과 돌봄을 받 는 사랑둥이가 한 녀석 있다. 뇌병변 장애로 걷지 도 못하고 말할 수 없는 네 살배기 원아 현우, 그 런데 다름 아닌 현우 요녀석의 별명이 바로 “박회 장님” 되겠다. 성이 났을 땐 소리 지르고 울며불 며 까탈을 부려다가도 기분이 풀어지면 수시로 살인미소를 날려며 마음을 었다 당겼다하는 재주를 부려는데, 요 애간장을 녹이는 귀여운 애교를 기반으로 그야말로 모두가 받들어 모시는 박회장님이 된 것이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본 나 로서는 지금 현우의 모습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표정도 움직임도 반응도 없던, 도자기 인형 같은 아이 현우는 3여년에 걸친 치료의 과정을 거쳐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보여주며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사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현재의 “박회장님”인 현우가 되기까지는 수많 은 눈물과 고통이 동반 되어야 했다. 현우는 언어치료와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을 받고 있다. 장애 아를 둔 부모들의 심정은 하나같을 것이다. 치료의 과정은 힘들 고 변화의 모습은 더디다. 치료를 받는 아이도 그 모습을 지켜봐 야 하는 나도 서로가 아프고 지칠 수밖에 없는 지난하고 때로는 지루한 과정이다. 그런데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그런 우리의 모 습을 지켜보던 담당 선생님들은 귀신같이 그리고 또 한결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이에게 분명히 인지능력이 있고 그것 을 발현시키는 것은 돌보는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만큼 그것에 정비례하여 아이의 변화가 보여 질 것이란다. 요는 그것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 낙숫물이 바 위를 패이게 만들 듯 더디고 불가능 하다고 느껴지는 고통을 수 반한 모든 과정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아이를 놓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인내는 쓰고 포기는 쉽다. 사실 말이 쉽지 성취보다 좌절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그 길고 긴 고통의 과정을 어떻게 묵묵히 견딜 수 있다는 말인가. 당장 비장애인으로서 보편적인 생각으 로는 그렇다. 애가 뭘 알까 뇌에 손상을 입은 장애아의 인지능력 이란 것이 후천적 학습으로 과연 정상인에 가까워 질 수 있을까. 3년 내내 현우 곁을 지키며 주의 깊게 살펴온 사람으로서 결론 을 이야기 하자면 그 변화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극을 주고 본능을 일깨워 주며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도록 독려해 줄수록 감정을 가진 작은 생명체인 현우는 더욱 활발한 표정과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며 나를 놀라게 한다.
단적으로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자면, 이 작은 녀석도 예쁜 여자 를 좋아 한다. 작업치료 선생님이나 재활치료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자녀들도 키우고 사회 경험도 풍부하신 분들인데 그분들에 게 치료를 받을 때는 반응이 덜 적극적이다. 그런데 언어치료 선 생님은 결혼하지 않는 아가씨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이 진행하 는 프로그램에 참여 할 때는 아주 적극적으로 답도 크게 “네” 하면서 묻는 말에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 손에 나비를 들 고 다른 한 손에는 메뚜기를 들고 나비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나비 있는 쪽으로 손을 든다. 또 과일 중에 사과를 들고 배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감, 밤 토마토 등 몇 가지를 물 으면 아니라고 하다가 “사과”하면 응 하고 답을 한다. 나름 예 쁜 선생님과 하는 공부에 열의를 보이며 더 활발하게 자기표현 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뭐가 단한 것이냐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자체에 한 관심과 반응 없이 그저 맹한 눈으로 바라보며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치료 전의 현우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더 예쁘다는 것에 한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열 의라는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냥 놔둬버리면 IQ가 0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보 여주고 들려주면서 감정을 훈련시키고 개발해 주니 현우 스스로 도 나름로의 방법으로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시설에서 부모와 떨어져 자라는 아이들 중에 사연 없는 아이 가 있겠냐 마는 사실 현우는 특히나 더 마음이 가는 아이이다. 현우의 엄마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 결혼 이민자였다. 수줍 게 웃던 모습만 기억하는 아주 참한 새이었던 것만 기억나는 데, 현우를 출산하다 출혈이 심해 그만 의식불명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배안에 그로 있는 상태에서 모체를 통한 산소공급이 중단되어 버리니 그길로 현우의 소뇌가 망가져 버렸고 재생이 되지 않아 지금의 뇌병변이라는 장애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라 도 아이를 거둬줬으면 좋았으련만,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의 노 쇠한 아버지는 키울 능력이 안 되어 친권을 포기하고 사회복지 법인 강진 자비원으로 현우를 보내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 로 장애의 사실이 제로 인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일반아동 돌보듯이 아이를 돌봤다. 성장 발육이 부진한 것을 의심스레 여겨 원인을 알아보니 그제서야 뇌병변 이라는 장애를 알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치료의 적기를 넘긴 상태에서 부랴부랴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총력을 기울여 치료에 몰두하던 지난날들이었다. 시간 시간 배고픔에 잠을 깨 보듬고 먹여야 하 기 때문에 담당 지도사인 내 어깨가 고장 나는 것은 순식간, 하 루 근무하고 하루는 한의원 가서 침을 맞으며 부단히 노력해서 아이를 돌봐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전남학교, 서울 아산병원 광주 기독교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정 검사를 받았고 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정보교환도 하면서 희망의 끈 을 잡게 되었다. 아이의 사연을 전해 여러 기관에서 도움을 받아 치료에 꼭 필요한 휠체어도 준비하고 보조신발이나 기립기도 가 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우는 지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몰랐었던 두 눈이 요즈음 부쩍 땡글해지고 생기를 품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안에만 있으려고 하지 않고 나들이를 나가고 싶다고 떼를 쓰며 뗑강을 부린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어찌나 정확히 하는지 그 까탈스런 고집이 때때로 나를 지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조차 사 실 현우의 치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자신의 감정을 그만큼 거침없이 원활하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떼를 부릴 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듯이 가끔 나들이 길에 나서기도 하는데, 나가면 무슨 말인지도 모를 옹알이를 해 며 신나하기에 휠체어와 유모차를 모조리 차에 싣고 왕왕 드 라이브를 나서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길엔 어김없이 강진 자비원 화목반 형들이 동행하여 현우의 움직임을 돕는다. 경계선 장애 인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형 동생이라는 인연의 끈을 붙잡고 서로를 챙기는 마음만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협력자요 돕는 손길이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으로 현우는 또래의 아이들 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컴퓨터에서 비치는 작은 불빛으로 현우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작고 하얀 이가 조르 르 돋아난 것이 살짝 살짝 보이는 귀여운 미소를 짓는데 이 세 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이 느 껴진다. 애착 관계를 한참 형성중인 유아 시기라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현우 옆에 찰싹 붙어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낮에는 하루 종일 방청소도 해야 하고 사무실에서 호 출하면 뛰어 가야하고 형들 교복도 빨아야 하고 누구보다도 손 이 많이 가야 하지만 현우만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형편이 아 니다. 기립기에 세워 놓고 말놀이 동시CD를 들려주면서 크고 작 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의 불이 꺼지기 전, 현우 와 눈으로 수많은 화를 나누며 웃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소통 하는 그 시간만큼은 나를 온전히 차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온 모양인지 백만불짜리 미소를 보여주는 현우이다. 이렇듯 더딘 걸음이라도 저 멀리 앞을 향해 조금씩 내딛고 있다.
멀리서 비쳐 주는 어둠을 밝혀주는 작은 불빛, 그것에도 감사하며 더 나은 미 래를 꿈꾼다. 날마다 하이파이브, 파이팅 하면서 “우리는 할 수 있어” 외치면서 현우와 나에게 최면을 건다. 신체적 재활치료와 더불어 감정표현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 래도 들려주고 동화도 읽어주는 등 자체적인 감성치료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우가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도 보고 느낄 수 있고 점점 그 표현이 풍부해져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경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하고 또한 그 경험이 차곡 차곡 쌓였을 때, 때가 되면 분명히 어떤 방법이라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 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 깊 어간다. 고구마를 캐야하고 콩과 들깨를 거둬들이고 마늘을 심 고 양파를 심어야 한다. 무한한 듯 보이는 자연에도 계절에 따른 순서가 있고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이 현우 같은 장 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들이 삶의 자리에서 한 축을 이루며 소외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 워가면서 함께 아름답게 공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현 우도 꽃이 피고 지는 것, 계절이 바뀌는 아름다움을 알아챌 수 있는 감수성 넘치는 소년으로 자라길. 실낱과도 같은 희망이지 만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을 멈 추지 않는 중이다. 이 모든 노력의 과정들이 아름다운 결실이 되 어 미래의 현우의 삶을 빛내주었으면 한다.
- 2016년 전남여류문학회 연간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