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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끝내 와 본 '세상의 끝'
I, ‘라파 누이(Rapa Nui. 이스터)’ 섬을 떠나며...
‘이 세상의 끝’으로 여기며 찾아왔던 ‘라파 누이(Rapa Nui)’ 섬.
그곳에서 한 달간의 쉽지 않은 일정을 마무리했던 이 인야는,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과 함께 ‘항가 로아(Hanga Roa)’ 공항에 도착했다.
절해고도로 망망대해 남태평양의 한 조그만 이 섬까지 오는 길은, 세상 그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여정일 터였다.
인야 역시 젊은 시절부터 그저 꿈인 것처럼 동경만 하던 이 섬을,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렵게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도착해, 한 달 정도를 살아보면서 뭔가 자기 인생의 의미를 살리며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이곳, 끝내 와보긴 한 거니까......' 하는 심정으로,
더구나 다시는 올 일 없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의 목적지였기에, 이 섬을 떠나는 순간은 더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섬에서의 가장 큰 악재는 다름 아닌 숙소 문제였다.
섬에 들어오기 전부터 숙소 걱정에 마음을 졸였던 인야는, 너무나 운이 좋게도... 칠레 ‘뿐따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의 숙소 주인으로부터 라파 누이 섬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한다는 '아주 좋은 지인'을 소개받은 것에 대만족한 상태로 들어왔었다. 그러나 차라리 그런 일 없이 들어왔던 게 더 나았을 정도로, 그들 부부는 인야의 인생여행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아름다운 섬에서의 기억마저 흐리게 만든 오점으로 작용했다.
사실 인야는 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칠레 본토에 처자식이 있음에도 라파 누이 섬에 들어왔다가 새로운 짝을 만나 아예 눌러앉았다던 숙소 주인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 낭만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던 남자는 얼마나 멋있을지, 그리고 그런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여인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러나 은행 문이 닫혀 숙박비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이유로, 첫날부터 젊은 여주인으로부터 기분 좋지 않은 대접을 받은 걸로 시작되어, 머무는 내내 그들과 갈등을 겪고 말았다. 돈에만 눈이 먼 그들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보다도 못한 태도로 자신들의 손님인 인야를 대했을 뿐더러, ‘이 세상의 끝’이라 여겼듯... 뭔가 드라마틱하고 묵직한 감동을 얻어 돌아가려던 인야의 꿈을 갈갈이 갉아먹는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다.
그들은 어떤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듯 보였고, 집 전체를 감싸는 종교적인 분위기 또한 인야가 견디기 힘든 요소였는데,
‘사랑에 빠져 이 섬에 남았다던 그 남자가, 혹시 종교적인 이유로 섬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섬 원주민 여인이었던 그의 짝이 바로 원흉으로... 토속 신앙이 아닌 외부의 사이비 종교에 물든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크게 실망한 인야는 자전적 소설이자 남미 여행의 현장 소설이기도 한 '천 달러의 여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그 섬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낸) 그 집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없는 돈에 한 달 치의 숙박료가 이미 지급된 상태라 숙소를 바꿀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보니 막바지 며칠은 더더욱 고역이었던 것으로,
오죽했으면, 섬을 떠나는 날인 그 날도 오후 3시 비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에 짐을 끌고 숙소를 나왔겠는가.
그런 이유로 인야에게는, 섬을 떠나는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거의 불가능할 뻔했던, 망망대해의 섬에 겨우 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후련하게 떠나는 입장은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이 경우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긴, 우리네 인생에서 본인의 뜻대로 이뤄지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뭐...(그러리라고 여기지도 않았지만,)‘유토피아’라거나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오갈 데 없는 작고 답답한 한 섬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도 아침에 도서관에 가는데 트럭이 지나가면서 누군가 소리를 쳐서 보니, 인야가 몇 번 채소를 샀던 여기 간이 시장의 한 부인이 아는 체를 했던 것이고,
조금 더 가는데 또 누가,
“인야!” 하고 불러서 보니,
‘박물관’ 직원이(그동안 인터넷을 공유했던 인연) 오토바이를 탄 채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러다 내가, 여기 주민 되겠네(?)!’ 하고 인야 스스로 웃기도 했다.
그렇게 여기가 바닥이 좁기도 하지만, 아무튼 얼굴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 인야는 어느새 여기 사람들과도 그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기분 나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인야가 이제 곧 떠난다고 하자, 알 만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다...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었지만,
“내가 살아생전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겠습니까?” 했던 대답처럼,
그런 건 인야의 생각 밖이었다. 아무리 죽기 전에(죽는다 해도) 꼭 가보고 말리라며 용을 쓰고 찾아왔던 곳이긴 하지만, 어찌 한국에서 여기까지 다시 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만약 그럴 여력이 생긴다면, 아직도 가보지 못한 이 세상의 그 많은 곳 중에서 한 곳을 고르리라는 생각은 이미 해두었던 터라... 또다시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여기서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할 것이었다. 군더더기가 남으면, 마음만 아플 테니까.
그래도 이 섬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모아이 석상’들이 널려있었고(‘유네스코 세계 문화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지금도 ‘뽀이께(Poike)’ 등 일부는 출입이 금지된 상태),
말 그대로 ‘절해고도’로, 남태평양 그 어떤 섬보다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섬이어서 그런지... 뭔가 모를 신비감도 없지 않았는데,
와 보니, 힘들여 와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섬이란 건 확인한 상태였다.
특히 자연 자체가 깨끗했고, 인야가 개인적으로 좋아할 것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섬에서는 어디든 바닷가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거칠 것 없이 확 트인 자연의 바다를 맘껏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고(횟집, 민박, 펜션 같은 건물이 없어 망망대해가 그대로 펼쳐져), 기후도 좋은 편이었지만(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의적인 것도 좋았다.
물론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렇다고 외로웠다는 건 아닌데, 어딘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감정이 절로 들었고... 인터넷 사정이 좋을 리 없는 외딴 섬이다 보니, 정말 인야 본인이 살던 세상과는 너무나도 멀리 단절된 갑갑함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인야가 이 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아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방랑객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별게의 문제였다.
더구나 기껏해야 직선거리로 20여 km인 작은 섬이라, (여기 인구가 만 4천 정도인데, 4천은 원주민 만 명은 칠레 본토 등 타 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인야처럼 차(돈)가 없는 사람은, 그저 ‘항가 로아’라는 도심의 다른 반대쪽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천천히 걸어봤던 것도 좋았다.(다른 사람들마저도 그 먼 길을 걷는 인야를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또 걸어서 제일 높은 산인 ‘떼레바까(Terevaka)’ 산도 올랐으니, 나름 해볼 건 다 해봤다는 자긍심도 없이 않았다.
그리고 여기 칠레 본토 사람들마저도 인야에게 ‘와삽’ 문자로,
그 손바닥 만한 섬, 한 2-3일 돌다 보면 보고도 남을 텐데...
뭐, 한 달씩이나 지내느냐? 더구나 물가도 비싼데......
하고 의아해 하면서도,
기왕에 그 섬에 들어갔으니 ‘바다가제’를 꼭 먹고 오라.
고 추천도 했지만,
없는 돈에 그럴 수는 없어 그냥 나가는 처지다 보니,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싱싱한 생선을 구입할 수는 있었음에도... 인야는 개인적으로 생선 다루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사먹을 엄두조차 내지 않는 등, 해물은 신경마저 쓰지 않고 지냈을 뿐이다.
그리고 고기는 길거리 시장에서 소, 닭, 돼지 정도를 팔았는데, 그중 돼지고기가 좀 귀했다.
하루는 인터넷을 하러 ‘문화 센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돼지고기를 팔기에, 인야는 비쌀 줄 알고... 만 뻬소를 미리 보여주며 그만큼만 달라고 했는데,
받았던 고기에는 갈비 부위와 삼겹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해치우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고기가 질기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잘 먹었다.),
그 반면, 이 섬은 자체적인 과일(주로 빠빠야, 파인애플, 바나나가 있던데)이 너무 빈약한 데다, 타지에서 과일을 들여올 수도 없어... 한 달 내내 인내해야만 했던 '과일에 대한 갈증'이 인야에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기는 했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술도 한 번 제대로 마시지 못했지만(마을 사람들이 불러서 가면 맥주를 주로 마시던데, 인야는 맥주는 안 마시기 때문에), 떠나기 전 혼자라도 비노 한 잔 하려던 참에, 마침 여기서 알게 된 젊은 커플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셨기 때문에... 그 역시 섭섭함이 다소 해소된 일이긴 했다.
그렇게 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한 적 없이 지내다 떠나는 인야였지만, 그래도 여기 ‘남보라색 고구마’는 그 자체로도 신비스러웠지만 맛도 너무 좋아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구마'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인야는 한 달 동안 글 작업도 하나 해놓았고, 한국에 돌아가 크게 확대해서 그릴 밑그림도 몇 점 해놓았기 때문에, 거창한 염세주의 철학자도 아닌 다음에야... 세상을 포기할 사람처럼 ‘세상 끝’에 왔다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허무’ 운운할 일도 없었다.(물론 인야 역시 그런 비슷한 감정에 젖어보기도 했지만, 염세적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슬퍼지려던 상황에 그 스스로 훌훌 털어버렸던 것인데...) 더구나 이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섬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기에, 인야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희망적이자 든든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로는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라파 누이 섬의 공항은 인야의 나라 한국 고속도로의 작은 휴게소 같은 분위기였는데,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고, 인야 역시 그랬다.
일주일에 두 차례 비행기가 오가는 이곳에서, 섬사람들은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공항 밖에서는 막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릴 새로운 손님들을 위한 환영식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하지만 인야가 타고 나가야 할 비행기는 한 시간가량 연착되었기 때문에, 체크인 뒤에도 좁은 곳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탑승이 시작되었고, 인야도 긴 줄에 섞여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활주로 아스팔트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인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며칠 전 ‘아후 아키비(Ahu Akivi)’언덕에서 만나 그 인연으로 그저께 함께 저녁 식사까지 했던 칠레 커플이 철망 담장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인야는 얼른 방향을 바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 나와도 되는데......” 싫지 않은 어감으로 인야가 말했는데,
“비행기 이륙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쩐지 나오고 싶드라구요. 당신의 떠나는 모습이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요.”하고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방호벽과 담장으로 조금은 먼 거리였지만, 그렇게 그들과 다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인야는, 울타리 담장 밖의 그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정작 한 달을 머물렀던 숙소를 나올 때는 주인 부부와 마지못한 인사만 나누었던 터라 씁쓸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배웅까지 받고 나니... 조금은 훈훈한 기분으로 라파 누이 섬을 떠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 기대를 걸었던 이들에게는 실망을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들로부터는... 따뜻한 정을 느끼며 떠나게 되는구나......’ 하며,
인야의 라파 누이 여행은 역설적인 감동으로 마무리가 된 편이었다.
출발 몇 시간 전부터 공항에 도착했음에도, 좁은 공항 안이 답답했던 인야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체크인이 조금 늦어졌고, 그 결과... 한 달 전 섬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기내 아홉 좌석 가운데 줄 통로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륙과 착륙 상황에서 창가에 앉아 섬의 전경을 꼭 내려다보고 싶었던 바람도 이룰 수 없었다.
사실, ‘라파 누이(Rapa Nui)’ 섬을 방문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던 인야였기에,
“에이, 나는 그런 운도 없나 보네!” 하는 불만마저 일고 있었다.
더구나 비행기가 이륙한 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창가에 앉은 젊은 여자는 아예 창을 닫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어서 그 틈새로도 바깥을 볼 수 없기에, 인야는,
'세상은 불공평해!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나 절실하게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 섬의 모습이 필요한데(그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도 싶어서), 어떤 사람은 창쪽에 앉아있으면서도 아예 문을 닫아놓고 졸기까지 하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반대편 창을 보니, 비행기의 각도가 기울어져 잠시 바깥 풍경이 보이긴 했지만,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파란색 일변이었다.
그런 아쉬움도 식어가면서 덤덤한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던 인야는, 창 쪽 좌석의 여자가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창밖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하얗고 둥근 뭔가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저건!”
그것은 '추석 달'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추석 달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생소하다 못해 난생처음 겪는 일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라파 누이' 섬을 보지 못한 한을, 저 추석달을 보고 풀라는 계시일까?' 하기도 했지만, 인야는 뭔가 섬뜩함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한국을 떠나온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는 얘긴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추석을 쇠기 위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정처없이 떠돌기만 하는 걸까? 심지어 지금도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스페인을 거쳐 가려고 항공권까지 사놓은 상태니......’
어찌 됐든 비행기는 육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라파 누이’ 섬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정이었지만,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인야에게는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라파 누이 섬이 점점 멀어진다는 의미가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1장, 끝내 와 본 '세상의 끝'
I. '라파 누이(Rapa Nui, 이스터)' 섬을 떠나며...
'이 세상의 끝'으로 여기며 찾아왔던 '라파 누이(Rapa Nui)' 섬.
그곳에서 한 달간의 쉽지 않은 일정을 마무리했던 이 인야는,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과 함께 '항가 로아(Hanga Roa)' 공항에 도착했다.
절해고도로 망망대해 남태평양의 조그만 이 섬까지 오는 길은, 세상 그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여정일 터였다.
인야 역시 젊은 시절부터 그저 꿈인 것처럼 동경만 하던 이 섬을,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렵게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도착해, 한 달 정도를 살아보면서 뭔가 자기 인생의 의미를 살리며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이곳, 끝내 와보긴 한 거니까......' 하는 심정으로,
더구나 다시는 올 일 없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의 목적지였기에, 이 섬을 떠나는 순간은 더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섬에서 겪은 가장 큰 악재는 다름 아닌 숙소 문제였다.
섬에 들어오기 전, 인야는 칠레 '뿐따 아레나스'의 숙소 주인으로부터 라파 누이의 '아주 좋은 지인'이 있다며 소개를 받고 들어왔기에, 그 과정은 무척 안심이 됐었다. 하지만 차라리 소개 없이 들어왔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들 부부는 결과적으로, 인야의 인생 여행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아름다운 섬의 기억마저 흐리게 만든 오점이 되었다.
사실 인야는 숙소 주인에게 내심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본토에 가족이 있음에도 라파 누이 여인과 사랑에 빠져 섬에 눌러앉았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얼마나 멋질 것이며, 그를 사로잡은 여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그 낭만은 첫날부터 처참하게 깨졌다.
은행 문이 닫혀 미리 현금을 마련할 수가 없어 숙박비를 당장 내지 못하자, 젊은 여주인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니 인야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오로지 돈에만 눈이 먼 그들은 손님인 인야를 길에서 만난 행인보다 못할 정도로 냉랭하게 대했다.
'세상의 끝'에서 드라마틱한 감동을 얻으려던 인야의 꿈은 그들에 의해 갈갈이 갉아먹히고 말았다.
게다가 그들은 기이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듯했고, 집 전체를 감싸는 묘한 종교적 분위기는 인야를 더 힘들게 했다. 사랑 때문에 섬에 남았다던 그 남자가 사실은 종교적인 이유로 섬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섬 원주민이었던 여주인은 토속 신앙이 아닌 정체불명의 외래 종교에 깊이 물들어 있었고, 인야에겐 그녀가 모든 문제의 원흉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들에게 크게 실망한 인야는 자전적 소설이자 남미 여행의 현장 소설이기도 한 '천 달러의 여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그 섬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낸) 그 집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없는 돈에 한 달 치의 숙박료가 이미 지급된 상태라 숙소를 바꿀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보니 막바지 며칠은 더더욱 고역이 아닐 수 없었던 것으로,
오죽했으면, 섬을 떠나는 날인 그날도 오후 3시 비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에 짐을 끌고 숙소를 나왔겠는가.
그런 이유로 인야에게는, 섬을 떠나는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거의 불가능할 뻔했던, 망망대해의 섬에 겨우 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후련하게 떠나는 입장은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이 경우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긴, 우리네 인생에서 본인의 뜻대로 이뤄지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뭐...(그러리라고 여기지도 않았지만) '유토피아'라거나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오갈 데 없는 작고 답답한 한 섬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전날도 아침에 도서관에 가는데 트럭이 지나가면서 누군가 소리를 쳐서 보니, 인야가 몇 번 채소를 샀던 간이시장의 한 부인이 아는 체를 했던 것이고,
조금 더 가는데 또 누가,
"인야!" 하고 불러서 보니,
박물관 직원이(그동안 인터넷을 공유했던 인연) 오토바이를 탄 채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러다 내가, 여기 주민 되겠네(?)!' 하고 인야 스스로 웃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 섬의 바닥이 좁기도 하지만, 아무튼 얼굴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 인야는 어느새 여기 사람들과도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기분 나쁠 일은 물론 아니었다.
그런데 인야가 이제 곧 떠난다고 하자, 알 만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었지만,
"내가 살아생전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겠습니까?" 했던 대답처럼,
그런 건 인야의 생각 밖이었다.
아무리 죽기 전에 꼭 가보고 말리라며 용을 쓰고 찾아왔던 곳이긴 하지만, 어찌 그 먼 한국에서 여기까지 다시 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만약 그럴 여력이 생긴다면, 아직도 가보지 못한 이 세상의 그 많은 곳 중에서 한 곳을 고르리라는 생각은 이미 해두었던 터라... 또다시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여기서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할 것이었다. 군더더기가 남으면, 마음만 아플 테니까.
그래도 이 섬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모아이 석상'들이 널려 있었고('유네스코 세계 문화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지금도 '뽀이께(Poike)' 등 일부는 출입이 금지된 상태), 말 그대로 '절해고도'로, 남태평양 그 어떤 섬보다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어서 그런지... 뭔가 모를 신비감도 없지 않았는데,
와 보니, 힘들여 와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섬이란 건 확인한 상태였다.
특히 자연 자체가 깨끗했고, 인야가 개인적으로 좋아할 것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섬에서는 어디든 바닷가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거칠 것 없이 확 트인 자연의 바다를 맘껏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고(해변에 횟집, 민박, 펜션 같은 건물이 없어 망망대해가 그대로 펼쳐져), 기후도 좋은 편이었지만(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의적인 것도 좋았다.
물론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렇다고 외로웠다는 건 아닌데, 어딘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감정이 절로 들었고... 인터넷 사정이 좋을 리 없는 외딴 섬이다 보니, 정말 인야 본인이 살던 세상과는 너무나도 멀리 단절된 갑갑함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인야가 이 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아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방랑객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별개의 문제였다.
더구나 기껏해야 직선거리로 20여 km인 작은 섬이라(여기 인구가 만 4천 정도인데, 4천은 원주민, 만 명은 칠레 본토 등 타 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인야처럼 차(돈)가 없는 사람은, 그저 '항가 로아'라는 도심의 다른 반대쪽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천천히 걸어봤던 것도 좋았다. (다른 사람들마저도 그 먼 길을 걷는 인야를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또 걸어서 제일 높은 산인 '떼레바까(Terevaka)' 산도 올랐으니, 나름 해볼 건 다 해봤다는 자긍심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칠레 본토 사람들마저도 인야에게 '와삽' 문자로,
그 손바닥만 한 섬, 한 2~3일 돌다 보면 보고도 남을 텐데... 뭐, 한 달씩이나 지내느냐? 더구나 물가도 비싼데......
하고 의아해하면서도,
기왕에 그 섬에 들어갔으니 '바닷가재'를 꼭 먹고 오라고 추천도 했지만,
없는 돈에 그럴 수는 없어 그냥 돌아가는 처지다 보니,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싱싱한 생선을 구입할 수는 있었음에도... 인야는 개인적으로 생선 다루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사 먹을 엄두조차 내지 않는 등, 해물은 신경마저 쓰지 않고 지냈을 뿐이다.
그리고 고기는 길거리 시장에서 소, 닭, 돼지 정도를 팔았는데, 그중 돼지고기가 좀 귀했다.
하루는 인터넷을 하러 '문화 센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돼지고기를 팔기에, 인야는 비쌀 줄 알고... 만 뻬소를 미리 보여주며 그만큼만 달라고 했는데,
받았던 고기에는 갈비 부위와 삼겹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해치우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고기가 질기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잘 먹었다.)
그 반면, 이 섬은 자체적인 과일(주로 파파야, 파인애플, 바나나)이 너무 빈약한 데다, 타지에서 과일을 들여올 수도 없어... 한 달 내내 인내해야만 했던 '과일에 대한 갈증'이 인야에겐 가장 큰 결핍감으로 남기는 했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술도 한 번 제대로 마시지 못했지만(마을 사람들이 불러서 가면 맥주를 주로 마시던데, 인야는 맥주는 안 마시기 때문에), 떠나기 전 혼자라도 비노 한 잔 하려던 참에, 마침 여기서 알게 된 젊은 커플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셨기 때문에... 그 역시 섭섭함이 다소 해소된 일이긴 했다.
그렇게 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한 적 없이 지내다 떠나는 인야였지만, 그래도 여기 '남보라색 고구마'는 그 자체로도 신비스러웠지만 맛도 너무 좋아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구마'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인야는 한 달 동안 글 작업도 하나 해놓았고, 한국에 돌아가 크게 확대해서 그릴 밑그림도 몇 점 해놓았기 때문에, 거창한 염세주의 철학자도 아닌 다음에야... 세상을 포기할 사람처럼 '세상 끝'에 왔다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허무' 운운할 일도 없었다. (물론 인야 역시 그런 비슷한 감정에 젖어보기도 했지만, 염세적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슬퍼지려던 상황에 그 스스로 훌훌 털어버렸던 것인데...) 더구나 이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섬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기에, 인야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희망적이자 든든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로는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라파 누이 섬의 공항은 인야의 나라 한국 고속도로의 작은 휴게소 같은 분위기였는데,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고, 인야 역시 그랬다.
일주일에 두 차례 비행기가 오가는 이곳에서, 섬사람들은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공항 밖에서는 막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릴 새로운 손님들을 맞기 위한 환영식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하지만 인야가 타고 나가야 할 비행기는 한 시간가량 연착되었기 때문에, 체크인 뒤에도 좁은 곳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탑승이 시작되었고, 인야도 긴 줄에 섞여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활주로 아스팔트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인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며칠 전 '아후 아키비(Ahu Akivi)' 언덕에서 만나 그 인연으로 그 전전 날 함께 저녁 식사까지 했던 칠레 커플이 철망 담장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인야는 얼른 방향을 바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 나와도 되는데......" 싫지 않은 어감으로 인야가 말했는데,
"비행기 이륙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쩐지 나오고 싶드라고요. 당신의 떠나는 모습이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요." 하고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방호벽과 담장으로 조금은 먼 거리였지만, 그렇게 그들과 다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인야는, 울타리 담장 밖의 그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정작 한 달을 머물렀던 숙소를 나올 때는 주인 부부와 마지못한 인사만 나누었던 터라 씁쓸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배웅까지 받고 나니... 조금은 훈훈한 기분으로 라파 누이 섬을 떠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 기대를 걸었던 이들에게는 실망을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들로부터는... 따뜻한 정을 느끼며 떠나게 되는구나......' 하며,
인야의 라파 누이 여행은 역설적인 감동으로 마무리가 된 편이었다.
출발 몇 시간 전부터 공항에 도착했음에도, 좁은 공항 안이 답답했던 인야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체크인이 조금 늦어졌고, 그 결과... 한 달 전 섬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기내 아홉 좌석 가운데 줄 통로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륙과 착륙 시 창가에 앉아 섬의 전경을 꼭 내려다보고 싶었던 바람도 이룰 수 없었다.
사실, '라파 누이(Rapa Nui)' 섬을 방문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던 인야였기에,
"에이, 나는 그런 운도 없나 보네!" 하는 불만마저 일고 있었다.
더구나 비행기가 이륙한 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창 쪽에 앉은 젊은 여자는 아예 창을 닫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어서 그 틈새로도 바깥을 볼 수 없기에, 인야는,
'세상은 불공평해!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나 절실하게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섬의 모습이 필요한데(그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도 싶어서), 어떤 사람은 창 쪽에 앉아있으면서도 아예 문을 닫아놓고 졸기까지 하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반대편 창을 보니, 비행기의 각도가 기울어져 잠시 바깥 풍경이 보이긴 했지만,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파란색 일변이었다.
그런 아쉬움도 식어가면서 덤덤한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던 인야는, 창 쪽 좌석의 여자가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창밖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하얗고 둥근 뭔가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저건!"
그것은 '추석 달'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추석 달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생소하다 못해 난생처음 겪는 일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라파 누이' 섬을 보지 못한 한을, 저 추석달을 보고 풀라는 계시일까?' 하기도 했지만, 인야는 뭔가 섬뜩함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는 얘긴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추석을 쇠기 위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하는 걸까? 심지어 지금도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스페인을 거쳐 가려고 항공권까지 사놓은 상태니......'
어찌 됐든 비행기는 육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라파 누이' 섬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정이었지만,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인야에게는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라파 누이 섬이 점점 멀어진다는 의미가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