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졸 업
1970년2월
소진이 근무한지 2개월째
소진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수많은 얘기들이 깃들여 있는 3년이란 세월, 소녀였던 그녀를 어엿한 숙녀로 키워냈던 학교생활을 마감 하는 날 소진은 오랜만에 흰 칼라의 교복을 입었다
다시는 교복을 입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아쉬운 듯 거울에 모습을 비쳐본다,
‘교복을 입은 모습도 밉지는 않네!’
칼라 깃을 한 번 더 세우고 준비한 답사 원고를 넣은 대봉투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졸업을 앞두고 그렇게 열망하던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꿈 많던 소녀 시절을 보냈던 정든 교실과 친구들과의 이별, 또 다른 시작과 함께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가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새로운 희망과 미지의 세계가 한없이 펼쳐질 날들을 기대하는 날들이 있으므로 소진은 슬픈 생각은 접기로 했다.
오늘 송사를 낭독 하면서 울지 말아야지 선배들이 답사 낭독 중에 울음을 터트려 낭독을 중간에 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멋진 낭독을 위하여 울지 않으리라.
학교에 도착하니 졸업생들은 좀 침통한 표정으로 강당에 마련된 졸업식장에 모여 있었다, 소진은 친구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복도를 지나 교무실로 들어섰다.
“여어~~진소진 왔구나.”
선생님들이 일제히 환호를 하며 소진을 반긴다.
“직장 생활 어때 할만해?”
“네 선생님”
“야~~숙녀가 다됐다 그동안 정말 예뻐졌는데?”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원래 저의 미모는 타고난 거 아닌가요.”
“아이고 저걸 누가 말려 여전하구만~~철 안 든 거는”
“평생 저는 이러고 살 건데 철 안 들고~~”
그녀는 선생님들의 농담을 받아주며 일일이 고개를 숙여 인사드리고 교장, 교감 실을 찾아 인사 했다.
“ 참! 아까운 놈인데
하지만 뭐 꼭 대학에 가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무엇을
하던지~ 너라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다.
난 너를 믿어 사회에 나가서도 모교를 빛내줄 선배로 자리 할 수 있음을~~~
하지만 꿈을 포기해서는 안돼 언제든 할 수 있는 거니까“
각종 문예 백일장에서 수상을 했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글 쓰는 기술(그녀의 담임은 언제나 글을 쓰는 것도 기술이라 했다)을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조처인 교감은 등을 토닥거리며 하는 말을 뒤로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교감 실을 물러나왔다. 마음이 착잡하다. 또 한 번 진학에 대한 미련이 그녀를 흔들리게 했지만. 꼭 대학을 나와야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당분간 잊자’
담임 김윤식 선생님은 그녀가 교감 실을 물러나오자 고개를 끄덕이고 소진의 어깨를 툭 친다.
“그래 답사는 충분히 연습했니?”
“네 선생님”
“그래 잘 할 수 있지 너야 뭐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웅변 할 때의 그 기백으로 알았지?”
"네 선생님"
그녀는 재학 중에 전국 고교 웅변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소진은 담임선생님과 송사낭독에 대해서 의논하고 교무실을 물러 나왔다.
졸업식
개회사
졸업식사
송사
답사
상장 수여식
졸업장 수여식
사은회
이렇게 이어지는 순서였든가? 그녀는 많은 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주어지는 최고로 영예로운 3년 우등상 3년 개근상…….그리고 우정 상까지…….
소진의 답사차례다. 그녀는 마음을 다지고 강단에 섰다 처음 서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도 떨리는 것인지.
답 사
외람되게 졸업생을 대표하여 재학생 여러분들에게 인사말을 하겠습니다.
벗 꽃이 만발한 본교의 교문을 들어선 지 어느 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재학생으로서 매년 선배들을 보내 온 우리들이 이번에는 송별을 받는 입장이 되어 감개무량 합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다.˝
하는 격언이 있는데, 그대로인 듯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그것을 통절히 느끼면서, 여러 선생님과 여러분에 대한 경의의 정과 석별의 아쉬움이 가슴에 가득 차 있습니다.
모교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사랑어린 교육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재학생 여러분에 대한 추억도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여러분에 대한 우애는 절실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여러분을 모교에 남겨 둔 채 떠나가지만, 머지않아 서로 손을 잡고 도우며 서로 격려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은 뒤에 졸업하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좋은 상급생, 좋은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여러분 또한 노력하여 모교의 이름을 더욱 빛내도록 힘써 주기 바랍니다.
그럼 교장, 교감 선생님, 여러 선생님, 내빈 여러분 , 그리고 재학생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재학생 여러분들에게 귀감이 되는 훌륭한 선배로서 사회에 또는 상급학교에 모교를 빛낼 것을 약속드리며…….선생님, 아우들이여!! 안녕히 ~~~. 저희는 물러~~~~흑
갑~~~흐흑~~~니~~~~흑~~~~다.
소진의 뜻과는 다르게 답사를 다 끝내기 전에 울먹이는 소진, 졸업생도 재학생도 울음바다가 되어 버린 졸업식장~~그건 소진이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멋지게 낭독해서 산뜻한 마무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울고 웃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티격태격 하며 우정을 키웠던 정든 친구들 그리고 몰래 별명을 불러가며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생님들과의 이별이 그녀를 울먹이게 했던 것이다.
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이별을 아쉬워하고 삼삼오오 친한 친구 끼리 또는 은사를 모시고 부모와 함께 기념 촬영, 그렇게 정오 무렵 졸업식의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다음날
소진은 전날의 졸업식의 휴우 증으로 많이 피곤하다. 어제 저녁~아니 새벽까지 존경하는 은사들을 모시고 친구들과의 졸업식 송별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학생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자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리고 많이 섭섭하고 아쉽다. 일반인이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 되지 않는 사회구조가 조금씩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휴게실을 찾았다 휴게실이라 해봤자 다섯 평 정도의 공간에 탁자하나 의자 몇 개와 커피를 탈수 있는 것들이 전부 이지만 이곳은 여직원들의 유일한 휴식 공간이다
먼저 와 있던 선배 몇 명이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수다 떨고 있는 중인가보다, 오늘의 화제는 누굴까 누가 그녀들의 수다의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인지, 그녀들의 수다는 화제의 주인공을 가차 없이 언어라는 칼로 난도질하기 일쑤다,
"여어~~소진아 졸업 축하해!"
선배 이을님이 소진을 보고 축하를 보낸다. 얼굴이 희고 키가 훌쩍 큰데다 패션 감각이 있는 이을님은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을 한 상당한 미인이다. 소진에게는 대 선배이므로 공손하게 그녀의 축하를 받는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축하해~~”
“축하~~”
“축하 너 상 많이 받았다며? 구경 좀 시켜 주라”
등등 축하 인사를 받고 소진은 머리를 숙여 모두에게 답례를 했다. 시끌벅적 소진의 졸업식 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한참 후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을님이 입을 열었다.
“소진이 너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인데요."
"너희 행정 계에 직원 하나가 특채로 들어오는 거 알아?"
"네 알아요."
"아하 오늘의 화제는 이거였구나?‘
물론 소진의 졸업식 얘기도 잠깐의 얘기 소재 거리로 등장 했겠지만 오늘의 주제~ 수다 꺼리는 아마 새로 오는 직원에 관한 얘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아?"
키가 작고 눈이 커서 귀여워 보이는 주혜연이 묻는다.
"글쎄요, 자세한건 모르지만 대충은……. 그 사람이 왜요?"
그에 대해 아는 건 과로로 쓰러진 전 군수 한인수씨의 아들 한성우라는 것과 아버지의 순직 때문에 특채발령 받았다는 정도다. 그 이상 아는 것이 없는 소진으로서는 그녀들이 알고자 하는 원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그녀들은 소진의 대답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니 소진이 한성우에 대해서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녀들의 얘기를 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성우 씨는 정말 미남이야 우리 고을에서는 제일 미남일걸. 돈도 많고"
을님은 그를 알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것 같은 어조로 돈이 많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난 성우 씨에 대해서 잘은 알지 못하지만 몇 번 본적 있어 얼굴 잘 생겼지 돈 많지. 더 뭘 바랄까 ~ 아! 그 사람과 한번 데이트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원이 없겠다"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을님이 말을 했다
"그 사람 올해 졸업했다면서? 그럼 몇 살이지?"
"군데 갔다 와서 졸업~ 아마 스물일곱 정도"
"대학교도 제 실력으로 나온 게 아니고 ·그런 거 있잖아 돈 있으면 입학 되는 거~~ 뒷문으로, 나올 땐 물론 정문이었겠지만~~ 그만한 인물인데 여자들이 가만 놔 뒀겠어. 돈도 많겠다. 그러니 공부 같은 해서 뭘 하나?"
한 성우 그 사람이 과연 소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여자들의 수다 에 오르내리는 그의 이름이 소진은 그저 생소할 뿐이다.
그녀들이 말하는 한 성우는 소진이 제일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 돈 있고 인물 잘생긴 것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 부모덕에 잘사는 주제에 난 척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자격지심인지도 모르지만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그녀 역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이 부자를 바라보는 눈이 약간 꼬여 있는지도 모른다.
"너희들 성우씨 넘보지 마 성우씨는 나에게 찍힌 거야 알았지?"
을님의 말에 모두들 쓰러지는 시늉을 해보이며…….
"좋아 언니 먼저 시집보내기 위해서 양보 했다."
그녀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소진은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평소보다 들떠 있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돈 있고 잘생기고 싱글인 그에 대해서 이렇듯 아가씨들 관심의 대상인건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이렇게 한성우 그 사람과의 만남이 악연인지 인연인지 소진에게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가 어떤 사람으로 다가올지 소진은 알 리가 없으니, 그저 무심하게 한 성우라는 사람은 선배들의 입쌀에 오르내리는 바람둥이 정도라고 생각할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