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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칸나
서 유 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설정한 컬러링 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짓누를 줄 몰랐다. 온몸이 진흙 수렁으로 빠져들어 손가락도 까딱 하고 싶지 않은데 핸드폰은 계속 노래를 부른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선한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걱정을 벗기는커녕 들을 때마다 숨통이 조여 오는 가사다. 컬러링을 바꿀 수는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정도의 부탁은 들어주는 품성이라야 한다는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얘야, 목사가 죽었단다.
목사 누구요.
어머니는 걸핏하면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자신의 불안증을 보태어―전해 주었다.
누군 누구야, 너희 교회 목사지.
무슨 그런 해괴한….
참말이라니까.
(거짓말도 어쩜 그리… ) 어떻게 알았어요?
누가 죽였겠어? 어머니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목사는… 내가… 처단했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 한 마디 때문에 살의를 느꼈던 그날이 떠올랐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듯 그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는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살만큼 살았어. 내가 잡히더라도 놀라지 마. 멀리 가고 있다. 나는 이미 글렀지만 넌 초인이 돼야 해. 어떤 고통 속에서도 네 정신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야 해. 알았니?
전화는 곧 끊어졌다.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 몸을 뒤척였다. 이제 내가 5년 동안 몸을 바쳐 일했던 일터가 사라진다. 다른 친구들이 교수나 교사가 되어 날개를 펴서 막 날아오르는 즈음에 나는 실패자가 되었다. 막막하다. 무얼 먹고사나? 이 비루한 질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비천함을 느낀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교회의 부흥 사역에 모든 소유를 바친 사람은 학원 대표만이 아니었다. 의사들은 병원을, 사장들은 회사를 내놓고 운영 구성원을 교인으로 채웠다. 내가 영문학원 원장으로 임명받았을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임관을 한 후 입대를 기다리던 2월 하순 경이었다. 목사가 나를 원장으로 임명하자 전 교인이 박수갈채로 환영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박수갈채에 넘어가 미래를 내던지고는 하나님의 기업에 헌신하는 사명자라고 스스로를 속인 거였다. 전역 후 완전히 인계를 받았을 때는 학원 사업이 기울어져 1호와 7호, 내가 맡은 10호점만 근근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었다.
말이 학원 원장이지 나는 빛 좋은 개살구다. 강사에 사무원, 청소부, 한 마디로 잡역부다. 매일 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바닥을 밀대로 밀며 빛 좋은 개살구라고 구시렁거리면 살구꽃이 떠오르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펼쳐져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가 어머니와 나 사이가 가장 맑고 허물없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며 시골이라고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었던 나는 어머니가 흥얼거렸던 ‘복숭아꽃 살구꽃 차린 동네’의 노랫말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도시 출신이라 마찬가지였지만 체험이 나보다는 나았다. 여섯 살 때 시골로 시집간 고모를 따라 혼잡한 새벽 열차를 탄 어머니는 좌석도 없는 캄캄한 화물칸에서 조그마한 몸이 이리저리 사정없이 흔들린 기억 때문에 내가 기차여행이 낭만적이라 하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시골에 대한 첫인상은 경이로움으로 남아 봄이 되면 여섯 살 때 본 싸리문 앞 채마밭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복숭아꽃과 살구꽃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맛이 잘못 익은 살구를 개살구라 부르는 줄 알았는데 개살구와 참살구는 엄연히 종이 다른 나무였다. 비참하게도 내가 참살구도 아닌, 떫고 신, 빛 좋은 개살구라니! 나에게 절묘한 비유였다. 실제로는 내게 선교사가 되라며 초인의 이상향을 덮어씌우는 어머니의 환상이 개살구이고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사는 나의 현실이 참살구가 아닌가. 원장님, 먼저 갈게요, 하고 재미교포 4세인 강사 쥬디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 나는 밀대를 든 채 그녀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면서 곧잘 쓸쓸해지곤 했다. 쥬디가 출근하지 않은지 오늘로 한 달이 되고 필리핀 강사 후안의 결근 시위가 두 달째이다. 월급체불 때문이다.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방을 챙겨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도시의 외곽으로 난 도로의 중앙선을 물고 요리조리 과속 카메라를 피해 질주했다. 겨우 제시간에 도착한 교회 회의실에 검정 양복을 입은 장로들이 시커멓게 앉아있었다. 군대 외는 사회 경험이 없는 나는 그들에게 중압감을 느꼈다. 대개가 의사와 회사 사장이었으니 사회 초년생인 내게는 그들이 거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움츠리며 공손하게 학원 대표 옆으로 가 앉았다. 학원 사업에 대한 토의를 먼저 하고 나면 나 같은 햇병아리들은 회의장을 빠르게 빠져나가야 했다. 장로들은 그들의 토의를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같은 교회 사업자 팀 안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 병아리들은 그들의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성기도에 합류했다. 회의가 시작되고 사업회 회장의 요청에 따라 학원대표가 발언했다. 학원이 위기 상태라고 했다. 이어 7호 점 원장도 앞으로 학원은 사양 사업이고 빨리 손을 떼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학원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건축사업자 대표가 내 말을 끊었다.
원장이 너무 젊군, 쯧쯧. 그, 이름이 뭐랬나? 신…?
명도입니다, 신명도.
신명도 원장? 신명도 좋지만 현실감각이 더 필요한 시점이네. 여러분, 그렇지 않소이까.
여기저기서 그렇지 신명도 좋지만 하하하, 하고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자는 현재 학원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친구를 데려올 수 있는 방안이나 강구하라면서 서둘러 회의를 마치고는 학원 사업 팀은 어서 퇴장하라고 주문했다. 속으로 쌍욕을 하며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기도 안 하고 가냐고 7호점 원장이 뒤에서 외쳤다. 못 들은 척하고 쿠르릉쿠르릉, 터보 엔진의 굉음을 뿌리며 교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집은 언제나 검은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컴컴하고 음침하다. 공허가 밀려오기 전에 얼른 욕실로 들어간다. 타일 바닥이 반짝반짝, 배수구에 모여 있던 머리카락도 사라지고 파티션 유리도 얼룩 하나 없이 말갛다. 어머니가 다녀갔구나.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부산에서 올라와 청소와 세탁을 해주고 간다.
옷장 서랍을 열었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서랍을 보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랍을 마구 들쑤셔 놓고는 속옷을 꺼내 들고 옷방을 나갔다. 정리해 놓고 가야지! 어머니가 등에 대고 소리를 빽 지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봤다. 벌거숭이 내가 말간 거울에 비쳤다. 지금보다 통통하고 뽀송한 소년이 벌거숭이 나를 지운다.
어릴 때 살았던 우리 집은 새 아파트였지만 엄청 좁았다. 방이 두 개였고 주방이 딸린 길쭉한 거실이 있었다. 조금 넓은 안방은 나를 돌봐주려고 온 외조부모와 내가 함께 사용했다. 주방 옆의 좁은 방은 부모님의 침대로 꽉 차 방문을 열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 남아있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내려와 무슨 고시를 준비하던 아버지는 서재가 없어서 좁은 거실에 작은 소파를 들여놓고 하루 종일 엉덩이를 소파에서 떼지 않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CNN이나 BBC 방송 뉴스를 듣느라 식구들은 발소리를 죽이며 다녔다. 어머니의 결벽증 덕분에 나도 정리정돈을 잘해서 칭찬을 곧잘 듣고 자랐는데 조그마한 밥상이 책상이었고 숙제와 일기 쓰기를 다 끝내고 나면 옷을 개켜 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 머리맡으로 밀어놓고 잤다. 안방이든 부모의 방이든 그 좁은 아파트에 행거가 보이지 않았고 벽에 옷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외조부모의 깔끔한 성격도 한몫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공원에 다니는 외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쓰레기통을 비웠다. 나는 꽉 찬 쓰레기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전 부렸던 심술이 수그러들었다. 다시 옷방으로 들어가 서랍장의 헤집어 놓은 속옷을 개켜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보고 배우는 것이 무섭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결벽증에 얼마나 들들 볶였던지 세뇌가 되어버렸다. 깔끔한 환경을 유지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을 공부에 쏟는 편이 낫다는 걸 알지만 나는 늘 책상과 서랍, 필기구, 노트, 책, 일정 계획표를 정리하느라 나중에는 진이 빠져 책을 펴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어머니가 가르친 자질구레한 일상의 습관과 생각이 뼛속깊이 스며들었다.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뒤죽박죽 늘어놓은 쥬디의 책상과 캐비닛을 볼 때마다 별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쥬디에게 좀 정리하라고 하자 원장님은 결벽증이 심해요. 그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래요, 했다. 정신병이라는 단어를 아무 데나 쓰는 쥬디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적의가 쥬디에게로 건너간 거였다. 침대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근엄한 장로들을 존경하게 해 달라고, 결근으로 시위하고 있는 후안과 쥬디에게 지급할 월급체불액이 하늘에서 뚝딱 내려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핸드폰 음량을 약하게 낮추고 유투버에서 검색한 장재기 목사의 ‘기적이 일어나는 1분 기도문’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가고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기적을… 기적을…. 기도문은 무한 반복 재생되면서 깊은 잠으로 인도했다. 유투버 영상이 광고로 넘어가 떠들썩하고 비몽사몽 중에 아버지가 돌리는 청소기 소리와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흑흑, 얘야, 아들아.
나는 모로 돌아누웠다.
어릴 때 옷 한 번 제대로 사 입히지 못했다. 대여섯 살 많은 사촌 형들의 옷을 베란다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키가 자라면 꺼내 입혔단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외아들이라고 일부러 경제교육을 세게 시켰다면서요?
엄마가 어리석었어.
그만하세요, 귀에 딱지 앉았어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못해준 것을 청년이 된 이제야 한을 풀 듯 안겨주었다. 내게 등산 스틱을 휘둘렀던 아버지도 질세라 정성을 다했다.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매달 주택의 경비요금을 내주었고 블루베리와 체리, 비싸면 더 맛있다며 입이 벌어지게 비싼 과일과 아버지가 즐겨 먹는 엄마 맛 후렌치파이(먹으면서 엄마를 생각하라는지), 식혜와 에이드, 우유, 금방 찌었다고 두 배나 비싼 쌀, 아버지의 입맛으로 제일 맛있는 부위라는 양지머리 쇠고기야 낚지 젓갈 반찬을 사 와서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었다. 밥을 손수 해 먹을 수 없는 나의 형편은 안중에 없는 일방적인 배려였다. 이렇게 사랑의 풍요 속에 사는 내가 최저 임금도 안 되는 월급으로 살며 어머니가 물려준 승용차에 기름을 넣을 돈이 없다는 게 믿어지는가? 그럼 차를 굴리지 말아야지, 하고 쥐어박으면 할 말이 없다. 쓸데없는 것에 쓰는 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누구보다 부모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드리길 소원하는 자식이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내뱉었다.
하지만, 내 궁핍을 알긴 합니까?
그러자 누군가 호되게 나무랐다.
잘못했으면 잘못을 시인하세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유투버의 숏트 영상이 기도문에서 청문회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뒤죽박죽 된 의식의 조각들이 귀를 찌르며 잠자던 유년의 기억을 불러냈다. 두 번이나 반복한 ‘그렇게 일방적으로!’라는 말은 어릴 적에나 지금도 내가 해야 할 말이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폭력 앞에 나는 잘못한 게 뭔지 모르면서 아빠! 잘못했어요! 하고 울부짖었다. 스테인리스 등산 스틱을 내리칠 때는 오줌을 지렸다.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지금 맘껏 외친다. 열쇠로 방문을 따고 들어와 말려주지 않았던 어머니, 사랑받기 위해 남편을 거역하지 못하는 비겁한 방조자, 아버지가 틀렸어도 남편 비위만 맞추는 아부꾼 어머니….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랬다고요? 초등 5학년 아이가 그 애, 공부도 못하면서 너무 설친다고 말한 게 등산 스틱으로 맞을 만큼 잘못한 짓인가요? 아빤 교만한 걸 제일 싫어한단다, 하며 달래던 어머니, 왜 우세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요. 고시를 실패한 아버지에게 초딩 아들은 두드려도 괜찮은 큰북이었다. 내 존재는 과거에 저당 잡힌 어머니 죄의식의 본체. 어머니는 내 어깨에 붙어 기억을 쪽쪽 빠는 영혼의 거머리. 어머니의 영혼은 나로 인해 정결하게 되고 나는 영혼 없는 허깨비가 된다. 태양을 향해 총을 쐈던 뫼르소처럼 나는 총을 들어 허공을 조준한다. 그러다 입안에 총구를 넣는다. 울컥 목이 멘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불쌍한 놈. 자기 연민은 뱃속의 똥.
대문 옆 소방도로를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나는 그 낡고 모범적인 잠언을 중얼거리며 하루 일정을 확인했다. 쥬디와 후안의 수업 땜빵과 교재연구, 그들의 원룸 방문, 6교시 후 쉬는 시간에 할 학부모 상담, 7호점 원장에게 소개받은 외국인 강사의 추천서와 테스트 사항 검토, 수능 영어 모의고사 학생들의 오답 문항 분석, 기타 등등 할 일이 많았다. 물칸나에게 눈이 간 것은 컴퓨터를 켜려고 책상 앞으로 갔을 때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물칸나와 마주쳤다. 어머니가 처음 가져왔을 때만 해도 줄기를 한껏 뻗은 모습이 무척 고압적이었다. 늘씬하게 위로 뻗어 올라가는 칸나 줄기에 적의를 느꼈었다. 몇 번이나 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던 그것이, 강한 상향의지로 끝없이 올라갔던 그것이 무엇 때문에 병이 난 것일까. 물은 충분했다. 나는 그 병든 식물에게 점점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서울대를 목표한 특별장학생이었던 열 명의 우리는 모의고사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새끼들, 장학금 주고 데려왔더니 돈이 아깝다. 이 따위로 무슨 서울대냐! 하던 선생의 말이 나를 짓눌렀다. 모의고사 시험지를 받아 들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가까스로 극복했다. 그러나 서울대 수시에 보낸 다섯 명 용사 중 나 혼자만 패잔병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교실 구석 책상에 엎드려 합격한 친구들을 축하하는 선생과 친구들의 환호성을 듣고 있었다. 그때의 패배자의 고독감이 내 하향성의 뿌리가 된 것일까?
아파트 사람들은 유치원 입학 전에 초등2학년 교과서를 줄줄 읽는 나를 보고 천재라고 했다. 어린아이의 뇌는 자라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니까 대단한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지은 동시가 학교 중앙 현관에 붙듯 다른 학교에도 그만한 아이의 동시가 붙었을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 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실패했다.
물을 채운 수반을 번쩍 들었다. 종이테이프에 가까스로 붙어 있던 줄기가 아래로 푹 꺾였다. 그것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늘 때를 놓치고 폭식을 해서 위장이 자주 탈이 났다. 또 창자가 꼬인 것 같았다. 배를 움켜쥐고 살려달라는 말만 외쳤다. 쥐어짜는 생활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무슨 사업이냐며 이단이라 했다. 성당에서도 메주와 간장, 된장을 팔지 않느냐며 그 말을 일축했다. 내 소망을 교회에 두게 된 것에는 어머니의 책임도 있었다. 담임이 어머니와 입시 면담을 한 후 말해 주었다.
어머니께서 아주 비현실적이더군. 아들이 장래 어떤 직업을 가지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니 선교사라고 하셨어. 명도야, 신학교 갈래?
아뇨.
어머니는 파키스탄 오지를 사역하는 선교사의 삶을 티브이에서 본 후 아들도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다. 아이돌 같은 몸매에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는 뉴스 앵커가 되고 싶었다. 음악선생은 성적이 좋은 내가 노래를 잘 부르니 지금이라도 성악 레슨을 받으면 명문 음대를 들어갈 수 있고 앞으로 성악가로 대성할 촉이 보인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이 지금 생각해도 가관이다.
매일 노래만 부르는 삶은 너무 단순한 거 아니에요?
결국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처음 교회의 학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미래의 그림은 선명하고 거룩했다. 입에서 거품이 나도록 열강 했다. 12시가 지나서 팀 전원이 학원 문을 닫고 교회로 이동했다. 새벽 두 시까지 사업자 팀과 회의를 하고 학원 팀과 다시 결과를 조정하고 통성기도를 한 후 새벽에 귀가했다. 하루 두 끼만 먹는데 어제저녁에는 식사를 놓쳐버렸다. 배고프다는 생각을 하자 위액이 올라왔다. 새벽에 귀가하는 나, 밀려오는 오늘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밀려 다니는 나에게 믿음은 과부하 걸린 자동차 엔진 같았다. 쓰디쓴 삶, 지친 육신과 고독한 영혼, 안개가 자욱한 미래, 컴컴하고 좁은 터널에서 나는 비틀거리고 있다. 바로 여기가, 바로 지금이 지옥이다. 나는 부르짖었다. 꺼내 달라고,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가르쳐 달라고 목이 쉬도록 외쳤다. 어머니는 부르짖으며 외치는 기도를 싫어했다. 아버지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를 때린 아버지보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더 큰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도 나처럼 자신이 원하는 자신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무원 사회에서 물칸나처럼 위로 뻗어 올라갔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와 나를 동일시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통성기도 하는 날 찾아온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내게 그리 유별나게 기도를 해야 하냐고 말했다. 아들이 왜 울부짖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욱하고 성질을 낼지언정 어머니처럼 자기중심적이지는 않았다. 어머니에게 싸늘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 꼭 조그만 캔버스에 가는 붓으로 그림을 그려야 돼요?
어머니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화가 나니 복통이 무디어진다. 꼬인 창자는 어느덧 풀어져 제자리를 찾아들어갔다. 전심으로 감사 기도를 한 후 일어났다. 출근하지 않고 있는 쥬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분간 다른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하다. 나는 더 자고 싶었다. 또 전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 폰을 확인했다. ‘엄마’라는 글자가 떴다가 사라졌다. 나는 꿀 같은 단잠을 십 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순간 유선 전화기가 울렸다. 받지 않을 테다. 지겨운 어머니. 전화기는 혼자서 그악스럽게 울어대다가 뚝 그쳤다. 세 번 만에 전화를 받았을 때 어머니의 음성은 큰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기어들어갔다.
잠 깨웠지? 아침밥은 먹었니? 냉장고 음식 다 먹었니? 찌개 맛있던? 다른 게 아니고 커튼 좀 올리고 나가라고. 햇빛이 들어와야 돼. 비 오는 날은 텔레비전 전원 내리고 가. 번개 맞으면 수리비 엄청 들어.
엄마! 그 화초, 하고 말을 꺼내는데 어머니가 말허리를 잘랐다.
물칸나는 네 알레르기에 좋은 식물이래.
믿을 만한 의학적 근거가 있느냐고 하자 다들 좋다고 하니까 뭐, 하며 얼버무린다.
물 화분을 컴퓨터 옆에 두면 어떻게 해요?
불편하지 않게 뒤쪽으로 놨는데… 그럼, 효과가….
아, 참, 됐고요. 내 병은 하나님이 고쳐요.
나는 어머니를 의식적으로 추궁했다.
엄마는 일방적으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혼자서 따발총 쏘듯… 할 말이 그런 거밖에 없어요?
네가 전화 오래 하면 싫어하니까 빨리 용건만 말하고 얼른 끊으려고 그러지.
전화할 때마다 밥 잘 챙겨 먹니? 그거 먹었니? 맛있더니? 밥 한 끼 안 먹어도 안 죽어요!
내가 뭘 어쨌다고 이리 나무라니?
다 필요 없어요! 부담스럽다고요! 나한테 관심 끊으라고요! 엄마 인생 엄마나 잘 사세요!
나는 모지락스럽게 뱉었다.
나쁜 놈! 그 교회 사업하면서 아주 변해버렸어. 너희 교회 목사님이 그리 가르치더냐!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가 계속 울리고 거실의 전화기가 들썩였다. 받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어머니가 눈에 선했다.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너희 목사님에게 전화해서 좀 따져 봐야겠다.
나는 목사에게 따질 어머니의 무례함을 생각했다. 급히 단축 번호를 눌렀다.
목사님께 무슨 전화하려고요? 내가 어린애예요?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해 준 것만으로 섭섭함이 풀린 것 같았다. 아들의 전화 한 통이면 한 달을 행복해하는 여느 어머니와 같았다.
너, 변했어. 너무 날카로워. 그렇게 노동 착취를 당하니 어떻게 안 지치겠니?
변한 거 없어요. 고등학교 때도 그랬어요. 내 별명이 면도칼이라는 거 알아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고 나서 밍키에게 분풀이했어요.
어머니는 조그마한 강아지 밍키가 불쌍하다면서 끔찍이 귀여워했다. 웃는 법이 없는 아버지도 밍키에게는 웃었다. 밍키는 근 십 년을 나와 함께 살면서 혀로 얼굴을 핥다가도 긴 송곳니로 팔을 물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나를 때렸던 아버지의 등산 스틱으로 푸들 강아지를 때렸다. 어머니가 힘없이 말했다.
우리를 용서해 다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근엄한 얼굴이 떠올랐다. 무조건 묵살하던 권위적인 장로들의 모습이 바로 아버지 얼굴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만큼이나 나는 그들 앞에서 자라목이 되어갔다.
얘야, 얘야, 들리니?
말씀하세요.
미안하다.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내가 마마보이예요?
난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랬겠지요. 강아지보다 못한 아들.
불만이 많구나.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니?
오지 마세요. 전화도 하지 마시고요.
왜 그러니? 이해할 수가 없구나.
허수아비 인생 살기 싫어서요.
말은 번지르르했다. 출근길에 네거리서 차가 멈춰 서버렸다. 타이어가 씹혀 교체해야 하지만 돈도 없고 카드도 한도액이 넘었다.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진땀이 났다. 수치감을 무릅쓰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타이어 값을 송금받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고 하고서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고 말았다. 교회를 원망하며 떠난 두 선배가 생각났다. 그들은 뒤늦게 신학교 입학시험을 쳤다. 면접을 할 때 논란이 생겼다. 너희 교회가 이단임을 인정하고 교회를 옮기면 합격시키겠다고 했을 때 한 선배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불합격을 받고 택배회사로 들어갔다. 그 선배의 선택이 틀렸다 할지라도 자기의 신념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나는? 그 문제가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진지하게 읽어다오. 너희 교회의 이단성을 너 개인의 삶과 비교해 보거라. 이단자는 하나님 일이라는 명분 아래 교인들을 도구와 기계처럼 이용한단다. 이단 교회는 휴머니즘과의 화합을 거부한 채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이유를 내세워 모든 세속적인 도전으로부터 후퇴하고 자기 은신의 길을 걷는다구나. 너는 어떠니? 예수시대 바리새파처럼 완전무결한 신앙형태를 취하고 성경에서 말한 세상과의 타협 배격에 명분을 건대.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세상을 등지며 개인의 감정, 심리적 욕구, 본능을 억제시키고 무시한다고 되어 있어. 너도 터지기 일 보 전 아니니? 비밀이 누설될까 고심하고, 극단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 지향적이라는 점을 엄마가 전에 지적했지?
어머니는 교인들이 매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시스템에 의혹을 가졌다. 예배시간에 늦은 교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는 목사의 타이트한 운영방식을 극단적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주장에 말려 들어가는 위험을 느꼈다.
‘자기 은신! 세상과 등진 잘못된 열심! 본능억제!’
예리한 칼날이 내 믿음을 난도질했다. 어머니가 사탄인지 사탄의 영이 어머니에게 들어와 공격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언제는 선교사가 되라더니! 나는 빼곡히 쓰인 용지를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넣은 후 목사님의 저서를 펴 들었다. 영성훈련 교제였다. 한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굵은 표제만 봐도 간이 오그라들었다.
―목숨까지 포기하라. 육의 대명사인 가족을 떨쳐내라.
나는 떨쳐낼 용기가 없다.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라.
내게는 아예 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지칠 뿐이다. 영적 배교자의 부끄러운 종말이 떠오른다. 가룟유다와 사울의 처참한 최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처럼 나 역시 영적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내 존재는 하나님과 목사님에게 더 이상 키움 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배배 말라비틀어진 물칸나요, 짓 씹힌 타이어다. 종일 우울한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12시 넘어 교회로 출발하려는데 쥬디와 후안이 나타났다.
원장님, 이러면 안 되지요.
쥬디가 운을 떼자 후안이 바통을 받았다.
밀린 월급 주세요.
난 재정 권한이 없고 나도 수개월의 월급은커녕 건물 임대료도 대출을 받아 냈다고 하소연했다. 쥬디는 내일까지 해결해주지 않으면 노동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대표님을 만나 해결해 주겠다고 하자 후안이 쥬디의 팔을 잡고 돌아갔다. 교회에 도착하여 목사를 찾으러 다녔다. 건축업체 팀 장로에게 물으니 학원대표가 건물 임대 보증금을 찾아서 잠적했다고 한다. 장로는 어두운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목사님은요?
목양실에 계시지. 이따 회의 때 내려오실 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사무실로 가서 다른 장로에게 또 물었다.
윤 장로님, 무슨 일인가요?
우리 교회 끝장나버렸어. 교단에서 교회 간판을 내리라고… 뉴스에도 나왔다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한달음에 가서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월급 체불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고소당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해요.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학원 원장이냐? 네가 원장이잖니?
목사님, 학원 수입과 내 월급까지 모두 교회에 바쳤잖아요. 제게 언제 재정 맡겼습니까? 학원대표님도 잠적했다면서요.
그가 침통한 얼굴을 들고 후안과 쥬디의 월급체불액을 물었다. 그에게는 소액에 불과했으니 쉽게 수락했다.
목사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미래는….
그걸 내게 왜 물어. 나? 자네에 대해 몰라. 10호점 영문학원 원장이라는 것밖에.
순간 눈앞이 하얘지며 나를 지탱하고 있던 믿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모른다니, 내 미래도 내던지고 충성했는데….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냄새난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칼로 찌른, 무시당한 자의 파괴적 본능이 내게 전이되는 찰나였다. 나를 모른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내게도 무서운 충동이 일어났다. 내 손이 그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 때문에 가장 황금 같은 청년의 시간을 취직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바쳤잖아요. 오 년은 그냥 오 년이 아닙니다. 평생의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놓쳤단 말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 강요하지 않았어. 네가 받아들인 거야. 네 신명으로 하고서 왜 나를 원망해.
(그놈의 신명!) 어떻게 저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 그런 이야기할 형편이 아니네. 돈은 계좌로 보내줄 테니 가 봐. 나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해.
나는 분노와 배신감을 안고 돌아섰다. 그는 지난날, 대학병원의 원목으로써 병원 측의 비리에 맞서 의사와 간호사 편에서 싸운 정의의 투사였다. 그의 영적 파워는 삽시간에 교인들을 모았다.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나. 나는 무지해서 그렇다지만 의사와 사업가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도록 기만당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목사 한 사람의 꼭두각시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금된 돈을 쥬디와 후안에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도 하지 않고 침대에 널브러졌다. 몸이 얼마나 정직한지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오니 축복이다. 만신창이 몸으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자기가 목사를 죽였다니 황당하다. 멍한 상태에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생각하다 다시 쓰러져 또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걷다가 쓰러지고 또 걷다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어머니가 다가와 아토피 피부염으로 버짐이 허옇게 덮어쓴 내 얼굴에 약을 바르면서 흐느꼈다. 어머니가 운 게 아니라 내가 울었던가? 눈언저리가 차가워 잠에서 깨어났다.
캄캄한 암막커튼 속에 주일의 낮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찬송도 기도도 없는 곳, 끝없이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반짝이는 영이 없는 곳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솔직해지고 싶다. 그분이 함께 계시지만 외롭다. 외롭다는 것은 육으로 돌아가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목사의 신상을 공개한 글을 찾아 읽었다.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장보고 같은 거상을 꿈꾸어 왔는데 사십 대에 거머쥘 자본금의 목표가 100억이라고 했다. 그의 꿈 100억을 위해 죽 쑤어 개 준 꼴이었다. 교회 건물과 교육관 설립을 위해 사들인 부지와 채권과 주식을 두고 남은 사업자들과 목사가 피 터지게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업자 팀 개개인도 나처럼 한 순간에 생긴 열정으로 자기 사업체를 목사에게 내놓은 것일까. 그리고 열정이 식어버린 걸까. 또는 목사의 영력이 가져다준 공사 입찰과 로또 성공률이 그들 개인에게 할당되기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떠난 교회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사무실도 목양실도 문이 열린 채 텅 비었고 교회 명판은 사라지고 없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처럼 황폐해진 교회 모습에 목이 메었다. 교인들은 이제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을 것이다. 밤마다 질주했던 외곽도로를 처음으로 천천히 달렸다. 은행잎이 떨어져 흩날리면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풍경이 오늘따라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창조주 그분께서 내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황금빛 길을 내주실까? 그토록 손사래 쳤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초인이 돼라. 어떤 고통 속에서도 네 정신만은 독수리처럼 날아올라라.
그래, 내일이면 내가 5년 동안 열정을 바친 10호 점 영문학원이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내 생명의 문이 닫히는 것은 아니니 나는 계속 살아야 하고 어머니 말처럼 날아올라야 한다. 저 높은 거룩한 곳을 향하여 가야 한다.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상담을 해온 학부모이지만 당당히 영어교육 훈련에 대해 조언을 하던 예전과 달리 말끝이 흐려지고 저자세가 되었다. 학원이 폐업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부자인 학생은 제외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을 골라 다섯 명 그룹으로 25명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데 속이 타 들어가고 입이 바싹 말랐다.
저어, 나리 어머니, 학원 문을 닫고 이제 그룹지도를 하려고 해요. 왜요? 왜요? 그러면 수강료가 부담될 것 같은데요.
뒷말은 하고 싶지 않다. 예상대로 모든 학부모가 수락했다. 내 지도 능력보다 염가의 수강료에 솔깃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비감해져서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주님은 어딘가에 쓰시려고 나를 5년 동안 시련으로 훈련시켰다. 천하게 쓰시든 귀하게 쓰시든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생각 틈으로 내 유년 시절 들려주셨던 어머니 은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아들아, 내 은사님은 똥장군을 짊어져도 기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 똥장군이 뭔데요? 몰라, 나도 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시골 푸세식 변소를 퍼서 담는 통인가 봐. 너 푸세식 화장실 알아? 알죠. 그걸 어떻게 알아? 1학년 때 친구랑 같이 집으로 돌아오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가까운 그 친구 집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시커먼 구명 위에 나무판자 두 개가 올려 있었어요. 도저히 못 올라가서 친구에게 신문 좀 가져오라 해서 화장실 땅바닥에 신문을 펴놓고 볼일을 본 후 접어서 구멍 속으로 넣었어요. 잘했다. 그 친구 집이 주택이었구나. 네에. 근데 엄마, 똥을 푸는 일을 해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초딩 나이라도 엄마 같으면 그런 일을 하며 기뻐할 수 있겠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머니의 그 비유가 극단적 비유가 아닌 현실 적응 나아가서는 현실 초월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뜨거워지며 심장이 요동쳤다. 손을 들어 하늘 향해 높이 쳐들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똥을 푸라시면 푸겠습니다. 무엇을 시작하려면 주변이 깨끗해야 되는 습관대로 청소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손으로 털어냈던 집안의 먼지와 어둠의 티끌을 내 손으로 걷어내는 것이다.
학원에서 가져온 대형 복사기를 오른쪽 창문 옆에 두고 거실 가운데 책상과 의자를 배치했다. 이제 티브이 장을 치우고 거실 앞 벽에 칠판을 걸고 그 옆에 대형 모니터를 배치하면 된다. 티브이장 위에 세워둔 액자를 집어 들었다. 목사와 내가 웃고 있다. 부자지간처럼 다정해 보인다. 나는 그가 순수했던 시절에 그를 통해 하나님을 깊게 만났다. 그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어떻게 변절되었든 내 영혼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하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사진틀을 닦았다. 집을 다 정리한 후 거실을 둘러보았다. 제법 학원 같은 모양새가 났다. 피아노 위의 물칸나가 눈에 띄었다. 날렵하게 빠진 잎사귀 끝이 갈색으로 변했다, 목을 축 늘어뜨리고. 핸드폰으로 물칸나를 검색했다. 완전한 햇빛 속에서 제일 꽃을 잘 피운다고 한다. 물칸나를 욕실로 들고 가 화분의 흙을 일궜다. 질척한 흙이 죽이 되어 손에 달라붙었다. 물칸나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이었다. 암막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수반의 물을 빼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놓고 칸나에게 말했다. 예전처럼 높이 뻗어라. 바람을 맞이한 잎이 대답하듯 제 몸을 파르르 흔든다. *
<경주문학 7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