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의 대서사시,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주인공인 로지온 라스콜니코프(Родион Раскольников)의 살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사소설과 유사성을 띠지만, 살인 행위 자체보다는 그 살인을 행하는 주인공의 사상적 배경 등에 초점을 맞춘 심리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1866년 《러시아 통보》에 기고된 작품이자 그의 5대 장편 소설 중 첫 번째 소설이다.[3]
도스토옙스키는 원래 수정이나 퇴고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지만, 이 작품은 예외다. 그가 다른 작품에서 퇴고를 하지 않았던 것은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집안의 가난과 본인의 도박 중독 성향 때문에 늘 돈이 궁했는데, 이 때문에 일단 출판사에 돈을 받고 출판권을 넘긴 뒤 작품을 집필하는 식의 계약도 자주 맺어 항상 시간에 쫓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대체로 긴 것도 당시 서양 출판업계에서는 글자 수마다 고료를 계산했기 때문이다.[4] 반면 《죄와 벌》은 다른 작품의 선계약으로 돈을 받아 금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퇴고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인칭 시점으로 쓰였다가, 표현의 부족함을 깨닫고 원고를 불태운 채 처음부터 다시 썼다. 꽤 긴 소설이기 때문에 매우 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작품. 실제 작품의 길이는 한국어 번역을 기준으로 하면 약 800페이지 정도다. 처음 작품을 구상한 건 시베리아 복역시기.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공부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황제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황제라 불리던 나폴레옹 1세와의 전쟁 이후 기적적으로 승리한 러시아가 갑자기 유럽의 강대국이 되어 무역이 활발해지고, 고작 몇십년 만에 급격히 경제적으로 발달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9세기 모습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빈부격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퇴폐와 문란함 그 자체였다. 작중 소냐가 성매매 여성이 되겠다고 결심한 당일 밤에 바로 집밖으로 나가자마자 성매매 여성으로 등록하고 성매매를 한 것만 봐도 당시 러시아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이런 내용도 있다. '러시아는 주님의 섭리에 따라 다스려진다. 그렇지 않고서는 러시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친정부 성향으로 바뀐 후에 집필한 건데도 이렇다.
ㅡㅡㅡ
가난한 대학생 출신인 라스콜니코프는 악랄하기로 소문난 전당포 노파 알료나와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타[5]를 도끼로 살해한다. 살인 행위 후, 그는 사람들과 경비병을 극적으로 피해 집에 돌아오고, 계속해서 이 범죄를 자신의 사고에 맞춰 자기합리화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소냐의 가정을 알게 되고 여동생인 두냐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소냐의 설득과 도움에 힘입어 자수하게 된다. 짧아보일 수 있겠지만, 중간중간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도 삽입되는 등 실제로는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와 철학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이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전체적인 특징이다.
ㅡㅡㅡ
작품 속에서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이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과 비범인(非凡人,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이 비범인인지를 시험하기 위하여 죽였다고 한다.
라스콜니코프는 범인으로 지칭되는 일반인들은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그저 인간이라는 종의 존속을 위하여 존재할 뿐이고, 이에 대비되는 비범인은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대표적인 비범인으로 나폴레옹을 제시한다. 이를 구분짓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 사회가 결정하며, 비범인은 극소수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범인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범인(凡人)들이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다고 규정지었으며, 이러한 사상 속에 그가 스스로를 실험한 방법이 바로 살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노파를 죽인 후 심각한 모순을 겪고, 그것을 해소하려고 온갖 이유를 들어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러한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은 이후에 니체가 주장한 위버멘쉬 개념과도 유사한데, 실제로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호평을 내린바 있고 작중의 라스콜니프와 마찬가지로 니체도 폭군과 합쳐졌다는 조건부를 붙이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을 위버멘쉬의 예시로 들었었다. 다만 니체는 위버멘쉬는 결코 영웅이나 천재를 뜻하는게 아니라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사람일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그는 노파의 동생을 죽인 순간 자신의 논리의 모순에 빠져 반쯤 정신이 나갔다. 노파의 동생은 라스콜니코프가 완전범죄를 위해 우발적으로 죽인 사람이기 때문이고 노파와 달리 라스콜니코프와 별다른 악감정이나 원한이 없는 무고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일 때 댔던 논리와 주장들이 그녀를 죽일 때는 전혀 들이맞지 않았고 이는 라스콜니코프가 보다 확실하게 자기모순에 빠지는 계기를 낳는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작가는 맹목적인 자기합리화와 영웅주의적 사고관을 비판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결국 자기는 비범인이 아니라 범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패닉에 빠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같은 상황에서 비범인이라면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해 리자베타에게 발각되었을 때 더 이상의 범행을 포기하고 도망치거나 순순히 그 자리에서 자수했어야 하지만, 결국 라스콜니코프는 완전범죄라는 자기보존적 심리를 달성하기 위해 대의를 포기하고 죄없는 라자베타를 살해함으로서 그도 결국 범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점을 보면 자매 살해 이후 이리저리 방황하는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는 스스로는 모순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은 "나는 비범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워 눈을 다른데로 돌린것에 가까웠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러한 사상은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들에서 점차 발전되어 나타난다. 또한 작가는 항상 이러한 사상을 비판[6]한다. 라스콜니코프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들로는 <백치>의 로고진, <악령>의 니콜라이 스타브로긴과 키릴로프, <미성년>의 베르자예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이반 카라마조프와 스메르자코프 등이 있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하여야 쓸 수 있을 정도로 심도 깊게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러한 인물들을 수십 명이나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