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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크랩 팀북투 사하라의 신비와 전설을 품은 땅, 말리
임광자 추천 0 조회 95 08.06.22 11: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팀북투 사하라의 신비와 전설을 품은 땅, 말리
아프리카의 엘도라도라고 불렸던 사하라의 대상 도시 팀북투. 일찍이 서아프리카에서 흥성했던 가나와 말리 왕국의 주요 무역 거점 도시로 금과 소금이 오갔던 곳이다. 16세기에는 이곳에 대학이 세워져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이 모이는 아프리카의 옥스퍼드였던 곳이기도 하다.


새벽 6시, 약속대로 사륜구동차는 두엔자의 숙소인 오베르주 구르마 앞에 도착했다. ‘혹시 차량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어젯밤의 조바심은 기우였다. 차 안에 외국인은 나 혼자. 이제 팀북투로 향하는 출사표를 던질 차례다. 몸은 좀 고달프겠지만, 21세기의 새 시대를 여는 모험가가 된 듯한 야릇한 기분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웠던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본다.

두엔자에서 팀북투Timbuktu 가는 길은 도로 표시가 분명치 않다. 앞서간 차량의 바퀴 자국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는 갑자기 도로를 이탈해 제 멋대로 잡목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를 가까스로 멈추자 운전사는 심하게 돌아간 차량의 앞바퀴를 살펴 보았다. 앞바퀴의 타이어 휠이 부러져 있었다. 30분 동안 타이어 휠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타이어 이음매 부분을 질긴 고무 같은 것으로 여러 번 돌려 고정했다.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지만 팀북투에 다다를 때까지 이 고무 조각은 다행히도 한 번도 풀리지 않았다.

        

소금을 싣고 나르는 투아레그 대상
이처럼 기를 쓰고 찾아 나선 팀북투는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에게 가장 화려하고 풍요로운 사하라의 오아시스 타운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인구 3만2000명의 팀북투는 현재 서아프리카에서 사하라 사막으로 진입하는 주요 관문이자 말리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도시. 원래 팀북투는 유목민들이 가축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었다. 이후 1100년 투아레그족의 집결지로 세워졌으며 사하라 횡단 무역을 위한 거점 도시로 성장했다.

팀북투는 서양인들에게 오랫동안 전설과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도시로 과장되어왔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사하라 사막을 지나면 황금과 소금이 넘치는 팀북투라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엘도라도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갖게 되었다.

팀북투로 향하는 차량의 내 옆자리에는 푸른 옷에 터번을 두른 투아레그 청년이 앉아 있었다. 하심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팀북투에서 북쪽으로 740km나 떨어진 전설의 소금 광산촌 타우데니Taoudenni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까지 소금을 낙타에 싣고 이동하는 전설의 투아레그 대상들은 매년 12월과 4월 사이에 약 보름에 걸쳐 타우데니와 팀북투 사이의 험난한 길을 걷는다. 이때마다 수십 마리의 낙타들을 몰고 가는데, 낙타 한 마리당 약 30kg의 소금 덩어리를 지고 간다. 주로 사하라 사막에 거주하는 이 유목민들은 낙타 사육과 양, 염소 등의 목축업이 주된 생계이지만 예로부터 상술이 뛰어나 사하라 지역의 상거래에 큰 역할을 했다.

오전 10시경 건조한 초원지대를 지나다 아주 작은 마을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길가의 작은 초가집에 놓여 있는 푸대를 차량 루프 위에 싣는다. 잠시 후 푸대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갓난아이를 업은 채 나귀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운전사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그로부터 6천 세파프랑의 돈을 건네받았다. 푸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하심에게 물어보니 그 안에 불을 피울 수 있는 천연 연료가 들어 있다고 한다. 팀북투에서 한 가마를 사려면 5천 세파프랑을 주어야 하는데, 이 마을에서 네 가마에 6천 세파프랑을 주고 샀으니 팀북투의 시장에 내다팔면 1만4천 세파프랑의 거금을 남기는 셈이었다.
        

마술사의 마법에 걸릴 뻔한 도시
끝이 안 보이는 모랫길을 따라 5시간이나 달렸다. 차 고장 수리로 30분을 보내고 중간에 연료 가마를 싣는 데 약 30분을 허비한 걸 제외하면 매우 빨리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팀북투가 아닌 니제르 강의 선착장이었다. 이곳에서 강을 따라 약 1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차로 20분가량을 달려야 팀북투의 실체가 나타난다.

길이 4180km의 니제르 강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가장 큰 강. 서부 기니의 산지에서 시작해 말리, 니제르 등을 거쳐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삼각주로 흘러들어가는 사하라의 젖줄로 이 강을 따라 중세부터 가나, 말리, 송가이 왕국 등이 생성해 흥왕하게 되었다.

팀북투에 도착한 첫날은 스타일리시한 카라반세라이Auberge Carabanserai 호텔에 여장을 풀고 모처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피로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팀북투 도시 탐험에 나섰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태양이 머리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뜨거웠다. 팀북투 구시가에는 역사적인 볼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팀북투의 황금 시대를 상징하는 세 군데의 모스크는 지난 1988년 팀북투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축물로 방문객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세 군데의 모스크 중 먼저 딩게레이 베르Dyingerei Ber 모스크를 찾아갔다. 이 모스크는 신비의 도시 팀북투에 어울릴 만한 미스터리의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 모스크의 중앙 기도실 뒤에는 짚으로 만든 거적이 오래된 목조 문을 덮고 있는데, 무슬림들은 이 안에 (악마를 상징하는) 사자로 변한 마술사의 영혼이 갇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무려 1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9세기 탐험가의 발자취를 찾다
두 번째 찾아간 모스크는 건축학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시디 야히야 모스크Sidi Yahiya Mosque다. 이곳은 333명의 이슬람 성인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팀북투의 한 성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곳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1500년에 세워진 상코르 모스크Sankore Mosque를 찾아갔다. 이곳은 예전에 상코르 대학교라고도 불렸던 곳으로 16세기에는 2만5000명의 무슬림 학생들이 공부하던 대학이었다. 아랍어로 이슬람의 학문을 공부하는 곳으로는 규모 면에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었다고 한다.

팀북투를 소개할 때 학술적인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흐메드 바바역사 연구 센터Centre de Recherches Historiques Ahmed Baba 역시 팀북투를 찾은 여행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재정 후원으로 건립된 이곳에는 전 세계로부터 수집한 이슬람 종교, 과학, 역사에 관련된 2만3000여 권의 원고와 필사본 등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고대의 중요한 자료들을 번역하고 보존하며 카탈로그화하는 작업도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 보존된 원고 중 가장 오래된 자료는 12세기경에 숯가루 잉크로 쓰인 것. 이곳에는 13세기 스페인 무어 왕조 시대의 연시戀詩도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아프리카 고대 왕국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지닌, 값을 매길 수 없이 중요한 무수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번에는 팀북투 구시가에 자리한 서양 탐험가들의 집을 찾아가 보았다. 1827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팀북투를 방문했던 프랑스인 탐험가 르네 카이에Rene Caille의 집이 시디 야히야 모스크 왼편에 자리해 있다. 무엇보다 서아프리카 일대를 탐험했던 하인리히 바르트Heinrich Barth가 살던 곳이 궁금했다.

그는 서아프리카를 탐험한 여행가 중 가장 위대한 탐험가로 손꼽히는 독일인 여행가다. 1850년 머물던 그의 집은 시디 야히야 모스크 오른편에 위치했다. 사하라 지역에 대한 서양인들의 탐험이 본격화된 것은 19세기가 지나서부터다.

그전까지 유럽인들은 이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지역을 방문했던 아랍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하인리히 바르트는 매우 많은 양의 정보를 기록으로 남긴 유럽인이었던 것. 그의 관찰은 매우 세세한 현지의 실상을 전달했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와 현지에 대한 귀한 정보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가 머물던 2층 저택 안에는 그가 사용한 일부 가구들과 그의 소중한 필적이 담긴 자료 등이 놓여 있었다.
        

 

 

에필로그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마력의 땅에서 돌아온 지금, 200년 전 탐험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온 이 땅에 큰 어려움 없이 사하라의 바람을 타고 찾아온 요즘 여행자들은 그야말로 행운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이 지역의 정세가 안정되고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팀북투에는 소리 소문 없이 여행자들이 밀려오고 있다. 밀려드는 외국 방문객들로 인해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현지인들이 본의 아니게 상대적 빈곤감이나 현대 문명의 접촉에서 느끼는 괴리 따위에서 오는 절망의 상처를 받게 되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전통과 현대 문명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뛰어넘거나 사막 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넘는다고 해서 삶의 가치를 보는 관점이 저절로 뒤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 사하라가 그들을 먹여살리고 그들을 보살핀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고 사하라의 품이 부모의 품처럼 따뜻할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하라의 신비한 마력으로 그들은 살아왔고 앞으로도 꾸려나갈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그들의 어머니, 사하라로부터 자식이 될 특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자들이 아닐까?

말리 가는 길
말리까지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에어프랑스를 타고 파리를 경유해 가는 방법이다. 또 포인트 아프리크 항공사www.pointafrique.com를 이용해 에어프랑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파리-바마코(말리의 수도) 구간을 갈 수도 있다. 또한 남아공 항공, 에미레이트 항공 등을 이용해 가나의 아크라로 들어가 그곳 말리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간다. 말리의 바마코에서 팀북투까지는 주 3회 국내선 항공편이 운항, 편도 요금은 약 9만 세파프랑이다. 팀북투까지 육로로 가려면 말리 중부의 두엔자를 거쳐야 한다.

비자
국내에는 말리 대사관이 없다. 국내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에서는 아프리카행 항공권 뿐 아니라 일본의 말리 대사관을 통해 우편으로 비자를 받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문의 02-775-6006)

호텔 Auberge Caravanserai
오베르주 카라반세라이는 오픈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아담하고 스타일리시한 숙소다. 파리에서 온 프랑스 노부부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과 내부의 사하라 스타일의 전통 장식들이 조화를 이루는 인상적인 곳. 뻥 뚫린 천장을 통해 자연광이 스며들어오는 호텔 로비 중앙에는 작은 풀pool이 만들어져 있다. 호텔의 객실은 모두 10개, 객실료는 1만5000세파프랑부터다. 건물 옥상에는 천막으로 휴식 공간을 마련해두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일몰 광경은 상당히 로맨틱하다. 예약: tombouctoucaravanserai@uniterre.com

투어
Abderhamane Alpha Maige(전화 292-1681) 또는 Azalai Voyages(전화 292-1199) 등의 팀북투 현지 여행사를 통해 사하라 낙타 투어, 선셋 투어 및 캠핑 투어, 타우데니 소금광산 투어, 몹티Mopti까지 내려가는 니제르 강 보트 투어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는 팀북투의 주요 호텔을 통해서도 각종 투어가 가능하다.

환율 및 환전
말리, 니제르 등 일부 서아프리카 국가가 세파프랑(CFA)을 사용. 100세파프랑은 약 236원(금년 현재). 말리 현지에서 환전할 때는 달러보다는 유로화가 환율이 더 좋다.

치안
팀북투를 비롯한 말리의 주요 여행지들은 매우 안전한 편이다. 단 인파로 붐비는 시장이나 현지 버스 등지에서는 소지품을 주의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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