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생기면 부정부패 설 자리 없다”

[깔롱이]

공무원들이 ‘노동조합’ 깃발을 치켜든 이유

공무원노조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3권 보장, 연합체 허용문제 등에서 정부측과 전공련의 시각차는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게 현실이고, 전공련 내부적으로도 공무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공무원노조의 투쟁과 수난을 상징하는 인물인 차봉천 전공련 위원장(56)은 어떤 해법을 갖고 있을까. 『말』이 차 위원장을 만났다.

차봉천 전공련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선 국회의사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국회 정문을 통과해야 했다. 여의도 1번지 국회의원회관 806호. 이곳이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 사무실이다.

사실 좀 어색했다. 아직 노동조합으로 정식 출범하지는 않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 건설의 총사령부인 전공련 사무실이 국회에 있다니? 그러나 곧 ‘이게 바로 공무원노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해온 차봉천 위원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사무처의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그랬다. 공무원노조는 차 위원장처럼 공직사회 내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던 수천, 수만 명의 하위직 공무원들이 앞장서 건설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해고,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좋다

“일각에서는 ‘너희 공무원들도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려고 노조를 만드냐’고 해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물론 공무원들도 자기 봉급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공무원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주목적은 공직사회 민주화, 신뢰받는 공무원상 정립이고, 그 다음이 하위직 공무원들의 권익향상입니다. 공직사회 내에 부정부패와 비리가 완전히 뿌리 뽑히고, 공무원집단이 이 사회에서 가장 깨끗한 집단으로 평가받을 때까지 우리는 수년이고 수십 년이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 문제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사정위의 한 간부는 저에게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리나라엔 해방 이후 6·25, 4·19, 5·16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공무원노조 결성도 그만한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구요.”

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공무원노조는 어쩔 수 없이 과거 전교조와 같은 ‘불법단체’ ‘법외노조’로 출범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두렵지는 않습니까.

“허허. 설마 저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사법처리해서 감옥에 가두는 거지요. 그럼 공무원 신분상 강제퇴직이 되겠죠. 하지만 저를 포함해 전공련 임원, 간부들은 더 좋아할 것입니다. 공무원 일 안 하고 노조 일만 전념할 수 있잖습니까. 전 오히려 고마워할 것 같은데요? 어차피 우린 법적으로 전임자도 주어지기 어려운데, 전임하도록 국가가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해고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우린 좋습니다. 모두 ‘해직만 돼라, 그럼 더욱 본격적으로 할 것이다’라고 벼르고 있어요. 정부도 똑바로 알아야 해요. 전교조도 해직된 수천 명의 교사들이 이끌어온 것입니다.”

차 위원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수백, 수천 명이 해고·징계를 당한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태세였다. 그러나 이는 차 위원장을 포함한 몇몇 지도급 인사만의 생각일지도 몰랐다. 실제 기자는 몇몇 노동계 인사들로부터 “일반 공무원들이 공무원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무원노조에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동참할 수 있으리라 봅니까.

“전공련 산하 2백여 각 지역, 직능별 공직협들은 모두 노조로 갈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공직협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겠죠. 솔직히 1백%는 힘들 겁니다. 혹시나 징계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90% 이상은 반드시 갑니다. 계속해서 설득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성과도 상당합니다.”

곧이어 차 위원장은 공무원노동기본권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에 성실하게 나서지 않고 있는 정부측을 향해 화살을 돌렸다. “정작 진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사회 내에 1%도 안 되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권력자들과 고위관료들”이라면서.

“공무원노조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어떻고, 민족이 어떻고, 국민정서가 어떻고 하지만, 순전히 자기 개인욕심 때문에 그런 겁니다. 공무원노조가 생기게 되면 공직사회 내에서 힘 가진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회사도 마찬가지잖아요. 사장이 노조 없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지 않습니까. 공무원노조가 건설되면 힘이 골고루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 검찰, 국세청, 행정부, 국회 등등 각 영역에서 자신들 뜻대로 좌지우지해 온 사람들이 견제를 받게 됩니다. 공무원노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게 두려운 거예요.”

직장협의회와 공무원노조의 차이

정부, 특히 공무원 인사·복무제도 등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인 행정자치부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현재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시기상조, 여론수렴 필요, ‘노동조합’ 명칭 사용 불가, 연합체 불가,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불인정, 가입범위 제한 등등. 사실상 현재의 공무원직장협의회 틀 속에서 잠자코 가만있으라는 입장과 다름없는 셈이다.

“자꾸 시기상조라고 하는데, 그럼 언제쯤 하면 되는지 말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1년, 10년, 1백 년 후에 된다고 해도 다 ‘시기상조’ 아니에요? 그건 속으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에둘러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세상 천지에 개별 노동조합 모아서 연합체 만드는 것을 정부, 행자부가 나서서 해라 마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 참 웃기는 발상입니다. 법으로 너는 노동조합원 된다, 안 된다 규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장관도 자기가 노조 가입하겠다면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공무원노조는 장기적으로 경찰공무원들도 조직할 겁니다. 노조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이죠.”

차 위원장은 가장 예민한 쟁점 중에 하나인 ‘단체행동권’(파업권) 허용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노동3권이란 표현은 맞지 않아요.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절름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로 합쳐서 노동기본권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전공련은 이 노동기본권 전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공무원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정부와 국회에서 공무원들에게 파업권을 주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를테면 국민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 대해선 파업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파업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됩니다. 아예 단체행동권, 파업권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물론 정부와 정치권은 또 국민들의 정서 운운하면서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당연히 반대하겠지만요. ”

그랬다. 사실 3월 24일 탄생할 예정인 공무원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의 ‘반대’ 때문에 차 위원장의 표현처럼 ‘절름발이’ 신세를 면키 어려운 현실이다. ‘사용자’(중앙정부)측과 교섭도 할 수 없고, ‘합법적인’ 파업을 진행할 수도 없어 ‘노동조합’다운 모습으로 공무원노조가 운영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현 시점에서의 공무원노조는 “이름만 바뀔 뿐 사실상 공직협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위원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섭할 수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 될 뿐 다른 문제는 상관없습니다. 물론 공무원노조라 하더라도 한동안 직장협의회의 색깔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어요. 그러나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신이 ‘나는 노동자다, 나는 노동조합 소속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직협 때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더욱더 열띤 투쟁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노조가 된다는 것은 투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장을 받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과 싸울 때 노조의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민주노총도 한국노총도 안 간다

그렇다고 공무원노조가 다른 일반 노조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진 않다. 다른 게 아니라 앞서 차 위원장도 언급했지만, 전공련은 공직사회 민주화, 부패척결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하면 일반적으로 주로 자신들의 임금·고용, 노동조건 개선문제 등을 놓고 투쟁을 벌이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무원사회에는 이와 관련해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IMF 이후 벌써 10만 명의 하위직 공무원들이 잘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전 해고 자체를 원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필요한 부분은 더 채용하고, 부적격자는 내보내자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무원사회의 구조조정은 힘없는 사람들만 일방적으로 잘리는 모습으로 진행됐어요. 과장급 이상은 자기 뜻에 반해서 나간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 다 자리 마련해 주고 잘랐죠. 하위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국민들을 완전히 속이는 것이었어요. 일반 회사들도 구조조정하는데 공무원들은 안 잘린다는 국민적 ‘반감’ 때문에 행한 것인데, 그거 막는다고 힘없는 일반 기능직·고용직 공무원들만 별 근거 없이 잘린 것이죠. 목표로 한 몇 %를 채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그러한 불합리한 구조조정을 막자는 겁니다.”

끝으로 기자는 또 한 가지 ‘민감한’ 주제에 대해 물었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상급단체’를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입장에서도 큰 관심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전공련측이 밝힌 대로라면 최소 7만여 명 이상의 새로운 노동조합원이 생겨나는 셈인데, 이 힘이 더해지면 양 노총 입장에선 조직역량 확대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관련해 전공련은 ‘공직사회개혁과 공무원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 구성 등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보다는 민주노총쪽과 활발한 연대활동을 펼쳐왔다. 그래서 노동계 내에는 공무원노조가 결성되면 ‘민주노총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그러나 기자가 사전 취재를 해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친화성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할 겁니다. 내부에 ‘반대’ 정서가 있어요. 공무원들은 아직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소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 중에는 민간 노조가 하는 일을 막는 것도 있었어요. 이를테면 전교조 교사들 해직될 때도 공무원들이 가서 끌어내고 그랬죠. 물론 많이 생각이 달라졌지만, 일반 민간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정서는 아직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 개인적으로 노동자는 하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노총 따로 있고, 민주노총 따로 있고, 공무원노조 따로 있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고 있잖아요. 저는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봐요. 세도 자꾸 불어나고 있잖아요. 공무원 노동자들도 언젠가는 생각이 변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차봉천 위원장은 “언론들이 공무원노조 문제를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고 계속 행자부 입장만 대변하면서 ‘딴지’를 걸고 있다”며 갑자기 이 나라 언론현실에 대해 격한 분노를 쏟아냈다. 사실 공무원노조는 주요 일간지 등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시기상조론’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차 위원장이 말하는 그 이유가 아주 흥미로웠다.

“언론이 왜 안 써주냐? 제가 아까 말했죠. 힘있는 사람들은 공무원노조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다구요. 우리나라 4대 일간지, 얼마나 힘있는 존재입니까. 그러니까 맨날 ‘철밥통’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공무원노조가 생기면 그들도 견제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관료들이랑 짜고 놀던 거 이제는 못하게 됩니다.”

공무원노조 건설이 언론개혁에도 도움이 된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전공련 산하 직장협의회 가운데는 “구시대적인 기관홍보를 위한 언론유착을 막아낸다”는 취지 아래 계도지 예산폐지, 기자실 폐쇄운동을 펼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이 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공무원노조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제 189 호 2002 년 3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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