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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여행 상세 보고서
(金剛山 旅行 詳細 報告書)
湖 菴 尹 淸
1999. 6. 17--6. 20
글머리에 ; 7남매 14자녀가 아버님의 古稀宴을 맞이하여 미란다 호텔에서 7순 잔치를 해드렸다(1999. 5. 29. 토). 금강산 여행경비를 별도의 선물로 드렸는데 `험한 산을 노인끼리 다녀오는 것은 안전에도 문제가 있으니 함께 가야겠다` 라는 아버님 말씀에
`니 예---` 소리가 목을 타고 나왔지만 꾹 눌러 참고
`저희는 여러 번 모시고 다녔으니 이번에는 동생들 중에서 모시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 예 약 -- 1인당 79만원으로 4인 가족이면 1인을 할인해 준다. 비수기에 적용되는데 1방에 4명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던 차에
어찌어찌 하고 사바사바하여 할인은 할인대로 받고
방은 2개를 쓰기로 했다.
*. 준비물 -- 필수품은 신분증이다(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공무원증, 여권 중에서 어느 것이던 1개는 있어야 함 - 없으면 배를 절대 못 탐) 칫솔, 치약, 면도기, 수첩, 볼펜은 있어야 하고 모자, 배낭, 비옷은 그곳에서 준다. 가벼운 등산화, 추리닝, 반바지, 별도경비 1인당 20~30만원, 가정용 캠코더(즉 무비카메라인데 24배 줌렌즈는 불가), 카메라(150㎜이상의 zoom Lens는 불가),
쌍안경(10배율 이상은 불가 -- 덩치가 크다고 배율이 큰 것은 아니다.
5×10의 표기는 앞 렌즈 직경이 5㎝에 1,000m거리가 100m거리로 보인다는 뜻임.
<출 발> --- 여행을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본 여행보다는
출발할 때가 더 신나는 법이다. 출발보다 더더욱 신나는 것은
지도 들여다보고 배낭 꾸리고 하는 일이고, ---
10시30분에 이천을 출발하여 소사휴게소에서 잠깐 쉰 후 대관령,
강릉 거쳐 동해시에 닿았다. 점심을 한 후 동해항 여객터미널에
차를 주차시키고 (1일 5,000원---합 15,000원) 수속을 밟았다.
소속은 1조이고 조장은 부산총각인 현대직원 김 종수군이다.
앳되고 밝은 웃음이 신선해 뵌다.
각자의 관광증(목에 거는 것 : 남북한간의 여권인 셈이다)을 받아들고 출국수속 (같은 말과 문자를 쓰는 같은 민족이 사는 곳에 가는데도 `출국`이라고 한다. 하기야 UN에도 각각 가입했으니까,---)을 한 후 계단을 오르다 보니 성큼 배 안으로 들어섰다.
*. 배(船) --- 금강호, 봉래호, 풍악호의 3대가 있다.
그 중에서 금강호가 제일 크고 서비스나 음식은 풍악호가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이름과 형태만 배일 뿐, 국제적인 특급호텔이다.
금강호는 타이타닉호 보다 더 크다고 한다. 길이는 200m가 넘고
폭은 25m에 9층 높이다. 1972년에 필란드에서 건조되어 30여 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수도꼭지나 방문의 손잡이 등에서 느낄 뿐 아주 깨끗하고 쾌적하다. 필란드인 선장을 비롯하여 한국, 필린핀, 파키스탄 등의 승무원이 360명이고 관광객이 600~1,000명이니 상시 1,000명은 넘게 타고 있다. 처음 배에 들어서면 3층인데 호텔의 Lobby Lounge로 보면 된다. 입구 양쪽에 도열하여 인사하는 승무원에게 답례를 하면서 신분증과 방Key를 교환후 각자의 방을 찾아가면 된다.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객실이 홀수 줄, 짝수 줄로 나뉘어 있는데 3층은 전체가 객실이다. 층수가 위로 오를수록, 방 크기가 클수록 요금이 비싸진다. 중앙통로는 4층에 기념품매장, 슈퍼, 오락실이 있고 5층에 Kolon매장, 도자기와 수석 매장, 안내Desk. 6층은 전체가 식당, 공연장. 7층은 Bar, Night-Club, 노래방, 수영장, 농구장, 골프연습장 등이 있다. 카드사용 공중전화가 있는데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면 불통이다. 그래도 굳이 북쪽에서 전화하려면 017전용카드로 국제전화가 가능한데 요금은 무척 비싸다. 부모님은 429호, 우리부부는 431호로 붙은 방이다.(홀수 줄, 짝수 줄이므로). 면적은 아주 좁지만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Single 침대가 4개있고 (2개는 접어서 벽에 붙일 수 있다) 탁자, 의자, 화장대, 구내전화기, 화장실에는 샤워기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창문이 2개 있다. 비록 열리지는 않지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2겹유리의 원형 창이다(3층의 중앙객실은 창문이 없음)
TV monitor에서는 Video tape를 통해 주의 사항이 탤런트 김 혜선의 진행으로 반복되고 있었는데 결론은 `묻지마 - 하지마 - 버리지마`로 집약된다. US마크의 티셔츠, 핫팬츠, 찢어진 청바지도 입으면 벌금이다. 굳이 참을 수 없이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안녕하세요 - 경치 참 좋습니다 - 안녕히 계십시오”에서 마무리 해야하고 그쪽 사람이 “가을단풍 보러 또 오시라요” 한다면 “네,---고맙습니다”로 정말 정말 마쳐야 한다. 잠시 후 안내방송이 나왔다. 6층 공연장에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방에서 본 TV내용을 커다란 화면으로 다시 보고
비상시 응급탈출 요령을 배운다. 기다리던 식사시간,---인원이 많으므로 빨간 명찰, 파란명찰로 나누어 1시간 간격으로 뷔페식사이다.
관광증은 항시 목에 걸고 있어야 한다. 잃어버리던지, 북쪽사람에게 압수 당하면 관광이고 뭐고 종땡 이다.
2인용 Table부터 8인용 원탁까지 골고루 있고 음식도 한, 중, 일, 양식이 골고루 있다. 소주는 Pack으로 파는데 세금포함 4,400원이니 2개시키면 8,800원에 거스름돈은 통상 Tip으로 주어야 하니까 10,000원으로 진로 한 병 마시는 셈이다.
첫 날(1999. 6. 17목)의 첫 식사는 오후 6시 30분에 저녁식사인데 서쪽으로 뉘엿한 해를 보며 우리 파란명찰부터 했다.
거의가 노인 분들이라 다소 어수선했지만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갔다. 차림새나 분위기로 볼 때 우리의 table이 tip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는지 잘생긴 필리핀인 폴(Paul)이 따라붙었다. 그는 끝나는 날까지 우리 4식구 table을 전담했으며 늘 1$을 챙겼다. 외국에서의 tip은 기본사항이지만 금강호 호텔에서의 tip은 별로 없는 듯 하다. 경제발전 속도를 문화의식 발전속도가 따라가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배가 서서히 움직였다. 직선으로 가면 얼마 안 걸릴텐데 역 `ㄷ`자의 코스로 공해(公海)를 통해 가므로 199㎞에 12시간 이상 걸린다. (시속10knot=약18.5㎞) 뜻밖에도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꽤 많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현대그룹 직원들 이였고 갓난아이일지라도 관광증은 꼭 목에 걸어야 한다.
식사를 마치면 공연이 있다.
공연도 식사와 마찬가지로 2회에 나누어 한다. KBS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보는 게 소망이라는 진 선 씨의 재미있는 진행으로 5인조 캄보밴드와 진짜가수들의 노래, 외국인 무용팀의 무용, 마술 등이 1시간정도 진행되고 끝으로 야식시간이 있다. 메밀국수, 빵, 과일 등이 모두 무료다.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창을 통해 밖을 보니 칠흑 어둠뿐이다.
<북한에 도착하여 : 1999. 6. 18.금. 맑음>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에 깨어 있었다.
밖을 보니 정말로 북한이다. 장전항과 금강산이 보였다.
회색 건물과 사람 없는 길거리도 보였다. 식사를 하고 인원파악 후 조장의 뒤를 따라 나섰다.(흔히 여행Guider 라고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조장이라고 한다. 아마도 미국을 싫어하는 그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뜻인가 보다). 도시락과 간식을 받아들고 줄맞춰서 배를 내리는데 승무원들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인사를 한다. 명찰에 PAKISTAN KAREN이라 쓰여 있기에 “카 렌!”하고 불러주니 예쁘게 웃으면서 “땡 규”한다. 배에서 내리면 금방 육지가 아니고 작은 배
장전호에 타게된다. 장전호가 장전항 부두에 닿을 때쯤 뒤 따라 붙는
더 작은 배가 또 있다. 닻줄을 걸고 당기고 하며 접안(接岸)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부산에서도 외항에 있는 큰배를 내항의 접안부두로 유도하는 배가 있는데 이를 도선(導船)이라 하고 국립 해양대 출신의 PILOT가 지휘한다. PILOT는 만년필 이름이나 항공기 조종사만을 뜻하지 않고 배에서도 수로안내인이나 조타수(操舵手)를 PILOT이라 한다. 장전호 배에서 보니 금강호 옆에는 풍악호가 함께 정박해 있다. 어제 도착하여 오늘저녁엔 출발하게된다. 통상 북한의 장전항에는 2대, 남한 동해항에는 1대의 배가 정박해 있다. 나란히 서있는 두 배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했다.
*. 북한 땅을 밟다---낯설지 않았다. 곳곳에 서있는 북한 사람들은 목까지 채우는 진한 감색 정장차림으로 무표정했지만 건물이나 차량들은 모두가 현대에서 짓고 가져온 것이라서,---
출입국 관리소에서 관광증을 꺼내 도장을 받고 X-RAY 검색대를 통과했다. 미국이나 홍콩공항을 통과하는 것과 똑같다.
벼르고 별렀던 말을 한마디했다. “안녕하세요?” -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네,---”
대기하고있는 버스는 현대버스인데 길이가 좀 짧았다.
운전은 조선족의 許기사였고 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말만 북한 땅이지 일종의 보세구역 혹은 조차구역처럼 보였다. 장전항에서 금강산 입구의 온정리까지 길 양쪽을 약3m높이의 철조망으로 막았으며 앞에는 북쪽사람이 탄 갤로퍼가 선도하고
모든 차량은 중간에 절대로 정차할 수가 없다.
길 오른편 철로 길에 여인들이 춤을 추며 가고 있었다.
서로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이 어딘가 가고 있었다.
오늘이 단오절이라 소풍가는 길이라고 조장이 알려주었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경운기, 비닐하우스, 수박, 참외, 고추, 마늘 등이 보이지 않았고 , 옥수수와 콩이 보였다.
논에는 모내기가 한창 이었는데 이앙기 없이 손으로 심고 있었고
밭에는 돌과 자갈이 많았다. 남쪽의 시퍼런 논이나 무성한 옥수수와 비교할 때 아주 초라해 보였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밭의 돌을 걷어내어 주변에 담장을 쌓았는데 이곳에선 그냥 방치하는 느낌이다. 온정리에서 잠시 쉬게 된다. 지명에 온(溫)자가 들어가면 거의 100% 온천이 난다. 경북 백암온천도 온정리이고 강화 마니산(혹은 마리산: 해발 468m의 낮은 산이지만 거의 해발 0m에서 등산을 시작하므로 만만치 않다. 올라 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계단 따라 참성단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아래에는 온수리가 있다. 금강산지도에는 온정리가 크게 표기되어 있지만 왠지 온정리는 없고 현대에서 지은 온정각 휴게소와 공연장만 있는 듯 하다.
*. 온정각(溫亭閣)---현대에서 지어 운영하는 휴게소이다.
식당, 매점, 화장실, 주차장 등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술, 담배, 커피, 아이스크림, 음료, 화장품, 꿀, 한약, 그림, 도자기, 잡화, 등등이 있는데 가격은 만만치 않았으며 미국 달라만 통용된다.
40도 640㎖ 백두산 들쭉술 1병이 15,000원선, `금강산, 밀림`등의 담배 10갑에 10$, `하나`담배 10갑은 무려20$. 1회용 가스라이타 3개에 1$, 성냥 3갑에 1$, A4용지 절반크기의 126쪽 짜리 안내책자 `천하절승 금강산-평양출판사`는 5$이었다.
가스라이타와 작은 성냥이 같은 값이다. 음료 판매대에서 판매원이 한창 설명중이다. 판매원은 북쪽 사람이 많았으며 간혹 남쪽사람도 있었다. 산딸기단물, XX약초차, OO즙물 등의 효능과 맛을 진지하게 듣고 난 후 나와 내 옆 사람은(전주에서 왔다고 하는 장 사장) 동시에 말했다. ----
“커피한잔주세요”(온1$, 냉2$) 건물밖에는 아주 중요한 시설물이 2개소가 있다. 대형 재떨이다. 남한에도 금연구역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특히 산에서는 절대금연이듯이 북쪽에서도 정해진 곳 외는 절대 금연이다. 아침 출발 때 아예 방에다 담배를 두고 온 터였는데 남들이 피우는 것을 보니까 더욱 더 피고 싶었다.
10년 전 싱가폴 여행을 처음 할 때 담배꽁초 벌금에 노이로제 걸려 흡연구역만 보이면 피우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많이 피웠던 생각이 났다. 재떨이 주위에서는 경쟁하듯이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은 안 보이고 노인 분 들 뿐이었다.
죄송스럽고 민망스럽고 애교스럽고 한 표정과 말씨를 최대한 mixing 하여 “저 -- 염치없지만 --” 하니까 벌써 그 심정 알겠다는 듯이 모두들 1개피씩 꺼내 주신다. 내 취항은 THIS 이지만 조금이라도 긴 것을 찾아 SIMPLE을 택했다. 그분은 라이타 불도 직접 켜주셨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의 시작이다.
장전항에서 온정리에 오는 동안 우측에 보이는 매 바위산과
닭알 바위산을 지나긴 했어도(방금 내려않은 매 한 마리가 두리번거리는 모습과 돌로 만든 닭알 모습이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금강산이라 함은 지금부터다.
*. 금강산 해설 --- 태백산맥 줄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원도 고성군, 금강군, 통천군의 일부에 있다. 남북길이 60㎞, 동서너비 40㎞, 면적 1,400㎢ (동아세계 대백과에는 400㎢, 현대의 금강산 관광수첩에는 530㎢). 주봉인 비로봉(毘盧奉:해발 1,639m --- 장전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볼 때 멀리 M자 능선이 보이는데 오른쪽의 봉우리다)을 경계로 서쪽은 부드러운 여성적 계곡미의 내금강이라 하여 8개의 명승 구역이 있고 동쪽은 웅장한 남성적 산악미의 외금강이라 하여 11개의 명승구역이 있으며 바다에 닿은 곳은 해금강이라 하여 3개의 명승구역이 있다.
설악산도 대청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백담사 계곡을 내설악, 동쪽의 신흥사 쪽을 외설악이라 함. “강원도 금강산 1만2천봉 8만
9암자 유점사 법당 위에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게 해달라고---” 하는 하 춘화의 노래가 있는데 대봉(大峰)은 1,000이 넘고 중봉(中峰)까지는 3,000 정도이며 창 끝처럼 뾰족한 바위를 다 합하면 1만 2천 몇 백이라 한다. 8만 9암자는 어느 노스님의 해설처럼 “8萬이 아니고 8方 9암자여어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금강산 4대 사찰은 내금강의 장안사(長安寺), 표훈사(表訓寺;-내설악의 백담사 위치정도), 외금강의 유점사(楡岾寺), 신계사(神溪寺;-외설악의 신흥사 위치정도)인데 일제침략과 6.25 전쟁통에 모두 불타고 표훈사 만이 온전하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엔 봉래산(蓬萊山), 가을은 풍악산(楓嶽山), 겨울엔 개골산(皆骨山), 설봉산(雪峰山)으로 달리 불리우며 880여종의 식물류, 39종의 짐승류, 200여종의 새류, 12종의 파충류, 36종의 물고기류, 400여종의 나비류가 확인되고 있다. 108개소의 사찰과 많은 문화유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수탈 당하고 파괴되어 지금은 거의 없다. 연평균기온은 외금강 11.2C, 내금강7.4C이고 강수량은 외금강 1,600㎜, 내금강 1,140㎜이다.
금강산 10대 미(美)는 장엄한 산악미, 물.돌.나무의 계곡미, 아늑한 호수미, 바다의 해양미, 한눈에 보이는 전망미, 울창한 수림미, 조상의 슬기인 건축조각미, 아름다운 색채미, 바람과 구름의 풍운조화미 등인데 이는 비로봉 일출로 시작하는 금강산 10경(景)과 다른 맥락이다.
중국의 소상팔경, 무의구곡에 비유해
한국엔
관동팔경 (1.통천-총석정, 2.고성-삼일포, 3.간성-청간정, 4.양양 -낙산사, 5.강릉-경포대, 6.삼척-죽서루, 7.울진-망양대, 8.평해-월송정),
단양팔경 (1.상선암, 2.중선암, 3.하선암, 4.사인암, 5.구담봉, 6.옥순봉, 7.도담삼봉, 8.석문),
신 단양팔경 (1.죽령폭포, 2.칠성암, 3.북벽, 4.구봉팔문, 5.금수산 6.온달성, 7.일광문, 8.고수굴 - 계몽사 학습백과사전),
화양구곡 (충북 속리산 북쪽 계곡에 있는,----),
지리산십경 (1.天王日出:천왕일출, 2.老姑雲海:노고운해, 3.般若落照: 반야낙조, 4.稷田丹楓:직전단풍-피아골단풍, 5.佛日懸瀑: 불일현폭, 6.碧蘇明月:벽소명월, 7.燃霞仙境:연하선경- 세석고원과 장터목사이의 기암괴석, 8.細石철쭉, 9.蟾津 淸流:섬진청류, 10.七仙溪谷:칠선계곡: -- 인터넷검색),
제주십경 (제주도의 옛 이름인 영주십경 이라고도 함: - 1.城山峰 日出:성산봉 일출, 2.紗羅峰落照:사라봉낙조, 3.瀛邱春花: 영구춘화, 4.橘林秋色:귤림추색, 5.正房夏瀑:정방하폭, 6.鹿潭晩雪:백록담만설, 7.山浦釣魚:산포조어,-제주항의 낚시, 8.古籔牧馬:고수목마, 9.靈室奇巖:영실기암,
10.山房窟寺:산방굴사,--안 경호저 평화출판사 한국100명산 에서) 등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으며
이천구경 (1.도드람산 삼봉, 2.설봉산 삼형제 바위, 3.설봉호,
4.산수유 마을, 5.반룡송, 6.노성산 말머리 바위,
7.안흥지 애련정, 8.설봉산성, 9.이천 도예촌
(2 0 0 4. 2. 2 4 확정)
설봉팔경 (1.도자기엑스포 상징물인 천년 혼:千年 魂, 2.부학루 조망:浮鶴樓 眺望, 3.영월암 모종:映月庵 暮鐘, 4.설봉호 운무:雪峰湖 雲霧, 5.송림 사색로:松林 思索路, 6.송죽동산:松竹東山, 7.새 천년탑 일출:새 千年塔 日出,
8.설봉정 만월:雪峰亭 滿月 (이상은 그냥 참고사항임 )
장호원팔경 (1.寶陀嘵鐘:보타효종-백족산 보타사, 지금의 무량사의 새벽예불 때 울리는 쇠북 종소리, 2.車依朝霞:차의조하- 술의산 또는 차의산이 아침안개 속에 장엄히 보이는 모습, 3.圓通落照:원통낙조-원통산 즉 감곡면 오궁리 시대말 뒤쪽 으로 해질 때의 석양, 4.梧蒼暮煙:오창모연-오남리 오창 마을의 저녁밥 짓는 연기가 들판으로 퍼져 나가는 정경, 5.梅山霽月:매산제월-매산위로 가을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것, 6.楓溪晴嵐:풍계청람-봉바위 마을 동쪽으로 청미천이 흐르고 산비탈엔 가을 단풍이 붉게 탈 때, 7.老塔歸帆:노탑귀범- 지금의 노탑4리를 예전엔 노들이라 했다. 장마 때 물이 불어나면 여주강에서 오는 상고배의 흰 돗과 석양의 붉은 노을을 뜻한다. 8.廣巖觀瀑:광암관폭-백족산 무탕골 폭포 에서 삼복 때 `물맞이` 하는 것.: - 허 섭 님의 글에서 인용) 등이 있다.
금강산은 유, 볼, 도교, 토속신앙, 전설까지도 다양하게 스며 있지만
특히 불교 쪽이 강하다.
세존봉, 금강문, 미륵암글씨, 53불 전설, 관음연봉, 연화대, 등의 지명은 모두가 불교에서 많이 접하는 이름들이다. 현재는 온정리에서 왼쪽의 구룡폭포 코스, 오른쪽의 만물상 코스, 바다의 해금강 코스 중 2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거의 산 쪽 두 코스를 선택하고 있다.
해금강은 배를 타고 봐야 참 맛이거늘 육지에서 보는 것은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참 예쁘다” 하는 격이다.
*. 구룡폭포 코스 -- 10대가 넘는 현대버스가 온정리의 온정각 휴게소를 출발하여 좌회전하더니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좁아 맞은편에서 차가 온다면 교차할 수가 없다. 교차하는 상황이 벌어질 리도 없다. 미인송 이라는 소나무가 늘씬하게 뻗어 있는 중간 중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북한 군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그들은 장전항에서 온정리까지의 길 양편 철조망 아래에도 있는데 이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나타났다)
장전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보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고 피부도 거칠어 보인다.
6월 하순의 무더위에도 시골역장 같은 큰 모자를 쓰고 카키색? 담뇨색? 황토색?의 긴 팔 군복에 검정색 가죽혁대 차림이다.
무표정해 보이지만 눈빛은 예리하고 강렬해 보인다.
누군가 버스 안에서 자동 카메라로 그들을 찍다가 후레쉬가 번쩍 한다면 그로써 관광은 종 땡 이다. 그만이 아니고 그 버스 전체까지,---
한참을 가다가 주차장에서 내렸다. 도시락은 버스에 두고 간식만 배낭에 넣었다. 마지막 화장실과 마지막 재떨이로 우--하고 달려갔다.
아까 그 노인 분께서 관음보살 같은 표정으로 SIMPLE 1개피와 라이타 불을 또 직접 켜 주셨다. 우리 1조 23명이 첫 출발이다.
목포에서 온 50세 부부가 1번, 2번이고 아버님 3번, 어머님 4번, 나 5번, 아내 6번, 수박 매실농사 짓고 은어도 잡는다는 섬진강 하동에서 온 73세 노부부가 7번, 8번의 순서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을 자극 할까봐 Guider라 하지 않고 조장이라는 다소 촌스런 표현을 쓰는데 반해 그들은 그들이 원수로 생각한다는 미국의 $만을 받았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미국 돈을 모두 걷어 들여야만 미국의 경제가 망할 테니까---) 목적지인 구룡폭포와 상팔담 까지는 3.8㎞.
과히 멀지는 않지만 가파르고 보행속도가 느려(노인 위주의 속도)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시 이 자리로 올 때까지 소변 끝, 담배 끝, 침 끝, 코 끝, 휴지 끝이다.
`경애하는 수령님`을 빼고 이름만 부르거나, 말씀을 새긴 비석 주위의 단에 걸터앉거나, 말씀을 새긴 먼 바위를 주먹 쥔 채 둘째손가락만으로 가리키거나(안 하는 게 좋지만 꼭 해야할 상황이면 손을 쫙 펴고 손바닥이 하늘 쪽을 향하게 하고 손가락 5개를 모아 가리킬 때 다른 손으로는 공손하게 떠 받쳐야 한다. `통일 전망대`나 `남북의 창`에서 본 기억을 되살릴 것), 캔에 든 식혜를 마신 후 남은 밥풀 알갱이를 흔들어 땅에 떨어뜨리거나, 흐르는 물에 양말을 빨거나, 김 용, 전 철우 하거나, 심지어 북쪽에서는 늘상 하는 말인 “민주주의 조선 인민 공화국 만세”를 외쳐도 벌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이요 네가 하면 밀실야합, 내가 하면 소신이요 네가 하면 독재,--- 뭔가 비슷한 흐름이다. 어느 사항의 벌금이 제일 많을지는 직접 한번 씩 해봐야 알 일이다. 이에 관한 에피소드로 내가 직접 한일 1건, 우리가족이 당한 일 1건, 우리관광객 전체가 겪은 일 1건이 나중에 소개된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적당한 너비에 적당한 계단이 있다. 분명히, 분명히 이 등산로를 누군가 비질하여 쓸었다. (군대에서 눈이오면 부대장 숙소에서 정문 앞까지 쓸고 또 쓸었다. 남쪽지방 전남 담양 땅에 웬 눈이 그리 많이 오던지---) 그 자욱이 선명하다. 물이 깨끗하다. 물 속엔 낙엽도 보이지 않는다. 건져냈거나 비 온 뒤에 긴 작대기로 떠내려보낸 듯 하다. 초록색? 연두색? 그럴 듯 한데 모두 아니다. 차차 생각해 보자.
인공 가설물은 꼭 필요한 곳에 아주 조금만 설치한 느낌이다. 오른쪽에서 흐르던 물이 앙지대 지나 금수다리 건너니 왼쪽에서 흐른다. 본격적으로 바위와 계곡과 물의 장관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코끼리, 거부기, 도마뱀, 악어, 개구리 등이 등장한다.
코끼리면 코끼리일 뿐이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다른 동물로 대입이 불가능하다. 그것도 그냥 멍한 자세가 아니고 물먹는, 기어오르는, 목을 쭉 빼낸, 입을 쫙 벌린, 움추린 등의 표현이 생생하여 생명력조차 느끼게 된다. 으레 전설이 따라 붙는데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므로 눈 중심으로 들어야 할지 귀 중심으로 봐야 할지 정신을 못 차리겠다. 토끼바위, 자라바위 에서는 전설이 아예 둘이다.
1은 옥황상제, 불로초, 계율 어김, 인간변신, 사랑, 처벌, 바위의 story이고 2는 용왕, 자라, 토끼간의 우리가 잘 아는 별주부전 story이다. 이때부터 궁금했던, 보고싶었던, 확인하고 싶었던 사항들이 속속 나타난다. 다름아닌 바위에 새긴 글씨이다. 북쪽의 한글 글자체는 독특하다. 그리고 한사람이 쓴 것처럼 거의 비슷하다. 장전항과 온정각 에서도 이미 보았지만 그것은 간판에 평면적으로 쓴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동안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넜다. 소박한 철제다리, 출렁다리, 콘크리트 다리 등등---
그럴 때마다 물은 왼쪽, 오른쪽을 오갔다. 어찌 물이 오고 가랴? 하잖은 내가 오고 갔겠지,--- 그 소박한 철제다리를 마악 건넜을 때 가슴이 서늘해 졌다. 드디어 북쪽 사람과 만난 것이다.
장전항의 정복차림이나 길가의 군복차림이 아닌 사복차림의 남, 여 감시원이다. 그 두 사람은 우리 쪽 사람과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나이가 젊었다. 1947년 9월에 위대하신 김 일성 수령님께서 존경하는 김 정숙 동지와 함께 이곳에 오셨을 때 하신 말씀을 바위에 새겨 넣어 붉은 색으로 돋보이게 하고 단을 둘러쌓아 보호하고 있다.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허허롭게 보낸 눈길 끝에 드디어 자연암반에 새겨진 글씨를 처음 보게 되었다.
180도 뒤편이니까 올라오던 길을 돌아 볼 때였다.
그런데---어라? 한글이 아니고 한자였다. 志遠(지원:-뜻을 멀리에 두라). 크기도 작았고 바위도 높지 않은 곳에 아담하게 새겨져 있다. 궁금증은 이내 풀었다. 경애하는 김 일성 수령님의 부친? 혹은 조부이신 金 亨稙님 (김 형직:-호칭을 들은 바도, 배운 바도 없어 공란으로 남겼음) 께서 평소에 하신 말씀이란다.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삼록수(參鹿水)라는 팻말이 있고 졸졸 흐르는 물을 나뭇잎 두 장으로 모아 떨어지게 한 곳이 있다.
수령님께서 `산삼과 녹용이 썩은 물이다` 하여 삼록수라 이름을 붙였는데 썩은 것 이라기 보다는 삭은 것, 섞인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테고 그 귀한 약수는 그저 한두 모금만 목을 적셔야지
욕심껏 마시거나 병에 담아 두고두고 마시면 배탈 날 것이다.
실제로는 배탈나서 선 내 병원 신세진 50대 아줌마를 보았다.
얘기도 직접 들었다. (경이로움인지 삐죽거림인지는 각자 판단 바람). 옛말 틀리는게 하나도 없으니 과불급(過不及-넘치는 게 부족함보다 못하다)이라 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예기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시고`, `열려라 하시니 열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짐은 곧 국가니라`, `저 물을 삼록수라 하라----`.
`니 예---` 아--- 그분은 그토록 전지전능하신 분 이였습니다.
식물의 낙엽과 동물류, 조류, 파충류, 나비류,(숫자는 앞에서 확인바람)등이 흔적을 남긴 물도 금방 산삼녹용 약수로 바꾸실 수 있는 그분은 경애하는 김 일성 수령님(敬. 金. 首)뿐 이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약수를 정화수(井華水), 한천수(寒天水), 국화수(菊花水), 엽설수(獵雪水), 춘우수(春雨水), 추로수(秋露水), 매우수(梅雨水), 감란수(甘爛水), 벽해수(碧海水), 온천수(溫泉水), 냉천수(冷泉水), 하빙수(夏氷水), 역류수(逆流水), 천리수(千里水), 반천하수(半天河水), 요수(潦水), 증기수(甑氣水) 등등의 33가지로 나누고 있고 다른 사람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石間水로써 해 뜰 때의 새벽 운기를 받은 물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천 설봉산 자락 동편의 호암, 영월암, 구암 약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이 조차도 무기 화합물, 유기 화합물, 용존산소량, 등등을 따져 인체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즉 약수가 좋으냐 정수기물이 좋으냐---)
금강문에 도착했다. 경애하는 김일성 수령님의 말씀대로 금강문을 지나야만 금강산의 참 맛을 느끼게 된다. 뭔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계속되는 전설이야기를 들을 것도 없고 사진 찍느라 야단법석 칠 필요도 없다. 그냥 입을 헤-- 벌리고 술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면 된다. 옥류동 계곡엔 옥류담, 련주담, 구룡연, 비봉폭포, 구룡폭포, 상팔담이 있다. 물 빛깔은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왼쪽에 비봉폭포가 나타났다. 옛사람들은
`떨어지면 폭포요, 누워 흐르면 비단필이요, 부서져 흐르면 구슬이요, 고이면 담소요, 마시면 약수` 라 했다. 조금 더가면 오른편에 뜻밖에 선물이 있다. 화장실과 재떨이--- 일반적으로 담배는 화장실 안에서 피우게 되지만 여기서는 그게 안 되니까 가기전에 1대, 다녀와서 1대 이다. `에이, 이 참에 아예 끊지---`하는 표정이 아내의 얼굴에 역력하다. 그러나 담배 피는 사람은 600˚C가 넘는 그 열기로 손끝과 입술이 타고, 끊은 사람은 자만심과 집착으로 가슴이 탄다. `주렴폭포`도 나온다. 맑은 물이 구슬처럼 쏟아져 흐른다는 뜻인데 그전에는 `운금포`라 하였다. 1973. 8. 19일-경애하는 김 일성 수령님께서는 `주렴포`가 더 낫다고 하시어 이름을 손수 고쳐 주시었고, 1973. 8. 24일-김정일 령도자께서는 탐승객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란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가르쳐 주시어 지금의 안전설비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높이는 10m정도, 깊이는 7m의 자그마한 폭포이지만 대단한 은혜와 영광을 입은 폭포이다
*. 구룡폭포 --- 설악산으로 치면 비룡폭포 쯤에 해당된다.
절벽높이는 150여m, 폭포높이 74m, 길이 84m, 너비 4m 이고
아래 구룡연은 물깊이가 13m 이다. 12㎞ 뒤에 있는 비로봉에서 발원하여 계곡 따라 흐르고 합쳐져서 머리 바로 위에는 그 유명한 상팔담이 있다. 유점사 늪에서 53불과 싸운 9룡의 전설이 두편 전해지는데 불교신도 쪽에서는 부처가 이겼다고 하고, 비신도쪽에서는 9룡이 이겼다고 한다. 세상에는 규모로만 따질 때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너비 1,800m, 높이 120m), 베네수엘라 안헬 폭포(높이 1,054m, 너비 979m), 이구아스폭포, 나이아가라 폭포 등등 많이 있지만 자연풍치와의 조화, 장엄한 모습, 자연경치 등 종합적인 구성으로 볼 때 구룡폭포가 으뜸이다.
신라시대 최고의 지식인 최치원은 (857년에)
- 천 길 흰 비단 필을 드리운 듯 하고
만 섬의 진주 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
하는 시를 남겼다. 휴식할 수 있는 정각(亭閣)은 1961년에 세웠는데 당연히 경. 김. 수(敬. 金. 首) 덕분이다. 경. 김. 수를 아직도 모른다면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 폭포 오른쪽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에 세로로 彌勒佛이라고 무지 크게 새겨져 있다. 1919년 (세존강생 2946년)에 새겨졌다는데 글씨는 해강 김 규진이며, 석공은 일본인 스스끼 긴지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석공은 조선사람 이라고 한다. 총 길이 20m, 너비 2.8m, 글씨 한 획의 너비 40㎝, 깊이 20㎝ 인데 佛자의 내려그은 획은 길이가 13m이고 구룡연 깊이도 13m이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사진 찍으며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사진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다시 쓰겠지만 사진, 사진 하면서 너무 매달리지 않는 게 좋다.
(참고 : 소, 담, 연, 지 -- 沼, 潭, 淵, 池 -- 비슷한 뜻으로 물이 고여 있는 곳). 간식은 찰떡과 캔 음료 식혜, 초코렛, 오이 반 토막인데 꿀맛이다. 3일 후 저 미륵불 글자로 인해 성남시에 사는 한 중년 여인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되는데 사건의 발단은 彌자를 몰라 북쪽 사람에게 물어본 데서부터 시작된다. 자칭 불교 쪽 신자라면서 彌자를 몰랐으니 부처님 벌인가? 모르지만 알고자 했으니 정성이 갸륵하여 은혜의 시련인가? 가벼운 입 때문인가? 의도된 결과인가? 20세기말의 최대 이슈다. (issue-정확한 답이 없는 물음, question-답이 있는 질문)
*. 구룡대와 상팔담 --- 왔던 길로 조금 내려오다가 상팔담 코스로 오르게 된다. 이 상팔담 코스는 일종의 보너스 인 셈이다. 겨울에서 봄까지는 위험해서 통제된다고 한다. 거리는 수백m 밖에 안되지만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곳곳에서 만나게 되므로 노약자나 허약자는 삼가는 게 좋다. 여행은 느긋하고 편안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목숨 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선다. 격려하고 끌어 주며 함께 오른다. 젊고 잘났다 하여 먼저 갈 수 없다. 뛰어갈 수도 없다(길이 좁으니까,---) 어차피 인생도 함께 흐르는 것, - 간신히, 정말 간신히 올라보니 10여 m나 되는 커다란 바위가 갑자기 반겨 준다.
거대한 자연석을 깎고 다듬어 꽃무늬로 받치고 세로 직사각형의 석판을 만들어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글자를 새긴 후 붉은 색 페인트로 돋보이게 해 놓았다.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 정 일
천 구백 팔십 일년 류월 십칠일
상팔담에서
아내를 모델삼아 기념찰영을 했다. 부동자세가 딱딱하여 포즈 변경을 요구했더니 오른손을 꽃잎 무늬에 슬쩍 걸쳤다. 뒤에서 갑자기 “꽃잎에 손대면 안 되요” 하는 소리에 아내는 자지러질 듯이 창백하게 놀라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벌금과 사죄문을 각오하면서 뒤돌아보니 주 윤발처럼 잘 생긴 현대 직원 9조 조장이 농담이었다는 듯 빙긋이 웃고 있었다. 쫒아가서 등산화발로 한방 먹이려다가 몸은 일단 멈추고 입으로만 야단을 쳤다. 가벼운 농담이라도 때와 장소가 다르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 수가 있다. 이제 마지막 저 쇠사다리만 오르면 구룡대 정상이다. 구룡대 정상(해발 880m)에는 상팔담 이라는 표지석이 있지만 실제로 팔담은 저 발끝 아래 150m 지점에 있다. 담이 한 개만 해도 대단할 터인데 계곡을 휘돌아 왼쪽으로 흐르면서 8개가 이어져 있다. 그림에서 보던, 달력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이다.
아,--- 이제 생각이 난다. 저 물 빛은 비취색이다. 살아 움직이는 투명한 비취색이다. 크고 깊은 담은 진한 비취, 작고 얕은 담은 옅은 비취, 사진을 막 찍었다. 인물과 배경을 함께 넣을 수는 없다. 공간이 워낙 좁아 행동을 서둘러야만 한다. 이 곳에서는 옥류동 계곡과 주변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팔담 반대편 눈과 수평 높이의 큼직하고 잘생긴 바위에는 가로의 흘림체로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 정 일
이라 새겨져 있고 (붉은 색 페인트는 안 넣었음)
또 그 옆에는 세로로 `주체사상 확립` 이라 새겨져 있다.
크고 멋있고 잘 보이는 바위에는 어김없이 이런 식으로 새겨져 있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은 금강산 상팔담이 원산지이다. 이곳에서의 전설은 남한에서 보고 배운 바와 약간 다르다.
상팔담은 독탕이었나 보다. 가족탕이나 공중탕 이었으면 수십 선녀, 수백 선녀가 등장해야 하는데 8선녀만 나온다. 선녀의 옷은 금강산 산신령의 아들인 사슴이 감추었다(그렇다면 아빠 사슴이 산신령?--- 전설이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드레박도 등장하지만 나무꾼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금강산 백발신령이 룡마 타고 하늘에 가서 선녀와 아이들을 몰래 데려 왔다고 한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올라올 때는 못 봤는데 내려가면서 자세히 보니 마지막 출렁다리 옆 엄청 크고 넓직한 바위에 7언 절구의 6행시가 멋진 붓글씨 채로 새겨져 있다. (붉은 색 페인트는 안 칠했음) 100% 기억은 못 하지만 옮겨보면 이러하다.
白 頭 山 頂 正 日 峯 長 白 水 河 碧 溪 流
光 明 星 誕 五 十 週 皆 贊 文 武 忠 孝 備
萬 民 稱 頌 齊 同 心 歡 呼 O O 辰 天 地
金 日 成
敬. 金. 首께서는 인민을 사랑하심이 하해 같이 깊으시지만
친 아드님이신 領. 金. 國(령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사랑하심은 하늘보다 더 높으신 듯 하다. 50세 된 아드님의 생신을 위해 위와 같은 명시를 지으셨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이러하다.
백두산 정상에 정일봉 우뚝하고
압록강은 계곡따라 푸르게 흐른다.
광명성 탄생한지 50주 되는데
글과 무예 충성 효도 두루 갖추어
만백성이 한마음 칭송하나니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 뒤흔드네
아들 사랑은 무릇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광명성은 령.김.국을 뜻함) 내려가는 길은 쉽고 편하다. 그러나 고개는 더욱 바쁘다. 올라 올 때 못 본 곳은 찾아서 봐야 하고 이미 본 곳은 다시 봐야 하기에.--- 주렴폭포와(옛 이름 운금포) 연주담을 다시 대하니 초보시인의 가슴에도 詩心이 절로 인다.
운금포(雲琴瀑) 비단옷은 그대 입으오.
연주담(蓮珠潭) 옥로주(玉露酒) 내 마시리
무심한 서산낙조(西山落照) 뉘 잡아 줄 거나
주차장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는다. 도시락 뚜껑에 magic이라고 쓰여 있으니 마술 도시락 인가보다. 밥과 소스(쇠고기, 자장, 카레 중 택일)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아래 있는 끈을 당기면 무슨 화학물질이 분자운동을 하여 열에너지로 바뀌고 어쩌고 해서 1분 이내에 손을 데일 만큼 뜨거워진다. 처음 보는 것인데 정말 희한하다. 일명 `땡겨 도시락` 이라 한다. 진공포장의 동원 김치가 있고 오이냉국은 스텐 보온밥통에 들어 있다. 우리 아들이 학교 갈 때 더운 밥 담아 가는 그릇이다. 여기서는 보냉효과로 쓴다. 밥풀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든 쓰레기를 주어 모아 배낭에 넣은 후 화장실 출입 전후로 담배 1대씩 얻어 피운 뒤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조장녀석이 안 보인다. 5년 전 전 미국여행 때 늦잠 자는 가이드를 우리 팀이 깨운 후 “너를 우리가 데리고 다니냐?”며 야단쳤던 기억이 났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저 계곡 쪽에서 70되신 할머니 두 분을 부축한 채 그가 나타났다. 한 분은 왼쪽다리를 절뚝이셨고 다른 분은 반대편을 절뚝거리셨지만 얼굴엔 하나가득 만족감이 인다. 세상에나,--- 그 나이에 그 몸집을 이끌고 상팔담까지 오르셨단다. 허기야 얼마 전 치악산에 올라보니 정상에는 (비로봉 1,288m) 노인 분들만 계시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숫자의 두 배 이상) 젊은이들은 몽땅 구룡사 앞 계곡에서 소주 마시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신계사(神溪寺)터로 들어갔다. 정차하지는 않았지만 밖을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지나갔다.
신계사는 금강산에서도 천하명당에 자리잡은 고찰이다. 신라 법흥왕(519년)때 세워졌으므로 1,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51. 6. 24 폭격으로 소실되었지만 3층 석탑(정양사 고탑, 장연사 고탑을 합해 금강산의 3개 고탑이라 한다)과 부도가 남아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늠름하게 감싸주고 관음연봉 현무삼아 신계천이 주작된다. 신계천은 연어조차도 오르지 않는 깨끗한 물이다. 대웅전, 극락전, 만세루, 칠성각, 등 우수한 건축문화는 흔적조차 없지만 남한의 스님들이 단체로 찾고 있다. 달포 전에는 5,000$의 벌금을 물어가면서까지 수십 명의 남쪽 고승들께서 탑돌이 행사를 가진 바 있다. 곧 복원한다고 한다. 이름도 新溪寺에서 神溪寺로 바뀌었고(혹은 神鷄寺로 쓰임)이에 따르는 전설이 다양하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관관증에 도장을 다시 찍고 (이번에는 출국도장) 배타고 (장전호→금강호) 배에 탔다.
저녁식사 전부터 안내방송을 통해 오늘은 노래자랑을 한다고 한다. 부지런히 샤워하고 공연장에 가서 신청곡을 써냈다. 할 것이면 서두르고 말 것이면 차라리 휴식을 취하는 게 낫다. 사회자 진 선 씨가 세 번째에 나를 호명했다. 인터뷰도 했다. 쌀, 도자기, 온천의 고장 이천 소개를 했고 내 나이에(48세) 꼭 맞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열창했다. 뒤에서는 5인조 캄보밴드가 생음악으로 반주했고 앞에서는 6개의 스폿 라이트가 집중 조명하는 가운데 200여 청중 앞에서 20여 평의 플로어를 마음껏 누볐다. 음치, 박자치의 특징은 반주가 끝났음에도 노랫말이 남아있다는 점인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노래를 다 마쳤음에도 반주는 계속 되고 있었다. 약 15명이 노래를 했지만 뒤늦게 접수한 수십 장의 신청서는 그냥 휴지통으로 버려졌다. 왕년의 히트가요 `발병 난대요`를 부른 가수
`서 지영`씨가 심사를 했는데 `청춘을 돌려다오`의 서울서 오신 70대의 백발 노인이 1등을 했다. 3등까지 기념품을 주는데 나는 4등인지 15등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 야식은 메밀국수 두 판과 케익 1조각에 수박 2쪽을 곁들였다. 복도에서 외국인 가수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배 탈 때, 배에서 내릴 때, 식사 때 테이블을 돌며 노래를 불러주던 3인조 혼성 그룹(남2, 여1)이다. 남자 2명은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바쁘고 여자 1명은 팁(통상 1$혹은 1,000원) 받아 인사하며 노래하기 바쁜 팀이다. 레파토리도 다양해서 올드 팝, 슈가 팝, 영화음악, 요들송, 라틴음악 등등 100여 곡은 될성싶은데 한국민요나 가요를 하는 것은 한번도 못 봤다.
그와 나눈 얘기는 제 3세계의 인권문제, 환경오염, 자원고갈, Y2K등등인데 전문용어까지 쓰며 모두 영어로 했다. (확인 할 수 없을 테니까 펜 가는 대로 막 쓰고 있음) 그중 몇 마디만 소개하면,---
- you are excellent musicians. -- oh! thank you.
- where are you from? -- Philippines.
- how long have you been in korea? -- two weeks.
(맞아, 2주 밖에 안되었으니 한국 노래는 아직 못하겠지--)
- what do you think Korea? -- very beautiful country
(그가 본 것은 동해항과 장전항 뿐 일텐데 very까지 넣은 걸 보면 예의 바른 사람인가 보다)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 what`s your name?
(예의를 갖추려면 may I have your name? 해야 하는데 이번 에는 막 대하는 것 같다.) -- 윤 청. spelling is Y-O-O-N, C-H-E-O-N-G 했다.
그는 분명히 나의 성이 정 씨이고 이름은 윤 일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이러한 착각은 미국에서 흔한 일이다. 남부 캘리포니아 사막지대에는 메뚜기 대가리처럼 생긴 큰 기계가 수 백대나 흩어져서 우리네 시골 우물의 pump와 같이 上,下운동을 하고 있다. 석유 퍼 올리는 기계인데 발명자는 한국인이다. 미국사회의 관례대로 발명자 이름을 따서 기계이름을 짓는다고 한 것이 Hong's machine이 되었다. 성이 김씨였으므로 Kim's machine이 옳지만 이름의 끝 자가 성으로 바뀐 것이다. what`s your favorite song? 하고 그가 또 물었다. Olivia newtonjohn의 `Physical` 이라 하든지 아니면 그냥 `Bridge over trouble water` 라 했으면 폼 났을텐데 나도 모르게 그만 `You are my sunshine` 이라 했다. 그리고 서로 `goodnight` 한 후 헤어졌는데 그의 이름은 Joe라고 했다.
<둘째 날 : 1999. 6. 19 토. 맑음>
아침식사는 순서가 바뀌어 빨간 명찰부터 했다. 어제는 현대관광에서 나누어준 파란색 챙이 달린 흰색 모자로 통일되었는데 오늘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갖추었다.
*. 모자, 조끼 --- 똑같은 모자를 쓰고 보니 초등학교 운동회 같다. 5층 코롱 매장에서 챙만 있고 뚜껑은 없는 것으로 30,000원에 두 개를 샀다. 옆에 있는 분홍색 파스텔 톤의 조끼가 멋있어 보여 아내가 입어 보았는데 팔 소매도 안 달린 것이 60,000원이나 하기에 그냥 걸어 놓았다. 돈을 아껴 쓰기로 했으므로,---
저녁 늦게 어머님께 모자를 드리려니까 아버님께서 분홍색 조끼를 내어주시면서 “입어봐라, 작으면 가서 바꾸고 ---” 하신다. 작을 리가 없다. 아마 모자 살 때 밖에서 보셨나보다. 북에서는 어버이 수령님께서 인민들을 보살펴주시고 남에서는 부모님께서 50을 바라보는 자식들 챙겨 주시느라 참으로 바쁘시다.
오늘의 만물상 코스는(약 2㎞) 어제의 구룡폭포코스(3.8㎞)보다 거리는 짧은 대신 훨씬 더 힘들다고 들은 바 있음인지 모두들 비장한 표정이다. 온정각을 떠나 우회전한다. 설악산으로 치면 계조암, 흔들바위, 울산바위 쪽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이 여러 채 보였고 온천개발 하는 현장도 있다. 좌우에 미인송이 즐비한 길은 S자로 휘었고 좁았다. 버스길이가 짧은 것은 이 도로 때문인데 106구비라 한다. 겨울에 눈이오면 버스가 다닐 수 없어 걸어가야 하는데 약 4㎞정도이다. 이 부분에서 `志遠`을 또 보았다.
*. 만물상 코스 --- 만물상은 특정한 지점이 아니고 귀면암, 삼선봉, 칠층암, 망장천, 천선대, 망양대 등이 있는 계곡 양편의
능선 전체를 뜻한다. 눈에 보이는 경치가 하나같이 절경이라서 길가의 평범한 자갈 돌 한 개가 더 신비해 보일 지경이다.
온정리에서 만물상 입구 주차장의 만상정(萬相亭)까지는 약 6㎞ 이다. 주차장, 화장실, 담배 2대는 어제와 내용이 같고 (화장실은 여기가 끝) 등산로 초입부터 삼선암, 귀면암이 나타나 혼을 빼 놓는다.
이곳의 특징은 확실한 형상의 바위가 계속 등장한다는 점이다.
입을 헤 벌린 곰바위, 장수바위, 룡마바위, 거부기바위, 등짐지고 잠시 쉬는 삿갓 쓴 노인바위, 퍼머 머리한 아줌마 바위, 코뿔소 바위, 독수리바위, 또아리 튼 독사바위, 등등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데다 머리 나쁜 사람을 위해 간혹 재등장도 해준다. 절부암(節釜巖)에서도 선녀와 나뭇꾼이 등장하는데 스토리는 전혀 다르다. 한가지 같은 점은 해피엔딩 하여 금강산에서 오래도록 잘 살았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길을 찾는 곰과 무서워서 곰 뒷다리에 꽉 매달린 두더지, `앞 녀석들이 뭐 하나?` 하고 목을 쪽 잡아 뺀 도마뱀 바위에 이르면 더 이상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게된다.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김 종수 조장은 뒤편 능선 위의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경륜(競輪)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안도하는 1위, 몸부림치는 2위, 아쉬워하는 3위, 포기하는 4위의 설명이 그럴 듯 한데 조금은 작위적(作爲的)이다. 자전거 경주 생긴지가 얼마나 되었고 잠실인가? 송파 인가의 경륜장이 open 된지는 또 얼마나 되었다고---
*. 안심대 -- 옛날 시인이 `바위가 날카롭고 가파르기 그지없다. 올라갈수록 기괴한 봉우리와 놀란 바위가 무리로 사람에게 대든다. 경쾌한 놈은 날듯하고 뾰족한 놈은 꺾일 듯 하고 빽빽이 선 놈은 서로 친밀한 듯 하고 살찐 놈은 둔한 것 같고 여윈 놈은 민첩한 것 같은 그 천태만상을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고 노래한 안심대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한다. 그나마 조금은 평평한 바위라서 마음이 놓인다는 뜻이다. 내가 거의 맨 끝 부분인데 내 뒤에 오던 3명중 1명의 중년여인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메조 소프라노로 가곡을 한 곡 불렀다. 힘차고 멋있는 노래가 만물상 계곡에 울리고 나니 모두들 박수조차 잊었다. `그리운 금강산`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무슨 노래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망장천 --- 100m 더가면 망장천이 있다. 잊을 망(忘), 지팡이 장(杖), 샘 천(泉)인데 마시면 기운이 솟아 들고 온 지팡이를 잊고 간다는 물이다. 바위 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데 필히 부부가 함께 마셔야지 한사람만 마시면 서로가 몰라본다고 한다. 하지만 버려진 지팡이는 한 개도 없다. 알지? 버리면 벌금인 것을----
*. 천일문 ---마지막 힘을 내어 수직에 가까운 쇠사다리를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구멍의 하늘문(天日門)에 닿는다. 어제의 금강문은 금강산으로 통하고 오늘의 천일문은 하늘로 통한다. 강원도 팔봉산에도 한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가는 작은 바위구멍이 있는데 금강문이나 천일문은 상당히 커서 여러명이 동시통과 할 수 있다.
*. 천선대(해발 936m)--- 금강산의 장엄미는 만물상이 으뜸이고 천선대는 그 중앙에 있다. 당연히 전설이 있는데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경치가 좋아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
구차스럽게 스토리를 만들 필요가 없는 곳,---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는 곳,---
*. 사 진---금강산에서는 사진, 사진 하면 몸과 마음만 피곤하다.
찍으면 찍고 만면 말아야지 집착할수록 실망만 크다. 배경은 웅장한데 길은 높고 공간은 좁으니 사람과 배경을 함께 살리기 힘들다. 사람위주로 하면 배경이 죽고 배경위주면 사람이 작고 나누어 찍으면 의미가 없다. 앞사람을 찍으면 반바지 속의 BYC팬티가 보일 정도이고 뒷사람을 찍으면 등산화 뒤 굽이 보인다. 특히 노출에 신경을 써야한다. 자동카메라는 하늘의 밝은 빛을 감지하므로 계곡과 사람 얼굴은 노출 부족이 되기 쉬우니 사람 발 아래의 어두운 곳을 조준한 후 1단계 half shutter 하여 setting한 후 구도 잡아 2단계 shutter shutting하면 되고 수동카메라는 두세 칸 더 열어 주면 된다. 인물을 `천선대`라는 표지석 옆에 내려서게 하고 멀리 능선 두 줄기와 하늘이 좌상 1/4지점에 자리잡게 하여 상반신만 찍는다. 맑은 날이면 1/250-5.6(혹은 1/125-8) 정도면 무난할 것이다. 공간은 좁고 사람은 밀려 있으므로 미리 준비했다가 노출변화 해가며 3-4cut 반복 촬영해야지 괜히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해 봐야 어차피 버릴 사진 때문에 욕만 잔뜩 먹게된다. 내 경험으로는 제주도에서의 사진이 으뜸이다. 약간의 이국적인 풍광과 선명한 색채감이 좋은 사진을 만들어 준다.
마라도 잔디, 한림공원 식물원 안에서의 간접조명, 애월읍 바닷가, 산굼부리 쪽 갈대밭, 성산 일출봉 오르는 길, 천제연 동백나무, 빅토리아목장, 성읍 민속마을, 한라산 횡단도로의 설경 등을 추천하고 싶다. 이때 평평한 배경에는 저 멀리에 있는 산을 (제주방언-오름)넣으면 더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용한 요소는 즐거운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시선을 같은 지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웃지 않은 여인의 사진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천선대에서는 아래쪽으로 옥녀봉, 관음연봉, 세존봉, 집선봉 등이 한눈에 보이고 위로는 1,263m의 우의봉, 무애봉, 천녀봉, 천진봉, 천주봉의 오봉산 등등 사방이 온통 수정기둥의 병풍이나 성벽 같아 보인다.
수많은 시인들이 제 각각
사람들이여!
금강산의 산악풍경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 할 수 있으랴
금강산의 대자연을 묻지를 말라
눈으로 마치 다 보지 못하거늘
어찌 다 입으로 말 할 수 있으랴
금강산의 대자연을 알려거든 여기 와서 보시라
걸음마다 감격이요 걸음마다 시경(詩景)이라
봉우리마다에 노래가 감돌고
계곡마다에 노래가 흐르고 있거니
그 무슨 재간으로 이 노래를 다할 소냐
우주의 온 아름다움이 한데 모여 자리잡은
위대한 미의 천연의 집단 속에
걸음마다 황홀하여 감탄하던 벗들도
이젠 그만 입을 다물었네
인류 천만년에 천만개의 말들은 부끄러워라
말과 노래 끊어진 곳에 금강산이 솟아 있다.
라며 노래했고
19세기 시인 박 세당은
1만 송이 련꽃이 피어 만물상을 보고
얼굴을 드러낸 것 같고
1천 자루 창을 꽂아
서리 어린 날창을 세운 것 같다
19세기 오당 리상수는
봉우리는 놀랜 듯이 땅에서 빠져 나와
눈을 부릅떠 서로 겨루어 보며
바위들은 노한 양으로 물러나서
하늘로 날아나려 한다.
방랑시인 김 삿갓도 금강산을 노래한 시가 여러 편 전해진다.
그 중 몇 편만 소개하면,---
송 송 백 백 암 암 회 (松 松 栢 栢 岩 岩 廻)
수 수 산 산 처 처 기 (水 水 山 山 處 處 奇)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아가니
물과 물, 산과 산이 어우러져 가는 곳마다 기이하기 그지없구나
일 보 이 보 삼 보 립 (一 步 二 步 三 步 立)
산 청 석 백 간 간 화 (山 靑 石 白 間 間 花)
약 사 화 공 모 차 경 (若 使 畵 工 摸 此 景)
기 어 림 하 조 성 하 (其 於 林 下 鳥 聲 何)
한 걸음걸음 마다 멈춰서서 돌아보니
푸른 산 흰 바위 사이사이 마다 꽃이로다
그림쟁이 불러다가 이 경치 그리라 한들
숲 속의 새 울음소리야 무슨 수로 그려낼까
선 금 백 기 천 년 학 (仙 禽 白 幾 千 年 鶴)
간 수 청 삼 백 장 송 (澗 樹 靑 三 百 丈 松)
승 불 여 오 춘 수 뇌 (僧 不 如 吾 春 腄 惱)
흘 무 심 타 일 변 종 ( 흘 無 心 打 日 邊 種)
날아가는 저 학들은 몇 천년 되었을꼬
물가의 푸른 소나무 삼백 길이 넘는구나
졸고있던 이 내 심사 스님이 알 길 없고
암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는 사람을 놀래키네 등등
하나 같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조선전기 사대명필 중 한 사람인 봉래 양 사언(蓬萊 楊 士彦)이 (나머지 세분;-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 安平大君, 석봉 한 호; 石峯 韓 濩, 김 구; 金 絿) 내금강 만폭동 바위에 써서 새겼다는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 元化洞天 -- 금강산은 하늘에 이어진 곳으로 신선이 사는 세계)과 중국의 송나라 때 어느 시인이 읊었다는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일 것이다.
이로써 그 시인보다는 양 사언이 훨씬 더 행복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은 금강을 보지 못했고 한사람은 금강에 살면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천하명필을 남겼으니---
양사언은 금강을 너무 좋아해 호 까지도 봉래(蓬萊) 라 했고 회양군수, 안변군수, 평창군수, 철원군수, 함흥부사, 강릉부사 등을
지냈으며 그 유명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라는 시조를 남겼다. 금강은 초보시인 에게도 시심(詩心)을 안겨준다.
좌우로 창 든 병사 호위자세 늠름하고
풍운선녀(風雲仙女) 눈앞에 너울너울 춤출 때
금강취흥(金剛醉興) 전율(戰慄)되어 도도하게 서린다
(누구라도 좋으니 한역;漢譯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뒤에서 소개한다고 했던
①. 내가한 일 -- 천선대와 천일문 중간지점에 경,김,수께서 교시하신 말씀을 돌에 새겨 단을 쌓아 보호하는 곳이 있는데 때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기에 단위로 선뜻 올라섰다. 걸리면 `하도 영광스러워 먼지라도 닦으려 올라섰다` 할 참이며 정 안되면 벌금과 사죄서의 각오까지 했다. 다행히 북쪽사람은 없었지만 현대의 조장 둘이 자지러질 듯 손을 내 저었다.
②. 우리가족이 당한 일 --천선대에서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망양대로 가는 갈림길인데 이 역시 800m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워낙 험해서 겨울엔 입산 통제이므로 노약자는 주의해야 한다. 하동에서 온 70대 노부부는 허리띠 졸라 맨 후 먼저 출발했으며 어머님께서는 무리할 것 없다하여 그냥 하산하신 뒤 아버님과 함께 간식을 먹었다. 쵸코렛, 쵸코파이, 오이반개, 쥬스 등 이였다. 발 옆까지 온 다람쥐에게 쵸코파이를 조금 떼어 주었다가 `아차`싶어 얼른 주어 담았다. 자리를 떠나려니까 북쪽사람이 다가와 주변검사를 하더니 쵸코파이 부스러기 몇 개와 진로소주 뚜껑 만한 오이조각을 찾아내었다. 해명하고 사정하여 손수건에 담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후로는 에메럴드 다루듯 소중히 간직했다. 저쪽에선 두 사람이 마주서서 신문지로 턱 받침 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 망양대(望洋臺) --- 망양대에는 전망대가 두 곳이다. 비로봉부터 동해바다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항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아주 좋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하다보니 죽어 고사목이 된 회색 소나무까지도 운치가 있다.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망해대(望海臺)`라 하지 않고 망양대, 망양정(望洋停)이라 한다. 이곳에 있는 여성 안내원(감시원)은 “간밤에 싸우기라도 했나요? 좀 웃고 찍으시라요”하며 우리를 즐겁게 웃기더니 함께 있던 남성은 조그만 쓰레기를 하나 주워 들면서 “아름다운 금강산이 쓰레기 때문에 손해 보누나” 하여 분위기를 금방 썰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토록 버리지 말라고 수 차례 반복하는데도 애써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장담하거니와 분명히 남한의 관광객이다. 북쪽사람은 우리가 주는 어떤 음식물이나 선물도 받지 않는다. 그 사람이 주운 쓰레기는 하이-C 팩에 붙은 투명한 비닐로 만든 3㎝ 정도의 빨대 껍질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조선족인 산악구조원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금강에서의 색다른 낱말을 들었다.
*. 금강내기 --- 겨울철에 계곡을 따라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
사람을 순간적으로 들어올릴 정도라고 함.
*. 계절폭포 --- 비가 오면 폭포가 되고 가뭄이 들면 바위가
되는 폭포
당구3년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 - 서당개3년이면,--)이라 했던가?
세련된 말씨의 현대 조장보다도 투박한 그의 설명이 오히려
반갑다. 주차장에서 땡겨 도시락을 먹고(오이 냉국 대신 물김치) 화장실 전. 후 담배 2대를 했다. 옆자리에서 식사하던(어제 늦게 내려 온) 할머니 두 분이 환하게 웃으며 “내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하시는데 과장은커녕 차라리 소박해 보인다.
③. 우리 관광객 전체가 겪은 일 --- 아침나절 등산 때부터
이 일은 시작되었다. 어느 노인이 경,김,수에서 경과 수를 빼고 김 만을 친구 부르듯 얘기 하다가 북쪽 사람에게 적발되어 관광증을 압수 당했다는 소식이 각 조 조장의 무전기(워키토키)를
통해 알려졌다. 점심 식사 후 우리 관광객이 모여들고 북쪽사람은 높은 단위에 죽 늘어서더니 “아바이! 아바이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지 않소? 빨리 잘못 했다고 사죄 말을 하시오”라며 그 노인에게 강한 억양으로 말했다. 노인은 조장의 핸드마이크를 받아 들었고 옆에는 며느리가 백지장이 되어 서 있었다.
노인이 한 사죄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금강호 관광객 여러분! 저 때문에 출발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로 수령님 호칭을 빼먹었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여 수령님을 꼭 붙이고 잘 모시겠습니다.” 박수를 세게 치면 야유한다 할 것 같고, 안치면 사죄가 덜 되었다 할 것 같아 중간크기로 세 번 쳤다. 눈치를 살피던 주위에서도 함께 쳤다.
그 노인은 사죄문 쓰고 벌금 물고 악수한 뒤 `관광증`을 되돌려 받았다. 생애 최악의 날이었을 테지만 금강산 기억만큼은 가장 강렬한 날이었으리,---
버스에 올라타니 사방이 금방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조장은 57회 안내를 했지만 이번처럼 날씨가 좋은 적은 없었노라 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내 사진이 붙고 주소와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관광증을 회수했다. 기분이 허전하고 묘해졌다.
장전호를 타고 보니 글자 그대로 풍운조화미(風雲調和美)가 연출되고 있었다. 흰 구름 띠가 바람 타고 계곡을 흐르나니 봉은 섬이 되고(峰 → 島) 계곡은 운해(雲海) 가 되었다. 이당 김 은호(以當 金 殷鎬)의 금강산도(金剛山圖)인가? 남농 허 건(南濃 許 楗)의 산수화(山水畵)인가? 하는 차에 금방 개어 저 산의 낙조는 또 무슨 조화인가? 넋을 잃은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스님들이 많이 오셔서 부처님 덕분인가 봐요--” 아내의 불심도 나날이 깊어간다. 앞에 계시던 노인도 한마디하신다. “절마들은 이래서 안 되는 기라,---아, 같이 일하고 같이 묵는데 머 할라 쎄 빠지게 일해? 배고프구로” 아침 9시 넘어 출어한 고기잡이배들이 이미 돌아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평생을 농사로 보냈음직한 그 노인의 마음은 농심, 항심, 부동심(農心, 恒心, 不動心)그 자체이다. 저녁 6시 30분에 금강호는 장전항을 빠져 나와 스르르 미끄러졌다. 아마추어 초심자도 시 한 수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천 만년(千 萬年) 단장하고 반 백년 기다렸네
정분 나눈 이틀동안 어심(魚心)과 수의(水意)라
말 없는 그대 두고 떠나려 할 때 돌아서 감추는 눈물
이로써 22개소의 명승구역과 수 백개의 갈래 길 중 1/10도 안 되는 2개소 4갈래 길을 둘러보는 금강산관광을 마쳤다. 능선 넘어 내금강에 있다는 표훈사 건물, 만폭동 계곡(길이 2㎞;- 내금강의 으뜸 경승으로 명경대-明鏡臺, 망군대-望軍臺, 삼불암-三佛庵, 정양사 절터, 그 유명한 보덕굴-寶德菴-법기봉 산허리에 구리기둥-銅柱 하나로 250년을 버티고 있음. 등이 이 계곡 안에 있음), 양 사언의 글씨, 장안사 절터, 해금강의 총석정, 삼일포 등은 마음속에서만 그려보아야 했다.
금강 제일 가람이라는 장안사는 6전(殿), 7각(閣), 4루(樓), 1문(門)이었는데 불타버린 모습을 노래한 노산(鷺山)의 시가 처연하다.
장 안 사 (長 安 寺)
노산 이 은상 (鷺山 李 殷相)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 되어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興亡)이 산중에도 있다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돌아오는 길>
저녁 식사 때 저쪽 건너편에서 노래를 시작한 Joe의 3인조는 tip이 나오는 table에서는 1곡을 완창 했고 tip이 없는 곳에서는 적당히 건너뛰더니 우리 table에 와서 자연스럽게 `You are my sunshine`을 시작했고 마쳤다.(1$ tip) 3일차 마지막 공연은 `품바`였다. 14대 품바라는 청년과 북 치는 젊은이가 엮는 한마당 축제였는데 300여 관객을 즈그 맘대로 울리고 웃긴다.
흔히 각설이 타령으로 알고 있지만 1시간 여 듣고 보니 차원이 전혀 다르다.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품바가 외쳤다.
- “ 인 - 생 - 은 ? ”
300여 관객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 “ 주 - 는 - 것 ! ”
거지는 `巨知(큰 지식인)` 혹은 `거리의 지성인` 이라는 뜻이 그럴 듯 하다. 슈퍼에 들러 약간의 기념품과 평양소주 10병을 사서 배낭에 담았다. 진로가 700원 선인데 2,500원이니 대단히 비싸다.
술친구들의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금강호에서 산 물건은 동해항 출입국 검사대에서 1인당 통과 수량 제한품목에 (술 1병, 담배 10갑)해당되지 않는다. 잠이 안 와 7층 갑판으로 나오는데 나이트 클럽에서 Joe의 3인조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곡목은 패티킴의 `이별`. 92년도 대만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도 이 노래를 했었고 북한에서도 최 진희의 `사랑의 미로`와 함께 애창순위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밤 12시 넘어 갑판으로 나오니 바다가 훤 했다.
북쪽에서는 칠흑 어둠뿐이었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니
좌 일본, 우 한국의 오징어잡이 배가 대낮같이 불 밝힌 채 일하고 있었다. 저 멀리 앞에서 닦아오던 큰 배는 100여m 간격을 두고 12시 40분 경에 교차했는데 금강산 관광이래 최대의 news maker였던 성남 사는 주부 민 영미씨가 타고 있는 풍악호였다.
이곳에서 해남횟집 주인아줌마로부터 들은 얘기,---
-“철따라 조금씩 다르요만 지금철에는 (단오때) 감생이(감성돔)가 조오치라. 근다해도 회깜은 뇡어(농어)가 최고시. 쫀득쫀득헝게 기냥 녹아 불지라”. 18명 계원이 함께 왔는데 가는 길에 이천에 들러 미리 주문한 기념도자기를 찾아 갈 것이라 했다.
날이 바뀌어 아침식사를 낯익은 동해항을 바라보며 한 후 방key와 주민등록증을 교환하고 하선(下船)했다. 이로써 3박4일(금강산 관광만으로는 3박2일)의 여정(旅程)을 마무리지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 앞에서 마산 중앙시장 번영회팀이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여행을 하노라면 긴장이 풀어져 사소한 일로 다투게 마련인데 동해시 개인택시 기사가 한마디 거든다.
---“좋은 팔 엇따두고 말로만 싸우나?”
<결 론>
*. 외국 포함하여 다시 가고 싶은 곳 1위는? --- 금강산 !
*. 긴 장 감 --- 기아 1단 넣기 전부터 소주 한 병 마신 후
가면서 고스톱, 현지에서 반복하고 오면서 뛰고 마시고 하는 것에 익숙해진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벌금 긴장감은 색다른 경험이다.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마음 한 가닥 차이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원효께서도 해골 물 마시고 깨우치신 뒤 `一切唯心造`라 하셨다.
*. 벌 금 --- 선진국인 싱가폴의 혹독한 벌금은(담배꽁초 250$정도) 배울 만 하다해서 TV로 소개하고 북한에서의 벌금은(액수로 볼 때 애교스럽기도 하다 -침 뱉으면 15$정도)웃긴다, 억지다 하는 것은 편협된 생각일 수 있다. 제대로 검증하려면 서울근교의 K산, D산, S산, 중에서 선정하여 금강산처럼 한 5년 해 보고 평가할 일이다.
*. 걱 정 --- 관광객 거의 모두가 걱정을 했다. `통일이 되고 나면 바위에 새겨진 저 많은 글씨들을 과연 어찌할 것인가? 같은 깊이로 주변을 깎아 낼 수도 없고 시멘트 반죽으로 메워 버릴 수도 없고,--` 작년에 특별 케이스로 금강산을 찾았던 유 아무개 교수는 상팔담 코스도 포기한 채 구룡폭포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들을 훑어보던 중 ○ ○○의 글자를 발견하고서 대단한 역사유물울 찾아낸 듯이 감격스러워 했다. 먼 훗날 우리의 자손들이 `아,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인물 때문에(주로 경, 김 수 나 령, 김, 국) 이러한 일도 있었구나` 한다면 그 자체를 그냥 보존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 금강산은 살아있다. 생각한다. 자구책을 위한 방어행동을 한다. --- 가까운 시일 내에 자유왕래가 된다면 환경 오염 경진대회의 금메달 감인 우리 선수들이 바다를 통해 해금강, 외금강을 점령하고 육지로는 기차, 전철, 버스, 택시, 자가용, 경운기, 오토바이, 자전거, 조깅, 도보로 내금강에 진출하고 하늘로는 헬기, 행글러이더, 낙하산, 고공점프 등으로 완전 뒤덮은 후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진을 치고 둘러않아 통닭은 튀기고, 갈비는 찜하고, 삼겹살은 굽고, 라면은 끓이고, 동해광어, 서해우럭, 남해농어로 폭격하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금강산도 3년 내에 끝장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 내가 출발하기 이틀 전에(1999. 6. 15 화)서해교전 사태가 나서 배가 배를 올라타고 침몰하고 병사들이 죽고 다치고 하더니 민 영미씨 사건으로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내 몸 망치려 무차별 달려드는데 가만있을 산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금강산일진데,---
*. 기행상술서를 쓰다 보니 --- 옛 문인들이 자신의 부족한 글 솜씨를 한탄하는 대목들이 의문스러웠다. 나 같은 초보자도 별 어려움 없이 30여page를 쓰고 있는데 왜들 쩔쩔 매었을까? 나는 내 글에서 글자하나, 점 하나 빼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이 세상 최고의 편지는 ` ? ` 하나이고 최고의 답장은 ` ! ` 표 하나였다고 한다. 줄인 수 없는 것은 글이 아니다.
줄이지 못함은 실력 부족 탓이다. 무지무지 두꺼운 책의 내용을 줄이고 줄여 1줄로 요약한다면 그 어떤 책이 라도 `공짜는 없다`로 모아진다고 한다. 짧게 쓰고 줄여 쓸 수 있음이 진정한 筆力이다.
<남. 북한 간에 달리 쓰는 글자> --- (앞의 단어가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며 평양출판사의 `천하절승 금강산` 책에서 인용했음. 북한에서는 한자; - 漢字를 거의 안 쓰고 있음)
*. 참 고①---(남.북한간에 뜻은 통하지만 표현은 달리 하는 것)
인민(국민), 닭알(달걀), 안해(아내). 특이묘묘(기기묘묘), 칠색영롱(오색영롱), 자개돌(자갈돌), 몽퉁하고(뭉툭), 호랑이가 따웅(어흥), 탐승객(관광객)
*. 참 고②---(두음법칙 적용 안 하는 것)
록음, 륭기운동, 려행가, 력사, 량곡, 리용, 례배, 룡왕, 련인, 녀성, 련상, 례의, 련달아, 략탈, 락타, 랑자, 량반, 립석-(녹음, 융기운동, 역사, 이용, 낭자, 낙타,---)
*. 참 고③---(뜻은 통하지만 생소한 단어)
풍화삭박작용(풍화마모작용), 글발(글귀), 알낳이 철(산란기), 각이하게(상이하게), 임진조국전쟁(임진왜란), 일 없다(괜찮다, 상관없다, 걱정마라), 쓰거운(쓰디쓴), 물형(형상)
*. 참 고④--- (획이나 받침이 조금 다른 단어)
구렝이(구렁이), 거부기(거북이), 다우쳐(다그쳐), 바줄(밧줄), 나무군(나무꾼), 뽀트(보트), 아저씨벌(아저씨뻘), 이발소리(이빨소리), 우에(위에), 초불(촛불), 홰불(횃불), 좌우지하다(좌지우지하다), 한 쪼각(한 조각), 웨쳤다(외쳤다), 덩굴(덩쿨), 드레박(두레박)
*. 참 고⑤--- (생소한 낱말)
인차(곧, 금방, 즉시, 이내), 강의한 성품(불의와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절개와 지조를 지킨 성품), 과시(과연), 당금(금방), 돌확(돌구덩이), 허거픈(허탈한), 신들메(신발끈), 간신히 톺아올라(기어올라), 가뭇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흔적없이)
< 보 너 스 >
매월 받는 월급보다 어쩌다 받는 보너스가 더 신난다.
삼겹살에 소주로 1차, 단란주점 양주로 2차 했어도 마음에 맞는 친구와 생맥주 마시는 3차가 더 정겹다. 오는 길에 수년 전부터 가고자 했던 부석사를 찾았다. (그 중간에 삼척 추암에 들렸다. TV에서 애국가 나올 때 등장하는 동해바다 촛대바위다.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를 정밀 재고조사 한다면 분명히 1개가 부족할 것이다. 삼척 추암 해수욕장에 1개가 있으므로,--- 동해에서 부석사 가는 길은 삼척에서 태백으로 들어가 봉화를 거치는게 빠르지만 아예 울진까지 내려가(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고 성류굴도 가깝다) 불영계곡과 불영사를 지나 봉화를 거쳤다. 부처님은 재재처처(在在處處)하시다고 하지만 부석사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주차장에서 일주문보고 오르는 황토길이 참 좋다. 양편의 사과나무가 힘차다.(느티나무 뽑는 장사는 있어도 사과나무 뽑는 장사는 없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니 OO나무의 꽃향기가 찌인하다. 안양루 아래 제초 작업한 잔디밭에서는 더 찌인한 풀 내음이 반긴다. 뒤편 너럭바위에 부석(浮石)이라 새겨져 있다. 붕 떠있는 돌이라는 뜻인데 노끈을 양쪽에서 잡고 밀어 넣으면 한참을 들어간다고 한다.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국보18호 무량수전이 있다. (한국 최고건물은 국보 15호 봉정사 극락전이라는 학설도 있음). 부석사는 태백과 소백사이 (이른바 한국의 10대 지지중 하나인 양백간;-兩白間) 봉황산(鳳凰山)에 위치하고 있다. 676년 의상조사가 창건(신라 문무왕 16년) 하였는데 국보 17호-석등, 국보 18호-무량수전, 국보 19호-조사당, 국보 45호-소조여래좌상, 국보 46호-조사당벽화6면과 당간지주, 3층석탑 등 수 많은 보물과 문화유적이 있다. 무량수전 건물은 남향인데 본존불인 소조여래좌상은 동향이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이다. 소조불(塑造佛)이라 함은 흙으로 빚어 도금한 불상인데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 둘러보고만 올 것이 아니라
왜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아니고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 했는지 알아보자.
왜 동쪽을 향해 모로 않아 계신지 알아보자.
왜 높은 단에 앉지 않으시고 낮으막히 앉아 계신지 알아보자.
왜 좌우 협시보살 없이 혼자 앉아 계신지 알아보자.
안양루에서 멀리 보면 모두가 눈 높이 아래로 보인다.
삼천대천 세계를 걸림 없이 본다 하는 종교적 해석보다는
무량수전 안방 삼고 안양루 사랑채 하여 태백연봉 정원으로 가꾸는 신라인의 기개가 부럽다. 그 힘이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김삿갓이 안양루에서 자탄(自歎)하며 지은 시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네
인간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작년에 지리산 피아골의 연곡사에 들렀을 때 가슴 찌르르하게 안겨오던 국보 53호 동부도와 54호 북부도를 본 후에 나의 여행테마는 석탑에서 부도로 바뀌었는데 오늘 부석사에서는 일부러 동.서부도 밭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맛있는 사탕은 천천히 아껴 먹어야지 우당탕 깨물어 먹을 일이 아니기에,---
부석사는 소백산과 가까워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그러나 태백산 줄기에 속하는 봉황산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굳이 태백산맥 봉황산 부석사라 불리우기를 원한다. 돌아오는 길의 코스는 정겹고 아름답다. 희방사 뒤편으로 펼쳐지는 소백산 연봉능선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꼭 만만한 엄마가슴 같다. 남쪽의 태백산(천제단:1,567m)이나 소백산(비로봉:1,439m)이 금강산보다(1,639m)높이에서 별 차이가 없음에도 그저 뒷동산처럼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넉넉한 육덕(肉德)을 가진 반면 북쪽의 금강산이나 설악산(대청봉:1,708m)은 날카롭고 깐깐한게
마치 유격대 조교를 연상케 한다. 그 아래 사는 사람도 산과 지형을 닮아 서로의 살아가는 모양새가 판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 음식은 생각보다 맛있고 깨끗하다. 북한 술도 괜찮다.
특유의 약초 내음과 단맛이 강하고 병마개가 헛돌고 하는 정도의 문제점은 있지만 아바이 순대나 담백한 백 김치, 시원한 물냉면 등은 어디에 내놔도 사랑 받을 만 하다. 그 음식을 북한에서 먹어보지 못하고 이천 소방서 아래 김 용의 `모란각`에서 맛본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金 剛 山 에 서
湖 菴 尹 淸
운금포(雲琴暴) 비단옷은 그대 입으오
연주담(蓮珠潭) 옥로주(玉露酒) 내 마시리
무심한 서산낙조(西山落照) 뉘 잡아 줄꺼나
(1999. 6. 18. 금. 구룡폭포 계곡에서)
좌우로 창 든 병사 호위자세 늠름하고
풍운선녀(風雲仙女) 눈앞에 너울너울 춤출 때
금강취흥(金剛醉興) 전율(戰慄)되어 도도하게 서린다
(1999. 6. 19 토. 만물상 천선대에서)
천 만년(千 萬年) 단장하고 반 백년 기다렸네
정분 나눈 이틀동안 어심(魚心)과 수의(水意)라
말없는 그대 두고 떠나려할 때 돌아서 감추는 눈물
(1999. 6. 19. 토. 금강산의 장전항을 떠나며)
<명 시조 감상 ; 名 時調 感想>
장 안 사 (長 安 寺)
노 산 이 은 상 (鷺 山 李 殷 相)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 되어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하니 더욱 비감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