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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국 인 사 위 보 기
<2006. 6. 11. 일>
湖 菴 尹 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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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딸이 결혼을 했다.
(2006. 6. 11. 일)
사위는 인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산 딥’이다.
전 과정에서 아빠의 위상이 어디쯤이었는지 둘러볼 틈도 없이 그냥 큰 물결에 휩쓸려 버린 느낌이다.
이천시민 20만 명중 나와 비슷한 경우를 겪은 사람 몇이나 될까하여 체험담을 쓰고 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학술적이거나 체계적인 기행문을 쓰는 것도 아니다. 순간순간 겪고 느낀 일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가급적 담담하게 쓰고자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화화(웃기게) 될까봐 지레 걱정이다.
이 세상에 지금도 살아있는 사돈댁 가문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고 약 20일간 미국 서부의 민가 집 2채,
호텔 2곳만을 둘러본 채 미국 체험담도 나올테니 말이다.
아주 중요한 부분 이외에는 영어 표기를 안 할 생각이다.
스펠링 한자라도 틀리게 쓰면 더욱 망신일 테니까,---
숫자(금액, 거리, 높이, 크기 등등)개념도 정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혹시 틀릴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인도 ; India>
인구는 세계 2위로 10억이 넘었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나 되는 큰 나라이다.
헌법에 규정되어있는 언어가 18개, 문학어 22개, 통용언어 325개이며 여기서 파생된 방언이나 모어는 1,652개라 한다.
영어는 상류층의 약 3 - 5%만이 사용하고 있다.
종교적, 낙관적이며 여유, 정, 말, 가족애, 당당함이 많다.
<등장인물>
1. 아빠 ; 필자 ; 윤 청 - 1952년 이천시 출생.
평범한 소시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여러 가지 체험을 했슴.
2. 엄마 ; 임 현빈 - 1955년 이천시 출생.
전형적인 가정주부. 약간의 사업경험이 있으나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 해주고 집안 가꾸는 일을
더 좋아함. 남매 키우면서 큰 고생 안 했다는 소리를 친구들로부터 듣지만 어찌 고생이 없었으리,---
특히 이번에 사랑하는 딸을 먼 미국에서 외국인과 결혼 시켰으니 그 과정의 혼란이나 아픔은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리라
3. 딸 ; 윤 보라 - 1980년 포항시 출생.
공부를 잘 한다는 평이지만 영어만 그러할 뿐 수재형은 아니다. 이천남, 양정여중, 거창고, 한양대를 졸업하고 미국 동부 보스턴 시외에 있는 메사추세추 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공은 기아 영양학인데 인턴과 박사과정 공부를 더해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하겠다고 한다.
모든 일에 두려움이 없어 미국유학도 혼자 힘으로 개척하여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보조받는 장학생으로 다녔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부모에게 큰 효도를 한 셈이며 인도 유학 때 알게 된 ‘산 딥’과 오랜 교제 끝에 결혼했다.
4. 아들 ; 윤 주훈 - 1984년 이천시 출생.
이천고 졸업, 성균관대 재학 중 사병으로 공군에 입대,
11월 제대예정. 엄마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남성이지만 이 글에서의 역할은 딱 한가지이다.
5. 사위 ; 산 딥 - 1977년 인도 뭄바이 출생.
우리에겐 봄베이로 잘 알려진 뭄바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제약회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고 있다. 비교적 착하고 검소하며 한국음식을
잘 먹지만 아직까지 된장찌개만은 극복하지 못했다. 참, 얼굴은 한국 아빠보다 더 흰 편임.
6. 인도아빠 ; 이름-프리탐. 성-이스라니.
나보다 몇 년 연상인 사돈영감이시다.
머리칼과 화내는 경우가 거의 없고 매사에 ‘으 흠’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며느리인 보라를 꼭 ‘달 링’이라 부르는데 인도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자식들이 있는 미국에서 직장생활하며 부인과 살고 있다.
7. 인도엄마 ; 라시미 - 자녀교육에 관한 한 한국엄마를
능가한다. 나와 동갑이신데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로,
딸은 의사로 키워놓고 3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직장생활하며 남편과 살고 있다.
결혼 전에는 ‘망타니’의 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라시미 이스라니’이다. 미국식이다.
8. 인도딸 ; 마니샤 - 1979년 인도 뭄바이 출생.
한 마디로 흠 하나 없는 완전무결 여성이다.
예쁘고 늘씬하고 착하고 잘 웃고 힘 좋고, 일 운전 춤 노래 다 잘한다. 그 중 공부에 관한 한은 거의 독보적 이다. 인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L.A에서 소아과 레지던트로 활동 중인데 아직 미혼.
9. 파나마 삼촌 ; 슈레쉬 망타니 - 1959년 인도 출생.
인도엄마 라시미의 많은 형제자매 중 유일한 남동생.
거의 재벌급 사업가로 21년을 인도에서 살았고 26년 째 파나마에서 살고 있다. 사돈지간에 친구하기로 했으며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10. 카리슈마 ; 파나마 삼촌의 부인. 2남1녀를 두었으며 집안의 대소사를 거의 다 챙긴다. 소박하고 검소함. 결혼식에 쓸 꽃이 시들까봐 호텔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내가 우연히 목격했다. 슈레쉬와 결혼 후에
사업이 번창했다며 집안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11. 수아누 ; 파나마 삼촌의 막내딸. 12살짜리 초등학생인데
놀랍게도 영어, 스페인어, 힌디어가 능통하다.
아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오빠 둘이 있다. (라비쉬-18살, 스몰 프라샨-15살)
12. 딥디 ; 산딥 이모의 딸. 서구적으로 생긴 대단한 미인.
파나마의 슈레쉬 외삼촌댁 부근에 사는데 춤, 노래와 핸드페인팅이(신부 손, 발에 문양 새겨 그리는 것) 특기이며 아직 미혼이다.
13. 빅 프라샨 ; 산딥 큰 이모의 외아들. 산딥과 동갑인데 총각이다. 엄마는 인도에 있으며 혼자 L.A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람이 착해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파나마 삼촌의 작은 아들과 이름이 같아 앞에 빅과 스몰을 붙여 구분한다.
14. 비나엄 ; 산딥의 막내이모. 즉 파나마삼촌 슈레쉬의 유일한 여동생. 뉴욕에서 뷰티 샵(미용실)을 운영하는 호쾌한 여성으로 춤, 노래를 잘 하며 체격도 당당하다. 조카인 산딥 결혼에 참석한 친척 중 가장 오래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른 사람이다.
15. 와쉬쉬 ; 산딥의 대학친구. 흔히 말하는 하숙방 동기다. 키가 크고 핸섬하며 얼마 전 고향인 인도에 가서
전통 혼례를 치렀다. 부모님도 함께 오셨는데 인도에서 자물쇠, 열쇠를 거의 독점 생산하는 대단한 부자라는데 엄마의 체격이 엄청나다.
16. 차이 샤오지에(蔡 小姐) ; 중국 광쩌우 출신으로 6년째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컴퓨터 기술자인데 산딥과 마니샤의 공동친구이다. 눈이 크고 다부지게 생긴 그야말로 똑 소리 나는 아가씨.
17. 카펠 ; 인도 혈통의 미국인. 산딥의 회사친구로
IVY 리그 출신이며 아주 핸섬한데 총각이다.
18. 하리스 ; 산딥 친구로 MBA출신. 키가 크고 핸섬하며 우리 집 가족관계에 많은 관심이 있다.
19. 영미 박사 ; 보라의 한양대 친구인데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 중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식품영양학 석사.
20. 기타 ; 이름을 기억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출국 전>
비행기 표는 인터넷을 통해 미리 사 놓았다.
비행기만 대한항공일 뿐 티켓은 미국의 델타라인이다. 왕복으로 사면 훨씬 저렴하다.
대한항공은 1인당 30kg 화물 2개와 기내 반입용 가방 1개가 무료인데 델타항공은 20kg이므로 주의해야한다.
웬만하면 봐주지만 깐깐한 사람에게 걸리면 애써 꾸린 짐을 풀어 몇 가지는 빼내던지 추가요금을 내던지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딸 결혼에 가는 길이므로 이런저런 혼수를 장만해야겠지만 T.V 냉장고는 전압이 달라서 못 쓰고 (한국;220V, 60HZ. 미국;110V, 60HZ) 장롱 침대는 무겁고 부피 크고 해서 상징적으로 침대카바, 얇은 이불, 은수저 정도만 샀다. 그렇지만 선물용 접는 부채 120개, 보라 옷, 내 옷,
아내 옷, 마른반찬, 팩소주 1Box 40개, 등등으로 이민용
큰 가방 2개, 큰 박스 2개, 기내 반입용 작은 가방 2개, 손가방 2개가 꽉 찼다.
<인천 국제공항>
6월 6일은 공휴일이라 차 막히는 것을 우려하여 일찍 나섰다. 처남이 큰 차로 태워다 주었다. 짐이 무겁고 크다 하여 문제 삼는 직원에게 떼쓰고 사정하여 통과시켰다.
출국신고서를 써야한다. 여행사 통해 여러 번 외국 다녀 본 사람도 안 써본 사람 많으리라,--- 당황하지 말고 견본을 봐가면서 침착하게 작성한 후 여권 사이에 끼워둔다.
뜻 밖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공항터미널 4층에 있는 S은행 VIP 휴게실에 갔다.
커피, 음료, 과자, 인터넷, 신문, 편안한 쇼파가 무료이다. 이천 지점장의 사전 배려인데 뜻밖의 경험이다.
큰 형님과 형수님이 배웅 차 나오셨다.
상당히 까다로운 출국검사를 받고 보세구역으로 들어섰다. 작년 봄 (2005.4) 그리스. 터키 여행 때 바로 이 자리에서 맥가이버 칼 적발되어 처분하느라 난리 쳤던 일이 생각났다. <기 내>
오후 2시 3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2+5+2의(좌석배열) 중대형 기종이다. 애당초 인도에서 출발한 비행기라 좌석 곳곳에 인도인이 많았다. 10시간 비행 중에 2번의 식사를 주는데 처음엔 비빔밥, 나중엔 닭고기 요리를 먹었다.
기내에서 나눠주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한다. 공항에서의 출국신고서와 반대개념인데 영문으로 써야한다. 면세기준은 미국인, 캐나다인은 $800이고 외국인은 $100(약 10만원) 이다. 믿거나 말거나 신고서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 있다.
나는 식품에 관해서만 ‘마른 반찬 있슴’ 이라 정확히 쓰고 나머지는 모두 ‘아니요’칸에 V 표를 했다.
이 글 보시는 분들께 필자가 책임 질 일은 아닙니다. 미국에는 육류, 동물, 식물, 김치, 흙 등이 절대로 반입되지 않으므로 주의하세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탁송한 짐을 찾아 가트에 싣고 입국신고대로 갔다. 자국민용의 ‘시티즌’칸은 그냥 지나치는 느낌이고 외국인용의 ‘비지터’칸은 와글와글 댄다. 이유는 짐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백인여성 관리 앞에 섰다. 이제부터는 영어로의 대화이다. ‘설마’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매워 한국 김치 마니’ 해도 우리는 다 알아 들을 것이다.
- 미국은 처음인가?
- 아니, 두 번째다. 12년 전인 1994년에 왔었고
아내는 작년에 다녀갔다.
- 왜 왔나?
- 관광하러 왔다.
- $ 10,000(약 1천만 원) 이상 가지고 있나?
- 아니, 약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얼마나 머무를 예정인가?
- 약 3주일 있을 생각이다.
- 좋은 여행되길 바란다.
- 땡 큐 , 굿 럭(행운을)
했는데 끝난 게 아니다. 양손 검지로 지문 찍고 디카로 사진 찍고 한 후 통과했다. 기분이 영 찜찜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물 검사대가 기다리고 있다. X레이 검사에 걸렸는지 세관직원이 팩소주 한 개를 꺼내들고 쥬스냐고 묻는다.
순간 망설였다. 혹시 술인 것을 알면서도 물어 보는 게 아닐까? 솔직히 고백했다.
- 아니요 한국의 술인데 미국 친구들에게 선물 하려고 가져왔다. 원한다면 3개 정도 줄 수 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휴 우 하며 벽의 시계를 보는데 어렵쇼?---
6월 6일 오후 1시이다. 10시간이나 날아왔는데도 시간이 뒤로 가 있다. 날짜변경선 통과와 시차 때문에 생긴 엄청난 이득이지만 귀국 시에 모두 물어내야한다.
한국이 6/8. 아침 8시라면
미국 서부는 6/7. 오후 4시가 된다. 8시간 차이 같지만 날짜까지 계산하면 16시간 차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탁 나서니 보라, 산딥이 보이고 느낌으로 마니샤가 분명한 아가씨도 보인다. 무척이나 반갑다. 보라는 1년, 산딥은 3년 만에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마 미,--- 파 파’ 하며 달려들어 안기고 힘차게 포옹하는 저 예쁜 처녀는 생전 처음 보는 사돈댁 규수인 마니샤이다. 당연히 짐이 많을 것 같아 승용차가 2대 나왔노라 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미국적 풍경이 펼쳐진다. 넉넉하고 낮으막한 건물들, 누런색 황토 풍경에 넓게 보이는 대지 등등,---
아파트인지 휴양지의 콘도인지 분간이 어려운 보라네 집에 (산 부르노 시 셀터 클릭 아파트) 일단 짐을 풀어놓고 약간의 휴식 후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메뉴 선택권을 마니샤에게 주었더니 서슴없이 ‘스 시’ 한다. 일본식 초밥인데 한국에서 먹는 생선초밥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화 된 초밥이라고 할까?
아무튼 한국의 된장찌개 못 먹는 미국인은 많지만 일본음식은 미국에서도 고급요리가 되었다. 전자제품, 자동차에 이어 음식까지도 미국인을 사로잡은 일본이다.
<6월 7일. 수. 미국시간>
산딥 부모님 댁에 인사하러 가는 차 안에서 내가 물었다.
-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 (산 딥) ----
- 넌 센스 퀴즈인데 힌트는 엄마 얼굴이다
- 눈꺼풀 요
깜빡 조는 아내가 모델이 된 것이다. 고속도로와 시가지를 30여분 달린 후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3층 건물 아파트의 2층에 사시는데 1층이 주차장이므로 주차걱정이 없다. 초로의 인상 좋은 분이 큰 웃음으로 맞아 주신다.
- 나 마 쓰 데 (힌디어로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말에 깜짝 놀란다. 부인인 라시미와 아내는 일단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다. 아내는 작년에 이 댁에서 보라와 함께 묶은 적이 있다. 미국 소시민의 소박한 규모라고 보면
알맞은 거실에서 사돈지간에 정겨운 얘기를 나누었다. 의사소통은 거의 안 되었지만 서로 간 좋은 얘기를 나눈 것만은 확실하다. 조니워커 한 병을 꺼내 놓으며 잠시 후 파나마 삼촌이 오니까 조금만 마시며 기다리라 한다.
한참이 지난 뒤 그 유명한 파나마 삼촌이 부인, 딸과 함께 왔다. 그런데 세 식구 모두가 구두를 신은 채 카펫이 깔린 거실, 주방까지 쑥 들어선다. 놀라운 일이다.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파나마에서 미국까지 8시간을 비행기 타고 왔다. 둘이 한 병을 쉽게 비웠다.
명함도 주고받으며 아예 친구 하기로 했다. 내일은 데낄라 잔에 따라 스트레이트로 마시자는 그의 제안에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화답해 주었다. 밤이 늦어 헤어지는데 거실에서 포옹하고 10분정도 인사, 현관에서 다시 반복, 주차장에서 3번째 또 하니 인사만도 족히 30분은 걸린다.
<6월 8일. 목. D-3일>
산딥네 전 가족이 보라네로 모였다. 프리탐, 라시미, 마니샤, 슈레쉬, 카리슈마, 수아누, 비나엄, 딥디, 우리 쪽 4식구까지 합하니 도합 12명이다. 나와 파나마 앵클 슈레쉬는 창가에 따로 앉아 그가 들고 온 18년생 위스키를 땄다. 어제 밤의 약속대로 스몰 컵에(한국에서 사간 민속놀이 그림이 그려진 소주잔) 가득 부어 각자의 구호를 붙인 후 (위하여, 치어스) 원 샷!! 했다. 5번 쯤 하고나니 그가 슬며시 물러나 앉는다. 팩 소주 3개를 선물로 주면서 혹시 파나마에 한국인 친구가 있거든 이 팩 소주를 함께 마시라 했다. 신기한 눈길로 쳐다보던 그가 삼성 컴퍼니, L.G 컴퍼니 친구들이 많다며 소중히 챙긴다. 저녁식사를 위해 차 3대가 움직였다.
30분 이상 달려 교외의 한적한 인도 전문식당에 갔다. 결혼식 전야제 파티와 결혼식 날 음식을 전담할 식당이라고 한다. 나는 음식 잘 가리지 않지만(보신탕이나 징그럽게 생긴 닭발 같은 것은 못 먹음) 인도요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초록색 풀잎은 친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보라조차도) 그 잎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 늦은 봄 군내 나는 총각김치나 청국찌개를 끓여내면 아마 그들은 도망 가버릴 것이다. 인도음식 맛있다. 종류도 많고 양도 많고 걸판지다.
먹기도 많이 먹는다. 그런데 술이 안 나온다. 나와 슈레쉬가 불만이다. 식사 후 그 인원 모두가 이번엔 산딥 부모님 댁으로 갔다. 빅 프라샨, 차이 샤오지에, 또 다른 친구들도 나중에 합류했다. 술판, 춤판, 노래판이 새벽 2시 넘도록 이어진다. 나의 짧은 영어는 2중 통역을 거쳐 슈레쉬에게 전달된다. 예전에는 일본이 한국보다 많이 앞서 있었지만 지금은 비슷하다. 앞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 설 것이다. 라고 말 하려는데 슈레쉬가 자신 있다는 듯이 먼저 말 한다.
그 대답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 이 나 !!!”
미국에서의 농담 중 한 가지 ; 천지창조는 하느님이 아니고 중국인이 했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제가 미 대륙을 뒤 덮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나마에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미인을 얻었다는 소리에 나도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니 막내이모 비나엄이 금방 주방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일러바친다. 유창한 영어와 유창한 한국어가 의사소통 안 된 게 천만 다행이다.
<6월 9일. 금. D-2일>
아침 일찍 월드 컵 축구경기가 방영된다.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첫 게임에서 이겼고 한국과 토고전은6월 13일. 화. 아침 6시부터 중계된다.
한국인의 국제마켓에서는 대형화면에 한국어로 중계한다고 벌써부터 야단이다.
낮 12시 넘어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먹고 종일 휴식하다가 저녁은 마켓에서 사온 중국식으로 했다.
3가지 요리가 한 도시락에 들었는데 5,000원이다.
도시락 2개로 4명이 먹었는데 양이 넉넉하다.
밤에 산딥 부모님네로 또 갔다.
산딥을 가운데에 앉혀놓고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얼굴에 오일을 바르고 흰색 파우더도 칠하고 상의를 마구 찢는다. 부정을 막고 새 인생을 살라는 뜻이라는데 우리네 옛날 결혼식 때 재를 뿌려대고 고교 졸업 때 밀가루 뿌리고
옷 찢고 하는 것과 너무 흡사했다. 어제보다 훨씬 많은
20여 명이 밤11시에 식사하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춤추고 노래하고 술 마시다 밤 2시에 헤어지는데 마찬가지로 거실, 현관, 주차장의 3차례 인사를 나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 제일 늦게 나서느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안사돈인 라시미와 포옹하여 인사하고 새로운 딸 하기로 한
마니샤와도 포옹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보라네 집에 오니 역시 새벽 3시.
*. 파나마 삼촌 슈fp쉬 ; 작으마한 키에 40인치 이상 되는 허리를 가진 그는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약간 거만한 듯 하지만 소박한 차림새인데 엄청난 갑부라 한다.
양주에 물과 얼음, 소다수를 섞어 연신 마시던 그는 스트레이트 잔으로 마시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유창한 영어로(나 혼자만의 유창) ‘그대는 복싱 챔피언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 닮았다’고 하니 깜짝 놀라했다. 옆 사람들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유 룩스 라이커 웰터 웨잇 복싱 월드 챔피언 스톤 펀쳐 로베르토 두란’. 로베르토 두란은 (1951년 파나마 출생. 104승 16패 )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라이트급을 거쳐 웰터급에서 미국의 슈거레이 레너드나 토머스 헌스와 챔피언을 주고받으며 파나마의 영웅이 된 인물이다. 그가 1980년 6월 20일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15회 판정으로 레너드를 이기고 챔피언이 되어 귀국할 때 파나마에선 임시휴일로 정하고 대통령 전용기까지 보낸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 느릿느릿 ; 인도 사람들은 느긋하다. 매사 서두르는 법이 없고 천천히 한다. 마니샤는 호주가는 비행기를 놓쳐 다른 항공사 표 사느라 200만원이나 썼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했다고 한다.
*. 오버 액션 ; 오버 액션으로 비쳐지는 일 들이 너무 많다. 말끝마다 ‘오 마이 갓’, ‘원더풀’, ‘와 우’한다.
그 감탄사에 눌려 본뜻 전달은 언제하나 싶다.
*. 핸드 페인팅 ;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보라가 오늘 손과 발에 인도 특유의 문양을 그렸다. 엄청나게 복잡하고 화려한 그림이다. 2-3일간 물을 조심하면 10여일 간다고 한다. 아내에게도 딥디가 그려 주었다.
<6월 10일. 토. D-1일>
결혼식 전야제 파티를 ‘리셉션’이라 하고 결혼식 본 행사는 ‘세레모니’라 한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귀가하여 잠깐 눈 좀 붙인 후 차에다 바리바리 꾸려 싣고 (금빛 찬란한 옷 십여 벌, 양주, 와인, 소주, 맥주, 물, 각종 행사용 물품 등등)
산 마테오 브리지를 건너 1시간 거리에 있는 레버모어시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있는 한적한 도시이다.
‘아메리 호스트 인’ 호텔에 투숙했다.
방이 여럿인데 가족별로 한방씩 들었다. 넓고 깨끗하다.
3층 건물인데도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있고 벽이나 기둥의
각 진 모서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ㄱ자 앵글 보호대가 붙어있다. 보기에 좋지는 않지만 실용성은 크다고 하겠다. 밖으로 나왔다. 미국은 어디에서나 길가 경계석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으면 구급차나 소방차 이외 절대 주차 불가이다.
멀리 보이는 나무 없는 산등성이엔 커다란 바람개비가
수십 대 오른 쪽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풍력발전기 일 텐데 그중 군데군데 있는 훨씬 더 큰 바람개비는 왼쪽으로 돌고 있었다.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람 때문이라는데 애당초부터 질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음이리라,---
저녁 6시부터 4시간 정도 리셉션이 펼쳐진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춤추는 일이다. 우선 차 3대에 많은 식구가 도착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아지고 있다.
사회, 음악, 비디오를 담당할 3팀과 보라의 신부화장 담당 미용사도 왔다. 인도에서라면 최소한 1주일은 잔치를 하겠지만 미국이라서 소박하게 하루만 한단다.
만나는 사람마다 10년 된 친정엄마 만나듯이 “오 마이 갓” 하며 포옹하고 뽀뽀하고 야단이다. 어젯밤에 헤어졌으니 불과 10여 시간 만에 만났음에도,---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보라의 대학친구인 영미박사와 그의 친구도 왔다.
80명이 참석예정이라 8인용 원탁이 10개 준비되어 있다.
영화에서 보던 가슴이 깊게 파인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사전에 보낸 초청장에 따라 참석여부를 미리 밝히는 게 상식이다.
1시간 이상을 특별한 격식없이 즐기다가 8시가 되니 마니샤의 오프닝멘트(개회사)에 따라 파티가 시작되었다.
딥디와 수아누가 인도 전통 춤을 추었다. 결혼 적령기의 처녀와 초등학생의 2인조인데 동작이 거의 틀리지 않고 멋있는 하모니를 이루었다.
이어 마니샤가 혼자 1인극을 하는데 시댁 식구들이 “보 라” 하고 부르면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과 동작을 취하면서 “녜!!”하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얌전하게하고 신랑이 부르니 두 팔을 걷어붙이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장면에선 모두가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다음은 마니샤가 1달간 준비했다는 남녀 한 쌍의 2인극이다. 산딥과 보라가 인도의 사원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함께 버스타고 오는 일, 메일 교환, 고민, 갈등,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난 일, 인천 공항을 통해 한국에 왔던 일, 부모님으로부터 허락 받는 일, 유학 간 일, 결혼까지 하게 된 전 과정을 상황에 맞는 짧은 노래 소절과 춤으로 연출했다. 상대 남자 역은 산딥의 친구인 의사가 했고 비나엄과 차이 샤오지에는 무대 뒤에서 각종 상황판을 바꿔가며 들고 있었다(사원, 버스, 코리아, 캘리포니아, 이메일, 공항 등의 글자가 써진 큰 종이).
이어 특별한 격식 없이 가족끼리, 그룹끼리, 사진 찍고 서로 간 인사 나누고 하다가 춤으로 이어졌다. 인도음악은 리듬이 빠르고 격렬하지만 멜로디가 대체로 단순하여 몸동작 취하기가 쉬웠다.
나와 아내는 틈틈이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했다.
산딥 회사의 사장, 사장 부인, 직원들, 프리탐 쪽 가족들, 라시미 쪽 가족들, 카필, 하리스, 와시시와 그의 부인, 부모 등등 한결같이 크게 웃어주며 우리 가족사항을 궁금해 했다. 반복해 대답하다보니 발음도 더 나아지는 듯하다.
그중 두려움, 호기심, 부러움이 혼합된 눈길로 인사 받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미 박사와 그의 친구였다.
누구 손엔가 붙들려 나가 춤을 추게 되었다. 함성이 터지고 모두가 따라하며 좋아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반짝반짝 작은 별’ 하는 무용동작을 했고 아내는 빨래 주물러 빠는 손동작을 다림질 하듯 좌우로 수평이동 하는 이른바 물결무늬 춤 이었다. (아무 관계없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이 생각났다.) 예약된 시간보다 1시간 이상 길어졌으나 술 취해 추태 부리는 사람 아무도 없었고 파나마 삼촌 슈레쉬 만이 나를 보면 위스키 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요온 초온 위스키?” 하며 건배 제의를 한다. 마다할 내가 아니지만 때가 때인지라 자중하며 화잇와인, 레드와인으로 번갈아 가며 대작했다.
마지막 순서는 프리탐과 라시미의 결혼 30주년 기념 케익 절단과 축하노래가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뒷정리는(장식물, 남은 술 등) 빅 프라샨, 카리스마, 딥디 외 다른 많은 친구들이 직접했다.
<6월 11일. 일. D-0일>
세레모니라 불리는 결혼식 날이다.
식장입구의 테이블에는 한국과 인도의 작은 국기가 컵에 꽂혀있었고 한국에서 사간 장식용 부채도 진열되어 있었다.
방명록에 서명한 후 기념으로 한개 씩 선물하는 것인데 모두가 신기해하며 좋아한다.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큰 식장이지만 오늘은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전면의 단상에는 결혼식 장치설비가 세워지고 15개의 원탁에는 종이로 된 커다란 식탁보와 그릇, 컵, 수저, 촛불 등이 진열되었다. 거의 다 1회용이다.
수저와 스푼도 플라스틱에 스테인레스 도금한 것이다.
식사 후에는 테이블보를 뚜루루 말아 커다란 휴지통에 넣으면 끝이다. 실내 뒤편에는 인도음식과 음료가 차려지는데 사원이라서 술은 없다. 식장 건너편의 인도인 전용 힌디사원은 모두 신발을 벗어야 하지만 이곳은 외국인, 미국인이 많아 그냥 신고 다니는 편이다.
식장의 장식이 대단히 화려하다. 뭐랄까 암튼 대단히 대단히 화려하다.
한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 일찍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월드컵 축구를 보고 있는데 라시미가 들어와서 아내의 맨살의 배를 어루만지며
“배 고픈가보다. 배가 쑥 들어갔네”한다.
두 사람은 사돈지간이다.
이후 나와 마니샤는 먼저 사원으로 와서 장식과 진열 등을 도와주는 중이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나도 인도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두들 멋있다고 좋아한다.
아내 옷은 더 멋있다. (남자 옷 ; 셸와니-sherwani,
여자 옷 ; 사리-sari)
어젯밤에는 춤도 참 잘 추었다고한다. 아내의 물결무늬 춤이 인상 깊었나보다. 음력 보름은 인도에서도 대 길일이라는데 오늘이 보름에 일요일이다.
드디어 주례가 등장하여 식이 시작되었다.
양가부모, 신랑, 주례는 단상위에 자리 잡아 앉았고 신부는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알아듣지 못하는 주문을 외고 화로에 불을 피우는 등 여러 가지 절차 후에 신부가 입장했다. 커튼으로 앞을 가린 채 신랑과 마주서서 처음 인사하고, 서로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주고,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코코넛 야자를 나누어 갖고, 이마에 붉은 점 찍어주고, 꽃잎 쌀 곡식 향 등을 불속에 넣고 뿌리고 커다란 천으로 서로의 목을 묶어 하나임을 상징하고 아내가 보라의 손목에 금팔찌, 산딥과 보라에게 금반지를 끼워주어 대강은 끝났다.
산딥의 4촌 여동생 둘이(뉴욕에 사는 막내 삼촌의 딸 - 모두가 코넬대 출신이다) 사회를 보았고 영미박사는 내 뒤에 앉아 영문으로 된 식순을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에 그 삼촌이 “레디스 앤 제늘먼” 하며 내빈께 인사말을 했다.
어디 쯤 인가에서 내 소개도 있을 것 같아 주머니 속의 커닝 페이퍼를 찾았다. 아뿔사!!! 양복에 넣어둔 채 인도 옷으로 갈아입느라 빠뜨렸다. 당연히도 코리아 어쩌고 하더니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내와 손을 잡고 단상 앞으로 나가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 “나 마 쓰 데”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삼촌의 인사말에 보라 이름이 십여 번 나온다. 뭐 보라엄마, 보라아빠, 보라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등등 을 부르는 가 했다. 다 끝나고 사진 찍는 중 파나마 숙모 카리슈마가 내게 긴 내용의 말을 건넨다. 코리아, 홈 타운, 파티 등의 단어가 나온다.
바빠서 신혼여행을 못가는 산딥 보라를 위해 나중에 파나마로 초청하여 크루즈 여행 시켜 주겠노라는 예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나도 함께 초대하려는가보다 하여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고맙다, 꼭 참석 할 테니 걱정마라,---”
공식적인 의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와 인사를 더 나누었다. 특히 프리탐의 누님이 많은 관심과 호의를 표해주었다. 곱게 늙으신, 웃음이 온화한, 산딥의 고모이다.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사이가 무엇일까?
오빠와 여동생 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단연코 누나와 남동생 사이라고 말하겠다.
하객들은 거의 다 돌아간 후 앞 건물의 진짜 힌디 사원에 들어갔다. 구두를 벗어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신들이 모셔져있다. 시바여왕도 보이는데 격이 무지 높은 듯하다. 밤늦게 부모님 댁에 직계가족 몇몇이 모였다.
거실에 앉아있던 보라를 다시 현관 밖에서 들어오게 하더니 한국의 입주식 혹은 폐백같은 의식을 치렀다.
한 사람씩 보라와 마주앉아 두 손 가득 쌀을 퍼서 서로에게 교대로 담아주고 약간의 돈을 주며 축복해주었다(나이 많은 사람은 보라에게, 적은 사람에겐 보라가 돈을 주었슴).
이제 보라는 이스라니 집안의 식구가 되었으니 걱정 말라는 라시미의 말에 아내가 눈물을 보였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미국에서의 정신없는 상황이라 감정 잡지 못하다가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드는가보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딸을 시집보낸다고 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아들을 얻는다고 한다.
더욱이 마니샤 같은 새로운 딸까지 얻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엉터리 영어일 텐데 알아듣고 공감해주어 오히려 고마웠다.
*. 준비했던 커닝 페이퍼 내용 -
나마쓰데(안녕하세요),
압기 따비야뜨 깨시해(건강은 어떠세요),
압세 밀까르 바후뜨 꾸시후이(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 산딥 보라 비와흐 끼 바다 이양(산딥 보라의 결혼을 축하 합니다 - 제대로 하려면 ‘축하해 주시기 위해 이처럼 많이 와 주셔서’라 해야겠지만 그것은 내게 무리이고,)
바훗 슈끄리야(대단히 감사합니다 - 바훗을 반복하면 뜻이 더 강해진다).
*. 삼촌의 인사말 내용 - 워싱턴 디씨에 사는 삼촌댁에 산딥이 놀러왔을 때인데 창문을 바라보며 흥얼거리는 노래 말에 보라가 20여회 나오더란다. 인도 노래 중에 사랑하는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이름만 바꿔 부른 것이라 함.
*. 카리슈마가 내게 한 말의 내용 - 결혼식이 끝났으니 보라가 코리아 고향에 가면 힘든 일 시키지 말고 매일 파티해 주라는 뜻.
*. 문화적 차이 - (카펫 위를)
카펠은 구두 신은 채 다닌다.
빅 프라샨은 맨 발로 다닌다(먼저 씻는다).
나는 공손히 양말 차림이다.
과연 누구의 발에서 냄새가 날까요?
<6월 12일. 월. D+1일>
어쨌거나 큰일을 무사히 치러 긴장도 풀어지고 늦잠을 잤다. 저녁엔 외식하러 ‘인 앤 아웃’ 이라는 햄버거 집에 갔다. 같은 햄버거라도 상호에 따라 맛이 다르단다. 한국에서도 같은 돼지갈비라도 맛이 다 다른 것처럼,-- 별스런 메뉴는 아니지만 4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옆자리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번호를 부르니 박수와 환호로 즐거워한다.
현재 미국 서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여자는 탤런트 이영애 씨다. 월, 화, 수, 목요일 밤 10시부터 대장금이 방영되는데 미국인들은 정자세로 앉아 눈을 떼지 않는다.
나는 귀가 들리니까 딴청피우면서도 알아듣지만 미국인은 자막을 봐야하므로 그야말로 꼼짝 못 한다. 수많은 인물과 약재와 상황이 어우러지는 사극이건만 영역(英譯)의 문장은 짧기만 하다. 장금이가 온갖 고난을 딛고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까지 오르는 대목에선 모두가 숙연해한다.
<6월 13일. 화>
아침 6시에 월드컵 축구 한국과 토고의 첫 경기가 중계방송 되었다. 영어로 방송되었지만 토고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이천수의 동점 프리킥, 안 정환의 역전 골에는 나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히딩크의 호주에게 3:1로 졌으니 온 나라가 더더욱 들썩했을 한국이 생각났다.
축구를 보노라니 문득 ‘자식은 공격수요 부모는 수비수’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10번 잘못하고 서운케 해도 1번만 잘하면 칭찬받는 공격수와, 100번 잘하다가도 어쩌다 한번 실수하면 역적이 되고 마는 수비수의 운명,---
보라 자동차가 배달되어 왔다. 메사추세추 번호판이 붙어있고 트렁크에는 짐이 잔뜩 들어있다. 동부 보스턴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까지 큰 트럭에 실려 2주 만에 왔다.
요금은 공항에서 공항까지는 $800, 집에서 집까지는 $1,000
한국이라면 당연히 운전해서 왔겠지만 미국은 워낙 땅이 넓으니까,--- 해질 녁에 시내 드라이브를 했다. 베이 브리지, 알 카트로츠섬, 골든게이트 브리지 등을 둘러보고 골든게이트 공원 옆 다운타운에서 월남 쌀국수와(우동식, 짬뽕식) 닭고기 꼬치구이에 칭따오(청도;靑島)맥주를 한 병 주문했다. 어디서나 먹는 것은 그만그만하다(4인이 약 $40. 10%정도의 팁은 별도).
책, 옷, 그릇 등의 보라 짐과 산딥 짐, 어마어마한 양의 결혼선물 짐들이 들이 닥쳤다.
미국에서는 축의금 보다 필요한 물건을 미리 게시판에 내걸어 주문받아 선물한다. 혹시 중복되면 일정한 기간 내에 교환이 가능하다. 철저하게 가능하다.
낮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기술자가 다녀갔다. 주방 설거지통에 장치된 크러셔가(믹서기 같은 것) 고장 나 배수가 안 되어 불편하던 터이다. 음식물 찌꺼기가 분해되어 강물로 배출되면 환경에 더 안 좋다하여 한국에서는 사용금지 한 것으로 아는데 이곳에서는 아예 기본옵션으로 달려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선 매연 발생 때문에 비행기도 엔진을 끄고 유도차에 끌려 들어가는데,---
가정연료도 가스가 아닌 전기이다.
혹시 운전하다가 연료가 떨어져 주유소에 가면
1. 개소린 주세요
2. 모개스 주세요
3. 휴엘 주세요
정답은 그냥 내려서 직접 주유기를 들고 기름을 넣는다 이다.
흔히 자식이 미국에서 사니까 나도 미국 가서 살겠다는 부모들이 있지만 이는 정확히 알고하는 소리가 아닐 것이다. 실생활상의 기초적인 아래의 상황을 만나면 어찌 할 것인가?
*. 입국 때 - 김치 있어요?
*. 운전 중 과속으로 경찰에게 적발되면?
*. 다른 주에서 이사 오면 자동차 번호판을 어디서 바꿔다나?
*. 아파트 경비가 와서 2시간 동안 물 안 나오니 주방은 쓰지 말고 욕실은 써도 된다는 말을 길게 하면?
*. 슈퍼에서 물건을 샀는데 현금대신 카드를 달라고 하면?
카드를 냈더니 안 된다고하며 다른 카드를 달라고 하면?
그냥 한인 사회에서(코리아타운; L.A에는 있지만 S.F는 없슴) 어울려 산다고요? 그럼 할 말 없죠.
L.A 코리아타운에는 설렁탕, 떡집은 물론 작명소, 무당 굿하는 집까지 있으니까,--- 내 이름 윤 청은 한 글자가 모자라서 해명하기 힘들다는데 사위의 풀 네임 ‘산딥 이스라니 프리탐’은 어떻게 풀이할까?
사소한 영어가 안 되어 미국생활이 힘 들것이라는 상황이 또 하나있다. 산딥 보라는 볼 일 보러 밖에 나간 낮에 주방 고치는 기술자가 왔을 때 문 열렸냐고 몇 번이나 전화로 묻기에 화까지 내며 열렸다고 했는데 언듯 생각난 게 아파트 입구 문이 잠겼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가서 열어 주었지만 (5동 입구 문의 키는 각 집에서 하나씩 가지고 있어 외부인은 누군가가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
각 호실 키는 별도로 또 있고,--) 이무슨 국제적인 망신인가? 오히려 그는 코리안 이면서도 영어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수리 완료 후 팁을 $20 주었는데 무척 사양하다가 내게 온갖 축복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작업 도중에 우유, 쥬스, 콜라, 위스키는 물론이고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6월 14일. 수>
온 종일 산딥과 함께 가구를 조립했다. 부족한 장식장, 옷장, 책꽂이 등 몇 가지를 혼수삼아 사준 것인데 인건비가 비싸 거의 모두 직접 조립한다. 부속품도 딱 맞게 들어있어 처음부터 정확히 조립해야지 행여 나사못 한 개라도 분실하면 낭패이다.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일 하려니 어느 땐 혼자 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성경말씀 중 바벨탑 쌓다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 각자의 말이 틀리게 되는 구절이 생각났다. 허지만 장인, 사위 간에 재미삼아 일 하다 보니 영어도 꽤 많이 늘었다.
이에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어떤 상자 표지에 1table, 3drawers 라고 쓰였으면 테이블 1개에 서랍 3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 상자 3개 ; 트리 박시즈(0). 박스 트리(X)
*. 해 뜨기 전 ; 비포 썬 라이스(0). 썬 라이스 비포(X)
*. 해 진 후 ; 애프터 썬 셋
*. 2 시간 후 ; 애프터 투 아워스
*. 점심 먹기 전 ; 비포 런치
*. 점심 먹은 후 ; 애프터 런치
*. (문을) 닫다 ; 클로우-스
*. 옷을 (입다) ; 클로웃드
*. 투(2) ; 개수 - 투 애플스(사과 2개)
*. 세컨드 ; 순서 - 세컨드 플로어(2층)
*. 트와이스 ; 회수 - 망치질 두 번
*. 누가 내게 뭔가를 물어볼 때 좋다는 뜻의 대답은?
1. 얍
2. 예쓰
3. 야
정답은 1번이다. 태권도 기합처럼 힘차게 외칠수록 의미가 커진다. 2번은 책에서나 배웠을 뿐 거의 들리지 않고
3번의 경우 야--- 끝을 평범하게 끌면 적당한 긍정이고 끝을 강한 목소리로 위아래로 흔들면(야~~~) 부정이 된다.
*. 공중전화로 한국에 전화할 때
1. 동전으로(코인) 통화는 거의 불가능(많아야 하므로)
2. 컬렉트콜은(수신자 부담) 동전이 필요 없으나 무지 비싸므로 잘 안 씀 (수화기 들고 삐--- 소리 나면 82 31 633 2189 누르고 교환이 나오면 상대방 이름대고 교환이 다시 한국에 묻고 등등 절차가 만만치 않다. 지역번호 앞의 0은 어느 경우에도 누르지 말 것.)
3. 전화카드를 사서 쓰는 경우(폰 카드 ; 거의 모두 사용함 슈퍼에서 구입 $5, $10, $20. 한국어 설명 및 한국말 안내됨.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라네는 ‘공항근처’에 해당하는 409 0006을 누르고 카드번호 2982132515# 상대번호 82 31 633 2189#을 누르면 된다. 앞의 82는 국가번호의 한국이고 역시 지역번호 앞의 0을 뺀다. 휴대폰에 걸때도 앞의 0은 뺀다. 번호 끝에 붙는 # 표시도 주의해야함. 중간 중간 나오는 한국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됨)
저녁때에 라시미를 모시고 마니샤가 왔다. 6월 6일 에 갔던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마니샤가 내일 L.A로 간다. 자동차로 6시간 정도 남쪽으로 간다.
12월에 한국에서 또 만나기로하고 “우리 딸”하며 5회 정도 포옹한다. 사돈댁 규수이다. 라시미와도 포옹하고 헤어진다. 안사돈 되는 분이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멸치 새우볶음을 나누어 주었다. 한국적 정서로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너무 스스럼없다.
<6월 15일. 목>
1박 2일 여행을 가기위해 산 브르노 시를 출발했다.
보라네 아파트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주 가깝지만 행정구역상 산 브르노 시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공항이 없다. 산 브르노 시에 있다. 서울 공항은 성남에, 김포공항은 서울 공항동에, 인천공항은 영종도에 있는 것과 같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쭈욱 내려가 몬터레이 수족관이 있는 곳에서 내렸다. 동리가 아주 정겹다.
넓은 도로, 아름다운 주택과 조경. 우선 멕시칸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먹는 것도 경험이라서 4가지를 시켜 나누어 먹는다. 데낄라도 주문했다. 마시는 방법이 까다롭다. 우선 커다란 컵 위에 묻어있는 소금과 그 컵 안에 들어있는 얼음, 레몬으로 입안의 잔 맛을 없애고 단숨에 쨘!! 하고 마시는 것인데 나는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단맛인데 무지 독하다. 식사는 기름지고 짭짜름하다. 신선한 야채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대로 맛있다. 쉬운 농담은 산딥과 직접 하지만 조금 어려워지면 보라의 통역이 있어야한다.
몬터레이 수족관에 갔다. $20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3시간은 보아야한다. 이제껏 보아온 각국의 수족관과는 (부산, 제주, 홍콩, 태국, 싱가폴) 규모와 양적인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2층 정도 높이를 통유리로 막아 물을 채운 수족관을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 마치 농구 보듯 한다. 어린이,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나 자세하고 친절한 안내인들도 마음에 든다. 특히 상어, 참치, 해파리는 세계 최대일 것이다. 건물이 2층이라서 높지는 않지만 규모가 워낙 커서 야생조류들이 그냥 실내에서 둥지 틀어 산다. 옥상에 올라 망원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본다. 이름이 몬터레이 베이 (Bay)니까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쑥 들어온 지형이다. 한국어로는 만(灣)이라 하고 영일만, 강진만, 진해만 등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그랜드 캐넌, 니어바이(nearby) 어쩌고 하기에 아내에게 여기서 그랜드 캐넌이 아주 가깝다고 설명을 하는데 지나가던 보라가 “아빠.. 니어바이는 직역하면 안 되고요,-- 만의 규모나 깊이가 그랜드 캐넌보다 더 크다는 뜻이에요”한다.
아 ! ! 날 씨 참 덥 다 .
다시 차를 타고 쭉 내려가서 미리 예약해 놓은 콘도형 호텔에 투숙했다. 저녁은 가장 미국적인 식당이라는
Denny's coffee에 가서 햄버거 등과 디저트로 했다. 기름지고 짜고 달고 양이 너무 많다. 1인분의 아이스크림을 시켜도 2인이 먹기에 넉넉하다.
<6월 16일. 금>
날씨는 계속해서 쾌청하다. 아침 일찍 아내와 1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3층이 넘는 건물이 없다. 지진 관계로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조화로 보였던 선명한 색상의 화분들이 모두 생화이다. 000 inn 이라 쓰인 건물들이 줄 지어 있다. 모양은 다르지만 규모와 형태가 큰 테두리 안에서 질서있다. 아람드리 나무들도 자연스레 가지치기 되어있다. 화단 꽃나무 잎에는 먼지하나 없다. 각 건물 앞에는 화단과 잔디가 인상적인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고 있다. 차를 타고 160km남쪽으로 달렸다. 동해안 포항에서 울진 가는 듯이 경치가 참 좋다. 산, 강, 계곡, 바다, 초록 벌판, 노란 꽃이 만발한 환상인데 굳이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국의 서해안이다. 오른쪽은 태평양이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일본, 한국, 중국이 나올 터이다. 바닷가에는 바다코끼리 (해상) 수 십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는데 철조망 간판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DO NOT FEED THESE ANIMALS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오늘의 목적지인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 ; 성-城)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는다. 미국인의 한 끼 식사랄까? 우리로 말하면 된장찌개 백반 혹은 설렁탕 한 그릇은 햄버거 1개, 감자튀김 1봉지, 콜라 1잔이랄 수 있다. 모자라면 닭튀김을 추가하던지 아예 빅 사이즈로 주문하면 된다. 이젠 햄버거만 먹고도 살만하다. 김치 한 조각 안 먹은지 여러 날 되었지만 힘들지 않다.
단, 소주 생각은 많이 난다. 허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어 여행대접 받는 게 아니고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김에 곁들여 구경하는 터라 그전 유럽 여행 때처럼 마라톤 물병에 소주 넣어 다니면서 아무 때나 마실 수 없다. 문화가 다른 사위와 한 차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1인당 $25의 입장권을 산 뒤 점심 먹고 약간 쉬었다가
2시 20분 발 전용 셔틀 버스를 타려는데 (사전에 필히 예약이 되어야함) 직원이 안내 멘트를 한다.
“115호 버스를 타세요 ”
이 경우 정확한 영어의 표현은?
1. 원 헌드레드 앤드 텐 플러스 파이브
2. 원 원 파이브
3. 원 피프틴
정답은 3번이다. 그런데 115와 150(원 피프티)은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할 수 있으니 앞뒤 사람과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판단해야함.
성의 역사는 짧지만 미국의 어느 부자 한 사람이 저 높은 산위에 이만큼 큰 규모의 유럽형 성을 쌓았다는 게 놀랍다. 1/4을 둘러보는 데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패캐지를 바꿔가며 4번 와야만 다 볼 수 있다. 설명이 줄곧 영어라서 남 웃을 때 얼른 따라 웃어야만 민망함을 벗어난다.
정작 놀라운 것은 성 자체보다도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이다. 멀리 태평양과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정자나 누각은 건물의 역사나 중요성보다 건물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조망의 무게를 더 인정해 준다.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야한다. 이곳 허스트 성은 L.A와 S.F의 중간 쯤 되는 곳이다. 고속도로를 통해 약 3시간 걸린다.
*. 캘리포니아의 모든 도로는 무료이다. 이름도 프리웨이로 부른다. 단, S.F BAY에 있는 다리를 건 널 때만 돈을 낸다. 더 정확히 설명하면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갈 때는 무료,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 올 때만 낸다.
일종의 혼잡 부담금인 셈이다. 골든게이트 브리지만 $5이고 나머지 베이 브리지, 산 마테오 브리지, 덤바튼 브리지는 $3씩 이다.
좌우로 미국 특유의 정경이 펼쳐진다. 나무 없는 누런색 야트막한 구릉 -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느닷없이 나무 빽빽한 산, 멀리 보이는 검은 점의 소떼(최소한 500마리라 한다), 무지막지한 넓이의 야채밭, 딸기밭, 포도밭, 오렌지밭, 아몬드밭, 이들 밭은 스프링클러에 의해 적셔진다.
그 유명한 홍스머신도 많이 보인다. 원유를 퍼 올리는 대형 펌프인데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미국의 관례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김스머신이 되어야 하는데 이름의 앞뒤가 바뀌는 미국식에 따라 홍스머신이 되었다고 함.
도로변 안내판에 쓰여진 스피드리미트 35, 60 하는 것은 마일의 표시이다. 자동차 계기판에는 마일과 킬로미터가 함께 표기 되는데 35마일=55킬로미터, 60=100이 된다.
미국에는 산(San)자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Saint(St.)로써 성인, 성자의 뜻인데 남성성은 산(San)이고 여성성은 산타(Santa)가 된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아래서 위로 살펴보면
산 디에고, 산 버마리노, 산 루이스, 샌 프란시스코,
산 마테오, 산 브르노, 산 호세, 산 라파엘, 산 헬렌, 산 후안 등이 있고
산타 카타리나, 산타 모니카, 산타 바바라, 산타 마리아, 산타 클루즈, 산타 로사, 산타 클라라 등도 있다.
참 산 딥 도 있다.
어느 순간 산딥이 우울해한다. 왜냐고 물으니 영어로 답하는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회사 출근해야 하는데 구경도 못 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뜻이다. 내가 알아들을
만하다. 내가 한국말로 “코리아 엄마 아빠는 관광 온 게 아니다. 너희 결혼 축복해주고 부족한 살림 조금 사 주고 집안 정리 해 주고 재미있게 사는 거 보고만 가면 된다.” 했더니 이번엔 산딥이 알아들었다. 곧이어 더듬거리는 한국말과 유창한 영어를 섞어 “내년에 엄마 아빠 주훈 미국 또 오면요 요세미티 내셔널 파크, 그랜드 캐넌을 보여줄께요” 한다. 아직은 ‘오면’ 대신에 ‘오시면’을 잘 못하고 경어에는 말끝에 ‘요’자를 붙이면 된다고 하니 ‘밥 먹자요’, ‘집에 가자요’ 한다. 이 나영 주연의 영화 ‘영어 완전정복’에 나오는 내용과 같다.
원래 대화란 주어 동사 목적어 관사 전치사 없이도 이처럼 가능한 법이다. 먼저 용기내어 입을 열고 외국인에게 말 건네 보시라. 새로운 친구가 생길 것이다.
3년 여 전 산딥이 한국에 왔을 때 둘이 마장면 표교리에 있는 까페 ‘산모퉁이 돌아 들꽃 피는 집’에 갔을 때 안주인이 (여 남순 시인) 유심히 지켜보다 하는 말 “윤 선생님 단어 스무 개 가지고 말씀도 잘 하시네요” 정말정말 정답이다.
유명 관광지 보다는 산딥네 회사 방문하여 근무하는 거 보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싶다하니 물론 어렵지 않으므로 걱정 말라한다.
<6월 17일. 토>
산딥 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저녁 8시에 댁을 방문했다.
회사 출. 퇴근, 비행기 시간 등은 잘 지키겠지만 그냥 시간 보내는 일에는 마냥 늦어진다. 1시간 정도 늦어지는 것은 예사일 이다. 인도에서는 저녁식사가 늦게 나온다고 하여 미리 핫도그(핫덕 ; 중국에서는 열구-熱句-르구어로 발음)를 먹고 갔는데 앉자마자 결혼식 사진을 보여 주며 양주를 꺼내 온다. 조니워커가 레드, 블랙, 블루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골드도 있다. 가격은 블랙과 블루의 중간 쯤,-- 암튼 처음 보는 것이라며 평소의 양보다 더 많이 마셨다. 사돈이신 프리탐은 커다란 컵에 물, 얼음, 소다수를 가득 채우고 술은 한 모금 정도 따라 휘 저어 마신다.
밤 10시에 인도식 식사를 한다. 담백한 짜빠띠와 양고기 요리가 점점 익숙해진다. 망고 과일로 담근 인도 김치 같은 것도 먹어 보았다. 표현 방법이 막막하지만 이 또한 숙달되면 괜찮을 듯하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가 김치 먹듯이 이것을 꼭 먹어야하며 종류도 엄청 많다고 한다.
보라와 산딥 부모님은 영어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
나와 아내만 못 알아듣고 있다. 저 분들은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데 인도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아들, 딸 있는 미국에 뒤 늦게 와서 직장생활 하고 있다. 내가 만약 미국에 온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어 장벽에 막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일은 피크닉 가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사돈 2분의 직장이 휴무이다.
그런데 미국시간으로 내일 (6/18.일) 낮 12시에는 월드컵 축구 한국과 프랑스의 예선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사전에 녹화 예약해 놓고 함께 가기로 했다. 인도식 도시락과 한국식 김밥, 과일, 음료 등을 준비한다.
그분들이 몹시 즐거워하신다. 느릿느릿 하다고 흉 봐온 나는 그동안 헐레벌떡 하고 빨리빨리 살아만 왔지 남겨 놓은 게 무언가? S.F의 산딥 부모님 댁 창문에서는 골든게이트 공원이 한 눈에 보인다. 차도 건너 바로 시작되는 공원 너머에는 골든게이트 브리지가 있다.
산딥.보라네 집까지는 자동차로 20여분 걸린다.
모든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주택가가 나타난다. 2층, 3층 건물이 개성있게, 질서있게 이어진다.
대부분 1층은 주차장이다. 한집에 차가 2대 이상이며 나머지 차량은 길가에 세워두는데 한국처럼 심한 주차난을 겪는 것 같지는 않다.
<6월 18일. 일>
아침에 산딥이 부모님께 전화하여 오늘 피크닉 가는 대신에 저녁식사를 하러 오시라 한다. 내가 축구를 봐야 하는데 피크닉 가면 녹화한 것을 보게 되는 게 마음에 걸렸나보다.
이유는 전기 기술자이신 한국아빠가 계실 동안 가구조립 해야 한단다. 전기기술자가 가구조립이라니,---
몇 번 반복하지만 미국에서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함.
프랑스와의 축구에서 승리보다 값진 무승부를 했다.
한골 먼저 먹어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박 지성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다 조용하다. 한국에서는 비록 새벽 5시 일지라도 온 나라가 들썩 했을 터이다. 아내도 대단히 즐거워하며 내가 좋아하는 특특식을 준비한다. 한국제 신라면에 찬밥 넣고 끓여 총각김치와 팩소주 한 개를 곁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지만 미국에서의 한국 사람에게는 위의 식사가 최고이다.
한국 신문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경우의 경우를 예상하며 스위스가 토고에게 이기면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사가 지면을 뒤 덮을 터이지만 미국에서는 토고가 뭔지도 아예 월드컵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상은 미주 중앙일보에 실린 박찬호 선수의 얘기이다.)
오후에 4식구가 코스코 마켓에 식품 사러갔다.
어느 상점이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일본이나 유럽처럼 멋있고 화려하게 진열하지 않고 큼직큼직하게 쌓아놓고 판다.
마켓별로 특징이 있다. 가구는 이키아, 식품은 코스코, 생활용품은 비욘드, 와인은 타겟, 공구는 어디,--- 하는 식이다. 거의 모든 제품은 중국제라고 보면 된다.
12년 전(1994)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마켓에 쌓인 그 많은 물건들을 보고 엄청나게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물건보고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유로움 속의 질서의식, 환경보호, 자연보호, 장애인 편의주의(눈에 확 띤다), 사회보장, 의료, 교육, 도로 등이 많이 부럽다.
저녁에 산딥 부모님이 오셨다. 아니 보라가 차타고 가서 모셔 왔다. 그분들은 인도에서 미국 온 지 3년 밖에 안 되어 운전을 못 한다. (인도에서는 직접 운전 할 필요가 없었슴)
오뎅국과 김밥, 유부초밥, 새우 멸치복음을 참 잘 드신다.
아내가 한국말로 ‘또 만들면 된다’고 하는 걸 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반찬을 모두 덜어 드리는가 보다.
때마침 군대서 휴가 나온 아들이 국제전화를 해 왔다.
‘오 마이 갓, 와 우, 원더풀 !!!’ 하며 감탄사와 놀라움을 표현한 사람은 그분들이였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파더스 데이가 오늘이라며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얼른 알아듣고 나도 프리탐에게 축하를 했다. 아버지의 날이다. 매년 6월 18일인지 6월의 3째 주 일요일 인지는 잘 모르겠다.
L.A 중앙일보의 박 용필씨 기사를 보면 아들딸이나 사위 며느리로부터 선물 받을 생각에 앞서 윌리엄 라이시를 돌아보자고 했고 (그는 아빠 노릇 제대로 하려고 클린턴 정부시절 노동부 장관직을 서슴없이 사직한 사람임)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이며 아버지의 중심이 흔들리면 자녀도 흔들린다고도 했다.
<6월 21일. 수>
산딥 회사를 방문하여 근무하는 사무실도 둘러보았다.
큰 방에 불과 몇 명만이 있다. 개인 면적이 엄청 넓다.
구내식당에 갔다. 각국요리가 있고 취향에 따라 주문하면 즉석에서 요리를 해 준다. 시간이 꽤 걸린다. 회사 직원들은 개인 식판이 있어 계산할 때 도장을 받는다. 20개 찍히면 현금 $5를 되돌려 받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모습은 값 비싼 레스토랑 같다.
정장 입은 사람은 나와 아내뿐이다. 시골 부모님이 아들네 사는 서울구경 와서 63빌딩 보는 모습이다.
확실한 외형의 인도인은 곳곳에서 보이는데 한국, 일본, 중국인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 슈’의 미국 자회사로써 포춘 선정 100기업에 들었고 미국젊은이가 근무하고 싶어 하는 선호도는 작년 4위, 금년 1위를 했다고 한다.
이름은 ‘제넨텍-GENENTEC’이다. “이프 제넨텍 컴퍼니 원티드 코리안 원 피플 하면 산딥 머스트 리멤버 주훈”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 아 빠” 한다.
(에 휴 이런 말도 영어라고,--- 알아듣는 실력이 놀랍다)
식사 후 공원처럼 가꾸어진 회사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S.F만을 따라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건너에는 S.F공항이 보인다.
집까지는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6월 22일. 목>
‘지구를 살리자’ 라는 취지아래 S.F시내 모든 대중교통 차량 및 페리호 유람선이 무료인 날이다.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이벤트 같은 날인데 딱 맞춘 격이다.
산딥은 출근했고 보라 앞장세워 아내와 함께 나섰다.
1. 아파트에서 산 브르노 경찰서역 까지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타려니까 버스 차체가 슬며시 내려앉는다.
그림 같은 주택가를 빙빙 돌아 천천히 달린다.
2. 한국의 지하철 비슷한 기차를 탔다. 바닥은 카펫이고 가로로 된 의자이다. 즉 고속버스처럼 생겼는데 훨씬 넓고 쾌적하다. 벽에는 no smoking. no food or drink 라고 써있다. 담배, 음식물, 음료수를 금지한다는 뜻이다. 전동차가 분명한데 전원 케이블이 위에 없다.
자세히 보니 철로 옆에 벽을 따라 약 30cm 높이로 붙어있다. 시각 장애인이 인도견과 함께 탄다. 주변의 배려가 대단하다. 송아지만한 개를 만져보고 쓰다듬어 본다. 무서워 피하는 사람은 없다. 이 기차가 그 유명한 ‘바트 트레인’이다. Bay Area Rapid Train 이니까 S.F만을 따라 신속히 움직이는 기차로 보면 된다.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며 10여 곳의 역을 지난 뒤 페리호 선착장이 있는 시계탑 역에 내렸다.
3. 페리호를 탔다. 편도 $7, 왕복 $14이지만 이 역시 오늘은 무료. S.F만에 있는 알 카트래츠 섬 등을 지나 골든게이트 브리지 교각을 돌아오는 배가 있고 섬처럼 생긴 육지에 내려놓는 배가 있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골든게이트브리지 건너편에 있는 소살리토이다.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를 준다. 제주도에 가면 마라도에서 약 1시간정도 주는 것과 같다. 하다못해 $10이라도 쓰게 된다.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를 샀다. 아침에 산딥이 써준 여행 일정표를 보면 아이스크림 사먹는 가게 이름까지 적혀있다. 예정보다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별 문제 아니다. 시가지 상가를 천천히 걷는데(풍광이 꼭 이태리의 카프리 섬 같다) 보라에게 프리탐의 전화가 왔다. 라시미에 이어 시아버지도 전화를 한 것이다. 한국에서 사 간 부채를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세우지 못 한다며 직접 설명하라고 한다. 보라가 전화에 대고 하는 설명을 나와 아내만 못 알아듣고 있다.
4. 시내 구경을 더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중간에서 휘어지는 2칸짜리 버스가 많이 보인다. 땅 넓고 길 좋으니 가능한 일이다. 버스 안에는 노란색 케이블이 유리창 따라 앞에서 뒤 까지 늘어져있다. PULL TO SIGNAL 이라 써있다. 당기면 신호가 간다는 뜻이라 슬며시 당겨 보았다.
‘딩 동’ 소리가 난 후 버스가 섰다. 할 수없이 내린 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영어만 잘 된다면 ‘미안, 실수였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거든요’ 했을 텐데,---
쏘리 아이 미스테이큰 아일 넥스트 스테이션 ???????
아파트 경치가 너무너무 좋다. 단지가 워낙 넓고 3층 건물의 2배 이상 되는 나무들이 자연스레 빽빽하다. 중간 크기의 꽃나무도 멋있다. 아기들 우유병 속을 닦는 솔처럼 생긴 꽃인데 색깔이 빨갛다. 낮은 크기의 꽃나무도 여러 가지다. 시냇물이 흐르고, 넓은 잔디, 야외풀장, 실내풀장, 헬스클럽이 있다. 주차장도 마음에 든다. 1대는 비 안 맞게 확보되어 있고 나머지는 큰길가에 세우면 된다. 가장 좋은 자리는 공공의 자리인데 무거운 짐 내릴 때 등에 사용하며 30분이 제한시간이다.
아파트나 호텔의 실내조명은 벽에서 하는 간접조명이다.
천정 가운데의 화려한 샨데리아가 없다. 대체로 어둡고 화장실만 환하다. 면도, 칫솔질, 손 씻기, 간단한 세면을
할 수 있는 세면대가 화장실 밖 거실 코너에 있고 화장실 안에는 변기와 욕조가 있는데 비닐 커튼으로 가려져있다.
아파트 현관문은 강력하고 무겁고 (쾅 닫히는 것을 방지하는) 도어첵크가 달려있다. 천정과 벽은 2중으로 되어있어 벽에 못이라도 한 개 박으려면 벽체 내부의 지지목을 찾는 레이저 측정기를 쓰는데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한 공구이다.
과일 맛 참 없다. 체리만 맛있고 딸기, 포도, 수박, 사과, 배는 모양만 비슷할 뿐 영 아닌 듯하고 망고, 메론 등은 그냥 밍밍하다. 한국의 여름 복숭아 참외, 가을 사과 배, 겨울 감귤의 암팡진 맛은 정말 최고이다.
날씨는 참 좋다. 20여일 있는 동안 비 한번 안 오고 항시 쾌청하다. 햇볕은 따갑고 바람은 차다. 당장 그늘에만 들어서도 서늘하다. 매우 건조하지만 풀 나무 있는 곳은 스프링클러가 있어 걱정 없다. 여름에 폭우, 겨울에 눈보라는 없지만 지진이 무섭다고 한다.
맛, 단맛은 얘기할 필요 없이 중독성이 강하지만 짠맛의 중독도 대단하다. 나는 본래 짜게 안 먹는데(실상 한국에서는 찌개나 국이 짜면 물을 더 부어 싱겁게 먹는다. 문제는 다 먹어 버리니까 그게 그거지만,---) 미국에서는 짠맛의 기준이 없나보다. 같은 햄버거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짜기도 하고 오늘 소살리토에서 먹은 두툼한 고기의 햄버거처럼 심심하기도하다. 점심은 페리호 터미널에서 일본식 도시락, 저녁은 태국식의 쌀 부침개, 해물 쌀국수, 짬뽕국물 같은 거로 했는데 별도의 소금 병이 없어
뭐 어떠랴 싶어 그냥 먹었는데 잠들기 전 까지도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굳이 한국음식을 찾지 않는다.
그 나라의 음식을 통해서도 많은 문화를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 밤은 푹 익은 깍두기 국물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삼겹살에, 순대국에, 아구찜에, 모듬회에, 빈대떡에 소주 마셔본지 꽤나 오래 되었다.
아내가 김치 한번 담가 주겠다고 하여 S.F내 한국매장인 국제마켓에 갔다. 김치거리 사는 동안 죽 둘러보니 완전 한국슈퍼다. 간간이 처음 보는 야채와 과일이 있긴 해도 김치, 소주, 젓갈 등이 즐비하다. 가격은 소고기가 한국의 1/3수준, 견과류는 그보다도 더 저렴하지만 라면, 된장, 떡 등은 비슷하다. 다만 소주만큼은 4배 정도 비싸다. 병소주가 $4, 페트병의 대형은 $15이다. 신문은 25센트 동전 2개니까 우리 돈 500원이다. 슈퍼건물 밖에 쇠 상자에 들어 있는데 동전 2개 넣으면 문이 열린다. 상자 위에 있는 어제 신문은 무료이다.
<6월 23일. 금>
월드컵 축구에서 스위스에게 2:0으로 패함으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정도가 우리의 현주소였는지 모른다.
오후엔 마켓에 갔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크게 혹은 작게 도움 준 분 들께 조그만 선물이라도 할 생각이다.
유명메이커 의류 할인매장이다. why pay more? never never never pay full price. 라는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왜 돈을 더 내는가? 결코 제값 다 내지 말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많아 보아온 문구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글라스 매장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Buy1, Get1 $1 ; 한개 사면 또 다른 한개는 1달러라는 뜻인데 먼저 사는 한개 값이 $20 - $30 정도이다.
물건 값은 거의 5.99 14.99 19.99 하는 식인데
19.99를 읽는 법은 나인틴 나인티 나인이다. 나인티 나인티 나인 하면 99.99가 된다.
<6월 24일. 토>
출발 하루 전날이다. 그제 다 하지 못한 S.F 시내 관광을 산딥의 강권으로 마무리 했다. 베이 브리지 중간 섬에서 내려 시내 쪽 조망, 점심은 지중해 식으로 했다. 일반적으로 4가지 요리를 주문하여 함께 나누어 먹는다. 유럽을 2차례나 여행하면서도 정작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미국에서 먹어본다.
트윈 픽스 정상에 서 보고 (TWIN PEAKS ; 해발 270m의 언덕으로 서울 남산, 부산 용두산 같은 곳 그러나 타워 ; 탑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을 승용차로 내려오고 베이 비치에서 쵸코렛 공장을 견학한 후 커피를 마신다. S.F 만의 바다가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까페 이름은 the Buena Vista이다. 이태리식 이름으로 비엔나 비지터 즉 비엔나 방문객의 뜻일 것으로 생각했다.
산딥의 설명은 스페인어인데 뷰티풀 뷰 즉 ‘아름답게 보이는, 멋있는 경관’ 정도의 뜻이라 한다.
휴 날 씨 가 또 덥 다.
나는 위스키가 들어있는 아이리쉬 커피를 주문했다.
예전에 서울 삼일로 대화다방에서 위스키 들어있는 홍차를 (위 티) 마셨던 생각이 난다. S.F 자이안트 야구장 앞을 지나(전광판 넘어 외야 밖은 S.F만이고 그곳에 있는 베이 브리지를 건너면 버클리대, 스탠포드대, 실리콘 밸리, 오클랜드 등이 나온다) 차이나타운에 들렀다. 동양권이 아닌 서구 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이곳 S.F에 있다. 아들 주훈이의 전매특허 마데 인 치나(Made in China) 얘기를 산딥에게 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T.V를 통해 스스로 영어를 터득한(포니 등) 주훈이가 어느 날 보라에게 물어 본 내용이 “누나 누나 마데 인 치나가 뭐여?” 였다.
만나면 꼭 놀려 주어야겠다며 산딥이 웃는다. 골든게이트브리지 아래의 방파제에서 다리 상판을 지붕 삼아 사진 찍고 공원도 둘러보았다. 규모가 너무 커서 그냥 자동차로만 둘러보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산딥 부모님 댁에 갔다. 예의 그 조니워커 골드를 마시며 (실은 내가 마시다 남긴 것) 결혼식 모습을 DVD로 보다가 6식구가 식사하러 나섰다. 일단은 S.F의 마지막 만찬이다. 20일 내내 청명하던 날씨가 오늘만은 안개가 낮게 깔려있다. 게 요리를 우리가 대접했다. 무지하게 큰 게를 베트남 식으로 버터구이하고 국수를 함께 먹는다. 팁 포함하여 1인당 35,000원 정도인데 간신히 다 먹을 정도이다.
*. 골든게이트 파크 ; 125만평(여의도는 86만평). 동서 5km 남북 800m,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으로는 세계최대임. 공원 내 호수만도 10개. 하루에 다 볼 수 없슴.
*. 골든게이트브리지 ; 특유의 붉은색은 ‘인터내셔널 오렌지’라 한다. 1937년 개통. 2737m - 도보로 40분 소요. 수면에서의 높이 67m. 편도 3차선.
*. 베이 브리지 ; 1936년 개통. 13.5km. S.F와 오크랜드를 잇는다. 중간에 섬이 있어 실제로는 2개의 다리이다.
편도 5차선.
*. 일렉트릭 버스 ; 고무바퀴-라버 타이어. 방향전환 가능. 버스위에 전선이 있슴. 노선버스이다.
*. 세컨드 플로어 버스 ; 똑 같은데 2층 버스임.
*. 라이트 레일 트레인 ; 이름 그대로 경전철. 스틸 휠스. 철로 위를 여러 대의 차량이 붙어 지상과 지하를 오르락내리락 운행. 방향전환 불가능.
*. 트롤리 ; 쇠 바퀴-스틸 휠스. 철로 위를-언 레일 운행. *. 케이블 카 ; 동력이 전기가 아닌, 케이블 레일이다.
스틸 휠스. 스틸 레일. 종소리를 내며 천천히 달린다. S.F의 상징적인 차량으로 영화에 자주 나온다(리차드기어 킴베이싱어 주연의 삼각관계, 숀코네리 니콜라스케이지 주연의 더 록 참조)
*. 자동차 ; 도요다가 가장 많이 보인다. 심지어 10대 중 7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경우를 보았다.
커다란 원 안에 작은 가로 원과 세로 원이 있어 흡사 물소머리 비슷한데 소형은 에코, 아반테급 코로라, 소나타급 캠리, 대형의 렉서스가 유명하다.
혼다는 네모 안에 H자가 있는 마크이고 어코드, 시빅이 유명하다. 우리의 현대차도 많이, 솔직히 가끔 보인다. 가로 원 안에 H자가 오른 쪽으로 45도 기울어진 마크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미국에서 소나타는 000의 이름으로, 아반테는 엘란트라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보라 차는 코로라이다.
*. 팁 ; 식사 후 아니면 호텔 등에서 1인당 $1,
혹은 10% 정도가 관행.
*. 예약 ; 기본적으로 필수. 식당 안에 빈자리가 있어도 종업원의 안내가 있을 때 까지 입구에서 대기해야 함.
*. T.V 프로 ; 보라돌이, 애니멀 플래닛,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낯설지 않은데 여자 둘이 나와 서로에게 욕설과 음식물 집어던지기를 하는 프로는 생소하다. 스프나 피자 등이 마구 날아다니는데 방청객들은 좋다며 박수쳐 댄다.
*. 세계화 ; 우리나라의 남한 인구정도 되는 (5000만 명) 인도인이 영어가 아주 유창 혹은 능통하다고 한다.
그들이 시간관념만 제대로 갖춘다면 어찌될까?
12살짜리 초등학생 수아누는 3개 국어가 능통. 마니샤 3년, 빅프라샨 2년, 보라 2년의 미국 생활을 통해 스스로 지도 봐가며 운전하고 아파트 계약, 시청에 결혼 신고, 부당한 과태료를 법원에 조정 신청하여 상당금액을 감면 받고 하는 등등을 볼 때 우리의 영어수준은 어디쯤 일까를 생각해본다.
<6월 25일. 일>
아침에 산딥에게 2가지를 얘기했다.
1. 공부를, 특히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하라. 혹시 제넨텍에서 극동지역 서울 사무실을 오픈한다면 첫 번째 매니저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2. 부모님께 효도하라. 최소한 월 3회 이상 방문하여 인사드려라. 지난번에 얘기한 축구선수 입장을 생각하라.
S.F공항에서의 탁송화물은 1인당 20kg가방 2개, 기내 반입용 12kg가방 1개뿐이다. 무게가 약간만 오버 되어도 짐을 풀어 나누던지 추가요금을 내어야 함. 나도 기내 가방이 조금 오버되어 몇몇 가지를 빼내 탁송가방으로 옮겨야 했다. 적당히 봐 주는 게 없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법을 잘만 지키면 자유이지만 어기면 가차 없음을 알았다.
공항에서 햄버거와 핫도그로 식사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6월 26일. 월>
미국으로 갈 때 벌었던 시차상의 이익을 한국으로 귀국하며 모두 까먹은 뒤 저녁 8시에 공항도착. 리무진 버스로 귀가.
인천 공항에서 이천 행 막차는 밤 9시 20분이다. <끝>
첫댓글 시간이 부족해 오늘은 다읽지 못했지만 틈틈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역시 글로벌 형님답게 가정도 국제적이시군요.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