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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귀하는 소문과 진실 중 어느 것을 믿고 계십니까?
저는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시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고치겠습니다.” 이런 판에 박힌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잘못한 것도 없고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목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양심을 가지고 사실만을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예전에 백석 교단(구 합동정통)에 속해 있을 때, 지금은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유로 한기총에서 퇴출된 이단사냥꾼 4인방과 교회를 시기하고 음해하는 세력들이 퍼트린 거짓말들에 의해 이단시비가 불거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이대위위원장은 이단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구원 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웨슬리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저를 끝까지 이단으로 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그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도 다음해 다시 조사를 하였고 “입신이 성경에 없으니 이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하다가 노회장이 성경의 에스겔과 바울과 사도 요한을 예를 들며 입신이 왜 성경에 없냐고 하자 "어, 있네요"하고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자들을 동원하여 저의 모든 책과 설교들을 조사하였지만 역시 이단성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그때 조사가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 조사 과정에서 이대위 임원 중에 한 사람이 동의할 수 없어 사표를 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견인의 교리를 문제 삼았고 장로교의 교리대로 설교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제가 신양양심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자 교인 1명이 옮긴 것에 앙심을 품은 전직 총회장이 나서 정치적인 장난을 하여 출교로 몰고 갔습니다. 그것은 이대위가 요구한 경고나 주의 조치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대표적인 이단사냥꾼 최××이 속해있는 통합 교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항간에 떠도는 악성 루머와 거짓말들에 근거하여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했고, 처음부터 제 말을 고의적으로 왜곡시키면서 집회참여주의를 결정했던 고신을 비롯하여 합동, 합신 등 몇몇 교단이 이단으로는 정죄를 못하고 교회에 흠집을 내는 엉터리 결정들을 내렸습니다. 그들 중 실제로 저를 조사하여 사실 확인을 한 교단은 하나도 없으며 그저 이단사냥꾼들과 일부 질 나쁜 목사들이 지어내어 퍼트린 삼류소설과 같은 악질적인 거짓말들에 속아 그런 악을 자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단시비에 관한한 한국 교회는 중세 암흑시대의 교황청과 다를 바가 없으며 전혀 공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기대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무 상관도 없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교단에서 저를 조사한 끝에 ‘이단성 없음’을 확인하고 ‘사이비 논의를 종결하고 다시 다루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내부 반발이 있자 이를 번복하고 2차 조사(사실상은 재조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성은 타 교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정하게 저에게 질의서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질의서와 답변을 여러분에게 공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동안 이단사냥꾼들과 우리 교회를 시기하는 일부 목사들이 지어내어 퍼트린 거짓말이 산적해 있어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거짓말을 지어내어 조직적으로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말에 일일히 대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려면 목회를 접고 그 일에만 매달려야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가 문선명처럼 대관식을 치뤘다는 등 상식 이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지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어이없는 거짓말들을 많은 분들이 사실 확인도 않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런 기사를 쓴 신문이나 인터넷 카페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형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아비는 거짓말쟁이요 형제를 참소하는 자인 마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그 아비의 행실을 그들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제가 공개하는 질의서와 대답은 기성 교단에서 1차도 아니고 2차 조사를 하고 보내준 질문이므로 상식적으로 큰믿음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악성 루머가 사실이라면 당연히 질문에 포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문에 나오지 않는 악성 루머들은 사실이 아닌 음해로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저는 기성의 이 질문서를 사용하여 우리 교회를 변호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몸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이 글을 열린 마음으로 읽으시고, 바른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기성 교단 총회장님과 이대위위원장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제가 전에 백석에 속해 있을 때 신학자들이 두 해에 걸쳐 저의 모든 책들을 가져가 조사했습니다. 제 설교 CD들도 들었고 총회장님의 특별지시를 받은 교단 총무님이 저희 교회에 여러 번 몰래 와서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단성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총회장님과 교단총무님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가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출교했습니다.
그 후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기 목사님과 윤석전 목사님을 이단으로 매도한 전과가 있는 통합이 저와 전태식 목사님을 이단으로 매도했고, 몇몇 교단들이 저에 대해 이단이라고 단죄하지는 못하고 저에 대해 거짓 증거들과 왜곡된 자료들을 근거로 불의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사실 확인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저에게 전화 한통 한 적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검사였고 판사였습니다. 이것은 중세 암흑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것이 한국교회의 이단몰이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귀 교단이 처음으로 저에 대해서 용기있고 공정하게 조사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이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이렇게 저에게 질의서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귀 교단의 질문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질 의 서
본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2010. 6. 16)에서는 귀하께서 저술하신 도서와 동영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본교단에서 5인의 전문위원에게 위촉하여 연구하였고, 그 연구의 한 과정으로 별지와 같은 내용의 질의를 하오니 정직하게 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28쪽에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 그대로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했어야 합니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약화시키고 회개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보입니다. 변 목사님이 “믿음 지상주의 (fideism)"를 비판했는데 오히려 “회개 지상주의”를 말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행위로서의 회개를 앞세우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 보혈의 공로가 경시되지 않겠습니까?
답변 : 회개는 죄에 대한 것이며 특정 죄가 아니라 모든 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당신의 죄가 10가지인데 다 회개할 필요 없습니다. 그중 다섯 가지만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온전히 용서해주실 것이며 당신은 구원 받을 것입니다.” 라고 설교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라고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라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에스겔 18장 30-31절)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을 증거했습니다.
“참다운 회개는 보류하는 것도 동거자도 없어야 합니다.”(토마스 왓슨)
“가장 작은 하나의 죄라도, 또 나쁜 한 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에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썬다 싱)
“사람이 계속 한 가지의 죄 속에서 생활하며 그 죄를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참 회개는 있을 수 없다.”(찰스 피니)
“죄 중에 하나라도 보류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용납치 않으실 것이다... 단 하나의 아주 작고 은밀한 죄일지라도 그대가 그것을 용납한다면 그대의 영혼은 그 죄를 살려 준 대가로 죽어야한다.”(조셉 얼라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죄라도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건방진 욕망을 가지고 탐닉하는 죄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다.”(찰스 스펄전)
이러한 말들은 죄가 전혀 없어야 혹은 죄를 전혀 짓지 않아야 구원 받는다는 것과 다릅니다. 그것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성경대로 회개를 강조하는 것이지 ‘회개 지상주의’가 아닙니다. 나아가서 회개는 율법의 행위 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회개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랍군요. 그러면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율법의 행위 즉 인간의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한 것입니까? 그리고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키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과 바울도 회개와 믿음을 강조했습니다(막 1:15, 행 20:21).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켰습니까? 성경을 보면 ‘은혜 논쟁’은 율법의 행위와 믿음에 대해서만 벌어졌습니다. 회개를 상대로 은혜 논쟁이 벌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대로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행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회개 자체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회개를 유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훼손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약화시킬 수 있다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그것은 성경 저자들이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1)
저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85~87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회개는 모든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에 대한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회개가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회개는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전혀 안 짓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따금 강력한 유혹을 받아 죄를 짓고 나서는 회개하고 당분간 그것을 버렸다가 다시 유혹에 굴복하여 그 죄를 범한다면 그가 죄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고의적이고 상습적이며 고집스럽게 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며 항상 그 죄를 버리려고 하며 그것에 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유혹이 그를 덮쳐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에 그것은 우발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찰스 피니)
회개는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해 보면 회개는 성화(聖化)가 아닙니다. 저는 조셉 얼라인의 말이 회개한 자가 어떤 자인지에 대한 가장 적합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 그는 죄와 영원히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는 죄와 몸부림치고 싸운다. 자주 실패하긴 하지만 호흡이 붙어 있는 한 신조를 굽히지 않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비록 온전히 거룩하지 않아도 이런 자는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이며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2)
저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287-289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무명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구원론을 재조명하고 성경대로 돌려놓으려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진리에 눈을 뜨고 회개하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동안 잘못 가르침 받은 것이 쌓인 결과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다음 진술이 양약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지만 구원의 수단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도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막 1:15).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고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처럼 가짜 회개와 믿음 역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회개이고 믿음입니까? 가짜 회개는 죄를 자백만 하는 것이요, 진정한 회개는 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겔 18:30-32). 가짜 믿음은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요, 진짜 믿음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고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약 2:14). 저는 이런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합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3)
최근에 출간된 저의 책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75-80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롤랜드 벅 목사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죄나 실수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보신다는 내용을 성경 어디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미 그것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단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 내용이 나온단다.’라고 대답하셨고, 나중에 민수기를 찾아본 결과 23장 21절에 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저는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읽어왔습니다만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들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진리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주님은 보혈로 우리를 덮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실 때 예수님처럼 바라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그분의 사랑에 완전히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를 이렇게 보십니다. 우리가 완전해야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죄가 있어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점 없는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설사 회개에 합당한 열매나 믿음에 따르는 행함일지라도 그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모닝스타 코리아 저널 19호에 실린 "종교의 영"라는 제하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온전해져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은 속임이자 미혹이다... 종교의 영은 육체의 행함과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획득하라고 부추긴다.”
또,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밥 존스 목사님은 역시 “종교의 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종교적인 영은 다섯 가지입니다... 이중에 가장 악독한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주의 적이면, 하나님의 은혜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무엇인가 더해야지만 하나님의 일이 성취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곧 교만의 극치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이미 성취된 역사입니다.”
전에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온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이 말은 회개나 행함 있는 산 믿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참 믿음을 가져도 그것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것이나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보시고, 우리를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온전히 의롭다고 보아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보고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보아주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찬양처럼 진실로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영광을 오직 그분께 올려드리십시오. 이것이 성경적인 올바른 믿음입니다.
2. 회개는 특성상 “중생의 회개”(방향전환, repent)와 “성화의 회개”(점진성화, confess)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 목사님의 주장은 존 웨슬리의 경우처럼 “(중생한) 신자의 회개”를 강조한다고 보는데, 그것을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저는 그 둘을 혼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책 “명목상의 신자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라는 책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회개하고 믿는 신자도 삶속에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성화가 아니라 위에서 말씀한 그대로 ‘방향전환’이요 출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화를 구원 즉 칭의나 중생의 조건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 20~25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땅히 설교자는 바울을 본받아 성경대로 회개하고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지라고 강력하게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외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과도하게 강조하다가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명목상의 신자로 오해하거나 그들을 궁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이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육신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시기하고 분쟁을 일삼고, 사람을 따라 행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들도 구원받은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 이들도 구원받은 자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옥한흠 목사님도 일전에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이 점에 있어서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웨슬리, 찰스 피니 그리고 청교도들은 방향은 옳았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희석된 복음을 전하는 현대 설교자들에 비하면 오히려 영혼들에게 복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설교와 글에서 묘사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의 성화된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교회 안에서 웬만해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찰스 피니의 경우, 본문에 나오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배교한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승리의 원리」라는 책에서 찰스 피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은 ‘육신’이라는 말을 한 번, 그것도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단 한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라는 말은 신앙이 저조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여기까지는 옳습니다. -저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배교하였으며(이것은 잘못입니다. -저자-) 마치 회심하지 않은 자처럼, 육적인 자들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이처럼 찰스 피니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이들의 영적 상태를 배교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아마도 그는 이들이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존 웨슬리는 피니 못지않게 강성이고 구원의 기준을 높게 설정했지만 이 구절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신자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라는 설교에서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인용한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바울은 의심할 여지없이 신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형제 된 자들, 그러나 어느 정도 아직도 육에 속한 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기(하나의 나쁜 성질)가 있어서 종종 분쟁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신앙을 잃어버렸다고는 조금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믿음을 잃었다면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그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란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인 동안에는 모든 신자가(어느 정도) 육신에 속하여 있음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말이 옳습니다. 이들 역시 구원받은 자이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한 가정에 성숙한 어른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청년들과 어른들이 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영적인 어린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아비들이 있습니다(요일 2:12-14). 교회 안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으며 모두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위의 내용에서 보듯이 회개를 구원의 조건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신다면 변 목사님은 자신이 회개할 것이 전혀 없으며 필히 천국에 들어간다고 단정하실 수 있습니까?
답변: 앞에서 말했듯이 회개는 성화가 아니며 방향 전환입니다. 그러므로 행위가 완전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이 질문은 이것을 오해한 상태에서 나온 질문이기 때문에 따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4.『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66쪽에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만 모셔 들이면 구원을 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라고 할 때에는 성경의 표현대로 “구원의 주”로 믿는 것이 아닙니까? 즉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동시에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변 목사님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는 인정하나 진실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명목상의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여기서 주여주여하는 자가 예수님이 구주임을 부정하는 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구절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6:46에 보면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님으로 부르고 실제로는 주님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자들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여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명백한 그리고 기본적인 진리인데 제가 계시를 받고 말아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단지 성경대로 설교했을 뿐입니다.
네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구원에 이르는 지혜” 57~61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거두절미하고, 믿음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처럼 믿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분으로 모셔 들이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이 진리가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는 지 성경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요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예수님이 왕이심을 의미)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무엇으로? 단순히 구주로가 아니라 왕으로)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구주가 아니다)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영접하지 말고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제가 독창적으로 고안하여 혼자 별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증거한 참된 진리입니다.
먼저,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주와 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는 결코 주님을 단순히 자기를 위하여 속죄하는 제사장으로만 영접하는 자가 아니다.”
또,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두 관계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의 고난을 인정하고 용서와 영광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과 구원 방법에 순복하는 것이다.”
또,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대답해보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신한다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표어는 ‘황제이든지 아무 것도 아니든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황제나 왕이나 군주가 아니시라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이다.
또, 에이든 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권 없는 구주는 없다. 그리스도는 구주이시며 주님이시다. 죄인이 그를 주로서 시인하지 않고도 구주로만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현대의 이단이다... 그리스도의 구주 되신 신분은 그의 주권과 영원히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믿음, 실로 믿음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은 그 자체에 복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롬 10:3). 또한 그 믿음의 대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롬 1:4)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7)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평생에 걸친 순종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고도 그 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으면서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5. 『보이지 않는 적 귀신』 104쪽에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거듭날 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영만 거듭났습니다. 먼저 거듭날 때 우리의 영은 구원 받았지만 혼은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박형택 목사에 대한 반론」의 글에서 중생의 단계에서는 영의 구원(요 3:5-6), 성화 과정에서는 혼의 구원(빌 2:12, 벧전 2:1-2; 약 1:19-21), 그리고 예수 재림의 때에는 몸(육)의 구원(롬 8:22-23; 빌 3:20-21; 딤후 4:18)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변 목사님은 이와 같이 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 그리고 몸의 구원을 분리시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솔직히 저는 이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말할 때 중생, 성화, 영화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구원론의 기본 아닙니까? 이러한 구원관은 성경적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영의 구원 즉 거듭남을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 부분적으로 구원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거듭날 때 아직 성화되지 않았으며 성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화 역시 구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대로 그렇게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의 구원은 분리의 개념이 아니라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처럼 유기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런 순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영의 구원 즉 중생과 혼의 구원 즉 성화를 구분하여 말한다는 것 자체가 역으로 1-4번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즉 저는 성화를 최초의 구원의 조건 혹은 자격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행위가 완전해야 천국에 간다고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6. 「예장 합동정통 교단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변 목사님은 “저는 피터 와그너 박사의 추종자가 아닙니다.”라고 하시면서 신사도개혁운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셨지만 핵심적인 주장들에서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추종한다고 봅니다. 특히 신사도개혁운동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5종류의 사역자가 현대교회에도 그대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변 목사님도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 특별계시를 받는 사도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변 목사님 자신이 정말 ‘사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저는 신사도개혁운동이 아니라 ‘성경’과 ‘성령’을 추종합니다. 즉 어느 운동에서든 성경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신사도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저를 좋지 않게 봅니다.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성경대로 사도나 선지자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사도운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여러분이 “직접, 특별계시”라고 부르는 성경의 사도들이 받았던 그런 권위 있는 계시를 받는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사도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 가르치고, 그리고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따르는 목회자들을 지도할 뿐입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이 결코 아니며 성경에 의하여 분별되어야만 합니다.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178~191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사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케네스 해긴, 피터 와그너, 빌 해몬, 데이빗 캐니스트러시,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등 많은 분들의 수고에 의해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주장이 과연 성경적일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 21-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많은 목사님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오늘날은 절대 사도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 중 누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금은 사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양의 12사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계 21:13-14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이처럼 어린양 12사도는 특별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어린양의 12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도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사도의 자격이라면 바울도 사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이지 모든 사도의 자격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어린양의 12사도와 같은 사도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사도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4장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바울은 사도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즉 사도의 역할이 아직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의 직분이 1세기에, 혹은 교회사의 중간에 끝날 수 있겠습니까?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도나 선지자는 없어요.’ 그러나... 모든 성도가 이미 온전케 되었습니까?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사역이 있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아직도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이 모든 사역들과 섬기는 은사들은 지금도 역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쯤 제가 춘천에서 목회하는 저의 동기 목사님의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그 목사님에게 지금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학교 시절 항상 1등을 도맡아했던 그 목사님이 성경을 펴서 다음 부분을 읽어주었습니다.
엡 3:4-5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러면서 “이 구절에는 당시의 사도와 선지자들에게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시해준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도와 선지자는 그 당시만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과연 장학생답게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 지적에 대해서 올바른 답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출판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서 비로소 그 해답을 발견했습니다. 1987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예수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도들에게는 네 가지의 등급 또는 서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서열이나 등급 안에서, 사도들은 서로 다른 분량의 기름 부으심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의 첫 번째 서열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도뿐 아니라 각 사역의 은사에서 홀로 한 서열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량없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요 3:34). 예수님이 가지셨던 한량없는 성령의 기름부음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두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어린양의 사도들입니다. 즉 맛디아를 포함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인데 사도 바울도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비토대적인 사도들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사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중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에 대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바울이 속해 있는 사도의 등급입니다. 이 서열에 들어 있는 사도들의 특징은 그들도 역시 신약 성경의 교리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1987년 방문에서 예수님은 또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대적인 사도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이 등급 또는 수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신약 성경의 교리적 토대를 놓기 위해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와 선지자들은 토대적인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간주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복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토대적인 신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인 이 세 번째 서열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썼으며,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한 계시를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엡 3:4-5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바울은 복음의 계시를 초기 신약 성도들에게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기초를 놓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신약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놓여진 토대 위에 쌓아올리기만 합니다... 아무도 오늘날 복음의 기초에 무언가를 더하기 위한 부가적인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새 언약의 계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바울은, 이미 놓여진 기초 위에 우리가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고전 3:10). 우리는 그것에 뭔가를 더할 수도 뭔가를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방문에서 예수님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에는 기초를 놓는 사도들도 없고, 기초를 놓는 선지자들도 없단다. 오늘날에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동일한 수준 또는 권위와 같은 서열, 또는 같은 정도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아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에 속해 있지 않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이 글은 오래도록 품고 있었던 에베소서 3장 4-5절에 관한 저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그 구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래서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해긴 목사님의 말대로, 오늘날 토대적인 사도들인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서열의 사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과 2장 6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전 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울이 본인만 사도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쓸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인데 1장 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린양의 12사도 혹은 바울과 바나바에서 사도의 계보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과 바나바 다음 세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사도였습니다. 그러면 실라와 디모데 뒤에는 사도가 끝났을까요? 아니요.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증거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사도도 오늘날 존재합니다.
7. 변 목사님은 “교회 안에서 20%만 구원 받는다.” 혹은 “2.5%만 천국에 간다.”는 주장들을 하면서 그 근거로서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체험인 입신이나 환상, 그리고 예언의 말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런 태도들이 변 목사님의 저서들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변 목사님은 신앙의 권위에 있어서 그런 신비체험들이 성경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교회와 이단”과 고신 교단에서는 불신자를 포함하여 죽은 사람 중 2.5%만 천국에 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신자 중에’ 2.5%만 천국에 간다는 말로 의도적으로 바꾸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매도하기 위한 것이었고 제가 사실을 말해도 고치지 않고 그것을 근거로 고신은 저에게 집회참여주의라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참으로 불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귀 교단을 이것을 바로 잡아서 정확하게 질문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20%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입신간증이 아닌 사후체험 간증에 나오는 것입니다. 즉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죽어서 사후세계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신 간증처럼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고려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냐는 질문을 받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곳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자는 적습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퍼센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간증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간증을 성도들을 깨우는 예화로 사용한다 하여 계시를 성경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은 질문 자체가 너무 비약이 심하고 억지 아닙니까? 그것은 무책임한 추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가 한 개인의 체험을 성경과 같거나 그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상식 밖의 질문입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그냥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체험이든 다 믿지 않고 성경으로 분별하여 성경적인 것만 믿습니다. 이것이 개인의 신비체험을 성경보다 높이는 자의 사고입니까? 저는 이단 사냥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런 어거지에 이제 질렸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것으로 교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고 각성시키기 위해 예화로 사용할 뿐입니다. 그런 자유는 저뿐 아니라 목회자 누구에게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진짜 조사를 하셨다면 제가 설교에서 저는 스웨덴 볽이나 김○○ 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토마스 ○○과 메리 백스터 심지어는 저 유명한 썬다 싱의 입신 간증까지도 참고만 할 뿐 그대로 다 믿지는 않는다고 여러 번 말한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자주 진짜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입신 간증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심히 적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황당하거나 비성경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체험적인 계시를 성경보다 높인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참고로, 환상이나 입신 등 신비한 체험에 대한 저의 입장은 존 웨슬리가 그의 일기에서 밝힌 것과 같습니다.
“고함이나 경련, 환상, 신비체험 등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너무 과신하여 그것이 내적인 역사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없으면 모두 헛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위험이 있다. 반대로 이런 현상들을 너무 소홀히 취급하여 무시해 버리거나 이런 현상들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도 또한 위험이 따른다.
반면에 진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타락된 죄인들에게 급작스럽고 강하게 역사하신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히 급작스레 고함을 지르거나 육체적인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2) 믿는 사람들에겐 그들을 고무하고 북돋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역사를 더 뚜렷이 보여 주시려고 신비한 꿈이나 입신 또는 환상을 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3)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경험들은 자연의 은총과 일치하게 된다.
4)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려고 이런 현상들을 모방하여 유혹한다. 그렇다고 이런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전체 현상들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된다.”
이것은 “존 웨슬리의 일기” 228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으로 저 역시 같은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8. 변 목사님이 쓰신 글이나 설교 동영상 등에서 보듯이 전체 한국교회를 바벨론의 영적 창기가 되었다거나, 일방적으로 목회자들을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바리새주의로 몰아세우며, 이단사역자들에 대해 사탄의 졸개 등으로 폄하하고 격렬하게 비난하였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건설적인 비판은 공감을 얻지만, 반면에 파괴적인 비판은 자신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자칫 사탄의 전술에 이용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독버섯 역할을 하는 신천지나 통일교, 그리고 안증회 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는 것이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아닙니까? 일방적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처럼(마 7:1-3) 남을 비판하면 자신도 비판을 받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 아닙니까?
답변: 제가 인격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저의 성격이 직선적이고 좀 과격한 편이라서 말이 지나치거나 거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제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로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비판적이니 이단이다 혹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자들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 역시 당시의 교계와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은 결코 건설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존 후스와 종교개혁자들 역시 아주 격렬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습니다.
더구나 이단사냥꾼들에 대한 비판은 참으로 정당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교단들은 속히 그들의 실체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획책으로 형제를 이단으로 참소하고 매도하는 범죄행위를 멈추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우리 교회를 상대로 거짓 기사를 수차례 쓴 “교회와 이단”의 홈페이지에 가보십시오. 대부분의 기독교 방송과 신문, 교단, 큰 교회 목사님들 등 거의 모든 분들이 이단이거나 이단 옹호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기총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는 이들을 무책임하게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글까지 멀쩡한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자료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이단사냥꾼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나 첨부 자료를 제시하는 선에서 멈추겠습니다.
한편, 비판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현재의 이단사냥꾼들처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살리기 위해 비판하고 책망했습니다. 저 역시 비록 인격이 부덕하여 말에 실수가 많고 표현이 지나칠 때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동기만큼은 단순히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를 회복시키고 다시 부흥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중심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직하게 제가 믿는 바를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한국 교회 전체가 바벨론 같은 영적 창기가 되었거나 모든 목회자들이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바리새주의자라고 결코 믿지 않습니다. 단 한 순간도 그렇게 믿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런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강하게 성토하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죄수처럼 심문할지 몰라도 저는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 의해 쌓인 상처 때문에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때로는 지나친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교단 안에든 진실한 목사님들과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마 어떤 목사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목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 제가 강대상에서 자주 고백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흠을 잡기 위해 저의 한쪽 말만 인용하여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의 전적인 지원으로 최근 신천지를 반대하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참고삼아 알려드립니다.
여덟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꺼져가는 등불, 양심” 37~41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절에 보면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했다고 나옵니다. 물론 동일인물은 아닙니다만 과거의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대적할 때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마 26:59-60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세상 재판관도 하지 않는 일을 하나님을 대리하는 대제사장이 했습니다. 대제사장인데도 거짓 증거를 찾을 정도로 양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정통이었던 바리새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장 전에 보면 바울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무리 앞에 불려가서 심문을 받은 것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23:6-10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이 세상에서 제일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정치인입니다. 그들은 당에 속해있고 당리당략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의 양심적인 판단과 행동에 제한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가장 보수적이고 정통이라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대적하다가 바울이 바리새인임을 알고 바로 역성을 듭니다. 옳고 그른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 의식에 의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양심을 버렸고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비양심적입니까?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위 성직자요, 가장 독실한 신자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은 마귀의 하수인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은, 걸핏하면 타교회와 목회자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목회자들과 이단사냥꾼들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 “현대××”, “교회와 ××”, “교회와 ××”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사냥꾼들이 모두 달려들었는데 그 중 한 곳도 정직한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단사설이 아닌 교단 간에 있을 수 있는 교리적인 차이를 마치 이단사설이라도 되는 양 과대포장하거나, 비보도를 전제로 말한 것도 보도하고, 양쪽 다 들어보기로 약속하고는 참소하는 세력들의 말만 듣고 거짓 편파보도를 하고, 우리 교회의 실제와 완전히 반대되는 자신들의 지독한 편견을 우리 교회의 모습인양 억지 추측 기사를 쓰고, 심지어 제가 설교나 책에서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거짓말로 기사를 썼습니다. 이런 정도의 비양심은 거짓말쟁이인 사탄에게 속한 자들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 보지 않습니다.
9. 변 목사님은 『대부흥이 오고 있다』237-238쪽에서 자신은 성령의 직접 계시인 레마(rhema)를 받아 설교하고, 자신의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이고 새로운 계시”가 들어있다고 강조하셨는데 어떤 근거가 있습니까? 레마는 철저히 주관적인 체험입니다. 즉 성령께서 계시로 역사하신다는 말은 신자에게는 그의 성화를 돕는 것이고, 설교자에게는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영적 감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레클레이토스이신 성령님을 조력자(helper), 위로자(comforter), 상담자(counsellor), 그리고 변호자(advocator)로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레마를 성령의 직접 계시인 레마라니 평범한 말을 너무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시네요. 레마를 받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일상적인 체험입니다. 여러분도 레마를 경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레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받는 것이며 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을 밝히 이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의 경우 레마가 임할 때는 항상 성령의 감동과 함께 성경 말씀의 문맥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문맥으로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레마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의 문맥에서 벗어남이 없고 성경적이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저는 성경적이 아니면 어떤 것도 믿기를 거부합니다. 이것이 저의 정직한 고백이고 경험입니다.
그리고 “영적이고 새로운 계시”란 성경에 없는 새로운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히 성경에 나오는 것인데 우리가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거나 밝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바르게 분별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10. 변 목사님은 성령의 은사들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성령의 주된 사역은 무시하고 성령의 권능(능력)이 다른 사역자에게 전이된다거나 개인의 소원 혹은 요구에 따라 권능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언자학교를 통해서 예언자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예언이 훈련을 통해서 되는 것인가요?
답변: 제가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목사님들이 너무 지적이고 성령의 은사들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것이 한국 교회의 문제점입니다.
제가 성령의 주된 사역을 무시한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주된 사역은 거듭나게 하고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만큼 거듭남과 성화에 대해서 많이 설교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저의 주 메시지는 구원과 성화지 은사나 체험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은사나 체험에 대해 말을 거의 안하니 제가 그것을 집중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뿐입니다.
또 임파테이션은 모세와 70인 장로,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장로들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 은사를 받은 디모데에게 분명히 일어났던 일입니다. 물론 은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들의 안수를 그 통로로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지자학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시는데, 선지자학교는 훈련을 통해 예언자를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목회자들이 예언을 터부시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수많은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육과 훈련으로 예언사역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잘 훈련하고 가르쳐서 그들이 교회에 덕이 되도록 사역을 잘 하도록 바로잡아주고 있습니다.
11. 변 목사님은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제명되자마자 “대한예수교장로회 부흥측”이란 교단을 만드셨는데 매우 실망이 됩니다. 왜냐하면 역사상 나타났던 수많은 이단들의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 자체만으로도 변 목사님의 행보에 대한 의혹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답변: 죄송하지만 이 질문은 너무 편파적이고 논리적인 비약이 심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아니라 조사 결과 이단성이 없는 것을 알면서 존 웨슬리처럼 성경대로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출교시킨 교단의 처사에 대해서 실망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벗어나야 이단이지 궁지에 몰려 교단을 만든다고 이단들의 전철을 밟은 것이고, 그래서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너무 억지입니다. 이단은 이런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단사설을 가르쳐야 이단이 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이단사냥꾼들의 거짓과 음해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도 어디에도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교단이나 단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받아주는 교단도 없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기총조차 이단사냥꾼 4인방의 본거지가 되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한기총을 등에 엎고 오래도록 횡포를 일삼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교단을 박차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속 교단의 조사 결과 이단성이 없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교리상의 차이는 양해하고 교단에 남아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곱게 나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대위조차 이단성은 없고 장로교의 교리대로 설교하지 않으니 경고나 주의 정도를 주자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총회장을 지낸 한 사람의 정치적인 장난에 의하여 어처구니없게 출교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 교단의 내부 인사를 통해서 직접 전해들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각 언론사 국장님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나온 말이므로 그분들도 함께 들은 얘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니라 불의한 결정을 내린 그들을 성토해야 합니다.
12. 변 목사님에 대한 다음의 호칭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로 간증들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전투의 선봉장, 구원의 방주를 짓는 자, 나팔을 부는 자, 금괴를 나누어주는 자,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자, 목사님의 입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고 신자들은 로열젤리를 받아먹는다.” 변 목사님은 정말 이렇게 불려 지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답변: 자신을 ‘재림 예수’라 하거나 ‘보혜사’ 혹은 ‘감람나무’라는 표현을 했다면 몰라도 이런 표현들이 과연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런 표현들 중 상당수는 이미 큰믿음교회에서 폐기처분한 초창기 간증들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입신 간증들을 모은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이라는 책을 스스로 절판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험들을 다 믿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 사역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은 생소할는지 몰라도 예언 사역에서 이런 표현들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단순히 말씀의 은사가 주어졌다. 영적인 지도자 중 하나로 세워졌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위를 주셨다 등등의 의미로 많은 목사님들에게 적용되는 평이한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런 용어들이 익숙지 않아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런 표현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나의 진실한 고백은 이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무익한 종이요, 나는 죄인 중의 대괴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저를 통해 수시로 듣는 고백입니다.
13. 변 목사님이 인용하는 많은 은사사역자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인사들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의 예언이나 환상을 의존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특히 밥 존스나 타드 벤틀리에 대한 추문들은 알고 계시는지요? 이런 점들이 변 목사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변 목사님은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의 글을 계속 인용하실 계획입니까?
답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참으로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잠시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대적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주의 종들을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당연히 거짓말로 그들을 매도할 것 아닙니까?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당하신 것이고 그리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평판도 좋지 않았습니다. 평판에 의존해서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예수님부터 배척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사람들이 “거짓으로” 너희를 악하다고 할 것이라고 팔복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거짓된 소문들을 그렇게 쉽게 믿으십니까?
그리고 저는 타드 벤트리와 별 관계가 없습니다. 치유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 치유의 역사를 통해 전도하기 위해 집회에 한 번 초청했을 뿐이고 그나마도 상대방의 일방적이고 무례한 약속 불이행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밥 존스 목사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고 정말 닮고 싶은 분입니다. 저는 그분을 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잘 압니다. 그분은 제가 아는 가장 경건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풍성한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헛소문이나 음해성 글들이 아니라)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동시에, 저는 그분을 음해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도 잘 압니다. 교만과 시기심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정말로 악한 자들입니다. 그 중 정×× 목사는 오래 전부터 “변목사는 큰믿음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 “자기 교회로 옮기라는 예언을 한다”, “돈을 주고 거짓 간증을 쓰게 하여 인터넷에 올린다”,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친다”는 등 상식이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지어내어 유포한 자입니다. 전에 저는 이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으나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소 인정하던 사람도 큰믿음교회와 연결만 되면 그분들을 비난하는 상식 이하의 사람입니다. 큰믿음교회를 매도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입니다. 그가 목회하는 교회는 순복음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3개의 순복음 교단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옷도 아니고 베니 힌에게 얻은 흰 양복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걸핏하면 공개석상에 입고 나와 유치하게 과시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베니 힌의 맞지도 않는 옷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의 옷 아닙니까? 제가 만난 영성운동의 주요지도자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고개를 가로저었고 상종을 못할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5년 전부터 메일과 핸드폰, 전화를 통해 저희 교회 성도님들과 카페 회원들 그리고 목사님들에게 우리 교회를 음해하는 자료들을 끊임없이 퍼트렸고, “선지자와 ××” 카페와 “크리스천 ×××”이라는 엉터리 신문을 큰믿음교회를 음해하는 내용으로 도배를 하여 교계 곳곳에 보내고, 교계의 중요 모임이나 큰 집회에서 뿌려오는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악질적인 사람은 처음 봅니다. 직접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그들과 그 추종자들이 쓴 글들과 꼬리말들을 읽어보십시오. 조금만 읽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저나 우리 교회에 대해 새롭게 어떤 거짓말을 지어내든 읽지 않습니다. 그런지 오래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된 자가 지어내서 무차별 배포하는 거짓말에 이단사냥꾼들은 물론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단과 절대 다수의 목사님들이 그렇게 쉽게 속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한편, 밥 존스 목사님의 경우 국내에 번역된 수많은 국제적인 목회자들의 책에 그분과 얽힌 일화들과 놀라운 간증들이 나와 있습니다. 일일이 다 인용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그분은 수많은 국제적인 목회자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대신 “너는 나의 친구라”는 책에 나오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세 분 목사님의 추천서를 첨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용서하라!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른다”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밥 존스 목사님이 술주정뱅이라는 것은 회심하기 전의 일이며 성범죄자라는 것은 모함이었고 그들이 용서를 빌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 측의 모함이었고 후에 그들은 회개하고 이를 바로잡았으며 아래에 첨부한 대로 마이크 비클은 가장 적극적인 추천서를 보내왔습니다.
열세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 마이크 비클 목사님의 추천서
주님은 밥 존스 목사님께 경이적인 정확성을 가진 예언의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25년 이상을 예언 사역과 관계된 일을 해왔으며, 밥 존스 목사님은 진실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정확한 예언적 계시의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아무 주저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을 1983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밥 존스 목사님은 저에게 캔자스시티에서 24시간 예수님을 경배하는 청년 찬양 사역자들 및 음악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청년 사역 운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찬양 사역자도 음악가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하루에 24시간 동안 경배 찬양을 하는 그런 사역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밥 존스 목사님이 예언한 대로 매일 24시간 기도하는 국제 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이 세워졌고, 1500명의 전임 찬양 사역자들과 음악가들과 중보 기도자들이 이 사역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사역들의 많은 부분이 세워지도록 밥 존스 목사님을 통해서 하신 성령님의 사역에 매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밥 존스 목사님께 너무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훌륭한 인품과 겸손의 사람입니다. 그분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기도와 사역으로 오랜 세월동안 지치지 않고 섬겨 오셨습니다. 그는 종의 마음을 계발시켜 주는데 탁월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입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늘 겸손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데 끊임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지난 수년간에 걸쳐서, 제가 아주 중요한 예언적인 꿈을 꾸게 되었을 때 밥 존스 목사님은 바로 그날 아침에 제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다니엘 선지자가 느부갓네살 왕이 침상에서 꾼 꿈의 내용을 알아맞추었듯이, 제가 지난밤에 꾼 꿈의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단 한 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다섯 번씩이나 각기 다른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제가 그 꿈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꿈을 꾸었던 그날 밤 주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그 예언적인 꿈을 밥 존스 목사님께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님께서 저에게 꿈을 주신 동일한 밤에 밥 존스 목사님에게도 꿈을 주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 꿈에 대해서 은혜롭게 확증을 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오늘날까지 그 꿈을 통해 지속적으로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꿈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한 예언적인 사람에게 말씀해 주셔서 확증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을 주고 거듭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제가 처음 밥 존스 목사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서는 저의 심령 속에 가장 은밀한 비밀로 간직하던 일을 밥 존스 목사님께 보여 주셨습니다. 저의 육신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아버지께 아주 중요한 맹세를 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아주 개인적이고, 아무하고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나누거나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제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밥 존스 목사님께 영적인 꿈을 통하여서 그 일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께서 제 심령의 가장 깊이 숨겨져 있던 그 비밀을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제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25년 전에, 주님께서는 밥 존스 목사님께 현재 우리가 소유하게 된 두 개의 별도의 건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께서 그 건물들에 관한 세부사항들에 대해 예언해 주실 때, 저 는 저희가 그것들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가 그 두 건물 모두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건물을 제게 주신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인해 저의 믿음이 크게 자극을 받았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성령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을 통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저는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의 삶은 밥 존스 목사님의 사역에 의해서 영원히 변화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년간 또 다른 네 번의 상황들을 통해 밥 존스 목사님께서 저의 미래 사역에 대한 예언적인 환상을 받으셨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 예언적인 환상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증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밥 존스 목사님께 미래의 기후 변화에 대해서 미리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그 기후 변화가 일어날 구체적인 날짜들까지 예언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몇 주나 몇 개월 후의 날씨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1983년에 밥 존스 목사님은 캔자스시티에 3개월 동안 가뭄이 올 것이라고 전 교인들 앞에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적 환상을 확증하기 위해서 다시 비가 내릴 날짜도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물론 비는 바로 그날 왔습니다. 이를 통해 저희 교회는 크게 축복을 받고 격려 받게 되었습니다.
1987년 8월에 그는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1987년 10월 19일에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러시면서 저희에게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 선포해야 한다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 해 10월 19일에 주식시장은 무려 500포인트 이상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1929년 경제 대공황 이래 주식시장이 추락한 최악의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저희 성도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82년 제가 캔자스시티로 옮겨 가서 저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한 예언 사역자가 저에게 이루어질 네 가지 예언적인 약속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나누어 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밥 존스 목사님을 만났던 바로 그날, 그는 정확하게 그 네 가지를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도 놀라서 저의 제 온몸이 뼈 속까지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었습니다. 주님은 귀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밥 존스 목사님께 세계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을 세울 것을 확증해 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이후 10년이 넘게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찬양하고 중보 기도하는 그 사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삶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열매들은 이렇듯 쉽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 존스 목사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California Redding에 있는 베델교회 담임목사 빌 존슨 목사님의 추천서
밥 존스 목사님은 우리 교회에 영적인 아버지이셨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보배로운 분이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신선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베델교회에 심으시는 도구가 되셨고, 지난 10년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의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과 그들이 전 세계로 예수님을 위한 용사로 풀려 나가는 것을 보기 원하는 열망은 저희들에게 격려가 되어, 저희가 그들을 준비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의 겸손과 강직한 성품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닮고자 하는 목표가 되어 왔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그분의 지혜와 예언적인 은사를 통하여 교회의 리더들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일에 대해서도 기꺼이 상담해 주셔서 저희 교회 스텝들을 수차례 도와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밥 존스 목사님은 제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2009년 3월, 밥 존스 목사님이 입신에 들어가셨을 때 저의 생명이 위태로움을 보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그 입신 동안 저로 인해서 두렵기까지 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사단이 저(빌 존슨)를 취해가려고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한 제 평소의 입장은 ‘사단은 항상 나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벼르고 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밥 존스 목사님과의 친분과 그분의 사역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저에 대해서 아주 걱정하셨고, 제가 자연법칙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제 오랜 병이자 무시하며 살아왔던 탈장(Hernia)을 고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검사들을 다 받았는데, 그때 저의 혈액의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교인들의 기도가 영적 승리에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 사역팀들에게 저를 위해서 중보 기도할 사람들을 모으라고 하였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이 일을 전체 교회 교인들에게 모두 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조치도 내리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로 알려졌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 당황했지만 또한 너무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미 가지고 있던 병인 탈장(Hernia)의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이 아주 치명적인 빈혈상태이며 죽음의 고비에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밥 존스 목사님의 예언적인 말씀 덕분에 제때 다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신뢰할 만한 친구이며 저희 교회에 하나님이 보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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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밥 존스 목사님을 수년간 알아 왔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권능을 지닌 분이며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깊은 겸손의 사람인 밥 존스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책을 읽게 되실 때 여러분의 삶이 크게 축복받게 되실 것입니다. 분명히 밥 존스 목사님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전체에 커다란 축복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선지자입니다.
14. 현대 한국교회의 목회자 90%가 거짓 목사라는 말을 하셨는데 변 목사님도 정통 한국교회의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셨으니 자신도 거짓 목사라고 스스로 자인한 셈이 됩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이것은 오해입니다. 이것은 서울 큰믿음교회도 생기기 전인 오래 전에 했던 말로 거짓 목사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것을 이단사냥꾼들이 설교의 원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문맥은 자르고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퍼트린 것입니다. 그때 제가 사용한 “거짓 선지자”라는 표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거짓 선지자들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와 로이드 존즈가 산상수훈을 강해하면서 설교에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자들을 그 자신은 구원받았고 진실한 목회자일지라도 메시지에 있어서 거짓 선지자라고 말했는데 같은 의미로 거짓 선지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즉 옥한흠 목사님이 상암경기장에서 “한국교회의 지도자 여러분!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됩니까? ‘입만 살았고 행위가 죽어버린 교회를 만든 책임은 너에게 있어.’하고 따지신다면 ‘나는 아니오.’ 하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라고 담대히 지적한 것처럼 복음진리를 희석시키거나 타협하지 않고 강하게 그대로 설교하는 목사가 너무 적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퍼센티지는 그런 설교자가 적다는 것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실제적인 수치는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저는 곳곳에 진실하고 존경할만한 많은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대로 타협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목사가 적은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네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1)
저의 책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170~174p, 179~184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대해 말씀하신 직후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경계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참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을 걸으라”고 외칩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는 자기를 좇게 하려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가도록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존 웨슬리는 거짓 선지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대사가 마귀의 대사로 변하여, 하늘로 가는 길을 가르치라고 명령받은 자가 실상은 지옥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의 길을 영생의 길이라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따라 좁은 길로 가지 말고 넓은 길로 가라고 한다... 거짓 선지자의 가장 뚜렷한 표준은 많은 사람이 가고 있는 넓은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하늘로 가는 참된 길은 좁은 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늘로 가는 참된 길은 산상수훈 전체가 지적한 그 길이다. 그러므로 여기 지적한 그 길을 가도록 가르치지 않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산상수훈의 전체 설교가 지적한 하늘가는 길이란 곧 겸손, 애통, 온유, 거룩한 의욕,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선행, 그리스도를 위한 수난 등이다. 그러므로 이 밖의 다른 것을 하늘가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로이드 존즈 역시 웨슬리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는 그의 복음에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거짓 선지자는 좁은 문을 들어가며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할 절대 필연성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아가서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설교 시에 침묵하는 진리들이 무엇인지를 폭로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에 대해 침묵합니다.
(2) 거짓 선지자는 심판과 지옥에 대해 침묵합니다.
(3) 거짓 선지자는 죄의 사악성에 대해 침묵합니다.
(4) 거짓 선지자는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 침묵합니다.
(5) 거짓 선지자는 성결한 생활에 대해 침묵합니다.
(6) 거짓 선지자는 자기기만의 위험성에 대해 침묵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특징입니다.(...중략)
2. 거짓 선지자는 어디에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가 정통교회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짓 선지자는 교회 밖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대부분의 거짓 선지자는 유대교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마치 그와 같이 오늘날도 대부분의 거짓 선지자들은 정통 교회 안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라는 부분에 나오는 “나”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설교자들은 여기서의 ‘나’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 즉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릭 조이너는 다른 견해를 피력합니다. 그는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며,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가르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합니다. “추수”라는 책에서 릭 조이너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거짓 교사나 거짓 선지자이면서 그럼에도 주 안에서 거듭난 형제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 예수께서 친히 이를 경고하여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자기들이 그리스도라고 하며 나타날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주님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들이 와서 예수가 실로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미혹케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릭 조이너의 이러한 해석이 옳은 것인지 아닌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만큼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렇게 가르치지만 그러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들 교회 내부의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사람들을 좁은 문과 좁은 길로 인도하지 않고 멸망케 할 넓은 문과 넓은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지옥에 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동시에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록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 무지하여 그렇게 설교했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거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자들은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가르쳤을 뿐 아니라 잘못 생활한 자들은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정리해보면, 거짓 선지자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탐욕을 품고 있는 전형적인 거짓 선지자가 있고 마음은 바르지만 무지나 편견 때문에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랑이 충만하고 선량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거듭났고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경우 비록 그들이 거짓 선지자의 노릇을 했더라도 그 영혼은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일한 대로 상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열네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2)
옥한흠 목사님의 평양대부흥 100주년기념 성회 설교 내용입니다.
저는 사데교회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다는 불안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요? 이름은 살았으나 행위가 죽었다고 책망 하시지 않으실까요?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목사가 있습니까?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장로가 있습니까?...
수십 년 목회를 하면서 목자에 목사에 입장에 서면 이름은 요란 하지만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을 저는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여러분 아시고 싶습니까? 이렇게 하면 됩니다. 목사가 말씀을 가르치거나 설교를 하면서 복음을 조금씩 변질시키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복음이 얼마나 변질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둔감해지면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이름만 살았고 행위는 죽어지고 죽어질 수 있습니다...
청중은 원래 귀에 듣기 좋은 말씀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면 모두가 아멘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늘의 복도 받고, 땅의 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면 할렐루야 하고 열광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구원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은 얼굴이 금방 굳어져 버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를 지적하거나 책망하면 예배 분위기가 금방 싸늘해져 버립니다. 듣기가 싫고 몹시 거북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 저는, 비슷한 반응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청중의 반응에 예민해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을 일부러 골라서 설교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신 죄라든지, 회개라든지, 순종이라든지, 거룩이라든지 하는 듣기 피곤한 말씀은 할 수 있으면 피하거나 꼭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하고 싶어하는 유혹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절대로 바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절대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강단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 결과 저도 모르게 복음을 조금씩 조금씩 변질시키는 설교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믿음만 가지고 떠드는 값싼 은혜에 안주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를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하는 놀라운 복음을 재발견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의로운 행위는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비텐부르크에서 34년간 4천 번 이상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루터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곡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죄 좀 지었다고 해서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냐 하면서 자기 욕심대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도시는 믿음의 방용이 난무하는 타락한 사회가 되어갔습니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면서 루터는 자기 설교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설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목사라면 설교하기보다 차라리 수레를 끌고 돌을 운반하는 편이 낫겠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루터가 우리에게 주는 아주 값진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교회의 지도자가 복음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믿음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믿음의 열매가 되는 행함을 등한히 다루던지 무시하면 입만 살고 행위가 죽어버리는 사대교회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0절을 보면 바울은 유익한 말씀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전하고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바울처럼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하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 것은 먹이고, 쓴 것은 할 수 있으면 먹이지 않으려는 나쁜 설교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설교자는 청중에게 인기가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 여러분!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됩니까? “입만 살았고 행위가 죽어버린 교회를 만든 책임은 너에게 있어.”하고 따지신다면 “나는 아니오.” 하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평양대부흥의 진정한 기념은 복음을 변질시키고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든 죄를 놓고 가슴을 치는 목회자들의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하신 간절한 주님의 소원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님은 행위가 죽은 사데교회를 향해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회개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똑같은 명령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15. 일반적으로 이단은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높이는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변 목사님의 책 중에는 그런 의심이 가도록 하는 대목이 발견됩니다. 이를테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서문에서 “이 시간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천사 중 직위가 높고 강력한 한 천사가 변승우 목사님 곁에 와 있습니다... 교회들에게 전하실 말씀을 기록하는 천사가 이곳에 와 있습니다. 변 목사님의 입을 통하여 변 목사님의 서적을 통하여 이 천사가 큰믿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밝히 보이실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샨 볼츠의 예언인데 “그런데 큰믿음교회를 상징하는 등잔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위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등잔이 높은 곳에 올려 졌기 때문에 이 등잔에서부터 많은 빛들이 뿜어져 나와 그 등잔에서 나오는 빛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음을 제가 보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 목사님은 자신과 자신의 교회가 가장 높아질 것이라는 예언을 전적으로 확신하십니까?
답변: 이것은 저 스스로 한 말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제게 예언한 것임을 먼저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샨 볼츠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면 저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말씀의 은사를 제게 주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경험적으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예언은, 저는 고교시절부터 세계 최대의 교회를 꿈꾸어왔으며 그렇게 될 것을 확고하게 믿어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영혼들과 열방을 위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부족 때문에 과연 제가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못하면 나보다 자격을 갖춘 젊은 세대들이 하게 하자’ 라는 생각으로 요즘에는 후진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내가 그렇게 크게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렇게 크게 쓰임 받을 사람들을 길러내고 그들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이 저의 주 사명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설사 저희 큰믿음교회가 예언대로 그렇게 커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저의 크기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사용하여 큰일을 행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위대함이 나타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천국에서는 교회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주님을 닮았느냐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저는 인격적으로 매우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천국에서 작은 자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목표는 천국에서 중간정도쯤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자신의 부족 때문에 시험에 들곤 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자신의 부족을 강하게 절감하게 되어 저를 버리시고 저보다 적합한 사람을 세워달라고 수일간 기도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전 교인들 앞에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성도님 한 분이 큰 소리로 “힘내세요!” 하더군요.
저는 지금 제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마음이기 때문에, 저는 다른 부교역자를 담임목사인 저보다 높이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일예로, 자체 부흥회 때 부교역자들을 강사로 세우고 저는 사회를 보았고, 전에는 물론 지금도 수시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영성과 인격이 뛰어난 부 목사님들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있습니다. 큰믿음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부족한 제가 아닙니다. 먼저는 주님이시고 다음으로는 여러 부교역자들과 주님과 사랑에 빠진 평신도 중보기도자들입니다. 그리고 말없이 헌신하는 봉사자들입니다. 저는 그분들 앞에서 저 자신이 매우 작은 자임을 나날이 더욱 깊이 절감합니다. 그래서 부교역자과 인기경쟁을 하거나 견제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앞장서서 그분들을 저보다 더 높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쓰임 받는 부족하고 작은 자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희 교회 인터넷 카페에 지난해부터 올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서울 큰믿음교회 신년맞이 심령대부흥회
장소 : 서울 큰믿음교회
강사 : 진성원 목사, 변애경 전도사, 김옥경 전도사
일시 : 2009년 1월 5-7일
이번 성회는 큰믿음교회의 자체 성회로 담임목사가 사회를 보고 기름부음이 가장 강한 부교역자들이 강사로 섭니다.
이상 여러분의 질문에 꾸밈없이 정직하게 답변 드렸습니다. 제 답변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출판된 30권이 넘는 저의 책들과 모두 인터넷에 공개되는 제 설교들을 통하여 얼마든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주장과 가르침과 고백들은 모두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숨기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교단과 단체들은 시기심과 개교회(혹은 교단) 이기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오만과 편견 때문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거짓 정보들에 의해 다른 교회와 목사를 이단으로 매도하는 데는 그 발이 빨랐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실 조사를 거쳐 이단성이 없고 매도된 것임이 것이 밝혀져도 깨끗하게 손을 들어주고 누명을 벗겨주지 않고 빌라도처럼 정치적으로 행동하며 비겁하게 대야에 손을 씻어왔습니다.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 각 교단 이대위의 조사는 죽이기 위한 조사지 살리기 위한 조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형제를 참소하는 자인 원수 마귀의 악질적인 하수인인 이단사냥꾼들의 공범이 되어왔습니다. 이것은 심히 불의하고 추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귀 교단이 모든 교단이나 단체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1차로 보여주셨습니다. 바라옵기는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정치적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서 공정하게 조사하시고 제가 이단이라면 이단이라고 발표해주십시오. 그러나 이단이 아니라면 침묵하지 말고 이단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천명해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도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이요 여러분의 형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한국 교회에 새로운 귀감이 되어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큰믿음교회에서 주님을 수종드는 작은 종 변승우 목사 올림
이상으로, 기성에서 보낸 질의서와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저는 기성교단이 다른 교단과 달리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들이 이단시비 거리가 된다고 보십니까? 이단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부정하고 이단사설을 주장해야 이단입니다. 그런데 2차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이단사설이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저는 이 질문들이 오히려 큰믿음교회가 이단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교회에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한기총은 마녀사냥식 이단사냥에 앞장 서온 직업적인 이단사냥꾼들과 다른 교회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말과 왜곡 된 말들을 제조해 온 한국의 정×× 미국의 김× 목사와 이×× 권사 등을 엄벌하여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해주십시오. 어느 재판에나 검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한기총과 교단 안에는 검사만 있지 변호사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대위 뿐 아니라 억울하게 이단으로 매도된 교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분쟁조정위원회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2. 통합을 위시하여 고신, 합신, 합동, 백석 등 큰믿음교회에 대하여 불의한 결정을 내린 교단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속히 회개하고 총회 때 이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3. 불의한 결정과 거짓 정보를 그대로 믿고 강대상에서 큰믿음교회가 이단이라고 실언한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을 포함한 모든 목사님들은 즉각 강대상에서 이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4. 일부 교단들의 편파적인 결정을 진실인양 보도한 모든 기독교 방송과 언론은 정정방송과 기사를 내주십시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것을 한국 교회에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정치 집단처럼 되어선 안 됩니다. 신앙양심에 따라 깨끗하게 큰믿음교회 결백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큰믿음교회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동안 큰믿음교회를 오해했던 모든 분들을 용서하고 축복합니다.
첫댓글 주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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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섬기는 모두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옵소서 비통해하실 주님을 보게하소서
주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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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한국교회를 살리소서 ![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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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렴치한 목사들이 신자들이 눈을뜨고 주님을 보게 하소서 ![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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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 주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주님을 찬양하는자들이 되게 하소서 ![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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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목사들은 사임할찌어다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주님의 영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목사들 떠나가라 ![ㅎㄷㄷ](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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