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이것은 2001년 메이데이 구호가 아니다. 이것은 1923년 '조선노동연맹회'의 주최로 열린 한국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의 핵심 요구안 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짐작했겠지만, 굳이 80여년 전의 노동절의 예를 든 까닭은 노동절의 역사적 유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낡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추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란...
일단은 도대체 '노동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지부터 살펴보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하면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구릿빛 얼굴의 억센 남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가 '노동자'를 정의할 때 핵심은 그가 자신 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고용되어서 월급(임금)을 받기 위한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다 정확한 정의는 '임금노동자'다. 그리고, 이 기준에 맞추어 본다면 이 나라에서만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인 1302만 명이 '노동자'다.
다시 말하면, 분필가루 날리는 교사도, 주사기를 든 간호사도, 술나르는 써빙맨도, 컴퓨터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는 프로그래머도, 백화점 앞에서 피곤한 웃음으로 제품을 소개하는 나레이터 모델들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인터넷에서 정보의 바다를 헤멜 정보검색사도, 은행창구에서 잔돈을 거슬러 주는 은행원도 그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있다면 모두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대학생들의 다수는 사무직 노동자로 자신의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절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노동자가 사회의 다수라는 의미는 단지 수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가 역할을 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노동자, 노동계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절의 탄생
노동절의 유래는 1886년 미국의 시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경제는 급속히 산업화되었다. 그 와중에 노동조건은 매우 악화되었다. 12시간, 14시간, 심지어는 18시간을 일하면서도 거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시기에 독점이 늘어나고 록펠러 같은 부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갑자기 늘어난 부를 주체하지 못해 1만 5천 달러 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애완견에게 걸어주거나 100달러 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피우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한편, 노동자들은 이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츰 단결하기 시작했다. 1886년 "미국노동총동맹"이 결성되었다. 노동자들은 특히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8시간 노동제" 확보에 커다란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구두'(8시간 노동제를 실시한 공장에서 생산된 구두)를 신고 '8시간 노동담배'를 피우면서 "8시간 노동제" 도입을 위한 파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 정부와 사장들은 이런 '불온한' 분위기를 가만히 두지 않았고 1886년 4월 7일 세인트루이스에서는 7명의 노동자가 피살되기까지 했다. "미국노동총동맹"은 그 해 5월 1일 8시간 노동제 확보를 위한 총파업을 호소했다.
<뉴욕타임즈>같은 유수한 언론들은 이 파업을 사회혼란을 노린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이라고(어쩜 사장들의 언론은 국적을 불문하고 이다지도 똑같은가?)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호들갑과 경찰, 군대의 중무장이 무안하게도 미국의 주요 도시 곳곳을 멎게 한 총파업과 행진은 평화적으로 끝이 났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5월 3일 '매코믹 농기계 공장'에서 파업중이던 노동자들을 30여 명의 깡패들이 몰려 들어와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수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에 반격을 당한 깡패들이 쫓겨날 즈음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권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을 포함해 여섯 사람이 살해되었다.
다음날 저녁 시카고 헤이마킷 광장에 노동자들이 항의집회를 위해 모여들었다. 경찰이 이 집회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폭탄이 터졌고 경찰은 미친 듯이 곤봉을 휘둘렀다. 이 사고로 경찰 한 명이 사망하고 일곱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다음날 전국의 신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논조는 피에 굶주린 노동자들이 경찰을 습격했다는 식이었다. 경찰은 즉각적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단체의 사무실을 습격하고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체포된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은 요식에 지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사장들과 그 하수인들로 구성되었고 판사는 편파적이었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정작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이 사회임을 논리 정연하게 주장했다.
"나는 이 도시의 빵집 노동자들이 개새끼처럼 취급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조직되는 것을 도왔다. 이것이 죄란 말인가? 이들이 16시간씩 일하는 대신 10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이것도 죄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죄를 저질렀다. 나는 맥주 양조장의 노동자들이 새벽 4시에 출근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밤 7시나 8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들을 조직하였다. 이것이 나의 큰 죄이다. 나는 잡화상의 점원들이 밤 11시까지 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을 충동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밤 7시까지만 일하고 일요일은 쉬게 되었다. 이거야말로 큰 죄가 아닌가?" (니베)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그러면서도 해방되기를 애타게 원하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그대가 생각한다면 기꺼이 나의 목을 그대에게 주겠노라! 그렇다. 그대는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방에서 불꽃은 들불처럼 끊이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이 들불은 결코 끌 수 없으리라!" (스파이즈)
재판은 끝났다. 1886년 9월 9일 체포된 8명의 지도자 중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장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이들에게 물었다.
"언젠가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를 목매다는 당신들이 사형을 명령하는 소리보다 더욱 강력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스파이즈)
"내 말을 듣겠다고? 그 전에 민중의 소리를 들어라!" (파슨즈)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일깨웠다. 1889년 7월 4일 20개국 396명의 노동자 대표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국제 노동자 기구인 제2인터내셔널을 창립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과시하기 위하여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의 날', 'Mayday'로 할 것을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8시간 노동이 노동력을 보다 새롭게 하는 활기를 주고, 인류의 퇴화를 방지하고, 대다수 노동자로 하여금 인간다운 지적, 도덕적 생활로 이끄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더욱 명백해졌다. 우리는 노동자가 이 절박한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희망을 실현시키려는 의사를 더욱 강고하게 할 것을 주장한다."
이 선언을 통해 "노동절은 노동자의 단결을 과시하는 날,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결의를 다지는 날, 그리고 노동자 국제연대의 날"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여전한 빈부격차
우리는 노동절의 탄생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증대하는 빈부격차와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기념하고 이어가기 위해서임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더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자본주의는 과연 이런 현실을 완화시키는데 성공했는가? 드러난 모든 자료는 자본주의가 더욱 성장한 결과에 이런 모순의 완화가 포함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UN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자 225명의 재산이 1조 달러가 넘으며 이 돈은 재산 순위의 뒤에서부터 47%에 해당하는 약 25억 명의 수입총액과 맞먹는다. 이 중의 10억이 기본 필수품이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개도국 44억 인구 중 2/3가 하수도와 위생설비없이 생활하고 있으며, 1/3이 식수공급을 못 받고 있으며, 1/5이 영양실조에 빠져 있으며 의료혜택을 못 받고 있다.
단돈 400억 달러면 이것이 해결된다. 단돈 400억 달러라고? 이 돈은 앞서 말한 갑부 225명 재산의 4%에 불과하다.(그야말로 껌값이다) 세계 최대 갑부인 빌 게이츠는 혼자 이 돈을 다 물어도 1위 자리에 이상이 없다.
선진 공업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도 노숙자가 1억 명에 달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최대갑부인 정주영 일가의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은 지난 해 액면가 5,000원인 주식을 52,000원에 자기회사 직원들에게 양도해 이 주식투자로만 총 1,982억 원을 벌었다. 하루에 5억 4천만 원을 번 셈이다! 이것을 8시간 노동으로 계산하면 정몽준은 한 시간에 6,700만 원을 번 셈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나게 일해도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1년 노동절은
앞에서 우리는 노동절이 노동자의 단결을 과시하는 날,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결의를 다지는 날, 그리고 노동자 국제연대의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노동절이 제정된 이후 110년이 지난 지금의 세계도 노동자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도 살펴보았다.
따라서, 여전히 "이 절박한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희망을 실현시키려는 의사를 더욱 강고하게 할 것을 주장"하는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절 선언은 우리에게 유효하다.
이런 요구의 정당성은 정부 통계를 보아도 드러난다.
"고통분담의 헛소리"가 난무하던 IMF이후 2년 사이에 소득 수준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9.5% 증가했다. 반면 다음 순위들은 차례로 4.6%, 5.8%, 9.8%, 17.9% 하락했다. "20:80의 사회"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1억이 소득인 사람의 5%와 200만원이 소득인 사람의 10%는 다르다는 것이다. 퍼센티지 숫자는 가끔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상위 20퍼센트의 2년간 소득 증가분만으로도 나머지 80퍼센트의 소득 전체의 2배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 44시간제가 무색하게 전 산업이 공황적 위기에 빠졌던 98년조차 45.9시간이 평균노동시간이었다. 제조업은 46.1시간이었다. 이는 다른게 아니라 법정 노동시간만으로는 충분한 생계비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후 평균 노동시간은 다시 늘어 전산업 47.7시간, 제조업은 49.8시간이다. 여기에다 초과근무로 계산되지도 않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시간외근무를 덧붙인다면 실제 노동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고용도 불안해져 1302만 명의 임금노동자중의 52.9퍼센트가 비정규직(일용직+임시직)이다. 이는 IMF이후 9.6% 증가한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실제 사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하는 일의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68.5%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험모집인,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등은 노동자 임에도 불구하고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 노동자로서 사회적 보호를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업자 수도 정부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10월 76만 명에서 불과 4개월만인 2001년 2월 107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고 실업률 또한 5%에 달했다. 사실은 더욱 심각하다. 경기침체로 인해서 구직을 포기한 실망실업자의 증가로 1997년에서 2000년까지 비경제활동 인구평균비율이 38.975%였던 것이 2001년에는 41.5%로 2.5%증가했다. 즉 늘어난 2.5%의 비경제활동 인구는 실업률 통계에 계산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업자와 그의 가족들의 고통은 이러한 통계가 보여주지는 못한다.
한국의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자의 비율(중대재해율; 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98년 현재 한국의 중대재해율은 2.92로서 미국의 58배, 영국, 일본의 29배, 스웨덴의 13배, 프랑스의 6배, 독일의 4배에 이른다.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홍콩보다는 3배 높고, 멕시코, 싱가포르, 태국 등보다도 2배 많다. 하루 7명 이상의 산재사망율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111주년 노동절의 요구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간호사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면 평범한 환자들이 불이익을 본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되어 차량정비를 소홀히 하게 되면 만원 지하철을 부득이 타야하는 평범한 승객들이 사고의 위험에 처한다. 그리고, 그 평범한 환자와 승객의 범주에 누가 들어가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16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이 8시간씩 일하게 하는 죄를 짓자.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을 충동하여 밤 7시까지만 일하고 일요일은 쉬게 하는 죄를 짓자. 그리하여, 115년 전 처형된 미국 노동자들의 지도자들을 사형시켰던 목소리보다 그들의 침묵이 더욱 강력했음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