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정신이 살아있는 칠곡
어느새 날씨가 더워지고 아까시꽃 향기가 날리는 가운데 칠곡답사를 갔다.날씨는 맑고 구름이 조금씩 흘러갔다.
그림 1) 호국평화기념관
나는 첫 답사지인 석적읍 중지리에 있는 호국평화기념관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
아침이라 청소하는 분들과 출근하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의성에서 오신 분들과 만나서 인사를 하고 차를 대고 기념관에 갔다.기념관은 지은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하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서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계기가 된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하는 공간으로 사실감 넘치는 전시와 다채로운 체험을 통하여 호국 안보의식과 나라사랑 정신을 가슴 속 가득 담아가는 곳이다.
바깥에는 호국평화탑과 이야기벽과 호국광장과 참전용사비와 왜관지구 전적기념관과 낙동폭포가 있어 기념관을 올라가면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기념관 뒤편에는 낙동강 전투를 55일간 한 의미로 높이 55m짜리 국기게양대가 있어 큰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입구에서 1인당 입장료 3천원을 내고 들어갔다.총알로 구멍이 뚫린 큰 철모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기념관 직원이 찍어주었다.9시 50분에 '천평계곡 운명의 결전' 체험을 하러 들어갔다.
친절한 직원이 주의사항을 들려주고 내 사진가방도 떨어진다고 따로 챙겨주었다.
이 체험은 가상으로 전차 안에 타고 적의 전차와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5분의 체험 시간이 지나고 나와서 모형총을 들고 화면에 나오는 전차와 비행기를 맞추는 체험도 했다.여러 체험을 둘러보고 나서
한 층을 올라가서 낙동강 전투에 대한 전시물과 영상물을 보고 나서 구상문학관으로 향했다.
그림 2) 구상 문학관
시원한 낙동강 바람을 맞으며 구상문학관에 도착했다.
구상 문학관(具常文學館)은 칠곡군청의 소속 기관으로서, 낙동강을 소재로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한 구상(具常)[1919~2004] 시인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재조명하여 거목 구상의 발자취를 오래도록 기리고 지역민과 문학인들을 위한 문학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건립하였다.
마당에 들어서자 구상 시인의 시 '그리스도 폴의 江(강)'이라는 시가 넓적한 돌에 새겨져서 읽어보았다.
강물을 대하는 시인의 느낌이 살아나는 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백종환 칠곡군 해설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순서대로 차근차근 설명을 들었다.
구상 시인의 가족은 천주교 신자였고 원산에 있다가 베네딕도 수도원이 이곳 칠곡군에 옮겨오면서 같이 왔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구상준이며 젊은 시절에 폐병에 걸렸지만 아내 서영옥 여사의 보호아래 작가로서의 길을 열심히 갈 수 있었다.
그가 쓴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유치찬란,까마귀' 라는 책제목이 눈에 띈다.
친하게 지냈던 중광스님의 글과 그림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에 받은 훈장증도 있다.
같이 문학적인 교류를 가졌던 이무영 농민문학소설가,공초 오상순님,마해송 아동문학가,김광균 시인,이중섭 천재화가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 놓았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시인이 직접 옛날 원고지에 쓴 글들과 남긴 물건인 중절모,넥타이,돋보기,웃옷,만년필,안경,목걸이,허리끈이 보인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시인이 살아있을 때 머물렀던 관수재도 보인다.
30분간의 설명을 듣고 나오다보니 마침 칠곡군에 사는 여환숙 경북향토사 선생님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옛날에 여기서 근무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백종환 해설사님과 같이 매원마을로 향했다.
그림 3) 매원마을
더운 가운데 매원마을에 왔다.
매원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칠곡 매원마을을 일컬어 영남의 3대마을이라 불렀다.
본래 300 여 채의 와가와 200 여 채의 초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낙동강 전투)으로 인하여 거의 다 소실되고 현재는 60 여 채가 남아있다 .
차에서 내려 입구의 마을안내판 앞에 와서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호당,박곡종택,지경당을 가기로 했다.
감호당에 들어가니 약간 높은 곳에 집을 지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 담양부사를 지내고 흥학에 힘쓴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가 매원마을의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한다.
감호당에 관한 유래를 듣고 있으니 주인분이 오셔서 인사를 하고 커피를 뽑아주셔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듣고 해설사님이 주련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서 듣고 시원하게 쓴 수월헌,감호당 글씨도 살펴보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박곡종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곡종택은 조선시대에 대사헌을 지낸 이원록의 집이다.
집 안에는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안채와 대문 채만 복원된 상태다.
6.25 전까지 이곳을 매원 초등학교 임시 학교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6.25전란때 인민군 임시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나중에 국군의 반격으로 소실된 건물을 1988 년에 다시 신축한 건물이다.
대문을 들어가니 마당에 흰꽃,분홍꽃,붉은꽃이 가득 피어서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집이 참 깨끗하고 멋스럽다.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집 오른쪽으로 가니 우물이 있었다.
아직도 사용하는지 긴 줄에 두레박이 달려있다.우물은 꽤 깊어 보인다.
우물 뒤편의 사당도 둘러보고 나와서 대문으로 갈려던 참에 집주인분이 나와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당벽이 6.25전쟁때 총알맞은 흔적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지경당으로 갔다.
지경당은 광주인 이이종(李以鐘)[1831~1878]이 차남 이지연(李志淵)[1858~1931]을 분가시키기 위해 건립한 주택이다. 매원리 하매마을에 있던 풍각댁 정침을 이건하여 정침을 삼고, 그 외 건물은 후대 건립하였다.
오래된 느낌이 나는 집으로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집 오른쪽에는 바나나가 자라고 있다.
해설사님이 안쪽 집은 여자가 거처하던 집으로 시집오면 아랫채에 살다가 시어머니가 죽으면 본채로 옮기고 나이가 많아지면 본채 맞은편 앞방으로 옮긴다고 했다.또 딸은 본채의 오른쪽 떨어진 방에 산다고 했다.
가지런한 장독대와 사람그림이 그려진 옛날 농과 우물이 눈길을 끈다.
해은고택으로 갔다.
해은고택(海隱故宅)은 매원 마을의 주택 중에서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잘 갖추어진 주택으로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상매 마을의 야산 자락 아래에 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이동유가 1788년(정조 12)에 건립하였으며, 사랑채는 1816년(순조 16)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들어가는 골목의 흙돌담이 졍겹다.
세들어 사는 주인분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 다 둘러보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나서 식당앞 최신 '그네의자'도 구경했다.
그림 4) 경수당
지천면 신리에 있는 경수당으로 갔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가 거처했다고 전해 온다.
중사랑채 동측 토석담을 ‘담양담’이라 하는데, 이는 담양부사(潭陽府使)를 지낸 석담 이윤우의 선정(善政)에 보답하기 위해 담양 사람들이 와서 담을 쌓은데 연유한다.
경수당을 들어서니 흙담을 높이 해 놓았다.안쪽으로 들어서니 새로 지은 건물이 보이고 흙담은 뒤편으로도 높게 쌓아놓았다.
입구에 나와서 오른쪽 대문을 들어서니 주인분이 반겨주신다.그 쪽은 담이 알맞은 높이로 되어 있고 멋스럽다.
주인분이 노란 죽순차를 주셔서 마시니 맛이 특별하다.
그림 5) 낙화담과 낙화암
근처 지천저수지에 있는 낙화담과 낙화암에 갔다.
임진왜란때 왜병에게 포위된 동민들은 왜병의 손에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자면서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그 때 죽은 사람이 대부분 부녀자였으므로 이 바위 절벽을 낙화암이라 하고 못을 낙화담이라고 한다.
저수지 입구에 낙화담 표지석과 유래석이 있어 내력을 읽어보고 저수지도 보니 쏘가리만 유유히 헤엄친다.
그림 6) 쌍렬비각
심천2리로 가서 쌍렬비각을 보았다.
이심옥의 부인 현풍곽씨와 현풍곽씨의 딸인 광주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642년(인조 20)에 응교 이도장이 비문을 지어 세웠다. 원래 현풍곽씨가 투신한 낙화담이 있던 신리 웃갓마을에 건립되었으나 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비각 근처에 지금은 축사가 들어서 있어 소를 키우고 있다.유래석이 있어서 읽어보고 안쪽으로 들어가 비도 보고 나왔다.
그림 7) 세심정
마을회관 옆에 있는 세심정으로 갔다.
세심정은 조선시대 중종 때 구례현감(求禮縣監)을 지냈던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인부(李仁符)가 관직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유상(遊賞)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자손들이 흩어지고 정자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36년에 후손들이 새로 터를 골라 중건(重建)했다.
이 정자는 정문은 잠궈놓고 왼쪽편 담을 헐어 입구를 넓게 해 놓았다.들어가니 약간 높은 곳에 있고 바로 앞에는 냇가가 있고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정자를 온통 니스칠을 해 놓아서 반짝거린다.편액글씨가 멋있게 써놓았다.
그림 8) 충노 수남지묘
심천저수지 뒤편의 충노 수남지묘에 갔다.
수남이라는 노비가 임진왜란 때 주인 이심옥의 아들 이원우를 피란시켜 후사를 보전케 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광주이씨 집안에서 수남을 위하여 만든 무덤이다.묘는 심천1리 설고개에 있다가 2009년 고속철도공사로 심천2리 그 때의 상전 사의공 묘하에 이장하였다.
마을 바로 뒤편 길가에 있다.아담한 묘와 비와 유래석이 보인다.
묘비에는 '忠奴守男之墓(충노수남지묘)"라고 새겨져 있다.유래석을 읽고 나서 무덤 오른쪽 위편에 있는 수남의 주인과 아들 묘에 갔다.아래쪽은 아들 이원우와 부인의 묘가 나란히 있고 위쪽에는 이심옥과 부인의 묘가 합장되어 하나의 묘가 있다.
둘러보고 나오다 그늘에서 심천저수지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남숙선생님이 준비해온 간식을 먹고 답사를 마쳤다.
20170513_094506.jpg(호국평화기념관)
DSCN3522.jpg(구상 문학관)
DSCN3567.jpg(매원마을)
DSCN3602.jpg(경수당)
DSCN3606.jpg(낙화담과 낙화암)
DSCN3614.jpg(쌍렬비각)
DSCN3617.jpg(세심정)
DSCN3630.jpg(충노 수남지묘)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죽순차를 처음 맛본 답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