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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기도문
-김선우의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민음사/2015)
정 승 원(비평공간 클리나멘 동인, 러시아문학/문화기호학 전공)
Ⅰ. 『사람의 문학』이번 호 서평란에 다룰 작품은 시인 김선우의 신작 소설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이하 『발원)』이다. 지금까지 서평란에 소개한 책들이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서들이라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 호부터는 『사람의 문학』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싶은 외국 문학 작품들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쪽으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비채/2012),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 콤비의 『열두 개의 의자』(시공사/2013)를, 중남미 쪽으로 올해 타계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따님/2005), 『시간의 역사』(휴머니타스/2011),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책보세/2010)를, 폴란드 쪽으로 시인 김정환이 혼신의 정열로 번역한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문학동네/2014)를, 체코 쪽으로 카렐 차페크의 희곡『곤충극장』(열린책들/2012), 소설집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모비딕/2014),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모비딕/2014)를 물망에 떠올렸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은 20세기/21세기 각 지역의 문학을 대표하는 주옥같은 걸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몇 년 전부터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서 우리나라 문학 독자들의 시야와 감성을 넓혀주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는 대로, 이 작가들과 작품들을 꼭 지면에 소개하고 싶다. 특히, 올 초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타계 소식을 듣고 난 뒤, 그의 작품 세계를 꼭 한번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남미와 세계의 숨겨지고 감춰어진 역사를 독특한 문학 형식 속에 담아내고 있는 그의 문학작품들은 역사와 문학의 관계, 그 예술적 표현방식을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든다.
서평 소개 책을 찾으려고 외국 작품들을 틈날 때마다 뒤적거리고 있는데, 친한 선배가 극찬과 함께 김선우의 신작소설『발원』을 소개해주었다. 솔직히 시인이 쓴 소설이라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섣부른 판단이 오류였음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서평을 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선우의 이번 소설은 수작이다. 관념과 이야기가 균형있게 잘 버무르져 있고, 등장인물 각각이 생동감있게 살아 있으며, 우리 시대의 현실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치열하게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는『발원』을 통해 ‘시인- 김선우’가 아니라 ‘소설가-김선우’, 그것도 이야기를 능숙능란하게 다루는 성숙한 소설가를 만날 수 있다. 이제 한국문학은 ‘소설가-김선우’를 위해 한 자리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2012년 봄 조계종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으로부터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씌어진다. 2012년 봄부터 2013년 봄까지 『불교신문』에 연재된 뒤, 퇴고를 거쳐 2015년 봄에 두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판될 시점에 한국사회에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이 소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눈 밝은 기자가 작가와 나눈 인터뷰가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비평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이번 호『사람의 문학』서평은 부랴부랴 외국 문학 작품 대신 김선우 작가의 소설『발원』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이번 호 서평은 서평이라기에는 약간 무겁고, 비평이라기에는 조금 가벼운 ‘비평 형식의 서평’(혹은 ‘서평 형식의 비평’)으로 글의 형식을 잡았다. 작품의 풍성함과 흥미로움이 조금이라도 서평의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Ⅱ. 1. 일단 이 소설은 재미있다. 한 편의 잘 짜여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작가는 독자를 의식하고 염두에 두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서사는 살아 있다. 소설에서 원효와 요석의 사랑이라는 큰 얼개를 기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종축으로 교차하면서 횡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 편의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여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남녀의 연애 이야기(원효-보현랑-요석의 삼각관계가 등장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구도 이야기(원효뿐만 아니라, 요석도 자신만의 구도의 여정을 걸어간다.), 한 남자의 성장 이야기(소설에서 원효는 끊임없이 번민하고 회의하면서 고승으로 성장해간다.), 정치권력의 이야기(선덕여왕으로 대표되는 왕권과 비담 및 야신으로 대표되는 신권 사이의 갈등과 다툼), 새로운 사회-유토피아 이야기(승려들과 민중들이 힘을 합쳐 건설하는 이상적 공동체인 아미타림), 사회비판 이야기(전쟁, 그리고 귀족들의 학대와 착취에 힘들어하는 당시 신라 백성들), 민중들의 투쟁 이야기(단이의 죽음을 꽃으로 저항하는 신라백성들), 종교 이야기(황룡사로 대표되는 당대의 타락한 종교 대 분황사로 대표되는 서민의 종교) 등등. 작가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요령있게 소설 곳곳에 배치하여 독자들을 유혹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이야기꾼 김선우의 능란한 이야기 솜씨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필자가 『발원』을 읽을 때 TV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 개작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도 소설의 이러한 탄탄한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이 요석과 원효의 사랑과 그들의 고뇌에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장면마다 영화나 드라마가 연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발원> 이후에 자신감도 붙었어요. 이제 시인 김선우에서 소설가 즉 이야기꾼 김선우로 언제든지 전환할 수 있어요. 시도 소설도 쓸 수 있는 작가, 글쟁이 김선우가 된 것이죠."(프레시안 인터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7540)
김선우는 시로 문학을 시작한 시인이다. 그녀의 감성, 언어, 사고는 기본적으로 시적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문장들은 ‘시성(詩性)’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각이 열린 상태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비유들이 소설 곳곳에 흩뿌려져 출몰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시와 산문, 시와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을 지니면서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시인 출신의 작가가 소설을 쓸 때 빠지기 쉬운 불균형이 『발원』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행복한 만남은 우리 문학사에 흔치않다. 소설『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옛날 옛적에 휘어이 훠이』등의 희곡들에서 시극 형식을 통해 이런 좋은 만남을 보여준 바 있었다. 외국과 달리 다장르 작가들이 많지 않은 우리 문학에 오랜만에 시와 산문, 시와 이야기의 행복한 만남이 등장했다.
2. 『발원』은 좋은 의미의 이념소설이고 관념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이념과 관념을 이야기를 통해 잘 풀어내고, 이야기에 잘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라서 ‘좋은 의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 점에서 사회적 문제나 이념에 거리들 두면서 쇄말함(trivialism)이나 내면적인 폐쇄성에 빠져 있는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과 확연히 다르다. 또한, 도식적인 이념과 과념의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관념성과 사변성이 소설 전체의 균형을 파괴하지 않는다. 상업적인 헐리우드 영화나 TV 드라마들이 빼어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메시지나 주제 차원에서는 진부하고 판에 박힌 휴머니즘이나 교훈 차원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발원』은 그런 상투성을 탈피하고, 대중소설장르와 관념소설의 장점들을 모두 잘 살린 새로운 유형의 이념/관념 소설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면에서 김선우는 한국 여류 소설가의 계보에서 하나의 새로운 뚜렷한 지평을 개척하였다.
작가는 기존의 진보이념인 민족주의, 사회주의, 맑스주의를 훌쩍 넘어서는 새로운 유토피아 이념을 제시한다. 작가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 속의 개인들에 국가를 초월하여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원효는 자신의 조국인 신라의 적성국인 백제의 병사들도 자비의 정신으로 살리려고 한다. 국가주의 대신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원효는 승려들과 백성들을 국가의 전쟁에 동원하려는 위정자들과 충돌하면서 긴장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의 평화주의적인 언행은 그를 끊임없이 위기와 시련에 빠뜨린다. 하지만, 그는 신라의 현실을 경험하고 백성들의 삶을 목격할 수 록,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백성들을 위하여 분황사와 첨성대를 세우고 백성들의 말을 들으려는 선덕여왕마저 자신을 위협하는 귀족들을 제압하기 위해 백성들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원효는 좋은 군주 한 명에 의지해서는 현재 탁류 상태인 신라를 불국토로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화랑 야신이 주장하는 힘의 논리를 원효는 거부한다. 대신 신라 백성들의 자발적인 힘과 에너지를 믿는다. 그는 신라 백성들 하나가 스스로 부처가 되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그 곳의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그들 속의 잠들어 있는 불심을 일깨운다. 다른 한편으로, 요석, 혜공, 수파현, 흰새, 바유 등은 아미타림을 일구어 간다. 아미타림은 모든 사람들이 공존공생하는 일종의 공동체이다. 국경 지대의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 혼혈아, 창녀, 빈자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밥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실제로 수파현은 전쟁터에서 원효를 구해준 백제군 의무병이었다. 이후, 원효는 죽을 뻔한 수파현을 아미타림으로 데려온다. 바유는 사포항구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서라벌 뒤골목 세계에서 전설같은 인물이었지만, 혜공 스님에 이끌려 아미타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은 나무들을 심어서 가꾸고, 당나라에 염색한 옷감을 팔면서 아미타림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적 공동체로 만들어 간다. 이 공동체의 정신적 기둥을 하는 분이 혜공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이념과 정신적 가치의 토대는 불교이다. 아미타림과 같은 공동체들이 많아지고, 민중들이 하나 둘 깨달아 부처가 될 때, 탁류 상태인 신라는 불국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작품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유토피아 이념이다. 실제로 작가는 "제가 꿈꾸었던 완전한 개인(원효)과 제가 꿈꾸는 모습에 가장 근접한 공동체(아미타림) 이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작가가 현재 탁류이자 혼세인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에게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발원이기도 하다.
3. 『발원』은 여성주의 소설이다. 제목『발원-요석 그리고 원효』 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요석과 원효이다. 원효를 다룬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에서 요석은 여자 주인공이라기보다 원효라는 주인공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김춘추와 원효 사이의 거래에서 자신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수동적인 위치의 존재였다. 반면, 『발원』에서 요석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당당한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결혼 전에 사랑하는 여인와 김춘추 사이에서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 요석은 당시 서라벌 귀족 사회에서 만연했던 정략 결혼, 아버지의 통제와 같은 부자유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열 살 때 선덕여왕이 되는 만덕 공주의 시동이 된다. 원효와의 사랑에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어릴 때 화랑 원효를 보고 반한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그에게 다가가고, 주도적으로 원효와의 관계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친했던 보현랑의 사랑을 거부하고, 원효와의 사랑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육두품과 승려라는 원효의 신분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석은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는 도반의 관계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서로 진한 하룻밤 사랑을 나눈 둘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저자가 직접 밝힌 것처럼, 『발원』의 핵심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과 자유이다. 작가가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서로를 치유하기 위한 사랑이고, 상대방의 생명을 북돋우기 위한 사랑이다.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원효는 요석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그대가 나를 품어 준 오랜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대가 목숨을 나누어 살려준 원효 아닙니까. 파하되 파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며 옛 삶의 변혁이기도 합니다. 여태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채우지 못한 결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의 스승이고, 그대가 나의 붓다입니다. 그대는 중생 속에서 중생이 되어 화택(火宅)을 통과해왔습니다. 나는 중생 바깥에서 중생을 가르치고자 살았습니다. 장애가 없어 무애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대는 온몸으로 나를 깨우쳤어요, 요석! 그대가 내게 준 이 삶이 나는 정녕 기쁩니다. 나는 진정 자유로워졌어요."(『발원』2권, 258쪽)
"요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원효의 심장 한쪽이 저릿하게 아팠다. 요석이 원효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문장을 읽듯 또박또박 심장에 남은 말을 먼저 꺼냈다. "님이 저를 치유했습니다. 저는 다시 완전해졌습니다. 이 밤으로 충분하고 또 충분해졌습니다. 저는 요석입니다. 요석답게 살아갈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요석의 말을 들으며 원효가 마지막으로 요석을 꽉 끌어안았다. 완전한 하루였고 영원이었다."(『발원』2권, 260쪽)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생명이다. 요석은 인간과 만물의 생명을 살리는 '지모신(地母神 )', 즉 '생명의 여신'이다. 요석은 개인적 사랑과 자유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만물의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도 한다. 작가의 시들이 에코페미니즘으로 해석될 수 있듯이, 작가의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아미타림'을 다른 여성들과 협력하여 자립적인 경제적인 공동체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아이들을 따뜻한 손길로 돌본다. 이렇게 그녀는 공동체를 일구면서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이런 요석의 캐릭터에서는 우리는 풀뿌리와 마을공동체 일을 열심히 하는 여성 활동가의 상을 읽을 수 있다.
4. 『발원』은 좋은 역사소설이다. 좋은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소설이 아니다. 좋은 역사소설은 작가가 역사적 사실들을 당대의 시대적 맥락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들에 맞추어 풍성한 의미망으로 해석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는 춘원 이광수가, 한승원의 『원효』는 작가 한승원이 원효와 그의 시대를 자신의 관점과 가치에서 해석한 소설이다. 김선우는 원효가 살던 신라 시대의 사회상을 통해 우리 시대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고통받는 민중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치부에만 신경쓰는 타락한 종교, 격심한 빈부차와 계급간의 갈등과 대립, 백성들의 삶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신경쓰는 지배층,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절의 불상에 올라가 하소연할 수 밖에 없는 백성들. 1500 여년 전의 신라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다르지 않다. 황룡사 장륙존상에서 올라가 집 안의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다가 관군들에 의해 죽음에 내몰리는 단이에게서 우리는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 용산참사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위에서는 언급했듯이, 작가는 작품에서 요석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롭게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역사적 인물인 원효에 대한 흥미로운 문학적 해석을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걸걸하고 파격적인 인물의 원효 대신, 매순간 선택의 상황에서 고민하고 고뇌하면서 조금씩 내외적으로 성장해가는 원효의 형상이 소설에 등장한다. 작품 속의 원효는 불교 수행보다는 세속에서 민중들과 만남 속에서, 적들의 음모와 폭력 속에서, 정치 권력자들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고 신라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정신적인 스승으로 조금씩 자리잡는다. 동시에 원효는 자신의 마음이 자석처럼 향하고 있는 요석과의 사랑 때문에 번민한다. 원효는 하룻밤 요석과의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 더 큰 대의를 위해서 각자의 완성을 위해서 서로의 길을 간다. 원효는 이렇게 완전한 개인으로 성장해간다. 작가가 꿈꾸었던 '완전한 개인'의 형상이 소설 속에서 원효로 구현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사적인 해석이 등장한다. 원효가 서라벌 거리에서 외친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를 작가는 민중혁명적으로 해석한다. "누가 네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찍어 내리라!"로 번역되는 이 열자에서 '도끼'는 여성의 성기, '기둥을 찍어 내리는' 행위는 성관계로 통상 해석되어 왔다. 그래서 김춘추는 원효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위대한 인물을 낳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과부가 된 자신의 둘째 딸을 원효에게 소개시켜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둘 사이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이 '이두'를 만든 유명한 설총이었다. 이것이『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일연의 역사적 기록이자 해석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 이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다. 원효와 요석의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둘의 잠자리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꽃피는 순간으로 소설은 그리고 있다. 그리고, '자루 없는 도끼'의 경우, 자루가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력 없이 맨몸뚱이로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찍어 내리라!'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즉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작가 김선우가 보기에,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는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민중들의 혁명 의지가 담긴 문구였던 것이다. 김춘추가 원효를 요석과 하룻밤을 보내게 해서 파계시킨 것은 원효의 이런 혁명적인 생각이 민중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작가는 이런 신선한 동시에 매우 흥미로운 문학적 해석을 과감하게 해버린다. 이것이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자 재미이다.
Ⅲ. 정혜신 박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설『발원』을 읽으면서 치유된 체험을 〈나를 치유한 원효, 김선우〉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발원』은 정혜신 박사의 말처럼 치유(힐링) 소설이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작가의 발원문이고 기도문이고 감로수이다. 동시에 역사적 소재를 통해 지금의 한국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다. 그리고 각 개인의 깨달음과 대안적인 공동체 건설을 통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사는 이 곳을 불국토로 만들어가자는 담대한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구원의 서사이다. 들뢰즈가 '도래할 민중(people to come)', 즉 코뮤니즘을 만들 주체의 창조와 생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작가 김선우는 『발원』에서 이 지상을 불국토로 만들 부처들을 호명하고 요청하고 있다. 솜털같이 가벼운 이야기들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지금,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킬 책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리(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지요. 법의 삶을 삶으로써 스스로 행복함을 뜻합니다. 노력하고 수도정진하여 공덕을 쌓아 그로부터 복락과 지혜의 이익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타(利他)란 무엇입니까.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법의 삶을 삶으로써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리이타는 자신의 이익과 중생의 이익을 함께 닦는 공덕을 말합니다.
이제껏 신라의 불교는 자족적 수행에 경도되어 있었으나 이제 신라의 불법은 대승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구제를 위한 작은 수레에서 우리 모두의 구제를 위한 큰 수레의 세계로! 자리와 이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원만하게 실현되는 상태가 바로 불국토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발원』2권,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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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서평입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