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단촌면 관덕리 산 96번지
관덕동 삼층석탑을 100m정도 못 가서 단촌면 관덕리 891번지에 있는
追遠齋(추원재)앞에 차를 대고 앞쪽 오른편에 있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밭을 통과해서 바로 산으로 직진해서 10분정도 올라간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소나무에 노란 천이 매어 있고 왼쪽 봉우리쪽으로 간다.
가다가 길 왼쪽에 孺人 海平 金氏 之墓(유인 해평 김씨 지묘)를 지나간다.
좀 큰 두 묘를 왼쪽으로 지나서 첫번째 봉우리를 넘어간다.
단촌면사무소에서 "오늘의 자연보전 내일의 값진 유산!"문구를 새긴 노란 리본을 참나무에 매어놓았다.
봉우리 조금 아래에 고무벨트 두 개로 긴 나무를 두 나무에 옆으로 걸어놓았다.
봉우리에 빙둘러 담을 쌓은게 보이는데 여기가 봉수대 터다.
바깥 왼쪽 돌담의 모습인데 풀이 살포시 덮고 있다.
오른쪽 돌담은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른쪽 돌담에는 1998년 김종우 전 원장님과 여러분들이 함께 하얀 페인트를 발라 표시목으로 세운 나무가 썩어가고 있다.
오른쪽에 잘 남아 있는 돌담.
돌담 안쪽을 들어가보면 한 가운데에 조그마한 봉수단이 보인다.
관덕리 마산 봉수터 유적과 관련하여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의성현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산 봉화는 [남쪽의 영니산 봉화를 받아] 북쪽으로 15리 거리에 있는 안동에 속한 일직현의 감곡산 봉화에 보낸다[馬山烽火 北望 安東任內 一直縣地 甘谷山烽火 相去十五里].” 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봉화는 두 곳에 있는데, 현의 남쪽에 있는 영니산 봉화는 남쪽으로 의흥현의 승목산 봉화를 겨누고 북쪽으로 현내의 마산 봉화를 겨눈다. 마산 봉화는 북으로 일직 감곡산 봉화를 겨눈다[烽火二處 盈尼山在縣南 南准義興縄木山 北准本縣 馬山 馬山北准一直甘谷山].” 라고 하여 역시 영니산 봉화와 마산 봉화의 내용만 보인다. 1469년에 간행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서는 “현 북부에 있는 마산 연대 봉화는 남쪽으로 현내의 고성산 연대 봉화와 더불어 서로 겨누고, 북으로 안동에 속한 일직현의 감곡산 연대 봉화와 서로 겨눈다[縣北部馬山烟臺烽火 南與縣內古城山烟臺烽火相准 北與安東任內 一直縣甘谷山烟臺烽火相准].” 라고 했다. 또한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마산 봉수는 북으로 안동부 감곡산에 응하고 남으로 고성산에 응한다[馬山烽燧 北應安東府甘谷山 南應古城山].”라고 하여 임진왜란 이전부터 관덕리 마산 봉수터와 관련된 기록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경상도읍지』에도 “마산 봉수는 현의 북쪽 30리에 있는데, 북쪽으로 안동부의 마곡산 봉수에 응하고 남쪽으로 고성산 봉수에 응한다[馬山烽燧 在縣北三十里 北應安東府馬谷山 南應古城山].” 라고 하였고, 『영남읍지(嶺南邑誌)』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가 있으며, 1864년경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르기까지 각종 자료에 빠짐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문헌 자료를 통해 볼 때 관덕리 마산 봉수는 조선 시대 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던 봉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첫댓글 좋은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봉수대 위치를 한 눈에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심선생님 대단하십니다.
흔적이 눈에 띄게 잘 남아있어 좋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올라가 보니 둘레가 환하게 잘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