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옛날 옛적 이야기라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흔히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던 이야기를 생각
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근대사 주인으로 대두되어온 경제성장이나 사회와 세계의 변화는 5천 년 역사의
변천과도 맞먹는다든가 그것을 능가한다고 한다. 요즈음의 10년은 강산 뿐 아니라 시대와 역사와 사회까
지를 모두 변화시켜 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70년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고 나자신도 엄청난 변화
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옛일을 곰곰히 생각하면 다사다난했던 수많은 일들 미운 정, 고운 정, 기쁜 일,
슬픈 일,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일, 행복하고 보람있었던 일들이 모두 어우러져 주마등처럼 가슴을 스쳐간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참으로 잊혀지지 않고 생생한 삶의 보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한국 최초로 노인
대학을 설립하였던 일과 우리나라 최초로 골목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아 교육에 헌신했던 일들을 꼽게 된다.
이 두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 모두가 그동안 사회와 국가와 국민의 요청으로 엄청난 확산과 발전을 가져
왔지만, 소박한 꿈과 봉사정신으로 작은 씨앗을 뿌린 것이 국가적 공헌으로까지 큰 결실을 맺게 되었을 때는
벅찬 희망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옛날옛적의 이야기처럼 생각되고 한낱 추억으로 접어 둔
과거사이지만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고통과 괴로움은 이루 헤어리지 못할 정도로 큰 시련이기도 하였다.
70년 2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년생의 가슴 속엔 일찌기 부모님을 여윈 깊은 슬픔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
움이 충효사상으로 싹터 오르고 있었다. 한 살 때 생모를 여의고 생모의 모습이나 체취조차도 기억해 낼 수
없는 모성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과 19살 고교 3년 대망의 꿈을 가진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버님마저 세상
을 떠나시는 엄청난 절망과 충격을 겪어야 했지만, 마냥 좌절 속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상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고 1년 상을 치뤄냈다.
아버님의 탈상 후 대학 진학 중단의 쓰라린 상처를 달래며 어디 한 사람도 피를 섞은 가족이 없는 4대째
내려오는 옛집을 남기고 외롭고 고달픈 한양 길 고학의 길을 떠나야 했던 순간, 그리고, 그 길고도 짧은 4년의
고학시절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란 내 부모님과 같은 여러 어르신을
모시는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 최초로 한얼 경로대학을 설립하여 841명의 입학생을 맞이하여 정력을 쏟기
시작했다.
부산시내 노인대학을 6곳이나 개교하여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드리며 그분들과 함께 동고동락 지내다가 77
년도 한국 최연소자로 대통령 동백장까지 수훈하였던 날이며, 이제 그 노력의 보람이 영글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인대학과 충효교육 및 노인복지 사회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를 직시할 때 여간한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인을 섬기는 것은 먼 훗날의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잘못 인식된 풍토와 윗사람을 섬기는 동방
예의지국의 참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할망정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며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옛날 옛적이 되어버린 노인대학 설립 그 당시의 순간들이 오늘을 기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또한 인간의 인성과 지능지수의 85%가 3~4세 때 형성된다는 유아교육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겨우 5%에 해당되는 유아를 제외하고는 유아교육 시설 부족과 경제적 이유때문에
유아교육의기회를 놓치고마는 안타까운 당시의 국가 현실을 파악하여 77년 우리나라 최초의 무료 새마음유치원을
설립, 교육기회의 확대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그 후 79년 대대적으로 유아교육 기관의 명칭을 '골목유치원'으로 개칭하고 부산시내에만도 13개 무료 유치
원을 설립하여 많은 어린이들에게 취학전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노오란 병아리들처럼 더없이 눈부신 성장을
계속하던 어린이들, 그토록 고맙게 생각하던 자모님들, 고난과 어려움은 한없이 큰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보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새마을 유아원 및 유치원들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였지만 처음 내가 설립할
당시의 취지가 이제는 범국가적으로 발전함은 진정 나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70년대부터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봉사 왕 한석봉으로 각 매스컴에 커다랗게
지상보도가 되었고 수많은 활동을 계속 하였지만, 국민의 요청으로 현재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노인대학과 유아원은 나의 보람 중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서 옛날 옛적의 공과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민의 대변자가 되어 국정에 참여한 첫 해에 제9회 유치원 졸업생과 제18회 노인대학생을 배출하고
보니 더욱 더 감회가 깊으며 계속적인 노인복지 문제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유아교육의 보편적 확산은 4천
만 민족과 더불어 더 깊은 관심과 노력을 함께 하여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옛날 옛적이야기들은 오늘날에는 전국민의 관심과 성원 속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웃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과 실첝넉 노력은 내게 주어지고 내가 선택한 사명이요,
삶의 진정한 보람이 된 것이다.
첫댓글 그 누구도 감히 엄두 못낼 일을 사명으로 실천하신 선구자...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함에 황무지를 개척하는 듯한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옛날이 새롭게 다가올 때 더 큰 보람의 기쁨 느끼게 되는거겠지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모든 회원님들이 소호님처럼 이렇게 느낌에 대한 댓글을 언젠가는 달아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