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7.12.10.월
태인허씨(泰仁許氏) 시조 허사문(許士文)은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후(許黃后)의 30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시산군(詩山君)을 지냈고, 부인은 개성왕씨로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이다.
시산(詩山)은 전북 정읍시 태인의 옛 이름이다.
허포(許褒)는 고려 때 기천 현령, 풍해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 태산군(泰山君)에 봉해졌다.
허엄(許儼)은 병부시랑을 역임했으며, 그의 아들 허벽(許壁)은 이부시랑을 지낸 뒤 시산부원군(詩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숙종과 예종 때 문학이 뛰어났고 청렴 충직하기로 이름난 허경(許慶)은 1101년(숙종 6) 즉위사(卽位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다.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문하평장사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그의 아들 6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둘째 아들 허사문(許斯文)은 낙안 군수를, 넷째 허사행(許斯行)은 사헌부 감찰을, 막내 허사제(許斯悌)는 사평(司評)을 지냈다.
태인허씨는 2000년 현재 2,070가구 6,472명이다.
허씨는 32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300,448명이다. 김해허씨 121,031명, 양천허씨 130,286명, 하양허씨 16,344명, 시산허씨 2,029명 등이다.
한편 허황후는 아유타국(인도의 한 나라)의 공주로서 16세(48년) 때 배에 석탑을 싣고 지금의 경남 창원군 능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다.
그러자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이하였다. 수로왕은 10남 2녀가 있었다.
그런데 왕비가 자신의 성씨를 전하지 못함을 슬퍼하자 두 아들이 왕비의 성인 허(許)씨를 따르게 하여 허씨가 시작됐다.
그 뒤 태인허씨에서 인천이씨가 갈라지고, 인천이씨에서 양산이씨가 분관됐다. 따라서 허씨, 김해김씨, 인천이씨, 양산이씨는 모두 같은 혈족이다.
< 정복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