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모임이 있는 자리에 가는 날이면 더러 망개떡을 사가곤 한다. 망개떡에 관련된 지나간 시절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망개떡을 감싸고 있는 보드라운 잎을 들추면 하얀 떡살 켜켜로 숨바꼭질하듯 팥소가 숨어있다. 쫄깃한 떡쌀의 식감이 입안에 머물면 이 사람 저 사람, 저마다 간직한 추억의 옛 장면을 쏟아낸다.
누군가는 한겨울 밤 골목에서 ‘망개~떡, 찹쌀~떡’ 하며 외치던 떡장수의 목소리를 종일 따라 하다가 아버지한테 혼쭐났던 일을 꺼낸다. 어떤 이는 떡장수가 어깨에 지고 다닌 긴 사각형의 유리 상자를 기억하는가 하면, 귀마개를 하고 떡을 팔던 잘생긴 총각이 어쩌면 학비를 벌던 대학생이었는지도 모른다며 창문을 열고 몰래 훔쳐봤다는 이도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모두가 박장대소 한다. 추억담은 저마다 기억 저편을 흔든다.
망개떡은 화친을 뜻하는 의미가 있다. 떡에 얽힌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야가 백제와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망개떡을 보냈다는 기록이 재미있다. 가야의 신부가 백제의 신랑 집에 이바지 음식을 가지고 갈 때 망개떡을 넣어 보내서 그 후, 망개떡은 화친의 상징이 됐다는 유래다.
둥근 하트모양의 망개 잎은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미래덩굴 나무 잎이다. 빨간 열매가 소복하게 매달린 나뭇가지는 가을철 꽃꽂이용으로 많이 쓰이고 잎은 방부제 효능이 있어서 음식을 오랜 시간 보관할 때 좋다고 한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망개 잎에 밥을 싸서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먹거리가 흔치 않았던 예전에는 긴긴 겨울밤에 어쩌다 얻어먹을 수 있었던 귀한 간식이 망개떡이었다. 눈 내린 밤, 골목길에서 선잠을 깨우던 떡장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추억을 지닌 떡을 먹다 보니 독특한 잎사귀 향기가 그리운 목소리를 불러온다.
철부지 시절, 한밤중 떡장수의 목소리가 들리면 반가워한 것은 비단 나와 동생만은 아닌 듯했다. 함박눈이 내린 골목길 끝에서 아련히 들려오던 떡장수의 목소리에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나가셨다. 동생과 나는 마루 끝에서 까치발을 하고 아버지가 떡을 안고 들어오시기를 기다렸다. 때로는 떡장수가 마루 앞까지 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언니들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기도 했다. 모두가 부산한 그 틈에 엄마는 소반을 꺼내러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떡을 사려고 골목으로 뛰어온 동네 사람들의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버지가 달착지근한 팥소가 들어있는 망개떡을 사 주실 때면 갈 수 없는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를 빠지지 않고 들려주시곤 했다. 어쩌면 그 떡은 아버지한테는 고향을 생각나게 해준 마중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하 45도를 오르내리던 함경도의 혹독한 겨울 이야기를 아버지는 기억의 수첩 속에서 종종 꺼내셨다. 이북에 계시는 할머니는 특히 겨울에 식구들이 먹을 간식으로 떡을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떡은 하루가 지나면 굳고 얼어서 반으로 갈라졌지만, 아버지는 그 떡을 주머니에 넣고 강가에 나가서 허기지도록 놀다가 꺼내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던 꿀맛 같은 망개떡을 기억하셨다.
시간은 누구를 위해서도 멈춰주지 않았다. 철없던 나와 동생은 떡을 먹느라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만 여긴 것 같다. 오 남매 앞에 놓인 떡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꿈에서도 그리웠을 고향을 생각하며 평생 서글픔을 안고 사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어루만져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다운 그 목소리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떡장수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의 외침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고장마다 망개떡을 만들어서 특산품으로 내어놓고 판매하고 있다. 편리하게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택배로 하루 만에 받을 수 있다. 떡의 재료와 크기는 거의 같아도 식감이나 모양과 원조를 내세운 광고가 대단하다.
제아무리 세월이 소리를 묻어놓아도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품고 있기 마련이다. 오늘도 망개떡을 앞에 두고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리운 얼굴을 만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