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배구가 처음 소개된건 1915년. 당시 성서공회에 근무하고 있던 미국인 베이커씨가 규칙서를 번역하여 YMCA학생들에게 코트를 만들어 배구를 가르친 것이 시작. 이듬해 1916년에 서울 중앙 YMCA에 취임한 반·하트씨가 회원들에게 배구를 지도(12인제)하였다. (자료를 찾다가 알게된 또 하나의 얘기 - 당시 제일고보 체육교사인 스기하라가 가르쳤다는 얘기도..)
▶ 그후 1925년 조선신문사 주최 제1회 전 조선 배구대회가 공식경기로서 처음 행하여졌고, 1927년 제3회 조선 신궁 경기 대회때 배구경기가 참가되는등 발전을 해왔으나, 1942년 전문대학의 구기 폐지와 중학교 구기 운동 제한으로 학교 배구가 침체하게 되었다. 당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한국배구의 신화적인 인물인 철도국의 박계조와 안종호를 배출하였는데, 박계조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1962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박계조배 배구대회"에서도 알수가 있고, 안종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심판으로 유명.
▶ 1945년 광복과 더불어 1945년 11월 20일 대한배구협회(KVA - Korea Volleyball Association)가 발족되어 배구 기술 향상과 보급에 많은 공헌을 하게되었고, 다음해 1946년에는 종별 배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현재까지 전통을 유지하여 오고 있다. (처음엔 9인제로 진행되던 배구가 1960년부터 6인제로 바뀜)
▶ 1954년에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홍콩 배구협회의 초청으로 원정경기를 가져서 해외원정의 문호를 개방하였고, 1955년 제1회 아시아 배구 선수권대회에 참가 2위를 했으며, 1959년에 국제배구연맹 (FIVB)의 공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제5회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6인제 경기에서 남·여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울렸다.
▶ 아시아권대회의 성적에 고무되어있던 한국배구는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에서 남·여 모두 전패해 한국 배구계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배구팀은 아쉽게 5위에 머물렀지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대회에서는 우리나라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인 동메달을 획득하여 온국민을 기쁘게 하였다.
▶ 1970년대 한국배구는 기업들의 스포츠 참가가 두드러져 많은 실업팀이 창단되었고, 1980년대에는 변혁의 바람이 불어와 4개 단체로 나뉘어 있던 실업·대학·중고등부·초등학교 연맹을 통폐합함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84년 백구의 대제전이라 부르는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가 창설됨으로써 그동안 계속되온 실업연맹전이 없어지고 성인배구도 반은 프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 1990년대 들어 한국배구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여자팀의 경우 대농과 현대의 양대산맥이었던 체제가 무너지면서 호남정유를 시작으로 한일합섬과 흥국생명 등 신흥세력들이 부상하였고, 남자팀의 경우도 상무와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 등이 코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를 띠었다. 그동안 파워와 조직력을 위주로 했던 플레이는 세계적 기류에 맞춘 힘과 높이의 배구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