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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세이스트>(2007)와 <창작수필>(2010)에서 초청받아 강의하였던 원고입니다.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엇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문학과 심리적 갈등
김 종 길*
들어가면서
일상인이 부부의 사랑을 말한다면, “부부가 사랑을 한다.”고 하겠지요. 과학인이 기술한다면, “결혼한 남녀가 사랑을 한다.” 할 것이고, 자연인이 문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운우지정을 나눈다.”고 하지 않을까요? 문학이란 삶의 바싹 마른 건초더미에 낭만의 비를 뿌려주는 수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씁니까? 임선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추악하게 망가지지 않으려고 수필을 쓴다...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독과 허무와도 저항 없이 손잡고 싶다...청소년기 성장통이 있듯이 어른에게도 성숙통이 있어 마땅하다.” 유병근은 “수필의 소재를 찾아 머리를 굴리는데 ...남이 하지 못한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찾아 사물에 눈을 돌립니다.... 수필가는 수필의 맥을 찾아 밤낮 고민합니다.” 김종완은 “무엇인가는 몰라도 쏟아버려야 하는 배설의 욕구(갈등의 승화)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수필가는 그 수준의 높낮이, 경륜 여부를 떠나서 비슷한 경험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갈등을 이해하려면 내가 이해되어야지요. 시인 허만하는 “강은...나의 내부로 흐르고 있는 풍경으로 있는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 강의 흐름을 아는 것은 무의식의 흐름을 아는 것이고, 그의 정의대로 “시인은 언어의 예술가이다.”라고 한다면 수필가는 ‘경험의 예술가’로 볼 일입니다. 나를 아는 작업이 강의 흐름으로 이해됩니다.
사람의 특이점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사는 種’ 이라고 합니다. 수필을 쓰며 만난 것은 나였을 것입니다. 이해된 것을 표현해야 하는 욕구가 있고, 내가 나를 이해가 안 되면 억지로라도 합리화할 필요가 있지요, 스스로를 합리화해야 합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현대철학 또는 예술에서 나란 무엇인가요? 욕망의 덩어리, 욕망은 결핍에서 유래합니다. 문학은 욕망을 표현하는 것, 즉, 결핍을 표현합니다. 현대문학은 바로 결핍을 드러내는 문학입니다. (김종완, 부산강연)
글은 어떻게 쓰여 지는가?
내면아이를 치유를 연습하는 예문(쟌 브래드쇼 지은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221-222쪽)을 소개합니다(고딕체에 유의하며 읽으세요).
죤 왕 이야기
옛날 옛날에 죤이라는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레첸이라는 비천한 농부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어느 날 잔뜩 취한 왕이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고,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결국 왕은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왕에게는 아주 창피한 결혼이기 때문에 그레첸은 숨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외딴 섬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결혼의 엄마는 아이를 죤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머니는 죤 왕의 사랑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에, 만약 왕이 이 어린 왕자를 보고 왕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왕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을 왕에게 보여주려고 왕을 찾아갔습니다. 왕은 노발대발 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왕자가 왕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천한 그레첸이 그에게 부끄러움을 떠올렸기에 그녀를 혐오했습니다. 결국 왕은 그레첸과 어린 죤을 수백 리 떨어진 바다 건너 나라로 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대가로 그레첸은 많은 돈을 받았고, 대신 죤에게 출생의 비밀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말았습니다.
그레첸은 어린 존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막는 방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불행해진 게 모두 죤 때문이라며 아이 탓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시골의 한 노파에게 돈을 주고는 아이를 맡겨버렸습니다. 노파는 죤을 때리고,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
제공하였습니다.
진정한 왕가의 핏줄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 어린 죤은 자신이 이 늙고 가난한 여자의 사생아라고 믿으며 자랐습니다. 입고 다니는 누더기 같은 옷 때문에 그는 다른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모든 면에서 낙제생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게 너무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좀 더 성장하자,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학교도 중도에 그만두었기 때문에, 찾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상점에서 바닥을 쓸고 닦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여자를 사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한 여자와 헤어지지자 마자 바로 다른 여자를 만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관계가 깊어지려면 매번 거절당하고는 했는데, 그가 만났던 모든 여자들은 그를 빈정대거나 무시하곤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림받은 느낌에 대한 글입니다. 만족되지 못한 발달상의 의존 욕구와 그 결과로 결핍이 생긴 문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글을 쓴 사람의 생애는 이러합니다. 부자인 아버지는 파티에서 술에 취하여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외할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으면 소송을 벌리겠다고 위협하여 할 수 없이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출산하고 6개월 후 이혼했습니다. 아버지는 위자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멀리 이사할 것을 요구했고, 어머니는 18세였고 약물중독의 초기 단계에 또한 섹스중독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이 많은 여인에게 돈을 주면서 아들을 돌봐달라고 맡겼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남겨둔 채 몇 달씩 나가 있기도 했고, 결국 재혼을 하고 아들을 버린 채 이사를 갔습니다. 주인공은 여인에게서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를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낙제생이었고 17세에 가출하여 삼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성들과는 학대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위의 글 속에는 주인공의 갈등의 이유와 내력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갈등을 이해하는 자료는 완성된 작품보다는 스케치, 노트, 초벌 원고가 좋습니다. 가미가 안 된 생생한 자료에 가까운 것일수록 작가의 백일몽이 잘 나타납니다. 완성된 작품일수록 기교가 덜 붙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완성품에서 아무 힌트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무리 멋진 문장과 줄거리로 위장해 보았자 작가는 결국 자기의 무의식적 소망과 그에 대한 자신의 심리반응을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작일수록 그 줄거리는 독자를 무의식 속에 있는 에디프스 소망의 일면을 강열, 격렬하게 나타내어 그들 독자를 무의식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야 합니다. 특히 비극이라면 이런 무의식적 소망들에 관련되어 무의식적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응징적인 경향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미시마 유끼오의 소설이 이런 면을 잘 들어내고 있습니다(조두영 지은 <임상정신의학>).
1950년 일본 교토 鹿苑寺의 金閣을 그 절의 젊은 중이 고의로 방화해 잿더미로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金閣은 500년간 국보로 보존되어 온 건물이었다. 작가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는 31세의 나이로 그 범인을 묘사한 소설 <金閣寺>를 발표하였다. 주인공 ‘미소구찌’는 약질의 말더듬이 소년이다. 사모하는 소녀 ‘유아꼬’에게 모욕을 받고 그녀를 죽도록 저주하고 얼마 후에 그녀는 자신의 도망병 애인에게 살해당한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아들을 금각사 주지 스님에게 동승으로 들여보낸다. 그는 미군의 공습으로 토꾜가 불타 버리기를 간절히 원한다. 아버지 제삿날에도 집에 가기를 원치 않는다. 어머니의 간통 생각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핵으로 심히 아픈 상태에서 친척 남자와 간통을 했고 아들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原初景) 복수를 결심하였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너 같은 말더듬이가...’라며 자주 모욕을 주었다. 그는 사창가에서 여자를 사지만 성교를 하려면 金閣이 어른거리고 음경은 사그라 들고 만다. 다른 여자에게서도 유방만 만지면 음경은 위축되었다. “金閣이 공습으로 타버렸으면!”하고 저주한다. 그러다 전쟁은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이 金閣을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즉 그에게 金閣이란 여자 유방의 상징이었다. 그는 불경에서 ‘殺父母’ 하는 대목을 반복해 읽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침내 그는 金閣에 불을 지르고 산에 올라가 담배를 꼰아 문다. ‘ 나는 남자다.’라는 느낌이 그에게 뿌듯이 밀려온다.
그의 소설 <금각사>를 포함 4개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원초경이 작중 인물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원초경은 3가지 특징을 갖는데 (1) 원초경은 패배감를 가져오고 다시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고 (2) 원초경은 부모 모두 혹은 하나에 무지무지한 파괴적 충동을 일으키고 (3) 원초경은 불, 화재라는 상징으로 표현되거나 또는 화재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져 있는 상태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불이란 삼켜버린다는 화마를 연상케 하는 것이니 색정적erotic, 공격적aggressive인 구강적 소망oral wish을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또 방화와 진화의 의미에서 적극성과 수동성을 둘 다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갈등, 무의식의 기능 그리고 정신기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특히 유아기와 아동기의 의존기간이 영장류 중에서 가장 긴 동물입니다. 그만큼 더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부모의 불완전성과 사회적, 환경적 이유로 인하여 유아는 의존적 욕구와 본능적 갈등이 일어나고 마음의 평화가 깨지면서 불안이 생깁니다. 모든 생물이 다 그렇듯이 아이는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부분적으로라도 욕구의 충족을 얻을 방법을 습득합니다. 이 방법이 방어기제이며 이것이 개인의 성격의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곧 사회적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성적 충동, 공격적 욕구, 미움, 원한 등은 하나의 위험으로 인식되고 불안을 일으킵니다. 이 불안은 본능적 욕구에 대항하는 초자아의 위협이 원인입니다. 이 때 불안을 처리하여 마음의 평정을 회복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합니다. 이것이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이지요. 방어기제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 활동의 성숙 수준에 따라서 분류하였습니다.
(1) 자기도취적 방어기제; 부정, 투사, 왜곡(정신병적이거나 유치한 어린이 수준)
(2) 미숙한 방어기제; 행동화, 차단, 건강염려, 내투사, 수동공격적 행동, 퇴행, 신체화, 분열성 환상(유치한 수준)
(3) 신경증적 방어기제; 전치, 외재화, 억제inhibition, 지식화, 격리, 합리화, 해리, 반동형성, 퇴행, 억압, 성화性化
(4) 성숙한 방어기제; 애타주의, 금욕주의, 유머, 승화, 억제supression(의식적)
(예) 위에서 합리화rationalization를 말하였는데 좀 더 예를 들어보지요, 성욕을 참지 못하고 사창가에 갔던 한 청년이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때, 초자아의 비난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성적 욕구는 계속 여성의 육체를 찾는데 초자아는 이를 금지합니다. 이것이 갈등입니다. 이 때 자아가 합리화를 사용합니다. - “영웅호색이란 말도 있잖아. 큰 인물이 되려면 여러 가지 경험이 필요해. 성욕 때문이 아니고 큰 인물이 되기 위한 훈련이야(합리화).” 청년은 마음이 편해지고, 자기보호에 성공합니다.
방어과정defensive process;
여러 종류의 방어기제를 이용하여 복잡하게 조직화된 운동, 지각, 인지의 자아 기능입니다.
(1) 성격방어; 완벽주의 성격은 모욕당하는 위험을 막고 완벽함을 성취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만족감을 얻는 수단으로 이
용된 특성이며, 타인에 대한 어떤 반응이 지속적인 특성을 가질 때 이를 이용하여서 자신을 보호.
(2) 전환; 억압, 동일시, 전치, 부정, 상징화 등의 복합, 심리적 갈등이 신체 감각기관과 수의근육계의 증세로 표출. 상관
의 질책을 받고 화는 나지만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오른 팔이 마비되는 심인성 마비가 예가 됨. 분노가 억압되고 부
정(화가 난 것이 아니다)되어서 신체의 공격성을 표현하는 기관(상징적인 기관)을 마비(심리를 신체로 바꾸어)시킨
것.
(3) 환상; 정신건강과 사고에 중요한 요소. 건전한 정신활동의 중요한 부분, 그러나 현실을 벗어나면 위험. 현실의 만족이
불충분할 때 좌절이 심할수록 욕구와 관련된 환상이 많아지며 환상을 통한 퇴행적 대리만족을 찾게 됨. 자기 욕구 충족
의 착각. 창작은 환상과 가장 밀접.
(4) 꿈; 소원 충족, 불안 방어의 기능. 잠재몽은 비의식적 근원이고 이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 발현몽, 발현몽으로 옮기
는 것이 꿈작업. 압축, 전치, 상징화, 퇴행 등의 기제가 동원되며 꿈의 원천은 다음의 네 가지. 즉 본능적 욕구, 수면 중
의 신체 감각, 낮 생활 중의 소망과 잔재 사건들. (이무석 지은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예술가의 정신병리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가 예술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듯이 사람이 하는 행동과 언어는 모두 우리 몸과 마음의 생산물입니다.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일부 정신분석가들은 ‘모든 예술 창작은 신경증의 소산’이라고 극단적 발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로웬펠드Lowenfeld(1941) 는 ‘예술인이란 보통 사람보다 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로써 예술 활동을 통해 남들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해방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술 활동은 파괴된 대상object 에 대한 보상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또한 정신적 외상psychic trauma을 당하면 남보다 더 예민하게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동일시identification, 자기애narcissism, 남녀양성성bisexuality를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는데, 특히 창작 의욕의 저변에는 이 남녀양성성이 고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예술가들은 자청해서 정신적 외상을 받으려 애쓰며, 또 받은 후에는 기를 쓰고 이를 극복하려는 심리적 특성이 있답니다. 그러나 예술가 자신들과 예술비평가들은 이렇게 예술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쪽의 일부 분석가들에 맞서 자기들을 ‘환자’로 보지 말라고 정신분석을 규탄하였습니다. 이 논쟁을 중재한 영국 출신의 분석가는 크리스Kris(1952)였습니다. ‘예술가의 무의식 세계가 범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어느 한 점에서 즉 자아가 지닌 능력의 차이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창작이란 무의식 내용을 교묘하게 의식화한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이 꾸는 꿈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점은 꿈의 주도권은 이드id 가 잡는 대신 창작의 주도권은 自我ego가 갖습니다. 예술가의 자아란 평소에 손쉽게 무의식에 출입해 이드 내용을 당함이 없이 이에 접근하는 일차과정의 정신활동을 적절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주도아래, 자아를 위해 퇴행’regression in the service of ego하는 능력이 큰 사람이 바로 예술가라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지닌 표현 능력이 천부적인 것임은 두말 할 것이 없고 그의 이런 능력은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습니다.
수필, 정서 그리고 성숙
수필가 피천득을 비평한 ‘구원한 연인을 찾아서’에서 김종완은 금아가 있었음으로 우리는 행복하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심리 분석을 시도하였습니다. 정신과의사에게는 흥미 있는 글이었지요. 그의 글은 너무나 당연한 논의였음에도 그 발표를 수년간이나 미루어왔다는 후문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우리 수필계가 이토록 충효사상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그는 금아가 에디프스 컴플렉스에서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하였다고 보았고, 7세에 아버지를 잃고 10세에 어머니를 잃은 이후로 무의식의 성장을 멈춘 것으로 주장하였어요. 정상적 발달에서는 3-5세에 에디프스 시기를 지나면서 콤플렉스 갈등이 계속되다가 그 갈등은 차츰 저절로 해결을 보게 되는 것이니 초기 해결과정을 지나면서 그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가정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금아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정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의 성장은 정신적 외상이 있을 경우 정체 혹은 외상 후에 퇴행하게 됩니다. ‘무의식의 성장이 정지되었다기보다는 정서적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의 수필이 소년기 낭만에서 맴도는 감성을 가진 이유는 이런 연유로 추정됩니다. 그의 이런 감상적 결과는 그의 후진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수필은 당연히 그런 감성적 성격이어야 되는 것으로 왜곡됨으로써 정서적으로 수필이 성숙되고 다양한 세계로 발전하는 것을 지연시켜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좋은 글을 지어서 그의 어머니에게 자랑하고픈 유아적 소망을 성취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동기에서 정서는 숨은 힘이지요. 마치 경제를 지배하는 ‘숨은 손’입니다. 정신치료에서 통찰은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두 가지를 말하는데, 흔히 치료 과정에서 지적 통찰(자기 문제를 지적으로 이해함)을 갖게 되었음에도 증상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이지요. 정서적 통찰이 왔을 때에만 증상은 소실됩니다. 흔히 작품을 볼 때 그 작가가 어떤 문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글을 썼을지라도 증상이 없어지지 않았을 때라면 정서적 통찰이 아직 생기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입원실에 있던 나의 환자가 하루 밤 안에 100장의 원고를 써냈는데,. 그가 조증에 있을 때입니다. 울증에 들어가자 한 달이 되도록 한 장도 쓰지 못했습니다. 이는 정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합니다. 독일 문학의 큰 별, 괴테는 정동장애(조울병) 환자였고 그의 일생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형제갈등의 승리였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칠정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힘은 적개심이지요. 이는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이 있으니 긍정적인 것은 생산성을 높이고 에너지가 되는 일면 파괴력을 가집니다. 조울 상태에서 조하면 생산이 높아지고 울하면 생산은 저하됩니다. 흔히 에디프스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숨은 적개심을 승화하여 위대한 생산력을 보여줍니다. 정신방어 기제의 적절한 칵테일이 성격의 특성을 나타내는 데, 미숙하거나 자기도취적 방어를 많이 쓰는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소외됩니다. 사람들이 신경증 환자를 친밀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랑, 질투, 투사 같은 미숙한 방어를 많이 쓴 글(방어적)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필을 쓸 때는 어느 장르보다도 환상과 이차적 가공의 정신기제가 많이 쓰입니다. 너무 솔직히 쓴 초심자의 글은 치모를 들어내는 나체 같아서 흥미가 반감되지요. 들어내되 감추는 기술이 꿈의 기제인 이차 가공입니다. 이 능력이 뛰어난 글은 작가의 숨은 동기를 밝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상생활과 꿈, 작품에서의 차이를 아래 도표에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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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주체 주된 정신기제 사고유형* 논리, 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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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현실 자아 억압,투사,합리화 이차 논리, 합리
꿈 이드(퇴행된 자아) 상징 일차 비논리, 비합리
작품 현실자아(잠재의식) 이차 가공 이차 논리, 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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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유형thinking mode; 일차 사고primary thinking process는 욕망의 즉각 충족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에 의거하며, 이차사고secondary process는 욕망을 지연하더라도 쾌락을 극대화하는 현실원칙에 의거한다.
수필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 현실 체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수필은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깨달아야 할 대상인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은 안 보이는 것도 볼 줄 아는 능력이 터득한 이후에 가능해집니다. 그 밑의 흐름, 역동을 알면서 표면에 보이는 것을 관찰할 때야 비로소 성찰력 있는 수필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좋은 수필을 쓰자면 어느 장르의 작가보다도 건강한 현실감 위에 나름의 체험과 환상의 처리, 그리고 이차 가공력이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수필가 채환은 자신에 대하여 현실의 나와 유령인 나, 두 사람을 말하고 ‘나처럼 엉터리도 없다’고 고백합니다(우연히도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행동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의 견해와 일치하지요). 환상을 바로 이해하고 터득하는 길이 바로 ‘자신의 문학’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바로 글쓰기가 곧 구도의 행위임을 말해주는 예가 되겠습니다. 성찰은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자아의 성숙, 분석심리학이 말하는 ‘개인화’로 가는 길입니다. 글쓰기 작업은 정신분석의 한 작은 흐름, 불완전하나마 구도의 노력을 하는 자기분석self analysis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의 작가, 제네스가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자기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일기로 썼는데 그 과정이 정신치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였다. 자기를 잘 아는 길, 이른바 구도의 길은 바른 글쓰기와 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수필작가는 장기간의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길은 달라도 목표는 같은 길이다, 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임을 후일에 알게 될 터이다.
박양근은 술회하기를, “문인은 자신의 그림자를 비춰주는 불빛도 없고 오직 산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오지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붓을 놓지 않고 오직 한 편의 글을 피우는 것을 평생의 염원으로 삼고 어떤 마음고생도 감내하려 합니다. 글은 사상의 열매이며 고독의 이슬이며 소통의 단풍임으로 홀로 숲을 거닐고 호젓한 샛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글은 삶이 우려내는 신비스런 밀어를 듣는 단 하나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명예라는 유산보다는 수난이라는 훈장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무관의 문인입니다. 글과 문인은 그런 것이니 겸손하지 않고서 어찌 문학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겠습니까, .....문학은 신화의 신비성과 전설의 향토성을 지닌다고 하더니 지금 돌아보니 숲의 나무들은 서 있는 순례자,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들이다. 다만 어두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레 혼자인가 단념했을 따름입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졌음으로 이제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홀로 밤을 새우며 길을 걸어도 즐겁고 신명이 납니다.... ” 상당히 자기도취적인데 공감을 일으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방랑길에서 만난 부사 조운경趙雲卿이, “우리는 왜 詩를 짓고 감흥을 얻소?” 물으며 시험하자 김삿갓 답하기를, “인간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감흥을 얻는 것은 가을밤에 여치가 우는 것과 봄날 긴 하루가 지겨워 우는 두견의 심정과 같은 것이겠지요.“(이청 지은 <김삿갓>)
맹자 왈, ‘하고자 하는 바가 생보다 더한 거,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한 것이 성현만이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자는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따름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간의 욕망은 같으나 현자는 옳음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겠습니다. 좋은 글을 향한 욕망, ‘정신일도 하사불성’하면 이룰 수는 있겠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쓰고자 하는 욕망과 그 밑을 이루는 힘이 무엇인가를 앎은 바로 삶의 통찰이니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격대로 살아갑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자 욕망함은 그 사람의 성격, 인생관이 지향하는 바가 ‘인간답게’ 혹은 성취감에 투자하여, 이름이라도 남기고픈 원초적 욕망, 곧 현시욕입니다. 쓰다보면 덤으로 자기 성찰에 이릅니다. 성찰이란 떠밀려가며 사는 피동적 인생이 아니라 아웃사이더일지라도 통찰을 갖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정신분석가 스캇트 펙 Peck은 <끝나지 않은 길>에서 통찰력 있는 사람의 숫자를 인구의 5%라고 정의합니다. 아마도 수필가는 통찰력 지향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 속하고 좋은 수필을 쓰고자 노력하면 그 성취를 이룰 수 있겠지요. 개인적 소회입니다만 저는 등단 이후에 만난 작가들에서 받는 인상은 ‘직관력이 뛰어나고 감성이 따스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느낌입니다. 이런 인상은 다른 전문가 집단에서 갖기 어려운 경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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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수필 등단(2002). 김종길신경정신과의원장, 가톨릭, 고신, 동아, 인제의대 외래교수.
첫댓글 예술 활동은 파괴된 대상object 에 대한 보상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에 공감이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세히 다시 읽어보렵니다!
대상관계의 결핍이나 손상은 자기도 모르게 평생 아픈 부분이지요. 소위 트로마라고 불리는 ... 영원히 사랑을 위하여 헤매는 바람둥이(돈쥬앙이 대표적인 히스테리 성격 장애)라던가...홀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 등...고통이 너무 크지요, 글을 쓸 수 있다는 소통의 기술을 갖는 것은 얼마나 큰 다행인 지 모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어렵습니다.ㅋ
진짜 어렵다고 느껴지시는 부분은 제 멜로 물어 주셔도 좋아요. 살살 물어 주세여, 아프지 않구로...ㅋㅋ
김선생님! 글쓰기 강의도 하셨던가봐요. 부산이 지척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화드릴 때마다 따뜻하게 응대해주셔서 얼마나 뵙고 싶은지 몰라요....
근데 이글은 몇번이나 읽으려했지만 정신과 공부하는 거 같아 머리가 쑤셔요.
오늘은 자꾸 어찔거려 수액제를 맞았어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래요.
어지러운 데엔 어려운 공부가 약이라구요?
선생님도 더위 조심하셔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