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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인간 진보의 법칙
그렇다면 문명이 전진하고 있는 원칙이 되고 있는 법칙인 인간 진보의 법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러한 법칙은 막연한 통칙이나 피상적인 비유론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라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 인류는 비록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동일한 시간에 출발하였다고는 하지만 사회발전에 있어서는 광범위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정지상태의 문명과 부패하고 파괴된 문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과 지금까지의 문명의 발전이 내포하고 있는 경화(硬化)력 내지 쇠약(衰弱)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또한 진보와 함께 퇴보를, 아시아와 유럽 문명의 일반성격의 차이를, 고대와 현대 문명 간의 차이를, 소(小)현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문명의 폭발, 출발 및 정지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법칙은 진보에 대한 본질적인 조건이 무엇이며, 어떤 사회적 조정이 문명을 전진시키며 후퇴시키고 있는가를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다만 주의하여서 관찰하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법칙에 과학적인 정확성을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고 다만 그것을 지적하는데 그치겠다.
진보에 대한 유인(誘因)은 인간의 성격에 고유한 것으로 되어있는 제 욕망 즉 동물적 성격의 욕망과 지적 성격의 욕망과 동정적 성격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욕망과 알고 행하고자 하는 욕망 및 욕망이 충족됨에 따라서 더욱 만족하지를 못하고서 무한(無限)에까지 확대되려는 욕망 등인 것이다.
마음이란 그것에 의해서 인간이 전진하며, 각 전진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전진을 하기 위한 우월한 입장을 만드는 기구인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므로 키를 한치라도 늘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인간은 생각하므로 우주에 대한 지식과 우주에 대한 힘을 무한도로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짧은 생애로 인하여 조금밖에 전진할 수 없으며 각 세대 또한 전진할 수 있다해도 극히 제한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각 세대들은 선조들의 유전이 계승되므로 마치 산호가 다른 세대의 노작 위에다 한 세대를 건설하여서 바다 밑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쌓아올리는 것같이 인류의 지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력은 진보의 동력이다. 고로 인간은 진보함에 따라서 확대되고 있는 정신력 즉 지식과 방법의 개량과 사회환경의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정신력에 비례해서 전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력에는 한정(限定)이 있는 것이다. 환언하면 육체가 하는 일에 한정이 있는 것같이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정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정신력은 다만 비진보적 목적을 제외한 나머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력이 소모(消耗)되고 있는 이러한 비진보적인 목적들을 유지(維持)와 분쟁(紛爭)이라고 규정하고 싶은 것이다. 유지라고 말하는 경우에 단순히 생존의 부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어진 사회환경과 전진의 보존 등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쟁이라고 말하는 경우에 전쟁이나 전쟁준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희생시키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정신력과 그러한 침략에 반항하려는 정신력의 모든 소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사회를 배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 해상에서의 배의 전진은 선원들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배를 추진시키려는 노력에 의하여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이 배는 배수하는데 필요한 힘이 소모되거나 자체의 지구력이나 다른 방향으로 끄는 힘이 소모되는 경우에 전진이 감소되는 것이다.
그런데 구분된 상태에 있어서는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서 모든 힘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사회에 있어서는 증가된 인원의 협업(協業)을 통해서 가능한 분업(分業)이나 모든 절약을 가능케 하는 연합(聯合)을 통해서만 정신력은 보다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연합이야말로 진보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인간이 평화적으로 연합하게 됨에 따라서 향상이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연합도 더욱 긴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균등권을 부여하고 있는 도덕률이 무시되느냐 인식되느냐에 따라서 분쟁에 있어서의 정신력의 낭비적인 사용의 다과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균등(均等)(즉 정의)이 진보에 대한 다음가는 본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리하여 균등 내에서의 연합이야말로 진보의 법칙이 되는 것이다. 연합은 향상, 동등, 정의, 자유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서 정신력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간단히 표현한다면 도덕률이 인식되므로 이 힘이 소득없는 투쟁으로 분산되는 것이 방지되는 것이다.
여기에 모든 다양성과 모든 전진과 모든 정지와 퇴보를 설명하고 있는 진보의 법칙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이 연합하여 서로 협동하므로 향상에 이바지되는 정신력이 증가하는 경우 진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하려는 이러한 경향은 분쟁이 발생되고 불균등한 상태와 힘으로 연합이 발전하여 나간다면 감소되고 억제되고 마침내는 파기되고야 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능력이 부여되었을 경우 사회발전은 조우(遭遇)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항(抵抗)의 정도에 따라서 빨리 진행되거나 늦게 진행되기도 하는 것이며 또는 정지되거나 도리어 후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자체와 관련시켜서 본다면 향상에 대한 이러한 장애는 외연(外延)적인 장애와 내연적인 장애로 구분할 수 있는데, 외연적인 것은 문명의 초기단계에서 위대한 힘을 나타냈고 내연적인 것은 문명의 후기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성격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의 동료와 같이 생활하기 위하여서 붙잡혀 길들임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탄생할 때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과, 자기의 힘이 완전히 성장하려면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가족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관찰한 바와 같이, 가족관계는 문화민족에 있어서 보다는 미개민족에 있어서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사회는 가족인 것이다. 그리고 종족으로 확대되는데 이때에는 아직도 상호혈족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공동후손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거대한 민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밟은 사람이 이 지구와 같이 표면과 기후가 다양성을 띄우고 있는 곳에 놓여졌다고 한다면 아무리 능력이 동등하며 동시에 출발하였다고 하여도 사회발전은 대단히 상이할 것 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연합에 대한 최초의 제한이나 저항은 육체적 성격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이러한 상태는 지방에 따라서 대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진보도 여기에 비례하여서 상이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생계유지(生計維持)가 자연의 자연적인 선물(膳物)에 무엇보다도 의지하고 있는 원시적인 지식상태에 있어서는 인구의 급속한 자연증가와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서 발생하는 인간들의 결합은 기후나 토지나 물리적 구조에 대부분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동물적인 식량과 따뜻한 옷이 필요한 곳이나 토지가 열등하여 불모인 곳이나 열대삼림의 풍족한 생활로 인하여서 야만인들이 통제하여보려고 하는 보잘것없는 노력이 조소(嘲笑)를 당하는 곳이나 산맥이나 사막이나 바다로 인하여 인간을 고립시키고 있는 곳에서는 연합과 연합으로 인하여 생기는 향상력이 처음에는 지지부진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힘이 적게 소모되고 적은 면적을 가지고서도 인간의 존재가 유지될 수 있는 온화한 기후를 가진 비옥한 평야에 있어서는 인간은 결합될 수 있으며, 한편 처음에 발전에 이바지되던 정신력도 대단히 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명은 초기의 유물이 발견되는 대계곡이나 고원에서 처음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의 다양성으로 인하여서 사회발전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직접적으로 발생될 뿐 아니라 사회발전의 다양성을 발생시키므로 향상하는데 있어서 인간에게 장애를 초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적극적인 반작용력을 초래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나 종족이 서로 구별되므로 인하여 사회적 감정이 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것을 중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나 관습이나 전통이나 종교 등, 요약한다면 각 사회가 대소를 막론하고 부단히 조직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 조직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나 편견이 성장함에 따라서 원한이 발생하며, 계약 시에는 용이하게 싸우게 되는 것이며, 침략은 침략을 낳고 부정(不正)은 복수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주1) 그리하여 분리된 전체사회 간에는 이스마엘의 감정과 카인의 정신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쟁은 상호 간의 사회에 있어서 만성(慢性)적이고 외관상의 자연관계같이 되어버리는 것이며, 사람들의 힘은 공격하고 방위하며 상호살상과 부에 대한 상호파괴 및 전쟁준비에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완강하게 지속되고 있는지는 문명세계에 있어서 보호관세와 상비군의 존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훔치는 것은 절도가 아니라는 관념을 극복하는 것과 국제저작법을 달성하는 것이 대단히 곤란한 일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부족이나 씨족의 영속적인 적대행위에 놀라고 있으며, 또한 각 사회가 다른 사회와 고립되므로서 즉 다른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각 사회가 각 개인이 도피할 수 없는 사회환경의 분리된 조직을 형성하게 되므로 전쟁은 원칙이 되었으며 평화는 예외가 되었다고 하여서 놀랄 것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매 일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연합에 대한 부정(否定)인 것이다. 인간이 다양한 부족으로 분리되면, 전쟁이 증가하여 개선이 억제된다. 반면에 인구의 막대한 증가가 많이 분리되지 않고도 가능한 지방에 있어서는 사회전체가 경계선을 넘어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문명은 부족전쟁에서 모면(謀免)된다는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의 밀접한 연합에 대한 자연의 저항이 대단히 미약한 곳에서는 전쟁견제력도 처음에는 조금도 없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명이 최고로 발생한 비옥한 평야에 있어서는 분리된 부족들은 아직도 야만인으로 남아 있는데도 이 견제력은 고도로 발달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진을 저지하고 있는 만성적인 전쟁상태 하에 있는 소규모의 분리된 사회는 이러한 소규모 사회를 결합시켜서 내부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정복(征服) 부족이나 민족의 도래가 문명화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평화적 연합력이 외부의 공격이나 내부의 알력으로 파괴된다면 전진은 정지될 것이며 퇴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복만이 연합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며 전쟁의 필요로부터 정신을 해방시키게 된다면 문명은 촉진되는 것이다. 지구표면의 기후나 토지나 지형이 처음에는 인류를 분리시키는데 작용하지만 교환을 촉진시키는 작용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가 연합이나 협동의 형태인 상업은 직접적으로 뿐만 아니라 전쟁반대의 관심을 일으키며 편견과 원한의 무용의 모체인 무지도 추방하므로 문명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종교가 취하고 있는 형태나 종교가 발생시키고 있는 원한관계로 인해서 인간을 분열시키고 흔히 전쟁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대개의 경우는 연합을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 사이와 같이 공동예배는 전쟁을 완화하며 연합의 기반을 제공하였던 것이며, 한편 유럽의 야만인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에서 현대문명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제국이 분열되었을 때 기독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결합의 유대를 결하게 됨으로 유럽은 북미주의 인디언의 상태로 전락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라비아사막에서 발생하여서는 태고 때부터 분리되고 있던 종족들을 결합시켰으며, 또한 인류의 대부분을 공동신앙으로 결속시킬 수 있도록 종교의 힘으로 강력한 힘을 배양할 수 있었던 침략민족의 정복의 언월도 아래 아시아의 영향을 받고 있는 문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역사를 개관해 볼 때 인간이 연합한다면 문명은 발생하는 것이고 이러한 연합이 파괴되면 문명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부평화를 보장하고 있는 정복에 의하여서 유럽에 만연되고 있었던 로마문화는 사회를 다시 아무런 관련성 없이 지리멸렬(支離滅裂)시킨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압도된 것이다. 현대문명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보는 봉건제도가 인간을 대규모사회로 재결합시키고 로마의 정신적 우위성으로 마치 로마군대가 그전에 그랬던 모양으로 이런 사회로 하여금 공동관계를 맺게 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봉건적인 결속이 민족적 자치권으로 발전하며, 또한 기독교가 생활태도를 개선시키고, 암흑시대에 감추어졌던 지식을 강화시키고, 기독교의 질서 내에서 연합하는 것을 가르치게 되자 위대한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욱 인간이 보다 밀접하게 연합되고 협동하게 됨에 따라서 점차로 위대한 힘을 발전하면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과정이나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은 저자가 내부저항(抵抗)이나 반동(反動)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을 고찰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진사회의 중심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만이 한때는 화려하게 출발한 바 있었던 문명이 정지되거나 야만인에게 파괴당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진보의 원동력인 정신력은 연합(이것을 좀더 적절하게 표현한다면 통합(統合)이라고 할 수 있겠다)에 의하여서 자유스럽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는 더 복잡하여지고 각 개인은 더욱 상호간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이나 기능은 전문화되어지며, 인구는 부동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는 것이다. 각 사람들은 자기들의 부족분만을 공급하려고 기도하지 않으며, 각종의 상업이나 산업이 분화되어서 각 사람은 각각 한가지의 기술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식도 한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부단히 증대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상이한 개인이 습득하고 추구하는 상이한 부분으로 분화(分化)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식도 이러한 목적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하여서 이행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질서의 보존, 사법행정, 공공부담의 할당, 논공행상, 전쟁행위 등은 정부의 특수한 기능으로 되는 것이다. 허버트 스펜서가 진화를 정의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서 요약한다면, 사회발전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불확정하고 지리멸렬한 동질에서 확정적이며 수미일관한 이질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발전의 하급단계에 있어서는 사회는 기관이나 사지(四肢)도 없으며 일부분이 절단되었어도 그래도 생존할 수 있는 최하급동물의 조직체와 거의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발전의 고도단계에 있어서는 사회는 기능과 힘이 분화되고 있으며 각 조직체의 구성부분은 거의 상호의존하고 있는 고등동물의 조직체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통합과정과 기능과 힘의 전문화는 이러한 과정이 사회에서 진행됨에 따라서 가장 뿌리가 깊은 인간성의 법칙으로 인하여 부단히 불균등화하려는 경향을 수반(隨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서 저자는 불균등이 사회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발생하는 새로운 상태에 있어서 균등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조정의 변혁이 수반되지 않는 경우에 사회적 성장에 나타나게 되는 항존(恒存)적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각 사회가 조직하고 있는 법률이나 관습이나 정치제도 등의 외관은 사회가 발전됨에 따라 과도하게 편협(偏狹)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전진함에 따라서 사람은, 정신을 차린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길을 잃게 되지마는 이성과 정의만은 항상 올라가는 길을 제시하여주고 있는 미궁(迷宮)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을 동반하고 있는 통합은 향상으로 이끄는 정신력을 자유스럽게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만 인구의 증가와 사회조직의 복잡성이 더해짐에 따라서 불균등상태를 산출하려는 저항력이 발동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 불균등상태는 정신력을 소모시킬 뿐 아니라 이것이 증가된다면 향상이 정지(停止)되기 때문인 것이다.
진보와 더불어 진보에 대한 정지력을 발생시키고 있는 법칙을 세밀하게 검토한다면, 물질계 기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 즉 악덕 기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발전을 억제하고 있는 경향의 발생원인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을 저자로서는 퍽으나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에 두 개의 성질이 있다는 것은 회상해보면 곧 생각되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는 습관(習慣)의 힘으로 사물을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하려는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적 내지 도덕적 퇴화(退化)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발전에 있어서 처음 성질은 습관과 관습과 법률과 방법 등을 본질적인 유용성이 상실된 지 오랜 후에도 계속하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며, 다른 하나의 성질은 인간의 정상적인 지각이 본능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제도나 사상형태를 허용하고 있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성장하며 발전한다면 각 개인은 점점 더 전체에 의존하게 되어서 사회의 영향력과 비교하여 볼 때, 자기환경에 대해서까지 개인의 영향력이 감소되려는 경향을 보이려는 것뿐만 아니라, 연합 즉 통합은 개인의 힘의 총계와는 무관한 집단권력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칙에 대한 추론이나 혹은 설명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동물의 유기체가 복잡해지면서 증가된다면 부분적인 생명이나 힘을 초월한 전체로 통합된 생명과 힘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자발적인 운동능력을 초월한 자발적인 운동능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관찰해 온 바와 같이 인간단체의 작용과 충동은 동일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개인에게 환기되고 있는 작용과 충동과는 별개의 것인 것이다. 한 연대(聯隊)의 전투능력은 개별적인 병사의 전투능력과는 별개의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대의 성격과 상승을 연구할 때 지금 언급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검토한 바 있는 것이다. 인구가 희소하게 되면 토지에는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며, 사람이 군집하게 되면 토지가치는 발생될 뿐만 아니라 상승하는 것인데 이것은 개인적인 노력과는 관계가 없는 가치인 것이다. 즉 이 가치는 연합으로부터 발생하여서 연합이 점차 증대하여지는 데 따라서 이 가치도 증가하는 것이다. 반면 연합이 파기된다면 이 가치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성장하여 감에 따라서 전(前)사회적 조정이 계속되려는 경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회의 일부층이 자기들 수중에 이러한 집단력을 장악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전진함에 따라 획득되는 이러한 부와 권력은 대폭적인 불균등을 발생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는 모든 사람은 사회가 부양하는 것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또한 정의에 대한 관념이 습관적인 불의의 묵인으로 불명료하여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서 가부장(家父長)적인 사회조직은 용이하게 세습군주제가 되어서 왕은 지상의 신이 되며 대다수의 국민은 왕이 내키는 데로 부리는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의 가장이 되는 것과, 아버지가 죽은 후에 소사회(가정)에서 가장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장남이 가장직을 계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확대되어도 이런 제도가 계속된다면 특수계통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장악된 권력은 공동재산이 대폭적으로 증가되고 사회의 힘이 성장하여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부단히 증대되려고 하고 있다. 가족의 우두머리는 세습적인 군주로 되는데 자타가 우월권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집단권력은 개인의 힘보다 강력하게 성장함으로 군주의 상벌력은 증가되며 그에게 아부하며 두려워하는 마음도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러한 과정이 방해받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군주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이며, 만백성들은 자기들과 같이 죽을 사람의 무덤을 준비하기 위하여서 50년간을 고생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소규모 야만족의 전쟁지도자는 그들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들은 이 사람을 가장 용감하고 가장 용의주도한 사람으로서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적인 야만족에 있어서는 개별적인 선거가 점차로 곤란하여짐에 따라 맹목적 복종이 필요하게 될 뿐 아니라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적으로 행동을 하여야 할 전쟁의 필요성 때문에 절대권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능의 전문화도 마찬가지다. 즉 사회적 성장이 대단히 진척되어서, 각 생산자들에게 전투를 시키기 위하여 직장에서 소환하는 것보다 정규적 군사력이 전문화된다면 생산력에는 확실한 이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적 군사력을 보유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인하여서 권력은 군대계급이나 혹은 군사지휘관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내부질서의 유지, 사법행정, 공공사업의 건설 및 감독, 특히 종교관계 등 이 모든 것이 동일한 방법을 통하여서 특수층의 수중에 이전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기능을 과장하며 권력을 확대시키려는 의향(意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의 소유로 인하여 발생하는 자연적 독점이야말로 불균등의 가장 큰 원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에 토지는 공동재산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처음 인식되었을 때의 조잡한 제도 즉 연분제(年分制)나 공동경작과 같은 제도는 발전의 하급단계에 있어서만 가능하였던 것이다. 인간이 생산한 물건과 관련되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재산관념은 용이하게 토지에까지 파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구가 희소한 시대에는 개량자나 사용자에게 노동의 정당한 보상을 취득케 하였던 제도도 인구가 조밀하여지게 되고 지대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서 생산자로부터 생산자의 임금을 박탈하는 제도로 화하여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뿐만 아니라 고도로 발달하여도 토지가 공공재산으로 용이하게 보존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공공목적을 위한 지대의 전유는 정치적 내지 종교적 권력이 한 계급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경우, 그 계급의 토지소유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며 기타 사회구성원은 단순히 소작인(小作人)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권력을 집중시키고, 노예제도를 만들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전쟁과 정복은 사회가 성장하여서 토지에 가치가 발생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토지를 전유(專有)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권력을 자기 수중에 집중시킨 지배계급들은 이와 같이 하여서 곧 토지의 소유권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들 지배계급은 피정복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며 전(前)주민은 소작인이 되던가 농노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일정기간에 각국의 자연적 과정으로 국유지 즉 공공지나 목장과 삼림이 원시적인 촌락경작제도에 의하여서 남아있는 국유지 즉 공유지는 현대적 수속을 통하여서 용이하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그리고 불균등은 한번 인정되기만 한다면 토지소유에로 발전이 계속되는 동안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다만 사회발전이 진행됨에 따라서 불균형이 설정된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설명하려고 기도한 것뿐이지, 환경이 상이하면 필연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특수한 속발사(續發事)를 설명하려고 기도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중요한 사실은 그러지 않아도 경화와 퇴보의 모든 현상을 이해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있어서 인간이 통합됨으로 얻어진 권력과 부의 불균등한 분배는, 향상을 가능케 하였으며 사회를 전진케 하였던 힘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평충(平衝)하게 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 사회의 대중들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정신력은 불균형제도의 강화나 허식이나 사치나 전쟁 등에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거부(巨富)와 극빈자로 구분되어 사회는 “거인과 같이 시작해서 보석상같이 끝난다”가 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자부심과 허영과 그리고 인간을 계발(啓發)시키지는 못하고 도리어 인간을 타락시켰던 종교의 상징적 기념물이 될 것이다. 발명은 어느 정도까지는 계속될 것이나, 그 발명도 노역을 해방시키며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발명이 아니라 화려한 사치품의 발명인 것이다. 사원의 객실에서나 궁전의(宮殿醫)의 방에서는 지식이 아직도 탐구될 것이나 그 지식은 비밀로 감추어질 것이다. 혹 일반의 사상이나 일반의 생활을 계발하기 위하여서 표면화된다고 하면 위험한 개혁자라 하여서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가 향상에 이바지하는 정신력을 감소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균등도 인간으로 하여금 향상에 역행하게 하는 것이다. 무지로 인하여서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여야하는 계층들 간에는 얼마나 강력하게 낡은 방법에 집착하려고 하고 있는지는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편 사회적 조정이 특수한 이득을 부여한 바 있는 계급의 보수적 경향도 같이 유명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향상에 이바지 된다고 하더라도 발명에 저항하려는 이러한 경향은 종교와 법률이나 의학이나 과학이나 상업길드 등의 모든 특수한 조직체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조직체가 밀접해질수록 저항도 강렬하여 지는 것이다. 엄격한 단체는 발명이나 발명가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변화가 생겨서 민중과의 장벽을 붕괴시켜서 중요성과 권력을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 공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특수지식이나 기술을 조심성 있게 보존하려는 경향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서 진보가 온 후에는 경화가 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불균등이 발전하게 된다면 향상은 필연적으로 정지하게 되는 것이다. 불균등이 완고하게 계속된다든가 혹은 무익한 반작용을 발생시키게 된다면 생계에 필요한 정신력까지도 감소시키게 되어서 퇴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문명사를 더 잘 이해하게 한다.
기후나 토지나 물리적 구조가 인구의 증가로도 인간을 별로 분리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하고 있는 지방에 있어서는 진보에 대한 내부적 저항은 각각 분리되어 있어서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소규모의 사회가 긴밀히 결합할 때 보다도 더욱 규칙적이고 완전한 방법을 통하여서 자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후기문명과 비교가 되는 초기문명의 일반적인 특징도 이렇게 본다면 설명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동질(同質)사회는 처음부터 상이한 관습이나 법률이나 종교 등 간에 분쟁을 일으킴이 없이 대대적인 통일성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위 집중력과 보수(保守)력이 모두 결합되었던 것이다. 경쟁적 위치에 있는 추장(酋長)들도 상호간 평충하지 않았으며 신앙의 다양성도 승려들의 영향력이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적 내지 종교적 권력과 부와 지식 등은 이와 같이 하여서 동일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습직인과 세습노동자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어서 사회가 카스트제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연합으로 인하여 진보를 성취시키는데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었던 힘은 사원이나 궁전이나 피라미드를 건축하는데 낭비되거나 지배자의 자존심과 사치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낭비되었다. 한편 유한계급 간에 향상하려는 의향이 발생된다면 곧 발명이 가져오는 공포로 인하여서 억제되곤 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발전한 사회는 마침내는 더 앞으로의 발전을 허용하고 있지않는 보수주의로 전락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경화상태가 한번 도달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오래지속할 것이냐 하는 것은 외적 원인에 의하여서 결정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철석같은 사회환경의 유대가 성장하게 된다면 향상과 함께 분해력도 억제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대중이 절망적인 노동생활에 수동적으로 묵종되도록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용이하게 복종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힉소스가 이집트에서 하고 타타르가 중국에서 한 것과 같이 정복자가 다만 지배계급의 위치만 취한다면 만사는 전과 같을 것이나, 정복자들이 약탈하고 파괴한다면 궁전과 사원의 영화(榮華)도 무참히 파멸하는 것이며, 인구는 희소하여지고 지식과 예술은 상실되는 것이다.
유럽문명은 성격도 이집트문명과 그 유(類)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문명은 처음부터 적어도 장기간 동일한 환경하에서 발달한 동질국민의 결합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 분리됨으로 특수한 사회적 특징을 획득하였으며, 소규모의 조직으로 인해서 권력과 부를 일정한 곳에 오래도록 집중시키려고 한 사람들의 결합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반도의 물리적 구조로 인하여서 사람들은 몇 개의 소규모적인 사회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담한 공화국과 명목만의 왕국이 전쟁으로 자기들의 정력을 소모시키는 것을 중지하고 상업의 평화적인 협동을 확대시킴에 따라서 문명의 광채는 빛났던 것이다. 그러나 연합의 원칙도 종족간 전쟁에서 그리스를 구할 수 있으리만큼 강력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종족 간 전쟁이 정복에 의하여서 종지부를 찍게 되자, 그리스의 성인(聖人)들이나 정치가들이 여러 방법을 사용하면서 투쟁하였던 투쟁 대상인 불균등 경향이 작용하게 되어서 그리스의 용맹과 예술과 문학은 과거지사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로마문명의 발생이나 확장 그리고 쇠퇴와 멸망 등에 있어서도 연합과 균등이라는 두 원칙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연합과 균등이 결합한다면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립농민과 자유시민의 결합으로 발생하였으며, 이민족이 공동관계를 맺게하는 정복으로 획득한 생신한 힘으로써 로마의 권력은 세계에 평화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로마문명이 확대됨에 따라서 발생한 불균등의 경향은 처음부터 참된 진보를 억제하면서 증대되었던 것이다. 로마문명은, 국민들을 복종시키며 보호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도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에 평화를 유지시켰던 관습이나 미신이 강력한 유대가 되어있는 동질문명같이 경화된 것이 아니라 로마문명은 부패하고 쇠퇴하고 멸망하였던 것이다. 고트인이나 반달인이 군대의 보호선을 파괴하기 오래전이며, 아직도 변경지방은 확대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로마는 이미 심장부가 죽어있었던 것이다. 대소유지가 로마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불균등은 로마세계의 힘을 고갈시켰으며 생동력을 파괴하였던 것이다. 정부는 독재화하였는데 이것은 암살로서도 완화되지 못하였다. 애국심은 비굴하여졌으며 가장 나쁜 악덕이 대중 안에 우롱(愚弄)되었다. 문학이라곤 유치하여 졌으며, 학문은 망각되었으며, 전쟁의 파괴가 없는데도 비옥한 지방은 황폐하여 갔던 것이다. 즉 불균등은 어디에서나 정치적, 정신적, 도덕적, 물질적 부패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로마를 압도하였던 야만족은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독립농민을 노예나 농노로 대체시킨 제도와 토지를 원로원의 가족의 소유지로한 제도가 가져온 필연적인 소산인 것이다.
현대문명은 연합의 성장과 함께 균등도 성장시켰기 때문에 우월한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개의 커다란 원인이 여기에 공헌하였던 것이다. 즉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집중화된 권력이 무수한 소규모의 중심부로 세분된 것이 그 하나요 기독교의 영향이 그 하나이다. 처음 것이 없었더라면 동로마제국은 경화되었을 것이며 서서히 부패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동로마제국은 국가와 교회를 밀접하게 결합시켰으나 외연적 세력의 상실로 내부의 전제(專制)를 해결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 것이 없었더라면 연합과 개량에 대한 원칙이 없게 됨으로써 야만족으로 전락하였을 것이다. 도처에서 지방주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소추장과 자주적 영주는 상호 견제하였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자기들의 옛 자유를 회복하였으며 자유도시도 건설되었다. 촌락공동체도 확고해졌으며 농노들도 자기들이 경작하고 있던 토지에서 권리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균등에 대한 튜튼 민족의 감화력은 와해되고 해체된 사회조직을 통하여서 작용하였다. 비록 사회가 아직도 무수히 작은 단위로 분리되기는 하였어도, 밀접한 연합 관념은 항상 존재하고 있어서 세계제국을 회상하게 되거나 세계교회를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부패한 문명을 거쳐오면서 왜곡되고 뒤섞였으며, 이방신(異邦神)이 만신전에 자리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 형태가 기독교의 의식에 침투하였고 이방적인 관념이 기독교 교의에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균등에 관한 본질적인 관념은 전적으로 파괴당하지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초기문명에 있어서는 교황권의 설정과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이라는 두 제도가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즉 처음 것은 정신력이 세속적인 권력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였으며 나중 것은 모든 권한이 유전적인 형태로 취하는 시기에 있어서 성직자계급의 설정을 방지하였던 것이다.
노예를 폐기하려는 노력, 사투(私鬪)금지, 수도원의 명령, 민족을 결합시키는 회의, 정치적 경계선을 초월한 칙령, 가장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표지가 부여되고 있는 비천하게 태어난 사람의 손, 성직수임으로서 가장 고귀한 귀족이 되는 주교, 단순한 어부의 후계자로서 민족 간의 중재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등자는 왕들이 잡고 있는 공칭 “종 중의 종” 등 이 모든 것을 통하여서 교회는 그래도 결합의 촉진자이었으며 자연적인 인간 균등의 보증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연합과 해방에 대한 자기업무가 거의 끝나게 되며, 교회가 매었던 결속이 너무 강력하게 되고, 교회가 보존하였던 학문이 세상에도 보급되자, 인간의 심정을 결속시켰던 쇠사슬을 파괴하는 정신을 그 자체 내에서 함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조직이 분열되었던 것이다.
유럽문명의 발생과 성장은 대단히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몇 마디의 글로서는 적당한 전망이나 관계를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에 있어서나 세부에 있어서 사회가 밀접하게 연합되고 균등히 되려는 경향이 많이 보일 때 비로소 진보가 성취된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협동이다. 그리고 단합과 자유는 문명의 요소인 것이다. 대규모적이고 조밀한 사회의 성장뿐만 아니라, 각 사회를 결속시키고 있으며 사회가 광범위하게 분리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연결시키고 있는 상업의 증가와 교환의 증대로 이루어지는 결합의 대대적인 확대, 국제법과 국내법의 성장, 재산과 개인과 산업자유가 보장되어서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나타나는 진보 즉 생활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려는 진보 등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되어서 우리들의 현대문명은 전에 존재하였던 여하한 문명보다도 위대하여졌으며 높은 문명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정신력이 해방되어서, 지구의 극소 부분을 제외한 거의 전부를 인간의 지식에서 유리시켰던 무지의 베일을 거두어서 파기할 수 있었으며, 회전하고 있는 천체의 궤도를 측정하며, 한 방울의 물속에도 움직이고 충동을 느끼고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의 비밀의 공실(控室)을 개방할 수 있게 하여서 장기간 매몰되고 있었던 과거의 비밀을 해득할 수 있게 하였으며, 자연력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노력이 허무하였을 것인데 인간은 자연력을 동력으로 이용하여 인간에 봉사하게 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위대한 발명으로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현대문명에 유포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 숙명론의 정신으로서는 전쟁과 노예도 인간의 진보의 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되고 있다. 그러나 연합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전쟁은 더 큰 전쟁을 방지하거나 혹은 그 자체가 수동적인 전쟁인 반사회적 장벽을 파괴할 때에만 비로소 진보적인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예제도에 관하여 말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다. 노예제도가 어떻게 자유를 설정하는데 공헌하였는지 도시 알 수 없는 것이다. 균등의 동의어인 자유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조잡한 상태에서부터 진보에 대한 자극제와 조건이 되어왔던 것이다. 노예제도로 인하여서 식인성이 파괴되었다는 오거스트 콩트의 생각은 마치 인간이 구운 돼지고기의 맛을 알게 된 우스운 엘리아의 생각과 같이 환상적인 것이다. 가장 비자연적인 상태 즉 가장 가공할만한 욕망이라든가, 가장 야수적인 미신 등의 상태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면 사람에게서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성향(주2)은 가장 본원적인 충동이라는 것과, 가장 하급상태에 처하고 있어도 동물 중에서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간은 양질의 야수가 나타낼 수 없는 자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노예제도는 노예소유자에게 개량할 수 있는 여가(餘暇)를 줌으로써 문명을 시작하였다는 생각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노예제도는 향상함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또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사회가 한 사람의 주인과 한 사람의 노예로 구성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천의 주인과 수백만의 노예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다 같이 인간의 힘은 필연적으로 낭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예노동은 자유노동보다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주인도 노예를 소유하고 감시하느라고 힘을 소모하게 되어서 실제의 향상과는 다른 면에서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인간의 자연적인 균등의 부정과 같이 진보의 장애가 되었으며 진보를 방지하여 왔던 것이다. 노예가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擔當)하고 있는 그만큼 향상은 정지되는 것이다.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문학과 예술이 발달하고 세련되었는데도 현대문명의 특징으로 되어있는 위대한 발견과 발명이 없는 것은 그 당시에는 노예가 보편화되고 있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이다. 노예소유 국민은 창조적인 국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노예소유사회에 있어서는 상층계급들은 사치스럽고 세련될 수는 있어도 창조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노동자가 타락하게 되고 자기노동의 결실을 박탈당하게 된다면 발명정신은 질식을 당하는 것이며, 발명이나 발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용되는 것을 금지당하고 마는 것이다. 유독 자유만이 지구의 보물과 공중의 무수한 힘을 유지하고 있는 신령(神靈)을 부를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진보의 법칙이란 도덕법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회적 조정이 정의를 진흥시키며, 사람과 사람과의 균등권이 인정되고 다른 사람의 동등권으로 인하여 받는 제한을 제하고서는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때에만 문명은 그만큼 전진하는 것이다. 여기에 실패하게 된다면 전진하던 문명도 정지되거나 혹은 후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학이나 사회과학도 1800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이 가난한 어부와 유대인 농부에게 가르치신 단순한 진리를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면 어떠한 교훈이라도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란 무엇인가? 이기심으로 비뚜러지고 미신으로 왜곡되는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적인 갈망을 체계화시키려던 모든 종교의 근원이 되고 있는 단순한 진리인 것이다.
(주1)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어느 정도 해방시킨 사람이나, 다른 계급과 같이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지가 경멸과 증오로 되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며, 양식(樣式)이나 관습이나 종교 등의 차이를 우리와 상이한 사람들의 열등감의 증거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문명사회에서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종교에 든다면, 다음과 같은 찬송가의 정신은 모든 종교에서 볼 수 있다.
“감리교인이 되어서, 항상 은혜에서 떨어져 있기보다는
차라리 침례교인이 되어서, 빛나는 얼굴을 가지리라”
영국의 주교가 “정교(正敎)는 나의 (신학상의) 주견(主見)이고, 이교(異敎)는 다른 사람의 주견이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현재 보급되고 있는 정교와 이교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이방교와 무신론으로서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을 모든 다른 상이 간에서도 볼 수 있다.
(주2) 샌드위치섬 사람들은 추장의 육체를 먹으므로 훌륭한 추장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 악질이며 전제적인 추장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적의 육체를 먹으므로, 그들의 힘과 용맹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포로를 먹게 되는 일반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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