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강해(4) 2024. 7. 14
힘써 대장부가 되라
왕상2:1-4
<솔로몬의 대관식>
다윗은 나이가 많아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은 나이’(70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다윗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넷째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30절) 선언하고는, 대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친위대장 브나야를 불고, 솔로몬을 ‘왕의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가서 ‘기름을 부어’ 대관식을 열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뿔 나팔을 불어’ 이 사실을 널리 알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에 기혼 샘 곁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치며 즐거운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도니야의 반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두려워 혼비백산 다 흩어졌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듯, 불의는 정의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도 예루살렘 성막으로 달려가 제단의 뿔을 잡고는 솔로몬에게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낼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릅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평생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온 다윗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하지 못했을까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라는 말처럼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왕위 계승’을 발표하면 그 후부터는 자신의 존재가치가 상대적으로 위축됩니다. 주도권을 차기 왕에게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기회를 저울질하다가 그만 적기를 놓쳐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마26:41)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 꼭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건강이 예전만큼 회복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지 정당하지 못한 자기변명이요 핑곗거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모습도 다윗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대로 순종하여 따르지 않습니다. 말로는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를 더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다윗이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고 선언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순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유언>
한 여자가 해변에서 이상하게 생긴 병을 하나 주웠습니다. 직감적으로 요술 병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열심히 문질렀더니 정말 병 속에서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흥분한 여자는 요정에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실 거죠?” 그러자 요정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유감스럽지만 한 가지 소원만 들어드릴 거예요. 한 가지만 말하세요.”
그러자 여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요정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이 지도를 한번 보세요. 중동지역에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중동지역에 평화를 가져다주세요.” 그러자 요정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오, 이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다른 소원을 말씀해주세요.”
그 말에 여자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좋아요. 나는 지금껏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요. 감정이 섬세하고, 친절하고, 요리도 청소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다 주고, 한눈 안 팔고 나에게만 잘해주는 그런 남편을 구해 주세요.” 여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요정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아까 그 지도 다시 펴보세요.”
하나님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아니 마지막 순간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무슨 유언을 남기시겠습니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주는 유언입니다. 다윗의 유언은 두 가지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선배 신앙인으로서 아들에게 남겨주는 ‘신앙적인 유언’이고, 다른 하나는 선배 정치인으로서 아들에게 남겨주는 ‘정치적인 유언’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적인 유언’입니다.
1~2절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그 첫마디는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솔로몬에게 기대한 아버지의 ‘소원’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솔로몬은 다윗과는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믿음으로 개척해 온 사람입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업신 여겼을 때(삼상17:42), 다윗은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5-47).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까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라고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인생을 개척해 온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가 대장부로 살아온 비결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릅니다. 그는 왕궁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어립니다. 왕상3:7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 중에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20살에 왕이 되었다는 설과 14살에 왕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몇 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다 보니 수많은 내외부의 정적들과 싸워야 하는 일에, 그리고 나라를 올바르고 강하게 이끌어 가는 일에 튼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솔로몬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다윗 왕에게 토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을 한 것입니다.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 이유>
그런데 다윗은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3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이 이유가 더욱 정확히 드러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직접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1:6-8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역시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보시고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특히 7절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자, 여호수아가 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잘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로든 좌로든 율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다른 곁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힘을 내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진정한 대장부’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신이 진정한 대장부인 것을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이 비결은 다윗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형통하는 삶의 원칙이자 비결’이었습니다.
솔로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다른 조건들이 아닙니다. 힘을 기르고, 무기를 잘 다루고, 주변에 군사들을 많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 행하리라는 분명한 다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왕이 되고 난 후에 한 말씀, 한 말씀을 순종하여 따르노라면 언젠가 솔로몬이 대장부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두렵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다면, ‘압수수색’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무슨 ‘특검’을 하자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법대로 했다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인생의 법이요 안내지도입니다. 표지판입니다. 늘 가까이 두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잠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합니다. 의롭게 사십시오. 담대할 수 있습니다. 악하게 살면 담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 다음에 계속해서 다윗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말씀을 솔로몬에게 전해줍니다.
4절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다윗에게 언제 이런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거꾸로 다윗에게 집을 세워주겠다고 그러셨지요. 다시 말해서 다윗 왕가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삼하7:11b-16 “…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된 것입니다. 이 약속이 솔로몬을 통해서도 계속 이어져 갈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죽은 후에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로 솔로몬은 당대 어느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번영을 이룹니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라는 다윗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번영을 견디지 못합니다. 데일 카아네기(Dale Carnegie)가 "누구나 역경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위대한 사람만이 번영을 견딘다"(Any man can stand adversity; only a great man can stand prosperity)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의 길을 따라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 번영을 얻었는데, 그 번영으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솔로몬의 타락을 저자는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솔로몬 왕은 외국(이방) 여자들을 좋아하였다(왕상 11:1)는 것입니다.
"외국(이방)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의아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외국 남자 혹은 외국 여자를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취향 혹은 기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여인들로 인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더 큰 쾌락을 위해 그 여인들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그들이 섬기는 우상 숭배가 나라 안에 퍼지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옳은 길을 택하고 그 길에서 완주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도 여러 번 넘어졌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고 사람 앞에서 낮아질 줄 알았기에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그의 길에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다윗의 길에서 벗어난 다음에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4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동사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4절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첫 번째는 ‘그들의 길을 삼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심스럽게 잘 살피라는 뜻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부나 팔린 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삶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물질에 의존하며 산다.
2) 두려움에 이끌려 다닌다.
3) 죄의식에 이끌려 다닌다.
4) 원한,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산다.
5)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산다.
그들의 길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어떻게 행하라고 가르치십니까?
두 번째는 ‘내(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앞’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앞’을 의미합니다.
왕이 되면 맨 먼저 율법서의 복사본을 챙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반드시 그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생존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영어로 ‘Survival Value’라고 하는데, 이 생존치가 높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생존치가 낮은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주저앉습니다. 왕따를 당했다고 살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생존치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살아남은 다윗이나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은 생존치가 대단히 높은 사람들입니다.
‘생존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목숨을 걸고 사랑할 대상을 만나야 합니다. 이 사랑하는 대상이 고귀할수록 생존치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가장 고귀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만난 사람은 생존치가 최고에 달합니다.
둘째, ‘목숨을 걸 만한 사명’입니다. 평생을 걸고 추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생존치가 최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목숨을 걸 만한 사명’을 주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입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유언은 솔로몬만을 위한 유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유언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신앙적인 유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형통으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형통하는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이 시대의 ‘대장부’로 인정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