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주후 명화 탄생 고흐 예술의 절정기
노랑 해바라기를 통해 본 강렬한 생명의 찬가
뇌장애로 인한 발작증세로 절망하다가 1890년 7월, 37세의 짧은 생을 권총자살로 마감하며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겼던 고흐.
그의 삶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비극적인 드라마 그 자체였다.
후기 인상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1853년 네덜란드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6세 때 숙부의 구필화랑에서 일했다. 날마다 예술 작품을 접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으나,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 그가 실연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어두워져 고독해졌고 이런 상태는 평생 지속되었다. 책방 점원으로도 일했던 그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선교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빈털터리에다 믿음마저 잃어버린 그는 절망 속에서 모든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부서회(浮世繪)’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 렘브란트와 밀레풍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다.

1888년 2월 프랑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 약 2년 반 동안 고흐 예술의 꽃이 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여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특히 ‘해바라기’는 고흐의 상징처럼 되었는데 그것은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하는 성질은 고흐의 내면적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태양에 향하는 집념이 어쩌면 해바라기를 꼭 닮아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강렬한 변화의 노랑해바라기를 표현한 것은 바로 고흐 자신이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는 태양의, 또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한 강렬한 생명력을 해바라기를 통해 본 것이리라.
고흐는 정신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는 등 그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마구 그림을 그리다가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90년의 10년뿐이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판 그림은 한두점에 불과할 정도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1백년이 지난 요즘, 그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을 호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한점의 작품에 깃든 화가의 삶과 생명력의 무게는 진정 얼마의 가치일까.

Terrace of a Cafe on Montmartre (La Guinguette)
Paris
1886, October
Montmartre near the Upper Mill
Paris
1886, Fall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The
Arles
1888, September
Starry Night over the Rhone
Arles
1888, September
Ward in the Hospital in Arles
Arles
1889, Apr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