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줄거리>
나는 곧 제약회사 전무 자리에 오르게 예정되어 있는 젊은 사업가이다.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 탓에 금세 그같은 입신출세를 하게 된 것이다.
새 출발을 해야 되는 시점이면 늘 그렇게 해 왔듯이,
나는 어머니의 묘소가 있고 성장기의 추억이 있는 고향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가 항상 가득한 곳.......
그 곳에서 나는 늘 초조에 사로잡힌 채 불면의 밤을 지새웠고,
화투놀이 등으로 세월을 탕진했었다.
무진에서 와서 나는 중학교 후배 한 명과,
고시에 합격하여 고향의 세무서장으로 와 있는 친구 한 명을 만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음악교사인 하인숙을 소개받는다.
그녀는 대학 졸업 무대에서 오페라의 주역을 맡았던 여자.
그러나 지금 그녀는 무진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은 열망에 몸을 떨고 있을 뿐.
하인숙은 나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지난 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나는 그녀에게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그녀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지만,
마음 속으로만「사랑한다」고 말할 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산소에 다녀오던 길에 나는 방죽 밑에서 죽어있는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그 방죽 옆에는 지난 날에 내가 한동안 거처했던 집이 있다.
그 집은 폐병에 걸려 내가 오랫 동안 요양 생활을 했던 곳이다.
나는 거기서 하인숙과 만나기로 약속한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서 전보가 온다.
급히 서울로 돌아오라는 전갈이다.
나는 하인숙에게 전하려고 썼던「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찢는다.
나는 무진에서의 안개 짙은 추억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리라 결심하면서 그곳을 떠난다.
<읽기>
사람은 늘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요지부동인 일상의 막막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등교길의 학생이 무단으로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는가 하면,
지나치게 폭음을 하고는 그 이튿날 출근조차 하지 못하는 성인도 있다.
물론 일상을 벗어나는 사고와 행동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람의 삶에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릇 일상적 사유와 행동은 흘러간 과거를 답습하기 마련이어서,
개인에든 사회에든 새로운 전망을 창조해내는 매개로는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 에디슨 등의 널리 알려진 일화는 바로
이와 같은 일탈적 사고와 행동의 생생한 모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승옥은 소설을 통해
'개인의 생애든 사회 전체의 운명이든 그것은 사실
짙은 안개 속에 묻힌 불확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던 듯이 여겨진다.
일찍이 프르스트가「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
이라고 노래하고, 우리나라의 민족시인 한용운이「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시를 통해
사람의 생애는 스스로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남긴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읊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일상인가, 일탈인가.
잘못된 일상이라면 일탈이 바람직할 것이고,
의미있는 일상이라면 일탈은 별로 권장할 만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캄캄한 밤중에 산을 넘는다고 할 때,
내가 걷는 길이 비록 또렷하다 하더라도 그 끝이 낭떠러지에 이른다면
궤도를 벗어난 일탈을 과감히 저질러야 할 터이고,
비록 지금은 좁고 군데군데 끊긴 험로일지라도
그 끝이 목적지에 닿는 외길이라면
우리는 흔들림없이 그 일상을 유지해야 하리라. 그렇다면,
『무진기행』을 읽으며 우리 모두 나의 일상을 면밀하게 한 번 돌이켜 보자.
나의 일상은 과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일상인가, 아니면
일탈을 재촉하는 일그러진 일상인가.
☆ 김승옥 : 대학 재학 시절부터『산문시대』라는 문학동인을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신선한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로 1960년대 소설계를 풍미한 작가.
주요작품에『서울, 1964년 겨울』,『무진기행』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