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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적조 (張寂照 1878~1960)
본명 미상. 법호는 이타원, 법훈은 대봉도. 1878년 10월 15일(음). 경남 통영에서 부친 문중과 모친 박거창의 6남 5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천성이 강직하고 고결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성격이 남성적이고 활달했다. 16세 되던 해 부모의 뜻을 따라 이웃 마을의 이씨 문중에 출가하여 풍족한 환경에서 10여년을 지냈으나 남편과 이상이 맞지 않고 집안 살림의 구속에 묶여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구차하고 답답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원했다. 30세 미만에 집을 떠나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 때 10여년간 예수교와 보천교 등을 신앙했다.
1921년(원기 6) 5월 15일 이만갑의 소개로 전북 부안 변산의 실상초당을 찾아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제자가 되어 이어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이후 영산에 도실(道室)을 지을 때는 여자의 몸으로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땔나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원평에 교당설립을 목적하고 교도를 찾아 순교하며 기금마련을 위해 작농고 하고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편에서 변산까지 먼 길을 내왕하며 알뜰한 신성을 바쳤다. 무엇보다도 연원교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원평의 서동풍/서중안 형제를 인도하여 익산총부 건설의 주역이 되게 했고, 증산교 교파인 무극도인들을 개종시켜 귀의케 했다.
1929년(원기14) 봄 부산으로 내려가 아들 이덕환의 집에 살면서 순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1931년(원기 16)에 하단지부(현당리교당)를 설립하여 당시 소태산과 조송광을 초청하여 소태산의 최초 경상도 행가를 가능케 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북방교화에 나서 1936년(원기 21)함경도 청진에 사는 아들 집에 있으면서 7명을 입교시켰고, 1937년(원기22)에는 만주로 진출하여 심양/길림/목단강/장춘/연길 등에서 1945년(원기30) 5월까지 218명의 새 회원을 입교시켰다. 숱한 고생 끝에 목단강변에 교당 건물까지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상시국으로 인하여 중지하고 총부로 귀환해야만 했다. 특별한 교직은 없었으나 혼자의 몸으로 원평/대구/평양/청진/만주/서울 등을 순회하며 법음(法音)을 전하던 장적조에게 소태산은 이타원이란 법호를 주었는데, 박사시화/최도화와 더불어 '불법연구회 3대여걸'로 불렸다. 1931년(원기16) 3월 여자수위단 곤방 단원에 피선되어 대중의 신망을 받기도 했다. 1960년(원기45) 12월 20일 노년의 수양을 즐기던 중앙수양원에서 열반했다. 법위는 정식 법강항마위에 올랐으며, 1988년(원기73)에는 대봉도의 법훈이 추서되었다. (<원불교대사전>, 974쪽. 밑줄은 인용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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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얼마나 놀라운 삶인가. 조선독립을 위해 상해로, 모스크바로, 고비사막 횡단을 하기도 했던 몽양 여운형의 호연지기가 떠오른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가족을 버렸고, 섬기던 종교도 바꾸었던 그이는 조선 땅 자체가 갑갑했던 모양이다.
30세 미만에 집을 떠나 세상을 누비며 뜻을 펼친 그 속내에, '여자 몸'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원통하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야 할 일이지만!) 이 분의 선 굵은 삶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력의 첫 줄에 '본명이 미상'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게 비춘다'는 뜻의 '적조'는 법명인 듯. 게다가 이 선진님은 지금 부산 금정교당에 속해 있는 내게는 중요한 역사적 연원이기도 하여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교안에는 젊은 시절의 사진이 실려 있어 장수 같은 기운과 대찬 성품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내가 참고한 <원불교 대사전>에 등재된 노년기의 사진은 같은 사람일까 의심스러울 만큼, 인자하고 선이 고운, 이름 그대로 '고요한 비춤'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잠시 그 영혼을 기리며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