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beautiful rendition of the national anthem of the United Kingdom
sung at the Royal Maundy Service at Westminster, in 2011.
이 CD에는 케틀비(영국), 포레(프랑스), 포스터(미국)의 곡이 각1개씩,
크라이슬러(독일), 파가니니(이태리), 파헬벨(독일)의 곡이 각 2개씩 들어
있고, 나머지 8곡은 푸치니(이태리)의 오페라에서 뽑은 아리아이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태리는 이미 가본 나라들이니 못 가본 나라는 영국
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영국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영국을 흔히 잉글랜드(England), 그 나라말을 잉글리시(English)라고 한다.
그러나 그 나라의 현재 공식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다. England, 웨일즈(Wales), 스코트랜드(Scotland),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로 구성되어 있으나 England의 면적이 제일
크기 때문일 것이다.
1801년 아일랜드가 영국에 합병되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라는 나라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1922년에 Ireland가 독립국이 되면
서 지금과 같은 나라이름이 된 것이다.
-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 나라의 면적은 약24만㎢이고, 인구는 2003년에 6,009만 명이 넘는다고
책에 쓰여 있다. 수도는 런던(London)인데 인구는 720만 명쯤 된다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나라에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중부유럽으로부터
켈트족이 이 섬으로 많이 건너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약 2,000년 전에
이 나라에 로마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 약 350년 동안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앵글로(Anglo)족, 색슨(Saxon)족이 이 섬의 지배자
였었는데 9세기말에 노르웨이의 바이킹족과 데인족인 침략하여 1016년에
데인족의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 노르만족인 윌리엄(William) 왕이 그들과 싸워 이겨서
이 나라는 그 이후 그 왕의 자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의 영국국왕인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도 이 사람의 자손이다.
윈저(Windsor)성과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 등이 그 시기에
건축되기 시작한 건물들이다.
- William the conqueror at the battle of Hastings
18세기에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이 왕좌에 오를 무렵, 이 나라는 이미 세계
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어있었다. 영국의 해군은 세계의 주요항로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고, 산업혁명이 이 나라에서 시작되어 인류문명을 커다랗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문명은 이 영국이란 나라 사람들이 뿌려
놓은 씨앗으로부터 싹튼 것이다.
이 나라는 싸움에 특히 강해서 남의 나라와의 전투에서 별로 져본 적이 없
다. 세계 1.2차 대전은 물론이고, 그 이전의 프랑스와의 전투, 스페인 무적
함대와의 전투에서도 모두 이겼다.
이리하여 이 나라는 세계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은 오스
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가 이 나라의
연방국이다.
하연이 네가 미국에까지 가서 사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다.
- 영국 해군과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
영국이라고 하면 나는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그리니치 천문대(Greenwich Royal Observatory)이다.
1675년 찰스(Charles) 2세가 천문항해술을 연구하기 위해 런던부근의 그리
니치에 이 천문대를 세웠다. 초대 대장이었던 프람스티드(J. Flamsteed)는
태양, 달, 행성, 항성의 위치관측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1884년에 이르러 미국의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이 천문대를 남북
으로 지나는 선, 즉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아 전 세계의 경도(longitude)를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숫자를 기준으
로 정해놓은 지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선에 따라 세계 각국의 시간이
정해진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우리나라 세종대왕께서 영국보다 먼저 혼천의라는 천문기상관측 기구를
만들어 놓았었으나 우리 후손들이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일이지...
- The 28-inch dome at the Royal Observatory, Greenwich.
둘째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이다.
서기 1215년 영국의 존(John) 왕 시절이었다. 그 10년 전에 유럽대륙에 있
던 땅을 프랑스 필립 2세에게 빼앗긴 존 왕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너무 무겁
게 매기고, 노동을 강요하여 불만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반항하는 제후들과
협의한 결과 왕권을 제한하고 제후와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문서
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Magna Carta이다.
이것이 문서로 된 법률(성문법이라 한다)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훗
날 민주주의의 씨앗이 된 중요한 것이었다.
셋째는 위스키(whisky)이다. 내가 영국에 두 번 갔다 오면서 그 나라 남부
지방과 북부지방을 다녀보았다. 그런데 기후가 별로 좋지 못하여 사람살기
적당한 곳이 못되는 듯하다. 안개 많고 구름 낀 날이 대부분이라 비가 줄줄
내려서 햇빛 쨍쨍한 날이 일 년 중 몇 날 되지 못한다.
이러니 무슨 곡식이 잘 되겠니? 소나 양 같은 풀 먹는 짐승들이나 살 곳이
지. 그래서 원래 유목민들이 살았던 땅이라고 그랬지? 쌀 같은 곡식은 물론
있을 수 없고, 밀이나 귀리 같은 종류의 곡식을 겨우 재배할 수 있는 땅이다.
- 스코트랜드 지방 풍경
이 나라의 북부지방인 스코트랜드(Scotland)는 남쪽의 잉글랜드(England)
보다 더 못한 땅인 것 같더라. 나무도 별로 없는 황량한 들판에 귀리 같은 곡
식이나 재배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그것으로 술을 빚게 되었는데 그 술이 스
카치위스키(Scotch whisky)가 된 것이다.
이 기술을 잘 발전시켜서 영국은 위스키로 다시 세계를 정복하였다.
위스키로 전 세계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다시 된 것이다.
이 나라의 위스키를 수입하는 나라 중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속
에 들어가는 나라이다. 할아버지가 그 술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그럴 수 도 있다. 미안하다.
그러나 음악이란 분야에서만 보면 별로 만나볼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는 엘가란 사람 한 사람을 찾아보았을 뿐이다.
하이든과 헨델이란 사람을 만날 때 영국 이야기가 좀 더 있을 것이다.
여기 영국의 지도를 실어놓았다. 너도 커서 이 나라를 반드시 가게 될 것
이다. 미리 살펴 두어라.
런던에 가면 왕궁인 버킹검 궁(Buckingham Palace), 타워 브릿지(Tower
bridge), 웨스트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을 보게 될 것이니 미리
사진을 실어둔다.
- Buckingham Palace
(1) 케틀비 (Ketelbey. A. W. 1875 - 1959. 영국)
페르시아의 시장(In A Persian Market )
- In a Persian market
이 사람은 영국의 버밍햄(Birmingham)에서 태어나 13살 때 이미 음악의 재
능을 인정받아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의 작곡 장학금을 받고 런던의 트리
니티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라고 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국왕의 장학금 받고 공부한 사람은 별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음악 잘하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장학금을 받는가 보다.
장학금까지 받고 음악공부를 했으니 여러 방면으로 음악적인 활동을 하였
겠지. 그러나 여기에 소개된 곡 하나만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떼의 낙타가 천천히 걸어온다. 시장의 웅성거림, 가난한 사람들의 떠드
는 소리, 추장의 딸들이 종자와 행렬을 지어 지나간다. 그리고 뱀 놀이를
즐기는 사람 등의 정경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 음악은 묘사 음악에 속하는 명곡이며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
만 페르시아의 음악을 도입한 것은 아니고 유럽인이 느끼는 동양풍의 음악
이다.
(2) 크라이슬러 (Kreisler, Fritz. 1875-1962. 오스트리아)
사랑의 기쁨 (Liebesfreud)
- Kreisler - Liebesfreud
이 사람은 비엔나에서 태어났으나 68세 때 미국의 시민권을 얻어 미국사람
이 되었다. 작곡자이기도 하지만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가 아우어 문하의 4천왕 중 한사람인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하이페츠의 연주를 보고나서 짐벌리스트에게 한 말처럼 바이올린을
부셔버렸는지 아닌지는 모르지?
여기나온 사진에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네?
그때 바이올린을 박살내 버리지 않은 덕분에 그는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
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바이올린을 위한 여러 개의 소
곡(small piece)이 있고, 2개의 오페레타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 실린 곡과
아름다운 로즈마린이란 곡만 자주 연주된다.
하연아! 네가 좀 더 자라면 사랑을 알게 되겠지.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것보다 앞서 말한 교양의 음악이란 책에
쓰여 있는 이 곡에 대한 설명을 여기에 옮겨 놓으면 아마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알 수는 있을 것이다.
- Fritz kreisler(1875-1962)
"사랑의 기쁨은 느껴 본 사람이라야 알 수 있지만, 크라이슬러의 이<사랑의
기쁨>은 들으면 누구나가 느낄 수 있으리라. 빈 지방의 옛 민요로 된 원무
곡인 이<사랑의 기쁨>은 밝고 청순한 젊은이의 사랑이, 그러나 동양적인
내면의 사랑이 아닌 발랄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설사 사랑의 대상이 없어도 좋다. 이미 얼음장 밑에서 녹아 흐르는 사랑의
대화는 기침처럼 술길 수 없는 것. 눈 속에서 자란 가냘픈 싹이 언젠가는
눈을 뜨고 밝은 태양빛을 바라보듯, 소년의 가슴에서 움트는 사랑은 혼자
만이 간직한 <사랑의 기쁨>.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더욱 좋다. 뜨거운 가슴이 하나의 불꽃처럼 타 오르
고,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아래서 약동하는 춤이라도 추고픈 이 기쁨이.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너무도 고답적이며,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아름답지만 내면적이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는 너무 가엾고,
브람스의 <침묵의 사랑>은 좀 답답하다.
솔베이지의 망부석의 사랑은 너무 애닲고, <춘희>의 주인공 비올레타의 마
지막 사랑은 순결하지만 비참하다.<아, 그대였던가>라는 그 가슴 설레이는
사랑의 기쁨이.
그러나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저 기쁨 그 자
체다. 애타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고, 더욱이 비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
고 해서 혼자만이 간직한 소극적인 꿈만도 아닌 그저<사랑의 기쁨>과도 같
은 이 곡은 그와는 너무 상반된 즐거운 왈츠. 부푸는 기쁨이 왈츠의 약동하
는 피아노의 리듬을 타고 나비처럼 춤춘다.”
이것은 해설이라기보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구나. 이래서 이글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나는 이보다 더 잘 쓸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3) 크라이슬러 - 사랑의 슬픔 (Liebesleid)
- Fritz Kreisler plays Kreisler "Liebesleid"
사랑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지고 있단다.
또 그 설명을 한번 들어볼까?
“<사랑의 기쁨>의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사랑의 슬픔>. 그러나
때로 이 슬픔은 슬픔이 아니라 너무 기쁜 것을 가눌 수 없을 때, 맑은 눈
동자에 조용히 괴는 눈물처럼 기쁨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달빛 서린 눈
동자의 조용한 대화는 기쁨이냐, 슬픔이냐, 진정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꿈속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은 거품처럼 연약하게 인간을 창조했다. 신은 사랑을 창조했지만 사랑
은 또한 괴로움을 창조했다(허버트의 말). 괴로움이 따르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랑은 증오와 함께 탄생했고, 사랑은 기쁨을 가르쳐 주지만, 곧 이어 슬
픔과 괴로움을 그 댓가로 마셔야 한다. 사랑이란 한숨으로 된 연기. 개면
사랑하는 이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불꽃이요, 흐리면 연인의 눈물로
바다가 된다(섹스피어의 말).
애인을 만나러 갈 적엔 학교를 파한 어린이의 마음처럼 기쁘지만, 헤어질
때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러나 슬픔이
따른다고 해서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으리라.
어차피 사람은 죽기 전에 사랑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저들의 짧은 숨결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기 때
문이다. 사랑은 일찍이 불이 빛의 근원인 것처럼 앎의 기원인 것이다.
사랑을 모르고서 인생을 체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람에게는 평
화를 주고, 바다에는 고요함을, 폭풍에는 휴식을, 슬픔에는 안식을 준다.
사랑이 끝났을 때 전 인생의 불빛은 꺼진다.
그러고 보면<사랑의 기쁨>이나 <사랑의 슬픔>이나 이명동음(이름은 다
르나 같은 말이라는 뜻)격. 슬픔은 기쁨을 전제로 하고, 기쁨은 슬픔을
수반하지만 어느 것이나 <사랑>함에는 공통된다.
그래서 이 곡에서의 <사랑의 슬픔>도 <사랑의 기쁨>과 대동소이. 애조
띤 사랑의 슬픔은 절망의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의 슬픔, 기쁨의 슬픔
이라고나 할까?
고요히 젖는 왈츠의 리듬에는 사랑스러운 슬픔이 귀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