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입력 2023.03.22 09:00
호수 2750
‘빈미술사박물관’ 앞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좌상. 황후 바로 아래 세워진 동상이 합스부르크제국의 ‘외교혁명’을 이끈 명재상 카우니츠 후작이다. photo 유민호
오랜만에 오스트리아 빈에 들렀다. 2019년 2월 방문한 후 4년 만이다. 빈은 사추기(思秋期)의 도시다. 10대 사춘기(思春期) 추억을 어렴풋이 간직한 장년에 어울리는 도시다. 눈부신 푸른 청춘을 넘어선, 붉게 물든 가을 석양에 비견될 적추(赤秋)의 무대라고 할까? 깊고도 성숙한 명상의 땅이다. 무성영화 흑백필름 풍경으로 비칠 듯한 19세기식 낡은 전차가 빈 한복판을 질주한다. 18세기 모차르트 음악과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엘리자베트(일명 시시) 황후의 그림자가 도시 곳곳에 표류한다. 인구 200만 메트로폴리탄 도시라지만, 시내 중심가로 나가면 너무도 조용하다.
태풍의 눈은 항상 ‘침묵’ 그 자체라고 한다. 바깥의 회오리 돌풍과 무관한, 강렬한 태양 빛으로 무장한 이색 공간이다. 21세기 국제정치 무대에서 태풍의 눈이라고 하면 미국 워싱턴이 떠오른다. 전쟁, 전염병, 기아로 전 세계가 허리케인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워싱턴은 너무도 조용하다. 오후 5시 이후 백악관 주변은 유령도시로 변해간다. 19세기 말까지의 상황이지만, 빈은 당대 국제무대를 주름잡은 태풍의 눈이었다. 21세기 워싱턴이 19세기 빈이다. 13세기부터 본격화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번영과 파워가 무려 600여년간 유럽과 신대륙 전체에 넘실댔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에 앞서 양국 국가 연주를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합스부르크제국의 생존 비결
‘해가 지지않는 나라(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라고 하면 영국부터 떠올릴 듯하다. 하지만 영국은 17세기 이후부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을 뿐 원조는 따로 있다. 바로 합스부르크 대제국이다. 외교를 통해 스페인 왕가를 합스부르크 피로 바꾸면서, 스페인과 더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등장한다.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바뀌지만, 원조는 스페인과 엮인 합스부르크 대제국이다.
유럽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펠릭스 오스트리아(Felix Austria)’란 라틴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직역하자면 ‘행복한 오스트리아’란 의미다. 합스부르크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들어설 시기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원래 전문은 ‘전쟁은 당신의 몫, 오스트리아는 행복을 찾아서, 방법은 결혼을 통해(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이다.
이 말에서 나타나듯 외교는 합스부르크가 자랑하던 ‘빈 정치’의 수단이자 목적이다. 결혼은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외교 전략·전술이다. 유럽의 복잡한 왕가들을 합스부르크 피로 연결해 대제국의 안정과 반영을 지켜나가는 식이다. 합스부르크는 세계 외교사에 남을 수많은 업적의 산실이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이 궁지에 직면할 경우 일단 합스부르크가 대화를 주도하며 해결에 나섰다. 국제정치의 해결사라고나 할까? 각국의 얘기를 들어본 뒤, 여기저기 이권을 공평히 나누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간 곳이 합스부르크다. 21세기 미국처럼,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한 ‘카우보이’ 국제정치가 아니다. 군사력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과 같은 강대국들에 맞설 상대가 못됐지만 늘 국제무대의 중심에 섰다.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왕가 간 ‘외교혁명’
‘외교혁명(Diplomatic Revolution)’은 구미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합스부르크 외교의 금자탑이자 전형적인 모델로 통한다. 정확히 1756년 이뤄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 브루봉 왕가 사이의 동맹을 지칭한다. ‘혁명’이란 엄청난 단어가 붙어있지만, 유럽 역사를 이해한다면 ‘상상하기 힘든’ 외교 동맹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양국은 앙숙을 넘어 철천지 원수로 살아온 나라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지만, 서유럽 파워인 프랑스와 중부 유럽 패권국 합스부르크 사이의 알력과 갈등은 너무도 당연하다. 근대화 이전 유럽 역사를 보면 구교와 신교 사이의 종교 불화가 전쟁의 큰 배경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도 가톨릭 국가로 양국 간 갈등의 소지가 없을 듯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17세기 이래 프랑스가 합스부르크 내 신교세력을 지원하면서 오스트리아 권위에 정면 도전한다. 21세기 이슬람·기독교 사이에 펼쳐진 ‘문명의 충돌’ 이상의 철천지 원수가 된 셈이다. 세계 역사 곳곳에서 보듯, 신을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은 끝이 없다. 근대화 시기에 나타난, 식민지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한·일 역사갈등은 ‘새 발의 피’ 정도라 볼 수 있다.
‘외교혁명’은 그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 기적에 가까운 행적이다. 합스부르크가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루이 16세 사이의 결혼도 성사된다. 기존의 유럽 정치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꾼 외교적 사건으로,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요동치게 된다.
기본적인 의문이지만, 양국을 동맹관계로 내몬 배경은 무엇일까? 공동의 적인 영국과 프로이센이 답이다. 프랑스 식민지와 합스부르크 영토를 탐낸 영국과 프로이센의 동맹이 철천지 원수를 하나로 합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합스부르크는 원래 영국과 힘을 합쳐 프랑스를 견제해왔다. 그러나 영국이 프랑스 식민지를 장악하고,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 동부로 몰려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어제의 험악한 역사를 잊고, 합스부르크와 부르봉이 힘을 합하는 새로운 동맹이 등장한다. 당시 오스트리아 왕실은 명목상 황제인 프란츠1세와 실질적 법통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동 통치하에 있었다. 두 사람은 생전에 무려 16명의 자식을 낳는다. 후에 14살 나이로 프랑스 황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16명 자식 가운데 막내다. ‘펠릭스 오스트리아’ 세계관에 근거한 결혼동맹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당시 성립된 ‘외교혁명’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외교 반전’, 영국·프랑스의 정상회담
한·일 외교가 오랜 겨울밤에서 깨어나 봄으로 넘어가고 있다. 양국 간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정치를 넘어서 안보·경제·문화 여러 면에서의 진화와 발전이 이어질 듯하다. 환영하고 박수를 보낸다. 굴욕·치욕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죽창가 쇄국정치’에 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전 세계 모두가 그러하듯 대세는 미래다. 18세기 중엽 나타난 합스부르크·부르봉 사이의 ‘외교혁명’은 박물관용 화석 역사가 아니다. 안정과 번영에 기초한 미래 청사진으로서의 ‘외교혁명’은 21세기인 지금도 존재한다. 미래를 중요시하는 외교라면 그 어떤 행태의 결과도 ‘외교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2023년 3월 한·일 정상회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래에 주목하는 ‘외교혁명’은 한·일 정상이 만나기 직전인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에도 있었다. 파리에서 열린 영국·프랑스 정상회담이다. 브렉시트(Brexit),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불거진 양국 간 갈등은 무려 5년간 지속됐다. 정상회담은커녕 양국 정부 간 채널도 2018년 이래 사실상 중단됐다. 해양 세력 영국과 대륙의 선두주자 프랑스 사이의 갈등과 알력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도 불사한 것은 물론, 서로 완전히 헤어질 것처럼 행동한 것이 지난 역사다.
그러나 합스부르크·부르봉이 그러했듯이, 서로의 국익이 외부세력에 의해 위험해질 경우 항상 다시 만났다. 3월 10일 정상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확약했다. 러시아는 물론 대만을 매개로 한 중국의 팽창정책에 대한 경고도 양국 간 핵심 협의 사안 중 하나다. 러시아와 중국으로 인한 세계정세 변화가, 브렉시트로 인한 양국 간 갈등과 불화를 전부 녹여버린 것이다. 유럽 외교 현황을 보면,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미래에 주목하는 세계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본보기라 할까?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무식한 코미디언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나타난 셈이다.
빈 한복판에는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빈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이 들어서 있다. 한국 한복판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위치에 비견될 땅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빈 관광객이라면 가장 먼저 찾는 문화센터이기도 하다. 필자 판단이지만, 문화적 유물·유산을 보관 전시하는 ‘건축물’ 가운데 빈미술사박물관을 능가할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전시물품도 특별하지만 전시공간이 너무도 깊이 있고 아름답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좌상은 빈미술사박물관에 들를 경우 마주칠 또 하나의 명소다. 박물관 정문 바로 앞에 들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네 명의 사람이 황후 동상 아래를 지키고 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합스부르크 최전성기를 지킨 4명의 명재상들이다.
필자가 주목한 인물은 황후를 정면으로 볼 때, 바로 아래 세워진 재상의 동상이다. 원수 프랑스와의 ‘외교혁명’을 이끈 카우니츠 후작(Prince of Kaunitz-Rietberg)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해 무려 40년 이상 4명의 황제를 도운, 당대의 외교 총사령관이다. 미국의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자주 인용하는, 어제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번영에 주목한 시대의 선각자다.
외교혁명을 이끈 명재상 카우니츠
카우니츠 말기는 1789년 프랑스혁명을 맞아 외교 전쟁에 집중됐다. 당시 합스부르크 황제 레오폴트2세는 마리 앙투아네트 참수형의 주범인 혁명 프랑스 정부를 적으로 삼아, 어제의 적인 프로이센과의 동맹을 요구한다. 그러나 카우니츠는 반대한다. 프로이센이 아직 혁명 프랑스의 적이 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카우니츠의 상황 판단은 정확했다. 혁명 프랑스는 나폴레옹 등장과 함께 한층 더 강력해진다. 그러나 레오폴트2세는 카우니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혁명 프랑스를 적으로 돌린다. 19세기 들어 합스부르크의 몰락이 가속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로서의 외교가 기본이지만, 국제정치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은 외교관의 몫이다. 카우니치는 그 같은 고유의 역할을 다한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도 그 같은 인물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벤트 쇼 전문 기획팀이 아니라, 좁은 한반도의 내일을 헤쳐나갈 한국판 카우니츠 군단을 만나고 싶다.
‘늑대와 소년’ 얘기는 21세기 한국, 나아가 전 세계에 적용될 영원한 우화다. 어떤 큰 사건이라도 매일 접할 경우 일상사로 취급하면서 쉽게 넘어가기 십상이다. 북한발 탄도미사일도 ‘찻잔 속 태풍’으로, 반나절 해외토픽 정도로 처리되는 시대다. 안정과 평화를 지켜온 한강의 신화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 귀에 경 읽기’로 대하고 있다. 유럽에서 직접 접한 풍경이지만, 롤렉스, 구찌를 비롯한 명품 매장을 찾는 한국인 행렬이 엄청나다. 놀랍게도 2030세대가 주류다. 취업난으로 고생하는 ‘삼포’ 세대라 들었지만, 유럽 명품 매장을 메우는 아시아인의 상당수는 한국인이다. 한국 미래에 대한 경고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미·중 디커플링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상황 판단이나 인식과 무관한 땅이 한국으로 느껴진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날, 삼성그룹은 무려 30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42년까지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단지가 구축될 예정이라고 한다. 뉴스를 들으면서 의문인 것은 ‘왜 한국에는 외국 반도체 회사와의 합작이 없을까’라는 점이었다. 일본, 미국, 유럽, 인도 어디를 봐도 반도체 공룡회사들의 직접·간접 상호 투자가 빈번하다. 최소한 수십억 달러 수준으로, 서로 간의 기술제공과 함께 투자 위험 상쇄가 합작투자의 배경일 것이다. 한국은 그 같은 합작투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경우는 있지만, 미국·일본·대만의 한국 내 대규모 투자는 전무하다. ‘국뽕’으로 몰자면, 한국 혼자서도 세계 최고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라 말할 듯하다. 오해하기 쉬운데 최상의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고객이 사라지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1등 논리에 익숙한 한국이지만, 3등으로 살아간다 해도 손님만 많으면 미래도 창창하다. 합작투자는 최소한의 손님을 끌기 위한 혜안이기도 하다. 반도체 연합전선이란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갈라파고스 섬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미국과 인도 사이의 반도체 협력각서의 내용이 공개됐다.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이 주도해 인도 반도체 공장신설에 관여할 것이란 내용이 눈에 띈다.
한ㆍ일 공동 브랜드의 반도체가 나와야
한·일 정상회담 후 수많은 후속조치가 나오겠지만, 한·일 간 ‘기술동맹’은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키워드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술동맹으로 나아갈 대안 하나를 제시하고 싶다. 한·일 양국 청년의 첨단분야 취업에 관한 비자협정이다. 한국의 삼성, 일본의 도시바·NEC가 아니라, 한·일 공동 브랜드 반도체 창조가 시급하다. 2030세대 청년이 주인공인 것은 물론이다. 서로 자유롭게 오가는 체제가 필요하다. 국경을 넘어선 인적 교류는 앞으로 가속화될 중국의 무역보복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 있다. 한·일 반도체 전문가 대학을 한·일 양국에 세우는 것도 방안 중 하나다. 굳이 반도체를 예로 들었지만, 갈라파고스섬으로 변해가는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면 디지털·화학·우주·의료·환경에 이르는 첨단산업 전체의 한·일 공동전선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내셔널리즘은 어린이가 겪는 병이다. 인류 모두가 한번쯤 치르는 홍역이 내셔널리즘이다.” 독일 내셔널리즘을 직접 경험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명언이다. 이미 유아기를 지나 청년 아니 성숙한 중년에 접어든 나라가 한국이다. 반목과 증오의 시간은 지난 5년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술동맹을 비롯해 한·일 양국이 창조해나갈 각론 차원의 ‘외교혁명’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