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에 흐르는 정신과 문화
박창희(국제신문)들어가며
낙동강에는 한민족사 5000년의 청사(靑史)와 비사(秘史), 전설과 설화, 그리고 민초들의 생활사가 면면히 흐른다. 강과 강변에 역사와 문화, 인간 삶의 기억과 추억, 성취와 좌절이 함께 여울져 흐른다는 말이다. 강을 문명의 젖줄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을 실어나르는 것이 나룻배요 거점이 나루터이다. 나루터에 사람이 모여들어 장이 섰고, 물목인 나루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전쟁이 벌어졌다. 물류(物流), 문류(文流), 인류(人流)가 그렇게 흘렀다.
낙동강 문화의 원류와 유역의 문화적 특성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곳에 영남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깃들어 있고, 한민족사의 거의 절반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 역사 문화의 흐름을 짚어보면, 태백의 발원지 문화, 낙동강 700리 물길, 나루터와 물류, 가야와 신라 문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으로 대변되는 낙동강의 선비문화 등을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1. 낙동강 정신
(1)낙동강과 가야문화
-낙동강 유역에서 가야의 많은 소국들이 명멸.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빛벌가야 등(6가야...12가야설). 소국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움.
-1500년 전의 다문화 전통, 역사속의 분권화
-발전의 동력은 낙동강 수로(고령에서 오키나와 조개, 국자가 발견됨)
(2)선비정신
-강변의 서원들 (도산서원, 병산서원, 금오서원, 도동서원, 예림서원 등)
낙동강 선비문화 스토리텔링 투어 가능
-영남사림의 산실. 조선 철학의 맥 형성. 영남 인문정신의 발현
-‘영남은 인재의 부고(府庫)요, 조선 선비의 절반은 영남에 있다‘(성호 이익)
-“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일제히 모여들어 물 한방울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화합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치는 이치이다.” (성호 이익, 1681~1763)
(3)퇴계(李滉, 1501~1570)와 남명(曺植, 1501-1572)의 재발견
-낙동강 선비정신의 표상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 / 좌퇴계(左退溪) 우남명(右南冥)
-퇴계의 근거지였던 안동·예안은 경상좌도의 중심지, 남명의 근거지 함양·진주는 경상우도의 중심지. 이들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뉘어 치열한 학문 경쟁을 벌임.
-퇴계와 남명은 동년인 1501년에 태어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을 이룸. 퇴계는 온화하고 포근한 청량산을 닮았고, 남명은 우뚝 솟은 기상의 지리산을 닮음. '상도(上道)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의(義)를 주로하며, 퇴계의 학문이 바다처럼 넓다면 남명의 기질은 태산처럼 높다'(이익)
-퇴계가 인(仁)을 중시하며 겸양의 미덕을 지녔다면, 지리산에서 경의(敬義)를 중시한 남명은 호방한 성품을 지니고 실천적 학문을 추구
-퇴계와 남명은 50여년 간의 사화기를 겪으면서 출사보다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 명종대 이후 현실적 모순이 다소 해소되었다고 판단한 퇴계는 출사하여 경륜을 펴기도 함. 반면 남명은 자신의 시대를 모순의 절정에 이른 구급(救急)의 시기로 보고 끝까지 재야의 비판자, 곧 처사(處士)로 남음.
-퇴계는 성리학을 이론화, 남명은 그것을 실천. 남명은 경(敬)의 상징인 성성자(惺惺子) 방울을 달고, 의(義)의 상징으로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안으로 스스로를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스스로를 결단하는 것은 의다)’라고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함.
-퇴계의 문하에서는 학봉 김성일(金誠一)·서애 유성룡(柳成龍)·한강 정구(鄭逑) 등 학구파 유학자가 많이 나왔으며, 남명의 문하에서는 곽재우(郭再祐)·김면(金沔)·정인홍·조종도 등 의병장이 많이 나온 것도 대비되는 부분. 인의(仁義)·경의(敬義), 지향점은 달랐어도 이들은 조선 철학의 뼈대를 세운 학자들로서 낙동강 문화의 백미임.
2. 낙동강 발원지(원류)
-태백시 삼수령(三水嶺, 피재):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
-태백산 용정, 은대봉 중턱 너덜샘, 용소, 황지
-황산강, 가야강, 삼차수, 삼분수
※태백의 황지--> 천황(天潢, 하늘의 못)--> 구문소(求門沼, 뚜루내)
‘크게 밝은 땅’(太白)에서 하늘의 기운을 받은 낙동강(天潢)이 암벽을 만나자 아예 뚫고 나가버린 기세!‘
3. 낙동강 뱃길 700리
(1)한민족 물류 루트
-부산 구포에서 상주 낙동나루까지 뱃길.
-낙동강 수운시대: 한민족의 물류 루트 (세곡선, 소금배, 황포돛배, 나룻배)
(2) 낙동강 나루터
-수운시대 낙동강에는 적게는 100여 개, 많게는 수백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 한 참(站: 30리의 거리)마다 나루터. 이들 나루터는 시대와 역사적 공간을 달리하여 군사적, 문화적, 사회적 기능을 수행.
-나루터의 역할은 복합 다기능적임. 기능적으로 보면 소통의 장임. 이쪽과 저쪽, 위와 아래, 내륙과 해양의 만남과 교류가 이뤄짐. 경우에 따라 군사, 지리, 산업, 교통, 생활의 거점이 되기도 함.
-문학적으로 나루는 별리의 무대.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굳이 건너시고 말았네…’(공무도하가)
-역사의 현장. 경남 창녕의 박진나루(한국전쟁), 경북 상주 낙동나루(한국전쟁), 경남 삼랑진 작원나루(임진왜란)
-나루는 풍류와 시흥의 무대임. 안동 의촌나루, 함안 도흥나루, 고령 개포나루 등은 인근의 서원과 더불어 선비문화의 자취가 녹아 흐르는 곳.
-문화의 생성 이동 전파 루트. 경남 합천 율지나루의 오광대(일명 대광대) 놀이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진주, 가산오광대, 고성오광대, 김해 가락오광대로 가지를 치고, 부산으로 흘러들어 동래야류, 수영야류로 발전.
(3)주요 나루터
-낙동강 3대 나루: 낙동나루, 율지나루, 구포(감동진)나루
-개(경)포나루, 화원나루, 도동나루, 삼랑나루(뒷기미나루), 하회나루, 삼강나루, 작원나루, 물금나루, 악양나루(처녀뱃사공), 웃개나루 등
(4)잃어버린 나루 문화
-1980년대 이전까지 강에 나룻배가 다닐 때 우리는 지금처럼 답답하지 않았다. 기다릴 줄 알았고, 양보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으며, 이웃간 도타운 정을 느꼈다. 물 흐름을 거슬러 배가 다니기 위해서는 밀고 당겨줘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공동체).
-나루선이 끊기면서 강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강이 오염되기 시작했고, 토사가 쌓였으며, 인심들이 사나워졌다. 사람이 강을 버리자, 강이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강의 본성을 외면한 결과임.
-강의 본성은 흐름. 그것이 恒心. 나루 없는 시대 강의 恒産은?
-4대강 사업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4. 낙동강의 용(龍) 문화
(1)가야진나루의 용
"경상도 가야진에 용이 나타났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 4월 13일조에 다급한 기사 하나가 등장한다. 용이 나타나다니, 이런 해괴한 일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경상도 가야진은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의 낙동강 나루터다. 이곳에서 삼국시대 초기부터 국가 의식으로 용신제를 겸한 기우제가 치러졌다. 기우제 와중에 용이 쏴아~ 모습을 드러내 한바탕 비를 몰고 온 것일까.
경상도 가야진은 예로부터 '용'이 성했던 지역이다. 이곳의 마을 이름이 용당(龍塘·양산과 김해쪽 이름이 같다), 그 앞쪽의 낙동강을 용소(龍沼) 또는 용궁(龍宮)이라 부른다. 강 건너편 김해쪽에 용산(龍山·해발 49m)이 버티고 있는데, 마치 커다란 용 한마리가 낙동강에 머리를 드리운 형상이다.
'경상도읍지'에는 '김해도호부에서 동쪽으로 45리에 용당강(龍堂江·낙동강의 별칭)이 흐르고 용당진(龍塘津) 나루가 있는데 산이 들어오고 물이 깊다. 물 속에 용이 잠겨 있어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 바람이 없어도 물결이 이는데 이를 용유(龍遊)라 하고, 얼음이 얼면 밭이랑처럼 갈라지는데 이를 용경(龍耕)이라 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점친다. 양산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가야진이 아직도 유명한 것은 여기서 '가야진 용신제'가 매년 거행되기 때문이다. 신라-가야가 맞서던 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졌다니 전통이 무려 2000여 년이다. 신라 초기엔 국가의식인 중사(中祀)가 치러졌고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기우제로 발전했다.
양산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伽倻津祠)'는 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곳에 가야진지신(伽倻津之神) 즉 낙동강의 나루터신이 모셔져 있다. 가야진의 황룡(남편용)-청룡(첩용) 전설과 더불어 용이 나루터신으로 신격화된 것이다.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시행되는 '가야진용신제'는 단순한 전통문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민족 고유의 시제(時祭)와 기우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향토애와 공동체 의식, 자연사랑을 진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 문화의 원형(原型·Archetype)으로 삼을 만하다.
(2)한국의 용 문화
우리 문화에 있어 용은, 천지에 거(居)하고 임(臨)한다. 산하 구석구석에 자취와 상징을 남기고 있다. 물이 있는 곳엔 으레 용산(龍山)이 있고, 웬만한 물자리에는 용담(龍譚) 또는 용지(龍池), 용정(龍井)이란 이름이 붙는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을 용천(龍泉)이라 하고, 홍수때 격한 물굽이가 휘돌아나가는 곳을 '회룡(回龍)'이라 부른다. 경북 예천의 회룡포(의성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하듯 돌아가는 물돌이동이다. 이곳 지명이 '용궁면(龍宮面)'이고 그곳의 산이 비룡산(飛龍山·190m)이다.
만일 산중턱에 있는 지명에 '용'자가 들어가면, 그곳엔 필히 샘물이 있다. 한강 발원지로 꼽히는 태백의 검룡소(儉龍沼), 낙동강 발원지로 거론되는 태백의 용소·용담·용정이 그러한 곳이다. 용소가 있는 계곡이 용수골이고, 그 옆에 고원지대 태백의 신비를 간직한 용연(龍淵)동굴이 있다.
5. 낙동강 하구의 나루터
(1)사상 사하권
-하단나루: 낙동강 최하류의 물목
-엄광포(엄궁동, 재첩, 잉어 뱀장어 웅어)
소요저도-->삼락동
-사상 창날포(창나루, 괘법동 북쪽, 倉津(社倉)-창진초등)
부상진(富商津, 국제상사/사상버스터미널)
-강선대(덕포동). 상/하 강선대
德浦洞(얻덕 끝에 배를 대는 포구란 뜻). 덕포-->덕개
(2) 북구권
-덕천 샛강(기찰강);일명 연등개나루 (일본 밀무역 단속. 찰방이 주재)
-구포나루(감동진): 3세조창-->전세(田稅) 대동미, 호포(또는 군포) 징수
300~500척 운집. 객주업, 은행 등 발전. 구포장타령, 선창노래, 구포 별신굿
-구법진나루 (기찰, 덕천 교차로 일대 샛강)
-화명 용당포(龍塘浦)/일명 백포나루(소래강, 장우석의 물길 변경)
현 부산어촌민속관 근처. 대천천 줄기. 상용당/하용당(적석용당)에서 각각 제사
-동원진과 수참(水站): 역원 설치. 왜 사절 첫 기착지. 관선이 많았음
(3)양산권
-물금나루: 서기 77년 황산진구 전투(삼국사기)
-경파대, 임경대, 증산성(신라+왜성)
-신주막, 하주막, 용당, 가야진, 원동, 작원진, 삼랑진
영남대로(황산도)
(4)서낙동강권
-구랑촌(九朗村) 수참 :녹산동 22통(미음동) 수정마을
서낙동강 최남단에 위치. 일본 사신 접객업소도
-형산진 : 녹산동 성산의 옛이름.노적봉 옆 물목
-신노전나루 : 새갈밭. 주민 학생들 통행선. 남대포(명지동 순아2구)와 연결
-조만포: 조만강 하구 둔치도. 가리새(갈밭 천지). 해포나루와 연결
-범방대(나루): 경마장 북쪽 정문 조만강가. 이학규 시비.
泛舫-->凡方 (일제때 지명변화). 범방패총, 인근 수가리 패총(가야시대 해안선)
-죽림나루: 가락오광대 놀이. 대변청(화약고)과 해창이 있었음. 인근에 죽도왜성
-남포(南浦): 해반천 조만강가 습지대.
김해 금릉팔경 중 南浦漁火(김해부사 김건수)
-북섬나루 : 대저동 서연정마을. 김해 대동쪽과 연결. 북섬(치등섬) 운치 그득
-을숙도 뱃길(하단~명지)
6. 낙동강에서 건져야 할 것들
-부산권 낙동강 60리의 의미
낙동강 1300리의 최종 집수역, 수문장(하굿둑), 하구(하단), 내륙과 바다의 만남
-낙동강 정신은 부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을숙도 물문화관, 부산어촌민속관… 고작 이 정도 수준?)
-에코델타시티 등 낙동강 하구 델타의 대변화(체계적 조사, 비전 없이 진행)
-->21세기 여는 개발사업(개발편의, 적당주의, 비전 부재)
-->‘물의 도시’ ‘델타의 진화’ ‘자연친화적’ 개념 실종
-산업(개발)과 자연(보존)의 공존 철학이 있느냐 <---이제 막 개발시대 빠져나옴
-을숙도의 처절한 수난사, 어떻게 볼 것인가
-하굿둑 개방 추진이 갖는 역사적 함의는
-낙동강의 맏형(최종 보루)이 되려면
‘大낙동강 연구소(센터)’
‘낙동강 역사생태 박물관(기념관)’
‘낙동강 문화/사회/인문/자연/국제교류 관련 연구소’…
-낙동강의 문화적 원류를 교육, 문화, 관광 자산으로 활용
-낙동강 공동체, 네트워크 활성화
-풀리지 않는 물 문제의 해법은?
-국가적, 세계적, 대승적 관점에서 콘텐츠 살펴야(안목과 비전, 포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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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行人)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