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가정교육] 청학동 명륜학당 이정석 훈장
입력 : 2003-11-20
*“지혜와 사랑 가르쳐야 참교육”24년째 청학동 명륜학당에서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정석(53) 훈장은 주말이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지리산을 내려온다. 90년대 이후 청학동이 인성과 예절교육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그곳에서도 ‘원조’격인 그에게 특강을 받으려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지리산 산골까지 찾아와 ‘사람 좀 만들어 달라’면서 아이를 맡기거나 상담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엔 굴러다니는 가마,날아다니는 가마가 다 있으니 전국 곳곳으로 불려다닙니다. 허허.”
서울에서 강의가 있을 때는 그의 발걸음에 한층 속도가 붙는다. 청학동을 떠나 서울로 유학 보낸 두 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훈장은 건국대 일어교육학과 3학년인 맏딸과 성신여대 중어중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딸,얼마 전 수능을 치른 셋째딸,고등학교 1학년인 막내아들,이렇게 1남3녀를 두었다.
이들은 모두 중학교까지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니면서 그에게 사자소학이니 명심보감,소학,대학 등 한학교육을 받았고,고등학생이 되면서 진주로 나가 학교를 다녔다. 그는 막내아들이 서당을 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중학교까지는 머리를 땋게 하고 기다려봤지만,아이가 한학에 취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단발’ 했다고 한다.
“지금 나이 30대 초반까지의 청학동 주민들만 해도 전부 서당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들부터 현대교육 세대가 됐어요. 옛말에 부모의 뜻과 일을 잇는 ‘계지술사(繼志述事)’를 효의 근본이라 했지만 효의 개념도 세월에 맞게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지요.”
그는 마냥 고리타분한 ‘청학동 훈장님’이 아니다. 유건(儒巾)을 쓰고 수염을 기른 조선시대 어른인가 싶지만 한복 주머니에는 휴대전화가 들어있고,하루에 한번씩 학당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학부형들과 대화를 나눈다(이 참에 학당 인터넷 주소 www.hakdang.com를 꼭 넣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육 모토가 ‘생활은 즐겁게,학습은 엄하게’인지라 수업시간에는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튀지만 수업이 끝나면 갖은 썰렁한 농담으로 학동들을 웃기는 재주도 있는 ‘두 얼굴의 훈장님’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서당과 현대 학교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학동과 훈장이 일대일로 공부하는 서당은 사람을 만드는데 알맞고,현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요즘의 교육풍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모름지기 ‘머리에는 지혜를,가슴에는 사랑을,몸으로는 근면을’ 가르쳐야 하는 것. 하지만 머리만 우선되는 지금의 교육이 한심스럽다. 아이들이 기능과 기술만 배워 이해관계에만 밝았지 희생과 봉사,사랑,양보,이해 같은 미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의 가슴을 넓히는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물 한잔을 먹더라도 형에게 먼저 주게 하고,아버지께 두 손으로 드리게 하는 것으로도 아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하면 어머니가 ‘아버지 오셨다,인사드려라’ 시키고,어머니가 퇴근하면 아버지가 그렇게 시키세요. 허리 한번 굽힐 때마다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근면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농촌으로 데려가 땀도 흘려보게 하고,장애인 복지시설처럼 어려운 곳에 자주 가보게 하라는 것이 이씨의 충고. 부모들이 놀이공원이나 으리으리한 식당처럼 좋은 곳만 데리고 다니니까 아이들이 작은 행복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적은 용돈에,남보다 못한 가정형편에 불만만 쌓인다는 진단이다.
“교육에는 배고픔이나 추위,질책과 꾸중,때로는 회초리 같은 적당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회초리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회초리보다 언어폭력이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효자손이나 파리채를 들면 그건 부모가 화를 다스리지 못해 때리는 폭력이 되지요. 회초리는 아낄수록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고,때리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훈장이 회초리를 쓰는 데는 엄연히 ‘도(道)’가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녀의 나이에 따라 회초리는 교시(敎示),교편(敎鞭),교훈(敎訓)의 단계로 사용해야 한다.
‘교시’란 회초리를 실제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방에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을 말한다. 유아들은 회초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행동을 조심하게 하고,초등학교 때가 실제로 매를 드는 ‘교편’의 시기가 된다. ‘교훈’은 회초리가 아닌 말로써 타이르는 것으로,초등학교 5∼6학년쯤 되면 아이의 의견을 참작하고 존중해야 함을 가리킨다.
“간혹 아이를 서당에 보낼지 말지 아이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부모가 있어요. 그런데 초등생 철부지 아이가 어떤 결정을 하겠어요?이럴 때는 이해보다 시비가 우선돼야 합니다. 옳은 것이라면 아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시켜야 하는 겁니다.”
이 훈장은 학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일기’ 쓸 것을 권한다. 자녀가 어떤 것에 흥미를 보이고,어떤 버릇이 있고,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것. 또 자신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지,그 효과는 어떤지,전문가들은 어떤 방법을 권하는지를 적는다.
“가계부나 차계부도 쓰는데 자녀교육일기를 못 쓸 게 없지요. 이렇게 세밀하게 쓰다보면 아이의 소질과 개성을 찾을 수 있고,일기를 적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면 올바른 교육관과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겝니다.”
권혜숙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2003112000000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