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양소설의 오늘과 내일-- 이명재

[신길우]

<문학평론>

한국 해양소설의 오늘과 내일

이 명 재  (문학평론가, 중앙대 명예교수)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은 원초적인 인간생명의 근원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로 이루어진 바다는 원형적 물질이면서 인간도전의 선망적 대상이며 숙명적일만큼 오랜 삶의 공간이다. 본시 방울로부터 시작한 물은 양이 많아짐에 따라서 도랑을 채우며 시내를 만들고 내를 이루어 바다에 나가 넓은 대양에 이르는 자연의 실체로서 유통과 정화 및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번에 창간된 《문학의강》역시 물에서 시원해서 해양과 관계된 이미지로서 그 의미가 깊다.

   바다는 무진장한 수산물과 심해 부존자원을 지닌 채 세계로 열려있는 거대한 자연공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다에 면한 섬과 연안 또한 이런 해양과 이어진 채 인간들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실체이다. 실로 지구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해양의 분포를 감안하더라도 바다-섬-연안의 중요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러기에 일부 학자들은 지구를 차라리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한 바다의 신으로서 대양이란 어원을 지닌 오키아너스(Oceanus)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경우, 그 긴요성과 과제는 더욱 새롭게 떠오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한국의 소설문학 속에서 다루어진 바다와 섬 및 연안에 반영된 양상을 외국 경우를 참고하여 살펴보려 한다. 물론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바다나 바닷가 지역을 다룬 문학작품들은 숱하게 많으므로 그 중요 작품들만을 보기로 다룬다. 과연 한국의 바다에 상관된 소설은 어떻게 걸어와서 어느 위치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근대 전후의 해양문학 발자취

   세계로 이어진 바다는 섬과 연안을 곁들여서 일찍부터 인간의 삶과 직결된 천혜의 보불창고이며 문학의 광장이다. 이런 사실은 동서양 고금의 여러 문학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넓은 바다를 리얼하게 다룬 작품은 특히 서양소설에 많이 나타난다. 근대 전후의 소박하고 낭만적인 해안중심의 감상적인 시문학에 비해서 당시의 서양 여러 나라 소설문단은 한껏 드넓은 해양이나 섬에 상관된 진취적 성향을 드러낸다. 발랄한 상상력과 모험을 통한 과학적 탐색과 사회풍자 효과를 겸한 바다 배경의 작품들이다. 초기에 성행한 일련의 서양 쪽 장편들은 그 발상이나 스토리 내지 인물성격 등에서 소년모험담적인 계몽성향을 띤다.

   데포우의『로빈슨 크루소』(1719)는 평범한 뱃사람인 로빈슨 크루소가 배의 난파로 표류하던 중 무인도에 닿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섬에 도착한 주인공이 움막을 쳐서 배에 남은 물건들을 날라 오고 산양을 기르며 식인종들과도 어울려 간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1726) 역시 재미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풍자소설이다. 상선의 의사로 배에 오른 걸리버가 선장이 된 다음 소인국과 거인국 및 말나라 등을 거치며 벌이는 풍자적 활동이 인상적이다.

   더욱이 줄 베른의『바다 밑 2만 마일』(1870)은 과학적인 탐험과 전향적인 세계관이나 호기심 유발 등에서 두드러진 문제작이다. 실제 잠수함이 출현하기 이전에 온갖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10개월 동안 세계의 해저 숲을 누비며 생활을 하는 노틸러스 잠수함의 네모함장의 의식도 주목된다. 진기한 탐험의 흥미 밖에도 바다 밑 공간에 자유와 음악과 바다를 사랑하는 작가의 사상을 담아낸 작품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스티븐슨의『보물섬』(1883)은 드릴과 흥미본위의 바다 배경 소설에 속한다. 영국 서해안의 한 여관에서 비롯된 짐 소년과 보물지도를 가진 해적 빌리를 쫓는 장님 사이에 얽힌 신경전과 이해관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동양권의 소설에서는 인쇄술이 발달된 1800년대 초엽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중동지역의 여러 설화들을 모은『아라비안나이트』의 일부가 주목된다. 이 대설화집(『千一夜話』) 가운데 바다에 연결된 흥미진진한 어부의 여행담이 그것이다.「뱃사공 신밧드」「어부와 마왕의 이야기」「육지의 압둘라와 바다의 압둘라」등. 또 19세기 말에 일본의 한 소년이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큰 풍랑으로 표류한 실화를 쓴『만지로의 표류기』가 참고 된다. 무인도에 있던 중에 미국 포경선에 구조된 그 소년이 일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된 이야기지만 소설이기보다는 수필 성향이 짙어 보인다.

   이들에 비추어 본다면 이 무렵 우리나라의 근대문학에서는 이렇다 할 소설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설화 형태로 전해오던『별주부전(鼈注簿傳)』을 다룬 판소리계 소설『수궁가(水宮歌)』정도가 논의된다. 남해 용왕의 병 치료에 필요하다는 토끼의 간 때문에 뭍에서 자라를 따라서 수궁에 들어간 토 생원의 지혜를 통한 교훈과 풍자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체로 큰 바다 현장에서 벌인 모험담을 리얼하게 쓴 서양소설과는 다르게 낭만적 설화들인 것이다.

   현대의 해양, 어촌소설

   20세기 이후의 현대소설에는 이전의 소년 취향의 모험보다는 리얼한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본격적 해양문학 작품들이 서양에서 많이 발표되었다. 그들 소설에서는 바다-섬-연안들을 으레 낭만적인 동경의 대상으로 읊은 시문학에서와 달리 바다나 대양을 힘겨운 삶의 현장으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소설작단에서 비중 있는 장편들이 이어져 나왔다.

   외국의 경우 ― 원양어업 중의 선원 고뇌와 대결의식

   선원 출신의 영국 작가 콘라드가 쓴 장편『로드 짐』(1900)은 『태풍』(1903),『바다의 방랑자』(1923) 등 자신이 발표한 해양소설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스로 모범선원을 꿈꾸던 청년 짐은 큰 위기 없이 일등항해사에 올랐지만 순간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고뇌한다. 뜻밖에 난파를 당한 배에서 성지순례를 가는 원주민들을 배에 가득 둔 채 얼결에 선장이 내려있던 구명보드에 내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해양재판에서 사형을 면한 대신에 선원의 자격증을 회수 당하고 오래도록 죄책감에 사로잡혀 지내는 내용이다.

   미국 작가 멜빌의『모비딕』(1951) 역시 오랜 포경선원 체험을 살려 쓴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4년 동안 1월에 출어하여 세계의 대양을 누비고 다니다 고래한테 한쪽 발을 물어뜯긴 에이허브 선장의 복수심이 두드러진다. 결국 피쿼드 호가 일본열도 밑에서 괴수 같은 상대를 만나 사흘을 싸운 끝에 모비딕의 몸뚱이에 작살을 꽂는다. 하지만 선장 자신도 작살 줄에 목이 걸린 채 구멍 뚫린 포경선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마는 것이다. 동료선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수에 몰입했던 비극을 그 배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스마일을 통해 이야기한 내용이다.

   평소 바다낚시 등을 즐긴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중편『노인과 바다』(1952)는 노벨상 수상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멕시코만에서는 84일 동안 고기가 잡히지 않자 어부인 샌디아고 노인이 조각배로 하바나 항구를 벗어나와 우람한 바닷고기와 싸운 이야기이다. 낚시에 물린 채로 며칠 밤낮을 배까지 끌고 다니는 고기와 손에 피가 나도록 버티어낸 것이다. 그 결과, 흰 등을 내보이며 떠오른 녀석(티보른)에게 힘껏 작살을 던져 육지로 끌고 오는 동안 고기가 상어들에게 뜯어 먹힌 나머지 앙상한 뼈만 남았지만 불타는 극기주의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한 작품이다.

   또한 자신이 태어나 살아온 섬을 무대삼아 쓴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의『그리스인 조르바』(1953)도 주목할 작품이다. 화자인 중년 지식인(‘나’)이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만난 60대의 조르바와 만나 섬의 폐광을 경영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신선하다.

    ―-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전등을 켜고 있었다.”―는 문장만이 아니다.

       그리스에서 반란군, 탄광일, 고기잡이 일을 거치면서 지내온 조르바는 온몸으로 살아온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현대인들에게 처세의

       교훈을 던지는 존재이다.

   한국의 경우 ― 해양보다 어민의 삶 다룬 어촌소설

   하지만 우리 경우는 이전의 농촌(농민)소설이나 근래의 흔한 도시소설에 비해서 해양소설이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 여러 바다를 무대로 삼은 소설들이 등장하지만 먼 해양보다는 거의가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나 연안의 어촌과 부두에 사는 갯가 어민의 삶 모습을 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뒤늦게 이루어진 천금성 작가의 원양체험 중심의 작품 외로는 대부분 인근의 섬이나 바닷가 주변의 어민 삶을 주로 한 어촌소설 성향의 작품들이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문학에는 해양소설이라기보다 갯가문학에 가까운 어촌(어민)소설이란 명칭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제재나 주제별로 살펴본 다음의 여러 작가 소설들에서 실증된다.

   첫째로는, 해양보다 섬이나 연안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여러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오영수의『갯마을』(1953)은 동해안의 한 어촌에 사는 여러 아낙들이 멀리 함께 고등어 잡이를 갔던 남편들에게서 소식 없는 고된 삶을 그린 중편이다. 해녀의 딸로 미역 등을 따며 살던 해순이도 청상과부 처지로 홀로된 시어머니와 지내다 상수에 이끌려 뭍으로 떠나 살다가 되돌아오는 내용이다. 전광용의 단편인「흑산도」(1955) 역시 섬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일하다 죽는 어부들의 삶을 쓰고 있다. 바다에 아버지를 잃은 용바우와 북술이는 서로 사랑하지만 용왕제 때 풍어를 빌고 칠산 바다 쪽으로 고기 잡으러 나갔던 용바우의 배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북술이는 육지로 나가 함께 살자는 건착선의 곱슬머리 청년을 마다하고 먼 바다로 돛단배를 저어나가는 할아버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백시종의 중편『주홍빛 점박이 갈매기』(1985) 또한 섬과 연안에서 한 서린 가난 속에서 물질을 하며 힘겹게 사는 해녀들의 삶과 이들을 울리는 악덕업자들을 제시한다. 본디 제주의 학교 소사로 성실하게 살며 교사자격증까지 얻은 가장이 4, 〮3 항쟁 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이후에 겪는 삶이 리얼하다.

   마채수가 그토록 지역사회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것은 순전히 비석리 앞바다 때문이다. 비석리 연안(沿岸)은 황금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복, 소라, 해삼, 멍게, 미역, 톳, 우뭇가사리, 파래, 홍합 등이 너무 많다. 해류의 작용과 드넓은 산호초 밭의 영향으로 특별히 그 부분에만 바닷속 자원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 황금의 바다를 마채수가 깡그리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온 옹점이 모녀는 그 섬의 악덕재력가 밑에서 3년 반이나 해녀로 일해 살지만 그 비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12명의 해녀를 대신하여 그의 횡포에 항의하는 어머니를 물질하는 바다 현장에서 죽게 한 것인데 전주의 아들에 농락당한 옹점이 마저 스스로 잠수해 있던 바다 속에서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마는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손영목의「잠수부의 잠」(1977)은 M항구 연안에서 힘겨운 물질로 생계를 유지하는 잠수부의 삶을 그린 단편이다. 50대 후반의 사양길에 접어든 맹 서방은 무리하지 말라는 동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잠수부 일을 계속한다. 부인이 오래 누워있는데다 되바라진 자식 남매마저 부양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가장은 바위섬 바다 밑바닥에 세 번 째 잠수하여 물속에서 대합과 피조개를 건져 올리다 말고 스스로 호스를 잘라 삶을 마감해버리고 만 것이다.

   한편, 한창훈의 단편「나는 여기가 좋다」(2009)에서는 20대에는 선장으로 동지나해 등을 누비다가 섬에 정착해 사는 사내의 고충이 실감 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뱃사람과 바다가 좋았다. 어른들에게서도 들어서 안다.- “너는 울다가도 뱃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그쳐 버렸어. 바다에만 나가면 해가 저물어도 돌아올 줄을 몰랐으니께.” 하지만 어장이 죽고 나서 수지가 안 맞으니 배를 팔기로 겨우 계약해놓고 부부가 모처럼 마지막 낚시를 나왔는데 아내는 이제 기어코 섬을 떠나겠다고 말해서인 것이다.

   그리고 이상섭의 중편『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2003)에는 세상살이의 물살에 떠밀리어 온 어시장 골목의 현장을 내보인다. 어시장 장사꾼인 그(박서방)의 눈에 비친 억척장모 모녀가 새로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하얀 피부의 여자 머리끄덩이를 먼저 쥐어 잡았지만 오히려 새댁에게 밀리는 장면 등이 눈길을 끈다. 새벽부터 들끓기 시작한 시장골목의 전황도 선하다.

   골목이 인생장터가 된 사람들은 목 좋은 곳을 놓치지 않으려 발에 바퀴라도 단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덩달아 그의 마음도 바빴다. 모녀상회도 잰걸음을 쳤다. 주변에서는 묵인된 자리라지만 따지고 보면 엄연한 불법건축물이다.

   둘째로는, 역시 해양은 본격적인 개척의 광장이라는 서양적 성격의 해양소설들이다.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해양문학은 천금성에 의해서 본격화되었다. 작가가 직접 원양어선의 항해사나 선장으로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1960년대 말에 그 체험을 뒷받침한 단편 당선 이후로 40여 년 동안 많은 해양소설을 발표해온 것이다.

   한국의 원양어선 한 척이 태평양 멀리 공해상에서 어로 중에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일본화물선의 구조를 받는다는「영해발부근」은 그 출발점이었다. 또한 초기 중편『가장 긴 항해』(1979)에서는 25명의 선원이 한 달 전 카리브해 기지를 출발해 와서 다섯 번이나 만선을 한 원양어선 내의 에피소드를 들고 있다. 항구에서 싣고 온 고양이 두 마리가 생선에 배부른 탓에 뱃속의 쥐들을 잡지 않고 숨어 다니자 수장시킨 덕분에 엄청 많은 고기떼를 만난 이야기가 실감난다.

   여기에는 참고로 9세기 전반의 동남아 해양을 재패했던 실재의 역사적인 해상왕을 재현시킨 송지영의 장편『장보고(張保皐)』(1993) 도 추가할 수 있다. 당시 한반도의 남서해안에 출몰하여 약탈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붙잡아서 당나라 노예로 넘기던 해적들을 소탕하고 아시아 권역 바다를 제패한 후에 외국과의 교역의 길을 튼 청해진대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당시 청해진을 떠나서 당나라의 등주(登州)로 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대처하는 대목도 현실감을 준다.

   사나운 비바람과 함께 밤바다는 무섭게 들끓었다. 노여움을 떨었다. 부딪치는 대로 마구 삼켜버릴 것처럼, 빗물에 젖고 바람에 떨고 파도에 뒤뚝거리는 뱃사람들은 사뭇 아수라의 문턱에서 울부짖고 허우적이는 처참한 모습들이었다. (중략)

   “바짝 정신들을 차려! 물이 얼마쯤 괴었냐?”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도사공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둠은 점점 짙어가고 빗발이 약간 가늘어지면서 바람결만 세차갔다.

   그런데 근래 우리는 여러 해양문학제들을 통한 신인배출을 꾀하고 있어서 긍정적이다. 연례행사로 계속되고 있는 각각의 부산, 여수, 전북,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현상모집 등. 이런 사회적 관심과 참여노력들로 인해서 앞으로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해양소설을 펴나갈 인재들이 배출될 것으로 믿는다. 해양소설계에서는 원양체험이 긴요함을 감안하면 신진인 김종찬 작가 등에 의한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된다.

   셋째로는, 섬이나 어촌을 애증이 혼재한 탈출과 회귀의 현실공간으로 삼는 경우다.

   오영수의『갯마을』에서 고기잡이 나갔던 성구가 돌아오지 않자 상수를 따라 산골로 재가해 갔던 해순이가 다시 바닷가 갯마을로 돌아온 처지가 참고 된다. “나 인자 안 갈 테야. 성님들하고 여기서 같이 살래!” 바다 없는 산골에서는 답답해 못 견디자 며느리가 실성했다고 무당굿을 준비하는 사이에 삼십 리 산길을 달려온 것이다.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온통 바다만 같고”해서이다.

   백시종의 중편인『비진도(泌珍島)』(2004)에서는 천혜의 청정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에 유학 간 청년이 학자금을 도와준 아저씨를 찾아와 대화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운동권으로 수사당국에 쫓기며 모험을 해서 고향에 찾아든 처지이다. 원초적인 바다를 통한 귀향의지와 사회를 연결한 문제작이다.

   “여그저그 들렀다가ⵈⵈ 비진도 갯내가 맡고 싶어서ⵈⵈ.”

   “비진도 갯내?”

   “예, 서울 살면서 젤 그리운 게 비진도 갯내였습니다. 그 냄새 맡고 싶어 서 가까운 인천에도 가보지만 그쪽 갯내하고는 다릅니더.”

   그리고 한창훈의「아버지와 아들」(2008) 경우는 어촌을 떠나고 돌아오는 정황이 상이함을 드러내서 흥미롭다. 그의「숭어」(1997)나 「나는 여기가 좋다」등과는 서로 대조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는 남편이 어촌을 지키며 살자는데 아내는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섬에서 고생하나 싶다며 섬을 혼자서라도 뜨려고 작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숭어」에서는 부두의 술집에서 만난 어부 총각에게 5천만 원을 약속받고 섬에 와 있지만 늘상 까탈을 부리며 여러 번 짐을 싸가지고 뭍으로 나가버리는 성자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성자 남편의 초등학교 친구인 이순이는 동네 동창생과 결혼해서 섬에서 살다가 한때 방파제 공사장 소장을 따라가서 일 년 만에 상한 얼굴로 되돌아와 살림하는 것이다. 그런데「아버지와 아들」에서는 장남만은 어부 일을 못하도록 섬을 떠나게 하려 애쓰는데 오히려 군에서 제대해온 아들이 섬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우기는 처지이다.

   넷째로는, 삶의 터전인 바다를 인간구원의 심연 공간으로 심화시킨 소설들이다.

   위 작품들에서 살펴보았듯 어부들의 생명을 앗아간 바다는 한편으로 몇 작품에서 민속신앙이나 의식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는 심연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찍이 데뷔작인「오몽녀」(1925)에서 두만강변의 고기장수를 곁들인 정치풍자적 사랑이야기로 눈길을 끌었던 이태준의「바다」(四海公論, 1936)가 인간구원의 주제를 드러낸다. 어촌에서 사랑하는 옥순이와 왈룡이는 정혼을 해놓고도 가난으로 인해 혼인을 미루어오던 중에 옥순아버지와 왈룡이 부자가 무리해서 문어 잡이를 나가 변을 당한다. 그런 두어 달 뒤에 빚 독촉으로 손찌검을 잘하는 구장이 양복쟁이를 달고 와서 꼬득인다. “딸은 자식이 앙이겠능야? 딸두 자식이지비 남자만 자식이겠능야? 산 어망이두 모셔야겠구 돌아간 아방이 빚두 자식이 돼서 갚을 도리르 해야지 않능야.” 나진으로 팔려나가는 왈룡이 누이 채봉이에 이어 청진의 고등요릿집으로 팔려 보내려는 것이다. 곱게 단장한 그날, 옥순이는 배기미(梨津) 바위 절벽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바다에서 왈룡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그리고 최인훈의「광장」(1960 이후 개작본)에서도 한국전쟁 때 보위부 군관으로 내려와서 포로가 된 채 제삼국으로 향하는 타골호의 갑판에서 이명준은 남태평양 물속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그것은 총포탄이 아수라장인 낙동강 전선에서 이명준이 간호원으로 종군한 은혜를 만나 한 무덤가의 동굴에서 가진 정사를 생각해서이다. 그가 바다로 뛰어든 행위는 그때 그녀의 소원대로 사랑하는 딸을 임신했을 그녀 자궁의 양수 속으로 들어가 고래 뱃속에 숨어든 성서의 요나처럼 안온한 광장으로의 구원을 받기 위함인 것이다.

   이밖에 사람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든 일은 이청준의 단편「석화촌」(1968)에서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별녜(성녀)의 부친인 안노인이 이웃 청년 거무와 건너편 유자섬으로 해삼을 건지러 갔다가 물속에서 나오지 않자 그 장례를 치른 다음에 별녜 어머니도 유자섬 바위 위에 신발을 벗어놓고 자취를 감춘다. 그 후로 마을사람들은 혼자 남은 별녜를 미워하며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그녀는 억울할 뿐이다. 부모 넋이 바다에 떠돌고 있는데 누구를 대신 물속에 넣어야만 저승길로 향한다는 미신 때문이다. 석화장에서 스무 줄의 뻘을 얻어내서 쩔쩔매는 그녀에게 뭍에서 돌아온 거무(물에서 장수하라는 거미)가 찾아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별녜아버지 때문에 어부가 된 그는 배에다 무거운 돌을 실어다 뻘밭에 박는 일을 하다 그 위에서 몸도 섞는다. 바로 그날 밤에 배 밑을 칼로 구멍 낸 별녜는 그대로 자기남자가 된 거무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원문제는 중편『이어도』(1974)에도 이어진다. 이어도는 실재하면서도 물속에 잠긴 채 상징적인 기표가 되고 남는다. 이 작품은 섬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일 뿐 아니라 지상에서 꿈과 이상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내세적인 구원과 결부되어 있다.

   다섯째로는, 바닷가 도시나 어촌의 환경훼손 실상을 고발하는 소설들이다.

   이균영은 단편「살아있는 바다」(1979)에서 근래 산업사회의 발전 메카니즘에 따라 날로 황폐해 가는 어촌의 공해문제를 제시, 고발하고 있다. IW왕국 마크를 달고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산을 깎아 지은 공단의 사원아파트 M-6-276호에 사는 새댁 내외는 대화한다. “당신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거예요. 거대한 IW를 이루는 작은 쇠붙이 말이예요.”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저들은 달라. 없어진 부속품은 새것으로 넣으면 그만이니까.” 그 낙포에 살고 있는 심 노인도 한탄한다. “이제 고기 떼는 멀리멀리 도망갔소. 여기선 살 수 없으니 ⵈⵈ 동네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가고 이제 좋은 때는 갔어.ⵈⵈ.”

   남달리 남해안 바닷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써온 한승원은『포구의 달』(1983)에서 포구의 오염을 막으려는 임성진의 노력과 좌절을 통해서 무리한 개발세력에 의한 환경과 어촌인심의 황폐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적어도 친환경을 위해 기르는 어업의 일환으로 옹암 연안에다 석화, 새우양식장 만드는 일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해매포구 일대를 주름잡는 그의 친구 이재필과 박창걸의 훼방으로 인해 실패로 끝난다. 해매포구는 기어코 해수욕장과 낚시터 관광지로 전락해 버린 터였다. 그런 고향을 떠나 서울과 시골을 전전하다 아내에 의해 두 해만에 고향에 끌려 온 그는 더 절망하고 만다. 아내가 박창길에게 사정하여 포구에 맥주홀과 캬바레를 겸한 방갈로를 얻었다는 말에 그는 다시 집을 떠버린 것이다.

   조헌용은 중편『바다에 길을 묻다』(1998)에서 새만금간척사업의 폐해로 인한 환경고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의도의 140배 넓이의 바다를 세계 제일가는 방조제로 막아서 새 땅을 조성하는 국책사업인 것이다. 이미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보상비를 받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변해가고 있다. 서두에서처럼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공판장보다는 어촌계 사무실에 더 많이 자주 모여들었다.” 뿐만이 아니다. 후하던 고기 인심도 메말라가고 서로 더 많은 보상비를 받으려고 아웅다웅 싸우는 것이다. 더구나 군산 근처의 조그만 어촌에서 바다고기보다는 조개들을 많이 잡고 살아가는 까침바우 마을에서 해화호 어선 주인의 초등학생 손자 보기에도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바다를 메운다고 까치바위는 조각조각 부서져서 바다에 실려 나갔다. 삼촌에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을이 자랑스러웠지만 바위가 부서지는 걸 보고는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른들은 마을 이름이기도 한 까치바위를 없애고 쓰레기장을 만들었을까?

   특히 백시종의『오주팔이 간다』(2008)는 환경훼손의 실태 고발만이 아니라 바다 생태계의 환경정화와 생물학적 쇄신 방향을 제시한 장편이다. 근년에 펴낸 그의 전작소설『물』(2007)이 육지의 환경소설이라면 이 장편은 바다의 환경생태소설로서 돋보인다. 주인공 오주팔부터 일본에 가서 과학적인 해양생물 배양을 터득해온 굴양식전문가 겸 수산질병관리원임을 내세울 만큼 폭 너른 자료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산호초도 많은 남해안 청정지역에서 낚시 집을 하면서 바다 속에 인공섬까지 지으려는 뻘뜩이의 비행을 지적하는 대목 또한 설득력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낚시 미끼며 과자 부스러기며 라면 가닥이며 슬쩍슬쩍 바닷물에 버리는 사소한 쓰레기는 또 얼마이겠는가.

하지만 그 따위는 별반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파일을 박아 섬을 건설하는 위치다. 하필이면 그곳이 앵강도 해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해류와 해류가 마주치는 지점이다. 모든 생물의 성장은 해류에 영향을 받는다. 그 해류의 힘에 의해 바닷물이 순환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생명선 포인트다.

   한국소설의 남은 과제

  위에서 우리 현대문학에 반영된 바다와 섬, 연안에 관한 소설의 양상을 참고하며 한국 해양소설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았다. 우리 해양소설은 서양의 그것에 비해서 뒤늦게 발전해 왔다. 1960년대 말 이후 한국문단의 해양소설 선도자로 고군분투해온 천금성의 활동마저 구미보다는 1, 2세기가 늦은 편이다. 하지만 이제 그 활동반경이나 의식 및 미학수준은 이미 평준화 단계를 이루었다고 본다. 앞으로 한국의 해양문학도 원양체험을 지닌 신진들과 힘을 모아서 더 확충, 발전할 단계이다.

   따라서 몇 가지 남은 우리문단과 학계에 과제도 제기해 두고 싶다. 그것은 우리도 더 많이 해양소설과 항공소설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점만이 아니다. 재래의 농촌소설, 도시소설에 대칭되는 어촌(어민)소설의 새롭고 원활한 발전이 기대된다는 점이다. 또한 가능하면 이전의 조명희가 1920년대에 발표한「낙동강」처럼 일부 강이나 하천도 바다-섬-연안 범주에 아우르는 명칭과 더불어 새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점도 포함된다.

----- <문학의강> 창간호 (2012.11.1.)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