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교육과정을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슬퍼졌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교육과정을 가질 수 없나? 우리는 왜 이런 교육을 할 수 없나?
프랑스 교육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네들은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칠고 과격할지 모르지만, 그에 비해 우리 교수님들은 ‘어떻게 하면 나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그것은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네들이 시민교육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국민교육을 목표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민교육이라 했을 때의 ‘시민’이란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기초한 개체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네들이 추구하는 시민교육이란 ‘어떻게 하면 자신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들이 말하는 국민교육에서 ‘국민’이라 함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도구, 일꾼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은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우리들이 추구하는 국민교육이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줄 아는 유능한 도구를 양산하는, ‘재능의 순종화 과정’이 아닐까 반성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국어교육이 기능주의로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기능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능을 통해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라는 기능을 강조하지만,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을 익혀야 하는데, 그러한 고민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와 ‘언어/문학’을 같은 범주로 두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기능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든 ‘언어/문학’이든 다 같은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문학 역시 외워서 시험 봐야하는 일종의 기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능을 통해서 아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던 때가 기억납니다. 기능시험에 대비해서 처음 운전대를 잡던 날 무척이나 설렜습니다. 나도 드디어 운전을 하는구나! 하지만 운전교육은 기대와는 딴판이었습니다. ‘차를 전진시켜서 왼쪽 백미러에 이 선이 걸치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리고, 다시 앞으로 가서 오른쪽 백미러에 저 선이 걸리면 핸들을 풀고…’ 이런 것이 운전‘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이것이 기능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며, 이러한 ‘기능주의’ 더 나아가 ‘기능만능주의적 행태’가 우리 학교 교육의 현장에까지 파급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하는 교육은 운전학원 강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나는 내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의 삶과 정신에 대해서 얼마나 얘기하고 있나?’ 그리고 ‘나는 내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펐습니다.
프랑스의 교육과정을 공부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철학의 확립’이 아닐까요? 우리가 국어 교육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야 합니까? 그에 대한 고민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며, 그에 대한 철학이 분명히 서지 않는다면 어떤 내용, 어떤 방법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싸우고 있는 ‘영역구분’이라는 것도 참 우스워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프랑스의 교육과정이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획일적인 영역구분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강조해야 할 영역이 다른데, 그것을 획일적으로 도식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기능을 강조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이러한 기능은 완전히 갖추어 졌다고 보고 내용(지식) 중심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영역 구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그네들의 여유, 아이들의 행복을 가장 먼저 고려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그네들의 철학, 모든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슬퍼졌습니다.
첫댓글 공부하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지만, 문학과 국어지식 언어 모두 사람을 향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국어라는 과목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구요. 학원에서 저도 기능교육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