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실험은 큰사랑 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이상일 박사의 도움으로 실시됐다. 각 실험은 타인에 대한 단기 인상이 형성된다는 15분 동안 밀실에서 진행됐다.실험 전후 피실험자들은 심리 검사를 받았다. 모든 실험은 참여자가 방해받지 않도록 비디오로 녹화한 뒤 추후 분석했다.
글=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실험 1 : 거짓말 하는 남자와 솔직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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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내내 남자 대학생 김기환(26.서강대)씨는 초면의 여대생 황선애(24.선문대)씨에게 새하얀 거짓말을 '날렸다'. 첫 실험은 남녀관계에서 거짓말의 효과를 알아보려는 것. 후드 티셔츠에 청바지를 수수하게 입은 김씨는 칭찬공세로 '작업'을 하도록 했다. 반면 화려한 코트에 복고풍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타난 또 다른 남자 대학생 함정식(25.한국외국어대)씨는 거짓말을 전혀 못하게 했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솔직히 얘기하라고까지 했다. 김씨에 이어 황씨와 단둘이 마주 앉은 함씨는 거침없는 솔직함을 선보였다. "옷이랑 신발이 너무 유치하지 않나요?""술을 전혀 못해요?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은 재미없어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황씨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 김씨와 대화한 뒤, 그리고 함씨와 대화를 마친 뒤 모두 세 차례의 심리 검사를 받았다. 황씨가 받은 검사는 '로흐샤하 테스트'.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로흐샤하가 만든 것으로 그림 10장을 차례로 보면서, 떠오르는 것을 빠르게 말하는 것이다. 데칼코마니 같은 그림들이 원래 나타내는 바는 없지만, 보는 이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한 설명이 나오게 마련. 실험 전 황씨는 그림 하나를 보고 "더러운 추상화"라고 말했다. 어떤 그림에는 '루시퍼(성경에 나오는 사탄)'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와 기분 좋은 대화 끝난 뒤 황씨는 이들 그림에 대해 '나비'와 '꼬마 악마'라는 한결 부드러워진 답을 내놨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함씨와 솔직하지만 거친 대화를 나눈 뒤 황씨의 반응. 첫 대화 이후 '레몬'과 '오렌지'라고 불렀던 그림들을 그녀는 '거미'와 '돗자리'라는 살벌하고 우중충한 모습으로 봤다.
이런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 이상일 박사는 "로흐샤하 검사에서 언급되는 단어는 피검사자의 기분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며 "따라서 적절한 칭찬이 섞인 김씨와 대화로 좋아졌던 황씨의 기분은 지나치게 솔직한 함씨 때문에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험 2 : 보험사 교육책임자와 얘기해 보니
최근 하던 일을 그만둔 조연수(29.여)씨.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안돼 스트레스가 심하다. 실험 전 받은 심리 검사에서도 조씨의 이런 기분은 잘 드러났다. 조씨가 받은 검사는 '드로 어 퍼슨 테스트'. 간단한 그림을 그리게 해 심리를 알아보는 검사다. 조씨는 이 검사에서 사람을 그리라는 주문에 이목구비가 없는 역삼각형 얼굴의 여자를 그렸다. 집을 그리라고 하자 네모 위에 삼각형만 얹어 놓았고, 나무를 그리라니까 가지 없는 나무에 열매만 잔뜩 그려넣었다. 그림을 본 이 박사는 "모두가 스트레스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그림들"이라고 평했다.
이런 조씨를 상대로 새하얀 거짓말을 늘어놓은 이는 삼성생명 강남지점의 교육 책임자 이용옥(43)씨. 보험판매 경력 13년의 '베테랑'답게 이씨는 기분이 좋아지는 거짓말로 조씨를 다독거렸다. 딱히 높지 않은 조씨의 코. 그러나 이씨는 "코가 어쩜 그렇게 오똑해요. 수술하셨어요?"라고 능청스레 말을 건넸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조씨도 기분이 좋았는지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이후 15분 동안 조씨는 새하얀 거짓말을 원없이 들은 뒤 다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은 얼굴이 동그랗게 바뀌었고, 웃고 있는 눈.코.입이 생겼다. 집에는 창문이 생겼고, 나무는 숲으로 바뀌었다. 열매는 모두 사라졌다. 이 박사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스트레스가 많이 준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 더 많은 공간을 쓴다는 것은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씨는 무뚝뚝한 회사원 이명환(27.아데라커뮤니케이션)씨를 상대로도 실험했다. 결과는 마찬가지. 다소 날카롭게 보이는 외모에 대해 "똑똑해 보인다. 너무 샤프하다"며 늘어놓은 15분간의 악의없는 거짓말에 이씨의 표정도 한결 풀렸다. 실험 전후에 그가 그린 그림들도 대체로 비슷한 변화를 보였지만 나중에 그린 그림에는 나무 뒤쪽으로 새 한 마리가 장난스레 그려져 있었다.
*** '새하얀 거짓말' 잘하려면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잘 하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게 거짓말이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거짓 잎사귀는 진짜가 못한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이런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접할 수 있다. 영어로는 '새하얀 거짓말(white lie)'이다. 악의적인 새빨간 거짓말과 다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화내는 노인은 없다. 의사로부터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도 "많이 좋아졌다"는 말에 삶의 의욕을 가지며, 나아가 기적적으로 회생하기도 한다.
새하얀 거짓말에도 요령이 있다. 간단한 방법은 상대방의 약점을 장점으로 부각하는 것. 비만이 고민인 친구에게 "너는 그래도 다리가 예쁘잖아"라고 말하고, 승진에 신경쓰는 직장 상사에게 "부장님 인품이면 진급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숨겨진 장점을 파악해야 한다. 옷은 잘 못 입지만 세련된 액세서리를 하는지, 말은 잘 못하지만 글은 잘 쓰는지, 무뚝뚝하지만 속정은 깊은지, 화를 잘 내지만 의협심이 강한지 등을 알아두면 새하얀 거짓말의 효과는 배가된다.
상대의 장점을 잘 모르고 하는 칭찬은 눈치없는 '썰렁한' 말이나 아부가 되기 쉽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키가 커서 좋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단점투성이 인간이라도 장점은 있게 마련. 그것을 찾아내는 게 새하얀 거짓말의 포인트다.
말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외모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너는 손이 예쁘잖아"라고 말할 때 지나치게 가벼운 목소리라면 빈정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 반대로 말투가 너무 무거워도 약 올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새하얀 거짓말도 정성을 들여야 감동이 뒤따르는 법이다.
말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도 자신을 위로하려 거짓말하고 있음을 뻔히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몸짓과 말투에 더 민감해진다. 작은 눈이 고민인 친구에게 한눈을 팔면서 "작은 눈이 더 매력적이야" 라고 말하면 "놀리느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이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