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저녁 나들이
얼마나 더운지 다니는 게 고통이고 형벌이다.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 하면서 몇 가지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얼마나 더운지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찜통이라 괜히 신경질이 나고 이런 날씨가 며칠만 계속되면
성질까지 다 버릴 것 같아 속상하다.
휴대폰이 울려 받아 보니 며느리의 음성이 들려온다.
“ 어머니 저예요. 어디세요?”
“ 나 , 집 밖이야. 왜 , 무슨 일 있어?”
“ 몇 번이나 연락 드렸는데 이제야 통화가 되네요.”
“ 진동으로 해 놓았더니 , 못 들었나 보구나.”
통화 내용은 오늘이 중복이니 저녁을 식구들과 모여서 먹자는
며느리의 마음이 담긴 내용이었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더위를 식힌 뒤 아들 아파트로
가니 손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라! 환영하며 매달린다.
아직 자식 결혼을 시작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대부분 이지만
친구들 말 같이 나는 복이 많은가 보다. 일찌감치 큰일은 모두
마치고 이런 행복을 맞보고 사니까 말이다!
아들 퇴근을 기다리는 동안 며느리는 연방 차와 과일이며 음식을
나른다.
‘ 언제나 봐도 예쁘다. 늘씬한 키에 미모에 착한 마음까지 ’
이런 생각을 하면서!
“ 너 내배 작은 줄 알면서 이렇게 먹고 저녁 못 먹게 하려는 거지?”
라고 말하며 눈을 흘기자.
“ 어떻게 아셨죠? 들켰네요. 어머니” 우린 마주 보며 깔깔 웃었다.
“ 어머니 어디로 모실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들은 항상
결정권을 나에게 준다. 나는 아들의 마음 씀은 받아 드리고 그
기준을 며느리에게 두어 결정하게 한다. 절대로 내 마음은 비치지
않고……. 직장을 그만 두고 살림을 알뜰하게 사는 며느리가 먹고
싶은 것 한 끼라도 먹이고 싶은 내 작은 배려의 마음에서다.
그래서 우리 집은 다른 것은 아끼지만 외식은 자주 한다.
식구들의 진솔한 얘기도 들을 수 있고 서로 화목 할 수가 있어서.
오늘은 며느리가 닭 불고기가 먹고 싶나 보다.
차는 어느새 영주를 벗어나서 봉화 군청을 지나고 있었다.
찻길 양옆에 풍경들이 병풍을 만들어 다가오고 지나가면서
우리들의 나들이 길을 반겨주니 더 더욱 즐겁다.
다덕 약수 탕에 내리니 손자들 쪼르르 길 건너편 미니 동물원으로
구경하러 달려간다. 몇 번 왔기에 거기에 동물원이 있는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차에서 내려 따라 가보니 무더운 여름이라 동물들
한테서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역겨워 견디기 힘들고 머리까지 아팠다.
그러나 아이들은 구경하면서 좋아라. 했다.
동물 가족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빙’ 둘러본 내 시야에 사자 한 쌍이 들어 왔다.
‘세상에나’ 돼지우리 정도 되는 작은 우리에 밀림의 황제인 사자가
너무나 기막힌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세상만사 다 포기한 슬픈
모습으로…….
'그나마 한 쌍이라 얼마나 다행 인가!'
어쩌다 여기 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물 이지만 인간들이 너무 잔인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려 왔으면 달리지는 못하지만 걸을 수는 있도록 해 줄 것이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원숭이 우리 앞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 졌다.
전주곡도 없이 더위를 못 견딘 원숭이가 물통에 덤벙 뛰어 들어 그
둘레에 모여서 먹이를 주고 있던 아이들이 물벼락을 맞은 거다.
둘째 상현이는 머리며 등이며 온통 물세례를 받았다.
“어떡해, 어떡해요. 어머니 더러워서 ” 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더러운 물이라 놀란 며느리는 상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머리를 감기고
윗옷을 빨아 입히고 나오니 완전히 물에 빠진 새양쥐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웃고 있는데 벌써 울기 시작 한다. 유별나게 깔끔한 둘째라
젖은 웃옷 때문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수습할 차례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말했다.
“ 야 ~ 상현이 대단해요. 원숭이와 물장난도 다하고. 다른 사람들
상현이 옷보면 원숭이와 물장난 한 것 다 알 거야 ……. “
아직 어려서 내 말이 먹혀들었다.
“할머니 정말이에요.” 어느새 웃음을 찾고 있었다.
경치가 가장 좋은 청기와 식당으로 우리 일행이 들어서니 복날이라
사람이 엄청 많았다.
복날의 수난은 개만 겪는 게 아니고 닭들도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실내 보다 뒤 원두막이 좋을 것 같아 많은 원두막 중에 하나 골라
거기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자연 바람이 불어와서 더위도 식힐 수 있어 좋았다.
손자들은 트럭 밑에 있는 새끼 고양이와 놀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고양이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우릴 계속 처다 보고
있었다. 손자들은 고기를 받아먹는 고양이가 좋은지 연방 고기를
던져 주고 있다.
“저것 보세요. 먹어요. 먹어 ”
나는 나도 모르게 또 사자들을 떠 올리고 있었다.
‘ 불쌍한 것들! 이 야생 고양이 신세 보다 못하구나.’
첫댓글 초향 ! 넌 참 복이 많은 여인 같아 ! 벌써 아들 딸 장가보내고 시집 보내놓고서 손자 손녀 다보고, 그나마 너의 며느리 나도 봤지만 너무 에쁘고 키도 크고, 너와 너의 며느릴 보니 누가 고부간의 갈등이 있다했나? 싶더구만...
(산초) 복도 많으시네요. 저도 언젠가 선생님 같은 모습이 되길 기도합니다. 2004/07/31
(천둥산박달재) 가족의 의미. 무엇보다 따뜻한 느낌으로 .... 2004/08/01
(햅번) 아니 나몰래 또 언제 맛있는거 드셧어요^^ 올케언니가 고맙네요. 그래도 이쁜딸램이도 가끔 생각해 줘요 ?? 2004/08/01
(지혜) 행복이라는 그림이 떠 오르네요. 복도 많으신 선생님 ! 방긋.. 2004/09/18
라헬) 우리딸 왔었구나. 엄마가 내딸 생각을 왜 안하겠니? 식구들 더위에 몸조심하고 9 일날 서해 바다에서 반갑게 만나자.^^ 200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