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천명관
나는 소설을 통한 감동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우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대를 함께 거쳐왔기에 시대적 상황을 공감하거나 혹은 등장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와의 공감을 통해 느끼는 감동이다.
두 번째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 가보지 못한 공간에 대해,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독자가 간접경험을 통해 얻는 감동이다.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이하 [나의 삼촌])는 이런 내 견해에 비춰보면 첫 번째에 해당할 것이다. 8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상황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전 늘상 일탈을 꿈 꾸었으며, 사회는 군부독재로 인해 암울했으며, 마지막 농촌세대와 이제 막 자리잡은 도시빈민층의 고단함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삼촌]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재미다. 작가는 천성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마치 영화 속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경쾌함을 추구한다. 전제척인 느낌 속에서 특정한 부분 만을 찾아내자면, 동천을 지배하려는 조직폭력배단의 이름을 열거하는 부분이나, 원정의 토사물에 넘어지는 무리들에 대한 묘사나, 성기를 절단당한 유사장의 상황을 '자지도 없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는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주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나의 삼촌]은 화자(話者)의 시점이 강하게 작용한다. 삼촌 권도운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은 화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자(長子)우선주의의 유교적 전통을 지닌 집성촌에서 화자는 둘째이기에 가능한 무관심과 자유분방함을 지니고 성장할 수 있었다.
화자의 형은 장자로서의 기대를 저버리지않고 명문대 진학과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개천의 용이 되어 걸어가지만, 화자는 그럭저럭 공부해서 그럭저럭 대학에 가고 그럭저럭 취직해서 산다. 지금이야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하는 것)하는 것이 소원이라지만 그땐 그랬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도 삼촌이 살아가는 초지일관적인 삶에, 인생관에, 사랑에 화자는 답답함에서 부끄러움으로 다시 삼촌처럼 사는 삶도 멋지지 않았는가 하며 헛헛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다면 삼촌의 삶은 어떠했는가? 화자의 할아버지가 딴집 살림을 차려 태어났다는 서자(庶子)다.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으나 할머니는 삼촌을 할아버지의 핏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문중에서는 반대하지만 삼촌은 꿋꿋이 버텨내고, 힘든 생활을 이소룡을 동경하여 그의 무술을 연마하는 것으로 위안 삼아 버텨낸다.
이 때의 무술연마가 삼촌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늘 뇌까리는 '무도인의 삶'은 조직폭력배 간의 세력다툼에서 숨은 실력자로 회자되기도 하고, 충무로 영화판에서 스턴트맨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게도 한다.
삼촌은 볼 것이라곤 유난히 눈에 띄는 가슴 밖에 없는 무명 여배우를 짝사랑하게 되어 평생을 그녀를 기다리는데 허비하기도 하지만, 열여덟 살의 여고생을 임신시키고 도망쳐버린 무책임한 남자이기도 하다.
[나의 삼촌]은 화자의 삶에 굴곡과 세상과의 적절한 타협을 보여주며 이에 대비되는 삼촌의 일관된 자세를 이야기한다. 그렇다고해서 삼촌이 일관되게 '무도인의 삶'을 걸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삼촌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세상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음을 설명하려 한다.
[나의 삼촌]은 아무래도 암울한 80년대를 서술하려 한 것 같다. 군부독재의 탄생과 대물림, 개발지상주의에 따른 폐해, 광주의 끔찍한 만행과 삼청교육대 특히, 삼촌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때의 상황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차기작품은 이 부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화자를 둘러싼 동천이라는 지리적 배경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변호사가 된 형의 독백처럼 고향은 늘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되고, 고향에서 만났지만 이젠 고인이 된 종태(절곤이)와 토끼, 삼촌을 사부로 모시고 수련하던 뒷동산, 처음으로 연정을 품었던 영어선생, 읍내에서 본 이소룡의 영화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진다.
[나의 삼촌]이 상당히 재미있게 읽힌 작품이지만 원정의 토사물에 영화사 어깨들이 넘어지는 장면이나, 토끼가 염산을 가득 실은 화학약품차량에 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너무 억지스런 면이 있어 옥에 티라 할 것이다.
또한 신문평에서처럼 작가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너무나 긴장감 없이 등장하는 점이나 급히 마무리되는 모습에서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정말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