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설교제목
잊을 수 없는 성도의 사랑
오늘의 찬송 :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자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1:1 - 1:11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쁨으로 편지합니다. 바울은 그들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감사하고 있으며, 투옥 중에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사랑이
풍성하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에서 교제하는 삶
분별력 있는 사랑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집사(1절)
초대 교회에서 주로 구제 사업을 담당했던 직분이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6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을 의미한다.
매임(7절)
바울의 매임에 참예하였다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옥중에 있는
바울을 물질적으로 도운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4:18).
오늘의 명구 / 바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과 함께 고동쳤다.
- J. B. 라이트푸트 -
본문강해
복음에서 교제하는 삶 (1:1~7)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의 죄 값이 치러졌기에 이제는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라고 고백하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을 때부터 줄곧
“복음에서 교제”해 왔기 때문입니다(5절). 즉,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된 것과 바울을 후원하여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한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착한 일”(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
자(believer)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하는 자(co-worker)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하셔서 온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일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분별력 있는 사랑 (1:8~11)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말할 만큼, 또
자신의 사랑에 대해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신다고 말할 만큼 깊이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제목은 먼저 그들의 사랑이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이었습니다(9절). 그래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10절). 다양한 가치들 앞에서 날마다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우리도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 때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으며, 진실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11절). 그러나 이러한 열매를
맺는 삶은 내 힘으로 이루는 업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11절).
예화 (젊은이들 가슴을파고든 할머니)
일흔여섯 살의 거르티 할머니는 교회 안의 젊은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을 돕기로 자원했다. 성경 공부를 인도하거나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녀는 카메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찍어 플래시 카드에 붙이고 뒷면에 각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적어 넣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을 기억하고 주일마다 교육관
입구에 서서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모임이
끝나면 다시 문 앞에 서서 학생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문제를 갖고
거르티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0년 후에 여든여섯 살이 된 거르티는 뇌졸중으로 세 번이나 쓰러졌다.
다가온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학생들은 모두 걱정과 비탄에 잠겼다. 어느 날
리더 중 한 사람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르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장례를 치러 드림으로써 그녀가 교회와 학생회에 얼마나 소중한
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젊은이들이 예배당을 꽉
채웠다. 장례식 예배가 끝나갈 무렵 학생들이 무언가를 감추고 예배당
앞쪽으로 모였다. 그들은 크고 진귀한 향수병을 각자 들어올렸다. 순간, 그들은
병을 깨뜨려 거르티의 발에 향수를 부으며 그녀가 한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거르티 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준 것은 그녀가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 「뒤엉킨 영성」/ 마이클 야코넬리
한절묵상
빌립보서 1장 1절
성자라는 개념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로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지금 성자라고 불리는 무리 안에는 얼마 전까지 점치던 노예
소녀와 잔인무도한 간수도 들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높다고 싸우던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그
인생의 정점을 기대하며 그 이름을 불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종이라는 가장 낮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담임 목사
더 깊은 묵상
내가 행하고 있는 ‘복음에서 교제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그 삶이
믿음의 식구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까?
나의 사랑은 분별력 있는 사랑입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에 기쁨이 없는 것은 복음의 교제가 없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에서의 오락보다 복음 안에서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나눔을 갖게 되길 원합니다.
설교제목
복음의 진보에 장애물은 없다
오늘의 찬송 : 268장
온 세상 위하여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1:12 - 1:18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자신의 투옥 동안 온 시위대가 그리스도에 대해 들음으로, 복음
증거를 꺼리던 사람들을 담대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음을 말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 이기적인 야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전파 그 자체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고난으로 복음의 진보를
진정한 기쁨의 이유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시위대(13절)
천 명 단위로 하는 아홉 개의 보병대로 구성된 사령관의
호위대. 그들의 임무 중 하나는 윤번제로 돌아가며 죄수들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변명(16절)
변호. 여기서는 복음에 대한 변증과 전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의 명구 / 중요한 것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 필립스 브룩스
본문강해
고난으로 복음의 진보를 (1:12~14)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진보”(헬, 프로코메)는 ‘본진(本陣)이 가기
전에, 선발대가 먼저 가서 길을 만들어 행진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라는
의미의 군사 용어입니다.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마치 길을 만드는
선발대와 같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채로 지방 총독의 관저에서 재판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재판이 진행되면서 바울에 관한 일들이 알려졌으며, 이
과정에서 재판에 관련된 사람들과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용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바울의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더욱더 전파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의 이유 (1:15~18)
바울 곁에는 우호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투기와 악한 행동까지도 결국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이 자신을 투기하고 적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악함까지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15~18절에서 3번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기쁨은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가 전파되느냐의 여부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선한 방법으로든, 악한
방법으로든 모든 것을 그리스도가 전파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예화 (사람은 죽여도 복음은 죽일 수 없다
로마 제국 때 군인들이 40명의 그리스도인을 불러다 놓고 위협했다.
“예수를 거부해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고, 예수를 거부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테다!” 영하의 매서운 겨울 날씨에 옷을 모두 벌거벗긴 채, 호수의 얼음을 깨고
그 속에 집어넣어 산 채로 얼려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으신,
그래서 내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거부할 수 없소. 나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소”라며 텀벙텀벙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참 못났군. 두 번째,
넌 어떻게 할 거야?” 군인이 물었다. “예수님은 나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셔서 나 대신 고난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분을 위해
죽을 차례입니다.” 그는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물속에 몸을
맡겼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서른아홉 번째 사람까지 모두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마지막 마흔 번째 사람은 군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이제부터 나는 예수님을 안 믿겠습니다” 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그렇다면 내가 네 대신
생명을 내놓겠다”며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에 들어가 마흔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그렇다!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거나 순교를 당한다고 해서 복음까지 죽는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성도들은 오히려 마음이 더 뜨거워지고, 복음의
귀중함을 더 깊이 깨달아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 홍성철
한절묵상
빌립보서 1장 12절
고난에 처한 상황 속에서 선한 것을 찾기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고난을 통해
선한 것을 이루어 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롬 8:28).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유익만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진리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찰스 스탠리/ 애틀랜타 제일침례교회 담임 목사
더 깊은 묵상
신자의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당한 아픔과 시련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나의 고난을 통해 복음이 전파된 경우가 있었습니까? 모든 것을 복음이
전파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드릴 고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제가 어려울 때, 늘 그 상황이 저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음으로 상황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설교제목
믿음과 고난, 은혜의 양면
오늘의 찬송 :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1:19 - 1:30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자신의 석방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존귀케 되는 것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삶의 주된 목적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삶을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염원
복음에 합당한 삶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간절한 기대와 소망(20절)
이것은 어떤 것의 조짐을 붙잡으려고 목을 늘이고 있는 것을 묘사한다. 바울의 관심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를 증거할 것인가에 있었다.
생활하라(27절)
천국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빙거(28절)
명백한 사실을 토대로 드러난 증거
오늘의 명구 /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는 기쁨이 있다.
- 존 트랩 -
본문강해
나의 간절한 염원 (1:19~26)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 나오기를 바랐던 이유는 단지 수감 생활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울도
인간이었기에 차라리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23절).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자기의 삶을
통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이 찬양 받으시고
높아지시기를 원했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바울의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그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습니다(20절). 또 바울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서 그들의 믿음에
진보가 있게 하고, 그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25~26절).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살아야 합니다.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더욱 존귀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1:27~30)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고
권고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멘토(mentor)였던 바울은 늘 그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있든 없든 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울의 바람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한마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27절). 때로 성도들 간에 이견이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위해서는 협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담대함이 생겨서 적대자들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28절). 나아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적대자들로
인해 당하는 고난까지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은혜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도 은혜인 것입니다(29절).
예화 (나비와 고치의 관계)
영국의 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연구실에서 고치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황제나비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고치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나비에게 있어서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비의
‘투쟁’을 지켜보던 월리스는 순간, ‘내가 이 나비를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칼로 고치의 옆 부분을 살짝 그었습니다. 그러자 예상 밖의 결과가
빚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비는 고치를 빠져 나와서 날개를 폈습니다. 하지만 곧
축 늘어지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나비는 고통과 험난한 투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힘을 지니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어쩌다 영혼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신체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육체를 지녔고, 일을 하며,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통은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작가 스콧 펙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행복한 삶을 사는 10가지 작은 원칙」/ 아서 칼리안드로, 배리 렌슨
한절묵상
빌립보서 1장 21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살아 나가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열심히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며, 그리스도를 닮으려 노력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 안에서 사시도록 한 삶입니다. 그분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그분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는 삶입니다.
조지 던컨/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상」 저자
더 깊은 묵상
내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복음을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삶이 제 몫만은 아님을 고백합니다. 남을 위해 살아야 할 의미도
있기에 바울처럼 어려움을 맞서 봅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고난도 은혜임을
깨달아 복음에 합당하게 살게 하소서
빌립보서
2장
설교제목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원리
오늘의 찬송 : 248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2:1 - 2:11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과 사랑의 위로, 교제, 긍휼과 자비 등 영적
활동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영적 연합을 이루기를
권면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하나님이 행하신 ‘그리스도를 높임’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내려감과 올라감의 역설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권면(1절)
‘보혜사’(요 14:16)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책망이나 위로라는 의미에서 ‘훈계’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본체(6절)
사물의 본래의 모습. 이 단어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성을 표현하고 있다.
종의 형체(7절) 종의 모습.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겸손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늘의 명구 / 그리스도인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주인인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속한 종이다. - 마틴 루터 -
본문강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2:1~4)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 사도로부터, 또 성도간에 사랑의 격려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교제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빌립보 교회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분열이 있었기 때문에(4:2 참조) 이 일을 수습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생각을 같이하고, 뜻을 합해야 하며, 한마음을 품으라고
재차 역설합니다. 이러한 일치는 경쟁심으로부터 비롯되는 다툼이나 자기를
앞세워 높아지려는 허영을 버리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일도 돌보는 섬세한 마음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내려감과 올라감의 역설 (2:5~11)
하나 됨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역설한 바울은 그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신 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연한 그 위치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신을 철저히 낮추신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소유에 관계없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자기를 비웁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춘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자를 반드시 높이십니다.
예화 (겸손의 가치는 영원하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겸손’이란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 중의 하나라기보다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랑까지도 겸손의 뿌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했다. 따라서 겸손의 뿌리가 마르면 사랑의 꽃조차도 시든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극도의 경쟁 사회에서도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겸손이라는 덕은 이미 지나간 시대에나 해당되는 것일 뿐
현대에는 없어도 되는 것일까?
빌립보서 2장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준다. 바울은 겸손을
예수님의 구속과 결부시켜 설명함으로써 겸손의 미덕이 지니는 초시간적인
가치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었다. 따라서 응당
하나님으로서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영광이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특권들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종이 되셨다. 게다가 사람들의
모든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예수님이
얼마나 깊이 비하(卑下)하셨는지 우리는 억만 년이 걸려도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겸손을 제거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도 존재할 수 없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구속 사업이 초시간적인 가치를
지닌 것처럼 겸손도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참된 삶의 비결」/ 이태웅
한절묵상
빌립보서 2장 6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심으로써 ‘타고난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왕의 지위를 버리고 종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우리에게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법적인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와 같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 노예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니키 검블/ 런던 Holy Trinity Brompton 교회 사역자
더 깊은 묵상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 삶의 영역 가운데에서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상향성이 돋보이는 이 시대에 하향성의 삶을 사신 주님의 본을 따르길
원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저를
낮추는 삶을 살게 하소서
설교제목
모든 것을 드릴 때 주어지는 기쁨
오늘의 찬송 :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2:12 - 2:18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야 하며,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해야 하며, 패역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야
하고, 생명의 말씀을 밝힐 것을 가르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자신이
관제와 같이 부어지기를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
죽음도 불사한 헌신의 기쁨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구원을 이루라(12절)
성도들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경외함 가운데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 앞에 복종시켜 나가는 성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관제(17절)
화제를 드릴 때 제물 위에 포도주, 술, 기름 등을 부어 드리는 제사(민 15:1-10). 이것은 순교와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드려지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을 나타낸다.
오늘의 명구 / 순종이란 참된 믿음의 증거인 까닭에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다. - 존 비비어 -
본문강해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 (2:12~16)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든 없든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항상”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위기의 때에 자신들을 인도해 줄
지도자가 없다면 올곧게 신앙의 길을 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툼과 허영으로 내부 분열의
위기를 조장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엄위하심에 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와해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되새겨 줍니다. 하나님은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일치를 위해서는 불평과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평하며
다투는 일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흠 없고
순전한 자녀로 나타날 것이며,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생명의 말씀, 곧 복음을 굳게 붙잡는 일입니다.
죽음도 불사한 헌신의 기쁨 (2:17~18)
빌립보 교인들은 마치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처럼, 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처럼 자신들을 온전히 바쳤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헌신 위에 자신을 “관제(灌祭)”로
드리는 것까지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제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으로, 완전하고도 철저한 헌신을 뜻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헌신을 드림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을 온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헌신을
기뻐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바치는 헌신을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헌신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절대 헌신은 가능한가?)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왕상
20:4)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마다 아버지께 마땅히 드려야 할
헌신의 고백이다.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내어 드리고 있다. 하나님이
백합꽃을 아름답게 가꾸실 때, 백합꽃은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
하나님의 솜씨를 나타내지 않는가?
어떤 것이든 본래의 특별한 목적과 봉사를 위해 드려지는 것을 우리는
헌신이라 부른다. 내 주머니에 만년필이 꽂혀 있다. 만년필은 글씨를 쓰는 단 한
가지 일에 전적으로 바쳐진 물건이다. 내가 글씨를 바로 쓰려면 만년필이
온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헌신을 받기에
합당하시므로 이것을 요구하신다. 속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 헌신은 너무 벅찹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절대 헌신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 속에서 그 일을 하신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영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잘못된
것을 쫓아내시고 약한 것을 깨뜨리시며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한 일을
이루신다. 우리는 절대 헌신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소유하고 있다. 그분이 영적인
자석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절대 헌신」/ 앤드류 머리
한절묵상
빌립보서 2장 12~13절
여기서 구원은 자유라는 말로 대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것은 공을 세워서 얻어 내는 특권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물’이 아니라, 탐색하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충만하게 누려야 하는
‘소유물’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매일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순간, 그 결혼은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지만, 평생 동안 탐색과 향유와 개발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렉 모티어/ The Message of Philippians 저자
더 깊은 묵상
나의 불평이나 다툼으로 인해, 하나 됨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적은 없습니까?
나는 어떠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그 헌신이 충만한
기쁨을 주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헌신의 기쁨을 잃어버린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제 기도의 유일한
청중이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제게 있는 것으로 믿음의 제물과 봉사를
드리는 삶을 살게 인도하소서.
설교제목
헌신과 순종의 살아 있는 두 모델
오늘의 찬송 : 217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2:19 - 2:30
오늘의 말씀 요약
앞서 자신을 비웠던 ‘그리스도의 본’을 지적한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일꾼들도 성도가 따라야 할 본을 보였음을 지적합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으며,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일을 구하는 디모데
헌신의 사람 에바브로디도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디모데의 연단(22절)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며 바울과 함께 받았던 고난과 역경을 가리킨다.
에바브로디도(25절)
바울의 사역을 돕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로마에 전달했다. 그는 로마 여행 도중 중병에 걸렸으나 고침을 받았다.
오늘의 명구 / 헌신으로 꿇는 무릎은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이다. - 올리버 웬델 홈즈 -
본문강해
예수의 일을 구하는 디모데 (2:19~24)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 디모데를 보내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자신을 대신하여 빌립보 교인들을 염려하고 격려해
줄 사람은 디모데뿐이라고 믿었습니다.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어떤 일을
추구하는가에 있습니다.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 주인 되신 예수님을 위해 복음에
헌신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디모데는 바울을 마치 아버지처럼
섬겼습니다. 그는 바울의 선교에 동참하면서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며 함께
어려움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처음부터 디모데가 겪은 이런
연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신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당하는 삶은 우리의 인품과 신앙을 다듬어 줄 것이고,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헌신의 사람 에바브로디도 (2:25~30)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까지 빌립보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자신의 형제요, 자신과 함께 군인처럼 복음을 위해 싸우며 수고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실제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수고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와 디모데가
존귀하게 대접받을 이유가, 빌립보 교인들과 이들의 만남에 기쁨이 넘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는 사역자들과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간의 만남에는 늘 기쁨이 충만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근심했기 때문에 수감된 처지에
놓인 바울로서는 그가 필요했지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보다
양떼를 먼저 배려하는 참된 목회자였습니다.
예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사람
4년 만에 새로운 곳으로 선교 지역을 옮기니 모든 것이 낯설어 볼리비아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처럼 마음이 부산했다. 언어가 능숙한 것도 아닌데,
홀로 서기를 하려니 답답하고 조급할 뿐이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바로 그날 아침에 묵상한 말씀이었다. ‘그래,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기다리자!’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의 모범을 보인 한국인 한 명을
만나게 하셨다. 하루는 그가 아이들 머리를 깎아 주러 갈 때 우리 부부도
동행을 했다. 물이 없는 동네라 차에 물도 잔뜩 싣고 갔다. 준비를 하고 눈을
들어 보니 아이들이 50여 명이나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이발을 시작했으나
정작 기계가 머리를 제대로 깎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이
너무 뭉쳐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하면서 웃옷을 벗고는 한 아이씩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한 번도 샴푸를 써 보지 못한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아이의 머리를 폼 나게 감겨 놓으니 서로 머리를 땅에 대며 “저두요,
저두요!” 야단이었다. 이젠 동네 어른들까지 줄을 섰으니 모여든 인파가 가히
장관이었다. 다음날 그는 몸살이 나서 가게에도 못 나가고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천국이라며, 문병을 온 우리 부부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좋은 동역자로, 먼지를 뒤집어써야 갈 수 있는 외진
마을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기쁨으로 함께 사역하고 있다.
- 독자 에세이/ 조상은
한절묵상
빌립보서 2장 22, 25절
최고의 배우가 탄생하는 데 있어 그를 돕는 스탭이나
조연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바이올린의 거장들에게도
제2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자신의
귀한 동역자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컴퓨터나 휴대폰, 팩스 없이도
훌륭하게 사역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동역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매튜 헨리/ 성경 주석가
더 깊은 묵상
내가 애쓰고 있는 예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난 내 인품과 신앙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남을 배려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바울에게 있었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헌신과 순종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헬퍼의 마음으로 섬기는 기회를 갖게 하시고, 귀한
동역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소서.
빌립보서
3장
설교제목
절대 가치, 예수 그리스도
오늘의 찬송 :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것은 없네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3:1 - 3:9
오늘의 말씀 요약
주 안에서 영적인 기쁨을 가질 것을 권한 뒤,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는 당시
유대주의자들을 경계할 것을 명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자서전적인
사실들을 거론하면서 육체를 신뢰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신뢰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손할례당과 참 할례당
그리스도인의 가치관 변화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손할례당(2절)
초대 교회 때 할례 받은 것을 자랑했던 당파로, 바울은 할례의 참뜻은 잊고 오직 할례를 자랑거리로만 삼던 이들을 빗대어 손할례당(損割禮黨)이라고 했다.
베냐민의 지파(5절)
12지파 중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나왔다. 왕권이 붕괴된 후에도 베냐민 지파는 다윗의 집에 왕족을 남겼다.
오늘의 명구 / 예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생(生)도,
사(死)도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 파스칼 -
본문강해
손할례당과 참 할례당 (3:1~6)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며,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이것은 건전한 신앙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에 바울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들이 매우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표시였던 할례를 자랑하며,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개들”이요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바울은 진짜 할례당, 즉
하나님이 택하신 참 백성이 누구인가를 설명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으로
예배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인간적인 자랑거리 등은 결코
신뢰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이 할례나 민족, 가문, 율법에 대한 열심, 율법의 의 등에
있어서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 변화 (3:7~9)
예수님을 알기 전과 알게 된 이후의 차이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가문,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율법에서 난 의로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의로움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율법의
의와 관계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진정 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 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의미 있게 됩니다. 이제
바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이것만이 바울에게 가장
고귀한 것이 되었고, 바울은 계속 그런 삶을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예화 (기도제목
국내
전화기의 5번 버튼 위에 돌출된 작은 점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의
표시다. 전화를 사용할 때마다 한 번쯤 시각장애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우리가 그들의 눈이 되어 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도록
국외
베르베르는 7세기에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당한 북아프리카의 종족이다.
가다메스인들은 베르베르 종족 중의 하나로 리비아에서 살고 있다.
가다메스인들의 99.9%가 이슬람교도이고, 아직까지 어떤 선교 단체도 이들 중에
사역하고 있지 않다. 리비아로 가서 가다메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과 중보
기도자를 일으키시도록, 리비아 정부 지도자들과 가다메스인들의 마음이
복음을 향해 열리도록
더 깊은 묵상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봅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믿은 후 이전에 나의 삶을 구성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절대 가치이신 주님 앞에 이 땅의 모든 것은 상대 가치임을 선포합니다.
이전에 제가 의지하고 자랑하던 것들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고, 저의 모든 유익이
되시는 주님만을 자랑하기 원합니다.
설교제목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삶
오늘의 찬송 : 382장
허락하신 새 땅에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3:10 - 3:21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자신을 온전히 이룬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자로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이런 영적 경주를 계속하며, 유대주의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다시 한번 요청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하늘의 시민권자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저희의 신은 배요(19절)
그들은 자신의 육신적 욕망과 무절제한 탐식에만 마음을 두었다.
시민권(20절)
당시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마음대로 매질을 할 수 없었으며, 재판하지 않고는 감금시킬 수도 없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보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더 귀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의 명구 / 잘 단련된 육체가 잘 달릴 수 있듯, 영적인 삶을 위해서도
훈련이 필요하다. - 고든 맥도날드 -
본문강해
푯대를 향하여 (3:10~16)
부활 신앙이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같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도 부활시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활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의 영광을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할 때 비로소 그분을 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이 많은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푯대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빌립보 교회에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그런 생각은 옳지
않으며,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는 노력을 해 나가라고 권면합니다. 지금
바울은 한평생 예수님을 위해 일한 후 마지막 심판 날에 가서 마치
올림픽에서 우승 선수를 발표하는 사람처럼 기대합니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14절)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자 (3:17~21)
삶의 푯대가 분명하고, 그것을 위해 매진하던 바울이었기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 중 일부는 예수님의
고난을 거부하고 그저 부활과 영광만을 강조했습니다. 또 그들은 탐욕이나
음란과 같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19절)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도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깨닫고 이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자기 배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육신은 결국 썩어
없어지겠으나,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위엣 것”을 구하며(골 3:1) 살아가는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예화 (부활이 있기에 소망이 있다
1967년 6월 30일 열일곱 살의 운동 선수 조니 에릭슨은 체사피크 만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 좌절, 원망, 분노,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침체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재활 훈련 및 치료 기간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자매들과 친구들의 열렬한 후원을 통해 점차 깊은 블랙홀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그녀의 변화의 중심에는 성경을 재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하며 마비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이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된다고 말한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서 죽은 후 내 발로 춤을 출 때다.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내가, 언젠가는 가볍고 밝으며 강력하고
눈부신 의로 옷 입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처럼 척추를
다친 사람에게, 뇌 손상을 입은 환자 혹은 조울증 환자에게 어떤 소망을 주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상처 입은 사람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존 스토트
한절묵상
빌립보서 3장 14절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통해 바울은 당시의
올림픽 게임 같은 데서 사용되는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높이 설치된
시상대에서 우승자의 이름, 그의 가문의 이름, 그의 고향 등이 불리면, 그는
시상대로 올라가 통치자로부터 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울은 이 하나님의
초청을 위해 전심으로, 전력을 다해 경주했음을 고백합니다.
김세윤/ 풀러신학교 신약학 교수
더 깊은 묵상
나는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내 삶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떠하기를 바랍니까?
내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오늘의 기도
제 삶에 푯대 되신 주님, 이 믿음의 경주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알아 가기 원합니다. 저의 완주에 함께해 주소서. 제가 땅의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위엣 것을 구하며 살아가게 인도하소서.
빌립보서
4장
설교제목
주님 안에 서 있는 삶
오늘의 찬송 : 473장
아 내 맘속에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4:1 - 4:7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구체적인 이름을 거명하며 분열을 중단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명합니다. 다시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권한 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우니
관용을 가지며 이를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는 빛 된 삶을 살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기를 권고합니다.
한마음을 품으라
기쁨과 관용의 권면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멍에(3절)
쟁기와 수레를 끌기 위해 소나 나귀 등에 목에 얹는 막대를 말한다. 대개 멍에는 두 마리의 동물이 한 짝이 되어 끌게 된다.
지키시리라(7절)
원어 ‘프루레세이’(헬)는 보초를 서서 방어를 하거나 수비하는 것을 뜻하는 군사 용어. 여기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 즉 감정과 사고를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명구 / 나의 힘으로 설 때 내 인생은 위기에 처합니다. 주께 나의
검을 넘겨 드리게 하소서. - 조지 마티슨 -
본문강해
한마음을 품으라 (4:1~3)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부르는 호칭을 보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울은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며, 먼저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당시에 빌립보 교회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 지도자 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둘에게 각각 화해하고 한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즉
섬김과 겸손의 마음을 품을 때 다툼을 이기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화해를 도우라고
합니다. 교회 안의 분쟁과 갈등은 교회적 차원에서 기도와 중재를 통해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밖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교회 개척 초창기부터
바울을 힘껏 도왔던 글레멘드와 다른 동역자들을 돌보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수감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동역자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사랑의 넓이를 배우게 됩니다.
기쁨과 관용의 권면 (4:4~7)
‘주 안에 서 있는 삶’의 두 번째 내용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7절). 이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역사합니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예측을 뛰어넘어
역사하심을 확신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서 있는 삶’의 세 번째 내용은 성도든 불신자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예화 (돌을 들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얼굴에 있는 눈으로 많은 것을 본다. 색깔을 구별하고 계절의 변화와
사물의 움직임을 보며, 다른 사람의 과실과 사회의 문제점을 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자신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이 있다. 이 눈은 시력이 매우 약하여
웬만한 것은 볼 수 없다. 특히 자신의 문제점, 못된 습관, 무능, 부족, 잘못
등을 보는 데 매우 약하여, 심하면 그 많은 것 중 하나도 못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을 보는 눈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고,
타인의 과실을 보는 눈은 매우 밝은데도 더 밝게 하려고 첨단 기술을
투입하여 완벽에 가깝도록 고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남의 잘못은 아주
크게 보여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의 잘못만 관대하게 처리되기를 바란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끌고 예수님께 찾아와
처리 방법을 물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세상을 보는 눈, 남을 보는 눈으로 보면 그 여인은 분명히
죽어야 할 죄인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눈, 자신을 보는 눈으로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 그 여인에게 진정 돌을 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여인처럼
현장범은 아니라도 나는 마음으로 범죄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누가 예배 시간에 졸거든 정죄하고 비웃기 전에 나도 몹시 피곤하면 그렇게
졸지 않을 수 있겠느냐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다. 이웃을 향하여 들었던 원망의
돌, 분노의 돌, 미움의 돌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 「하나님, 보고만 계십시오!」/ 강경원
한절묵상
빌립보서 4장 5절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고 용서하는 것은 관용의 소극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관용의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즉,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채워 준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줌으로써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담임 목사
더 깊은 묵상
상대방을 부르는 나의 호칭에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까? 하나
됨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어 역사하신다는 이 사실은
나에게 어떤 확신을 줍니까? 내가 관용을 베푸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갈등과 분쟁 앞에 방관자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단지 평화를 유지하는 자(peace-keeper)가 아닌 평화를 이루는 자(peace-maker)임을 깨닫게 하시고, 관용과 사랑으로 이 땅을 섬기게 하소서.
설교제목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
오늘의 찬송 : 466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4:8 - 4:13
오늘의 말씀 요약
여섯 가지의 사고 영역을 언급한 뒤, 바울은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길 권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자신을 향한 섬김을 기쁘게
여깁니다. 그러나 바울은 궁핍이 채워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과 실천의 권면
자족의 비결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옳으며(8절)
하나님의 기준에 일치함
기림(8절)
존경할 만한 것
자족(11절)
스스로 충족함. 스토아학파는 이 단어를 인간의 자기 신뢰와 불굴의 용기, 삶의 압박을 고요히 용납함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나 바울은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환경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충족이 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오늘의 명구 / 우리의 영혼이 육신의 생각에 물들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 플라톤 -
본문강해
말씀과 실천의 권면 (4:8~9)
바울은 6~7절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8~9절에서는 어떻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는지를 두 가지로 설명해 줍니다.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 등에만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헛된 욕심을 위한 것에 생각이 팔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내용은 평강의 함량을 결정합니다. 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들이 바울로부터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말씀의
실천은 평강의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자석입니다.
자족의 비결 (4:10~13)
바울은 수감된 상황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했고(1:3, 7),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을 잊지 않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참된 사랑의 교제가 시작됩니다. 또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영치금이나 사식 등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적인 도움 여부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다고. 바울은
이 자족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때로는 궁핍한 상황에,
때로는 풍족한 환경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비결이란 바로
내게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화 (내 만족감의 근원은)
우리가 묵는 집의 주인은 선교사로서 사십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혼하지 못한 자신의 비통과 회한을 하소연하며 나에게
물었다. “선생께선 왜 결혼하지 않으셨나요?” “왜냐하면 주님이 나에게
결혼하는 삶과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탁자 너머로
서러움에 물든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엔 어느새 깊은 주름이 패이고, 두 눈엔
한스러움이 가득했다. 슬프게도 일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떨치기 위해 선교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내가 삼십 대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아이들 - 선교사의 자녀들 - 을
맡겨 주셔서 그들을 기른 일이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운동과 음악을
가르치며 돌보는 동안 나는 매우 깊은 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 균형을 이루어 주는 것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존재의 균형은
나의 삶의 중심이신 주 예수께 맞춰진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일이나 스포츠, 음악, 예술 같은 것에 빼앗긴다. 그러나 그 경우, 감정은
그저 그곳에 일시적으로 머물 뿐 결국은 - 오늘밤 내 앞에 앉아 있는
선교사처럼 - 의식의 표면으로 끓어올라 또다시 불만과 갈증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독신의 삶은 항상 그 상태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 행복감, 그 만족감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의 증거랍니다.”
- 「주님을 위한 순례자」/ 코리 텐 봄
한절묵상
빌립보서 4장 11~13절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쁨에 대해 열일곱 번이나 말한
바울은 당시 감옥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바울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그는 행복했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전적으로 외부적인 것과는 무관합니다. 가난하나 부하나, 폭풍이나
순풍이나 그리스도인이 늘 즐거워할 수 있는 까닭은 내부적인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내적인 평안에 근거한 것입니다.
조쉬 맥도웰, 보브 호스테틀러/ 「신앙의 불순물을 걸러내라」 저자
더 깊은 묵상
최근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와 큐티 등을 통해
내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돌아봅니다.
이제까지 내가 경험했던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그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오늘의 기도
늘 풍족한 것을 바라며 쉼 없이 살아왔던 삶을 돌아봅니다. 날마다 일용할
것으로 채우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설교제목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는 최고의 제사
오늘의 찬송 :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4:14 - 4:23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빌립보인들이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보내 준 도움에 대해 무척
고마워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제공했기 때문에 사도의 괴로움에
참여한 것임을 알리고, 하나님이 그 풍성하신 대로 그들에게 복 주시길
바라며, 마지막 안부로 끝맺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제사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본문해석을 위한 도움말
향기로운 제물(18절)
이것을 빌립보 성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은 바울 사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시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레 3:5)라는 표현들이 있는데, 이러한 개념을 빌린 표현이다.
가이사 집(22절)
가이사 황제 가문의 직원과 종들
오늘의 명구 / 우리의 진부한 생각을 내어 던지고, 주의 제단 위에 축배를 드리는 것이 예배다. - 길버트 체스터튼 -
본문강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제사 (4:14~18)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이유가 그들에게 과실이
번성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과실이 번성”한다(17절)는 표현은
당시의 상업 용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일,
자기의 재산과 시간을 들여 선교에 헌신하는 일 등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일입니다(눅 12:33).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도왔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도움을 받으신 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고기에서 어떤 냄새가 나느냐에 따라 그 제물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를 도운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급의 제사였습니다.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4:19~23)
바울은 20절에서 하나님이 자녀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 주시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즉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방법으로’ 채워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채워 주시는 역사를 보고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풍성한 대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풍성하시기에,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이십니다(고전 1:5 참조). 이렇게
우리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영원토록 그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늘 함께 있기를
바라는 인사와 축복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예화 (남의 필요를 채우면 나의 필요도 채워진다)
쉴라 월쉬는 YWAM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중에 계획하고 있는 전도
활동에 참여하기 원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쉴라는 재정을 놓고
기도했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필요한 돈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뉴욕까지의 항공비로 충분히 했고, 몬트리올 행 버스를 탈 돈도 되었다. 그러나
뉴욕으로 돌아오려면 여전히 70달러가 부족했다. 일단 쉴라는 몬트리올로 가서
1,600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두 주간 전도 활동을 했다.
나는 편도 티켓만 가지고 믿음으로 몬트리올에 온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지원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향해,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주어야 할지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했다. 쉴라는 거기서 63달러를
얻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신이 갖고 있던 7달러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리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 그럴 순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성령의 이끄심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쉴라는 ‘하나님, 제가
누구에게 7달러를 주기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쉴라는 자신의 눈에 띈
금발 머리의 처녀에게 7달러를 주었고, 그녀는 “꼭 내가 필요한 만큼의
돈이에요!” 하며 밝게 웃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들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그때 누군가가 쉴라를
불렀다. “쉴라 월쉬 씨 맞지요? 여기 계시는 동안의 수업료를 더 많이
내셨더군요.” 쉴라는 집행부 직원이 손에 건네 준 봉투를 열어 보았다. 정확히
10달러 지폐 일곱 장이었다.
- 「벼랑 끝에 서는 용기」/ 로렌 커닝햄
한절묵상
빌립보서 4장 18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항시 그리스도의 풍성을 찬미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자족을 하는 자였습니다. 최소한으로 자족할 수
없는 자는 항상 부족한 자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돌보아 오신 ‘나의
하나님’이 신실하고 풍성하신 분이기에 아직 받지 못한 것까지도 이미 받은
것으로 알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중수/ 강해설교가
더깊은 묵상
하늘의 보화를 쌓아 두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예배와 헌신의 품질 정도를 돌아봅니다.
나의 필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채워진다는 이 진리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나라의 보화를 바라보며 날마다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게 하소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할 때 이 땅의 필요 또한 채워지는
간증이 제 삶 속에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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