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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자식 키워 가르치고, 결혼시켜 놓으면 다 벗어 난 줄 알았는데……. 웬걸, 손자가 생기니 늙은 마누라마저 달라고 하여 처음에는 버럭 화를 내며 안 된다고 버티어 봤지만! 자식이긴 부모 없다더니! 셀프생활 6개월이 넘어서고 이제는 제법 이골이 붙은 것 같다. 처음엔 마누라 없는 생활 한편 불편도 했지만, 홀가분한 생활이 괜찮은 듯 했다. 밤늦도록 컴퓨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이불속에서 방귀 마음대로 뀌어도 신경 쓸 사람 없으니! 그러다가 속 허전하면 따끈한 커피한잔에 돋보기 콧등에 걸쳐놓고 어설픈 글 구상한다고, 떠 억! 폼 잡고 앉아 있으면 세상이 다 화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 마누라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온다. 아침, 입맛이 없어 김이나 먹을까? 하고 간장 그릇 갖다놓고 냉장고 참기름 병 찾아 우리 집은 중국산 안 먹겠다고 직접 농사지어 한말 일곱 되 수확하여 동생네와 딸 애집에 보내 주고도 여유가 있으련만……. 우리마누라 유독 참기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말간 국그릇에 참기름 부어주면 나는 숟가락 국그릇 위에 바쳐 들고 한 방울 더 조금 더 참기름 막 나올려는 찰라 매몰차게 치켜들어 많이 넣으면 안 꼬쑴 다고 병목에 묻은 기름 싹 핥아 먹어버린다. 어느 날 또 배급을 받다가 그만, 그 아까운 것이 반 숟갈이 넘게 나와 버렸는데... '나는 좋아 희희낙락,' 마누라는 "아이고 어쩌거나……." 그래서 얄미운 망구 국그릇에는 서너 방울 나머지는 내 국그릇에 넣어버렸더니..... " 불량한 영감탱이!" 그러면서 국그릇을 바뀌어 버린다. 옆 사람 떡이 더 크게 보인다고, 내 국그릇에는 기름 흔적 드문데 마누라 국그릇에는 참기름 방울방울……. "여보, 꼬수와?" "아니, 늑 늑 하기만 허요."'아이고, 이런 걸 자업자득이라 했던가?' 그런데 오늘은 참기름 병권이 내 손에 있으니 무엇이 아까우랴 줄 줄줄 부어놓고……. 이런, 고소한 맛은 다 어디 가고 완전 기름 맛이네. 간장 더 붓고 또 부어, 결국 넘쳐나 큰 그릇에 간신히 배합비율 조정하니, 이래서 간장이 참기름을 고소했구나. 그런데 하루 세끼가 왜? 이리 금방인지!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먼 산 한번 쳐다보고 나면 또 저녁, 꼭 세끼를 꼭 챙겨 먹어야 하는지 의아심이 생긴다. 먹는 시간이 아까워하는 소리 말고라도 금방금방 지나쳐 가는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허어! 바람아- 구름아- 쏜살같이 내 빼는 세월, 굼벵이처럼 쉬엄쉬엄 가게 하여 싱그러운 봄. 지천에 늘려 있는 만개한 꽃놀이도 즐기며 느긋하게 좀 가자구나."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득 담겨있는 참기름 마누라 오기 전에 찬밥에 말아 두 멍멍이 놈에게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홀짝 홀짝 하더니만, 떱뜨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만 있어! "야? 이놈들아 고기보다 더 비싼 100%참기름이여"……. 오늘은 기다림 속 새날 같은 금요일 아침, 햇살 가득 들어온 방안 문 열어 영감냄새 봄바람에 실어 내보내고, 먼지 낀 창문 열어 음식냄새도 씻어내어 주5일 근무하고 돌아오는 마누라 배웅 간다. 밀려오는 인파속 가까이 온 마누라 , "아니 이번 주에도 이발을 안했소?" "가서 거울 한번 보시오. 면도는 언제 했는지!" 집에 돌아와 우편함 열어보고 우편물이 이렇게 가득한데도! 내 휴대폰요금 통지서에 당신은 사업하는 사람도 아닌데 매달 5만원이 넘 냐며(마누라, 왈 백수주제에 오는 전화나 받지! '나, 참, 나라고 슬금슬금 전화 할 때 없을 라고')아들놈 요금통지서에 허겁, 12만7천원! 하는 짓이 꼭 지아비 틀림없다고 투덜투덜 댄다. 나는 엉겁결에 아들놈 몫까지 덤으로 얻어듣는다. "목욕탕불은 지금껏 켜놓고 전기장판도!" 이어지는 잔소리 피해 농장 간다고 슬그머니 오토바이 타고 나와 버린다. 나의 셀프인생은 끓임 없는 마누라 잔소리에 점점 다듬어져 가고 있다. 미덥지 않은 이 남편에 대한 쉼 없는 배려요! 챙김이라 는걸, 왜 모르겠는가? 나는 이 밤, 발 올려놓은 마누라베개 슬며시 내 베개 옆에 나란히 놓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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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삶을 즐기시는 모습속에 행복에 향기가 여기까지 참기름 냄새타고
진동합니다
어쩌면 그리 고소하게 사십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형편에 놓이든
인생을 깨소금처럼 엮어가신다는것을 알겠습니다.
참기름 냄새 아까워 안 날려 보냈는데 용케도 맡으셨네요.
향설선생님 우리는 이웃사촌 아닌가요?
치마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군요.
나는 이 밤, 발 올려놓은 마누라베개 슬며시 내 베개 옆에 나란히 놓아봅니다.
이왕이면 껴안고 자지않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