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수 대한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장 연세이비인후과 원장
동네의원에서 단골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이 윤리적 고민이나 법리적 판단을 할 필요도 없이 다 함께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적인 경험과 동료들의 고민에 비추어 보면 동네의원 진료실에서 맞닥뜨리는 윤리적 딜레마는 연명치료 여부, 안락사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환자-의사-사회와 제도의 상호관계 즉, 치료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환자의 기대나 요구, 의사의 의학적 판단의 타당성과 재량, 최종적으로 치료 결과나 예후에 대한 수용 가능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건강보험이라는 제도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위 과잉진료가 우리나라 같은 극단적인 저수가 체제 하에서 의사들의 자구책인지 탐욕 때문인지, 아니면 의료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한 정당방어적 진료인지. 과잉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반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부담스러워 하는 환자나 가까운 친지, 건물 청소 아줌마의 본인부담금만이라도 면제해 주는 것이 명백한 위법인 환자 유인 행위인지. 의사의 권유와 설득에 대해 환자가 소극적 회피나 적극적 거부를 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의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 치료를 강요해도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환자 본인의 동의서나 거부확인서는 왜 받는지. 권리는 그렇다 치고 환자는 의학적 판단에 관여할 자격은 있는 것인지. 설명과 주의의 의무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근거는 있는지…. 의사는 최선의 치료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아니면 비용 대비 효과면에서 적정한 치료로 조정해야 하는 건지. 과연 환자가 그와 같은 조치를 받아들일지. 개별적으로 환자에게 적용된 치료에 대한 통계학적 결과인 각종 지표를 획일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도록 강제해도 되는지….
특히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 재정의 기반이 취약하고 민간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의료현실에서 의료윤리적 고민은 의료정책과 재정 기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최선의 치료를 위한 의사들의 치열한 고민의 성과물로 자율적인 원칙과 지침이 자리잡혀야 하지만, 오로지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제도와 규정, 심사와 규제와 처벌이 횡행하는 틀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지금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에 대한 갈등 그 자체가 자괴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오는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확신이 없는데 어찌 윤리를 올바르게 고민할 수 있겠는가? 의료윤리란 오로지 국민 건강을 위해 의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수준 높은 고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의료윤리적 고민을 한다는 것이 힘겹고 어려운 일이며 심지어 사치거나 쓸모 없는 일이라고 자조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멈춤 없이 계속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