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고 1주일 만에 포항에 내려왔는데 직원이라고는 달랑 2명만 있더군. 눈에 띄는 건 널다란 갯벌과 소나무숲 밖에 없었어. 그 자리에 제철소를 짓는다는데 한숨부터 나왔지."
한경식(77`전 전남 드래곤즈 사장) 씨는 포스코가 포항에 처음 세워지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함께한 증인이다. 1968년 5월 8일 경력 사원으로 포항제철에 입사하고 보니 사원번호가 29번이었다고 한다. 30여년 간 근무하면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포스텍, 효자주택단지 건설에 모두 참여했다.
"고향이 전남 나주라서 바다가 좋아 포항제철에 오게 됐지. 모래바람에 눈병이 나 고생했고 모기에 엄청 물어 뜯겼지만 제철소를 처음 만든다기에 신나게 일했다"고 했다. 그는 "박태준 초대 사장(현 명예회장)의 탁월한 지도력이 없었더라면 영일만의 신화도 없었을 것"이라며 "창립 당시 이곳저곳에서 직원을 끌어모아 놓으니 오합지졸과 다름없었는데 박 사장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됐다"고 했다. 박 사장에게 혼도 많이 났다고 했다.
"시공담당 과장을 하고 있던 1975년 봄이었는데 일요일이었어요. 당시 주물선고로 1기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박 사장이 현장에 불시에 나타났어요. 공사장이 어수선하고 정리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공사현장이 도대체 뭐야!' 하시면서 제 정강이뼈를 차셨어요. 얼마나 아프던지…."
"박 사장에게 정강이뼈를 차이고 (안전모 위쪽이지만) 지휘봉에 여러 차례 맞았는데도 이사, 사장까지 했으니 신기한 일"이라며 웃었다. 당시 포항제철에는 박 사장에게 정강이뼈를 차인 직원은 출세를 한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있었다.
그는 포철이 설비 건설에 성공했기에 제철소의 경영도 한결 수월해졌다고 강조했다. 건설 기간 동안 공기 단축 능력과 그와 상반되는 개념인 부실시공 예방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건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기를 최대한 단축해야 했어요. 철야 공사도 예사로 했지요. 그렇지만 부실시공이 문제였어요. 박 사장은 1972년 1기 제강공장 기초공사가 부실한 것을 보고 공사를 중단시키고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켰어요. 본보기였죠. 1977년 광양 발전송풍설비도 폭파시키고 다시 공사했어요."
그는 "경제발전에 자그마한 보탬이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현재의 포스코는 예전보다 현대화되고 자동화된 모습을 볼때 후배들이 '목표 달성'을 위한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포스코 공사부장, 건설본부장, 제철정비 제철설비 사장, 전남 드래곤즈 사장을 거친 후 전남 순천에 살면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포항제철과 함께한 세월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경북) 매일신문 박병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