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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Q 원칙의 승리
윤홍근 지음
중앙 M&B / 2006년 12월 / 248쪽 / 12,000원
▣ 저자 윤홍근
조선대학교 수석 졸업
육군 중위 전역(학사장교 1기)
조선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박사)
연세대학교 외식산업 고위자 과정 수료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 뉴밀레니엄 과정 수료
서울종합과학대학원 4T CEO 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바이오(Bio)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서울종합과학대학원 지배구조개선 과정 수료
서울종합과학대학원 음식평론 CEO 과정 수료
- 주요경력
1995.9 제너시스 BBQ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98.2~2005.3 (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회장(1대, 2대 회장역임)
2002.2~현재 한국유통학회 고문
2002.9.1~현재 (주)제너시스 BBQ 회장 취임
2002.11~현재 한중여성교류협회 고문
2002.3~현재 서울상공회의소 의원
2002.2~현재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2002.3.19 제30회 상공의 날 동탑산업훈장 수훈
2004.2~현재 (사)한국치킨외식산업협의회 회장
2004.12~현재 서울특별시스쿼시연맹 회장
2005.3~현재 (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 명예회장
2005~현재 광주식품박람회 공동대회장
2006.2~현재 중소기업특별위원회
2006.10~현재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
2006.10~현재 보건산업최고경영자회의 회장
▣ Short Summary
평범한 비즈니스맨으로 출발하여 오늘날 BBQ를 국내 최대의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성장시킨 제너시스 그룹 윤홍근 회장은 이 책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위한 소중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윤 회장은 시골에서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청년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하여 지금의 대상그룹인 미원의 사원으로 일하기까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산업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맨주먹으로 제너시스를 창업하여 10여 년 만에 여섯 개 브랜드에 2,500여 개 매장을 갖추고 연간 매출 5천억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프랜차이즈 그룹을 일굼으로써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윤 회장은 BBQ를 국내 최대 닭고기 프랜차이즈로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특유의 기업가 정신으로 극복한다. 프랜차이즈는 선진국 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당시에 우리 고유의 프랜차이즈를 일으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낸 것이다. 특히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과감하게 성장전략을 택하고, 홍수로 인해 닭고기 공급이 끊겼을 때 목숨을 걸고 닭고기 공급을 정상화 시키고, AI(조류독감)가 전 세계로 창궐하여 모든 사람들이 닭고기를 기피할 때 닭고기의 안정성을 알리기 위해 정부, 언론, 국민을 상대로 백방으로 뛰어다닌 일들은 그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윤 회장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서비스 산업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치킨이라면 백숙과 삼계탕을 연상하던 시절 BBQ라는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자영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협회를 조직하여 회원사들에게 경영기법을 교육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등 산업계 리더로서 큰 몫을 하였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시도함으로써 글로벌 경영의 모범 사례도 보여 주었다. 2003년 중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스페인, 미국,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써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도약할 꿈을 꾸고 있다.
▣ 차례
제1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 BBQ
닭고기, 너는 내 운명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가장 좋은 닭을 써라
고객의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기름을 써라
올리브 명품 치킨의 탄생
시스템으로 맛을 지켜라, 슈퍼바이저의 힘
제2부 BBQ,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날다
해외시장에 본격 진출한 한국의 토종 브랜드, BBQ
맥도날드 VS BBQ
중국 대륙을 정복하라
중국 시장 평정 전략
유럽 대륙의 전진 기지, 스페인을 개척하다
제3부 역발상의 경영 철학: 위기는 기회다
첫 번째 위기, IMF 외환위기를 고도성장의 기회로!
두 번째 위기, 닭을 삼킨 호수
세 번째 위기, 새들의 감기
네 번째 위기, 프랜차이즈 산업의 이미지를 바꾸다
제4부 아름다운 도전, 제너시스 그룹의 탄생
어렵게 지나온 청춘의 터널
리더십과 인적 네트워크의 소중함을 배우다
치킨집과의 운명적 만남
창업의 결단
BBQ와 제너시스 그룹의 탄생
신화의 개막
제5부 나의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 전략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10가지 계명
제6부 나의 경영론,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론
기업을 살리는 인재에게 투자하라
네 가지 리더십 위에 기업의 미래를 세워라
외식 산업의 주인이 되려면 먼저 맛의 전문가가 돼라
프랜차이즈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
BBQ 원칙의 승리
윤홍근 지음
중앙 M&B / 2006년 12월 / 248쪽 / 12,000원
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 BBQ
200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길이었다. 현지 교포가 닭고기 요리를 잘하는 레스토랑이 있다면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였다. “닭가슴살 요리가 예술입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예술이라는 소리를 듣는 걸까? 나는 예정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그 레스토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겉보기엔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손님들이 모두 닭고기를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교포가 추천한 닭가슴살 요리를 주문했다. 맛이 예술이라는 명성을 듣는 요리를 먹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맛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혀와 머리에 새겨 넣어야 한다. 천천히 씹고 또 씹고 맛과 향을 혀에 기억하고 머리에 저장했다. “향기가 독특합니다.”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목으로 넘어갈 때 전혀 퍽퍽하지 않습니다.” 홍보실장이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조목조목 노트에 적었다. 우리는 각자 독일식 닭가슴살 요리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예술적인 맛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치킨대학 중앙연구소 박종수 소장을 불렀다. “내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세요. 거기에 예술적인 맛을 가진 닭가슴살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그 맛의 비법을 꼭 알아오세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 BBQ. 이것은 BBQ의 맛에 대한 도전적 선언이자 자신감이다. BBQ라는 상표 앞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란 말을 붙인 이상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 공급할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그저 그런 치킨을 내놓는 것은 고객에 대한 범죄인 것이다. 나는 창사 이래 그 약속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생닭까지 먹어 보았다. 왜? 신선한 닭의 느낌을 알기 위해서. 우리 치킨대학 중앙연구소 부소장도 수백 번 생닭 맛을 보았다.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그만큼 치열하다. 하나의 메뉴를 만들기 위해 6개월 동안 2천 마리 이상의 닭을 실험대상으로 조리하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20~30회의 테스트를 거친다. 모든 고객의 0.1%를 만족시켜 “정말 맛있어요!”라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5~6억 원을 기꺼이 지출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OK할 때까지 완벽한 맛을 찾는 것은 우리의 행복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닭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산 닭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치킨 업체들이 수입 닭고기에 의존한다. 수입 닭고기는 조각 낸 상태로 들여오는 냉동 닭이다. 냉동 닭은 맛이 30% 떨어지는 만큼 가격도 30% 떨어진다. 그러나 BBQ가 선택하는 닭은 100% 국산 닭이다. 신선도와 맛에 있어서 수입 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맛과 신선도는 연구원들이 생닭까지 먹어 보면서 실험할 정도로 탁월하다. BBQ의 맛은 원재료의 선택부터 완전히 다른 데서 출발하는 셈이다. 또한 BBQ는 닭을 한 마리씩 개별 포장해서 매일 냉장 상태로 배송한다. 이른바 콜드 체인 시스템(Cold chain system)이다. 다른 업체처럼 닭을 수십 마리씩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나르면 편리하고 비용도 절감된다. 그런데도 한 마리씩 개별 포장하고 냉장 상태를 고집하는 이유는 딱 하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지역 본부장들은 이렇게 하면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맛에 관한 한 절대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도 원칙대로 하십시오.” 이 같은 물류 시스템 비용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은 가맹점이 200개가 넘어선 후였다.
내가 올리브유에 주목하게 된 것은 BBQ의 스페인 진출이 추진되던 2002년 11월쯤이었다. 올리브유가 유럽인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깜짝 놀란 나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중앙연구소 소장을 불렀다. “튀김 기름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당장 프라잉 오일을 올리브유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세요.” 내 말을 들은 소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식물성 기름보다 7배 이상 비싼 최상품 올리브유를 튀김 기름으로 사용하겠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명품 치킨을 만드는 일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치킨은 180도 이상에서 튀겨야 하는데 올리브유는 160도만 되면 바로 타버리는 것이다. 몇 달에 걸친 실험 끝에 특수 장치를 개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올리브유 사용 가능성이 확인되자 2004년 2월 스페인 현지로 연구진이 날아갔다. 스페인산 올리브유로 치킨을 만들어 현지 고객의 반응을 테스트하기로 한 것이다. “와우, KFC보다 훨씬 맛있어요.” 테스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다음 문제는 어떤 올리브유를 사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최상급 엑스트라 버진을 주장했다. “안됩니다. 회장님 한 해에 추가부담 6백억 원이 발생합니다. 소비자들은 이 가격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엑스트라 버진으로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강적이 등장했다. 소비자 테스트에서 맛이 없다는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비상이 걸린 개발팀은 20여 가지 성분을 혼합해서 천연양념과 파우더를 개발한 끝에 이전보다 더 고소한 맛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눈을 가리고 하는 관능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고객이 올리브유로 튀긴 치킨에 손을 들었다. 3년에 걸쳐 20억 원의 개발비와 2만 명의 고객을 상대로 테스트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 BBQ 세계 최대 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날다
2006년 5월 BBQ는 일본과의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였다. 마스터 프랜차이즈란 맥도날드나 KFC 등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해외 진출할 때 채택하는 방식이다. 본사는 제휴 대상자에게 브랜드 사업권과 사업 노하우를 제공하고 실제 투자와 운영은 제휴 대상자가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일본과의 계약조건은 이니셜 피(Fee) 1백만 달러 외에 BBQ 매장이 들어설 때마다 점포당 5천 달러를 받고 총 매출의 3.5%를 러닝 로열티로 받는 내용이다. 이 계약의 의미는 각별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외식산업의 최대 격전지인 일본에서 BBQ 치킨이란 브랜드로 외화를 벌어들이게 된 것이다. 2020년까지 전 세계 5만 개 가맹점을 개설해서 세계 최대, 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이 되겠다는 나의 꿈은 이렇게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계약식에서 일본의 투자 파트너(렉스)는 이렇게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브랜드를 떠나 그 맛에 놀라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또한 BBQ의 탁월한 기업가 정신과 고객제일주의 정신, 그리고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프랜차이즈 기본 정신이 워낙 철저해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렉스사는 2006년 말까지 도쿄 시내에 10개의 가맹점 개설에 나서고 2020년까지 가맹점 4천 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국민 3만 명당 한 개 꼴로 지금의 맥도날드 점포수와 비슷하다.
일본과의 계약 이후 2006년 6월 미국 기업과의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과의 계약조건은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의 기본조건을 토대로 점포 한 개 개설할 때마다 5천 달러, 러닝 로열티 3.5%의 조건이었다. 미국 파트너가 구상한 집중 공략 대상은 대학이었다. 대학이 틈새시장으로 분석된 이유는 저녁에 기숙사에 있으면서 피자 외에는 마땅한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BBQ 치킨을 판매하면 폭발적인 호응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그들의 입맛을 길들이면 사회에 나가서도 여전히 BBQ의 팬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또한 미국의 대학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유학을 와서 공부하는 곳이다. 따라서 BBQ의 맛을 기억하는 이들은 전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가 있을 가맹점을 찾게 될 잠재고객인 셈이다. BBQ 치킨 맛을 세계로 확산하는 데 미국의 대학은 최고의 전략 요충지가 될 것이다.
나는 미국과 일본 진출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무형의 지식상품 수출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한다. 음식문화의 연합체이자 무형의 지식산업인 외식 프랜차이즈 산업은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덩치 큰 기존 프랜차이즈 기업들과 달리 몸집을 가볍게 해서 고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는 징기스칸식 경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맥도날드나 KFC처럼 200~300평 규모로 시작한다면 개설이나 운영이 어려울 뿐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철수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BBQ는 20~30평 정도의 매장이면 어디든지 낼 수 있다. 그야말로 나비처럼 가뿐하게 날아서 벌처럼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토종 브랜드 BBQ는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인 맥도널드를 꺾고 세계 프랜차이즈 1위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 가능한 이유는 BBQ의 맛과 자신감에 있다. 맥도날드는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BBQ는 재료나 배송 등 모든 것에서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우리가 세운 원칙과 첫 마음을 지켜 나간다면 세계 고객들은 이를 알아볼 것이다.
내 비전과 목표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인 맥도날드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전략도 맥도날드의 완벽한 벤치마킹에 두었고, BBQ 치킨대학도 맥도날드의 햄버거 대학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이제는 모방단계를 넘어 프랜차이즈의 신화적 존재인 맥도날드의 기록을 하나씩 깨뜨리고 있다. 200개의 가맹점을 내는 데 걸린 시간? 맥도날드 5년, BBQ 1년. 가맹점 1천개 돌파 시간? 맥도날드 14년 BBQ 4년. 세계시장에 진출하기까지 걸린 시간? 맥도날드 15년, BBQ 7년. 맥도날드는 창업 22년 만에 햄버거 대학을 세웠지만 BBQ는 창업 5년 만에 치킨대학을 설립했다. BBQ는 매 순간 맥도날드를 철저히 분석하고 벤치마킹 하면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진리를 잊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최근접 국가이며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패권을 다투는 21세기 기회의 땅이다. 게다가 중국은 맛의 천국이다. 중국인의 입맛을 잡는 것은 곧 세계인의 입맛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BBQ가 해외진출의 첫 번째 국가로 중국을 택한 이유이다. 2001년 중국 내 KFC 합작회사인 화도그룹과 계약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면서 중국진출이 순조로워 보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BBQ의 절대 우위를 알고 있는 미국 KFC 본사가 압력을 가해 오면서 화도그룹과의 계약은 백지로 돌아갔다. 좌절을 겪은 우리는 중국의 가장 큰 민영기업인 둥팡시왕 그룹을 접촉했다. 중국으로 날아가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나서 한 달 뒤에 둥팡시왕 그룹의 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BBQ 가맹점을 직접 방문하여 조리과정을 살피고 제품을 일일이 맛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치킨은 처음 먹어 봅니다. 적은 투자비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생계형 투자라는 것이 서민을 위하는 우리의 기업정신과 잘 맞는군요.”
류 회장의 한국 방문 두 달 후, 한국의 제너시스와 중국의 둥팡시왕 그룹이 각각 250만 달러를 투자하여 상하이에 합작회사를 설립하였다. 중국 내 BBQ 브랜드는 비비커로 결정되었다. 드디어 중국 대륙을 날기 위한 BBQ의 날개짓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언론은 “류융싱 맥도날드에 도전한다”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합작회사 설립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합작회사 설립의 진정한 의미는 한국 프랜차이즈 기업이 최초로 중국에서 로열티를 받아 가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는데 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당당히 선언했다. “10년 내에 중국 전역에 1만 개의 매장을 개설하겠다. 미국 KFC가 주도하는 중국의 닭고기 패스트푸드 시장에 BBQ는 커다란 충격을 줄 것이다.”
스페인과 BBQ의 인연은 특별하게 시작되었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나는 스페인에서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발신인은 스페인 현지 한국인 사업가 문재근. 봉투 안에는 BBQ 스페인 사업계획서라는 제목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그의 사업계획은 설득력이 있었다. 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 사용 인구는 3억 명에 달한다. 또한 관광대국 스페인에는 유럽인을 중심으로 매년 6천만 명이 다녀간다. 따라서 스페인에서 성공하면 유럽과 남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우리는 꼼꼼한 시장조사를 거쳐 2004년 6월 마침내 자본금 200만 유로 규모의 BBQ 현지 법인을 스페인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현지인 5천 명을 대상으로 테스트 마케팅을 전개했다. 스페인 사람의 입맛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2005년 6월 7일 마침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번화가와 주택가에 BBQ 직영점 두 곳을 동시에 열었다. 매장에 들른 현지인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최고의 맛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3. 역발상의 경영철학: 위기는 기회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 세계 시장 진출을 시작한 나 역시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창립 11주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잊지 못할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 위기를 발판으로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위기 때마다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은 거꾸로 생각하기, 즉 역발상의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7년 중반 IMF 경제위기라는 초대형 경제 태풍이 전국을 초토화시켰다.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사료 값이 치솟았고 닭고기 값과 튀김기름 값이 오르면서 치킨 업계는 엄청난 원가 부담을 받고 있었다. 비용 부담이 커지고 매출이 떨어지자 가맹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위기돌파를 위해 환율 인상에 따른 원가 인상분 30%를 3자(BBQ 본사, 가맹점, 치킨 공급 업체)가 10%씩 분담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고통을 나눈 결과 우리는 반 년 이상 가격 인상 없이 버티어 나갈 수 있었다. 또 매달 매출 부진 점포를 10개 점 씩 선정해 100만 원씩 지원해 주었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경영이념을 입증한 것이다. 가맹점과의 관계가 해결된 후 나는 TV 광고를 계획했다. 다른 기업들은 IMF라고 광고를 줄이는 판인데 TV 광고를 하겠다고 하자 임원들이 하나 같이 반대의견을 내 놓았다. 하지만 내 의견은 달랐다. “비용 대비 효과를 보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TV 광고를 통한 공격 전략은 성공이었다. 경쟁 업체들을 따돌리고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것이다. IMF 외환위기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실직자와 퇴직자들이 BBQ 사업을 높이 평가하고 선택한 결과 가맹점이 대폭 늘었고, 이에 따라 본사의 매출과 수익도 더불어 올라갔다. 그리고 본사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강화하고 TV 광고를 더욱 늘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위기는 1998년 일요일에 발생했다. 태풍이 몰려와서 BBQ에 닭을 공급하는 동두천 마니커 도계장을 덮친 것이었다. 피해가 심각해서 닭고기 생산은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보고가 들어왔다. 한 달간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야 할 전국의 가맹점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침수로 인해 도로가 통제된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하니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니커 직원들은 모두 철수하고 우리 BBQ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보관 중이던 가공 닭 수만 마리가 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밤새 복구 작업을 하고 나서 우리는 모두 상한 닭고기를 폐기 처분하는 일에 매달렸다. 5일 동안 상한 닭 냄새를 맡으면서 악취와 더위 속에 일하느라고 질식할 것 같았지만 머릿속에 하루라도 빨리 닭고기 공급을 재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진정한 친구는 고난이 닥쳤을 때 드러난다. 이 시련을 통해 BBQ는 고객에게 사랑받는 회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닭고기 공급이 중단된 5일 동안 고객들은 항의나 불평 없이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닭고기 공급이 재개되자 폭발적으로 주문이 들어왔다. 닭고기 공급이 불가능하자 복구작업을 하면서 곧바로 가맹점에 양해 편지를 쓴 것이 주효한 것이다. 위기를 통해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는 신뢰와 결속의 동반자 관계로 굳건해졌다. 마니커와의 협력 관계도 공고해졌다. 자기 회사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서 더위와 악취와 싸워준 BBQ 직원들을 보면서 마니커는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98년 태풍은 BBQ에 50억 원의 손실을 남기고 소멸했지만 우리는 위기 속에서 진정한 친구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조류독감 국내 첫 발생. 2003년 12월 국내 신문이 일제히 이 아홉 글자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조류 독감 기사가 대서특필 되면서 국민들의 머리에는 “조류독감=닭고기=먹으면 죽는다”는 이상한 공식이 각인되고 닭고기 관련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특히 치킨 외식 산업의 매출 감소는 심각했다. 매출이 줄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공포가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BBQ 가족 4만 명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나앉는 것은 아닌가. 정말 방법은 없는 것인가.”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로 BBQ뿐 아니라 우리나라 닭고기 산업 전체가 죽어 가는 것만을 가만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질의서를 보내, 조류 독감의 인체 감염에 대해 해석을 요청했다. “익힌 닭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답변이 나왔다. 이 내용을 근거로 국민 캠페인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경쟁 관계에 있던 업체들을 설득하여 31개사 1만 3천 가맹점으로 구성된 ‘한국치킨외식산업협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언론과 정부의 협조가 필요했다. 2004년 1월 우리는 농림부 장관과 함께 언론사를 차례로 방문했다. 그리고 닭고기를 먹는다고 조류 독감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닭고기의 안정성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국산 닭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리면 20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홍보하였다. 캠페인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조류독감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수요가 되살아났다. 2005년 11월 조류독감이 다시 발생하자 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언론사, 농림부, 정당, 대학 등을 찾아다니면서 조류독감을 ‘AI’로 불러 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반발했지만 나는 매일 언론사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양계농가, 도계 업체, 치킨 외식업체의 어려운 상태를 전하고 명칭을 바꿔 줄 것을 간곡하게 설득했다. 그 결과 2005년 11월 1일 중앙일보와 한국일보가 앞으로는 조류독감을 AI로 바꾸어 표기한다고 밝히면서 특집 기사를 게재하였다. 두 언론사를 필두로 다른 일간지와 방송사들도 잇달아 표기를 바꾼 보도를 시작했다. 오해를 벗었다는 안도감, 뭔가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 그리고 닭고기 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4. 아름다운 도전, 제너시스 그룹의 탄생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은 전남 순천시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 나는 부유한 지주 집안의 종손으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진학 무렵에 해운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사업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나면서 땅을 모두 날리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나는 집안 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려 하였으나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조선대학교 무역학과에 진학하였고, 불철주야 공부에 매달린 끝에 전체 수석 졸업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대학을 마친 나는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초임장교 훈련을 마치고 배치된 곳은 최전방 오지인 강원도 원통이었다. 이 지역에 30명의 학사장교가 배치되었는데 선배가 없었던 우리는 완전히 찬밥 대우를 받았다. 사병들과 함께 보충대에 수용되었으며 야간 당직은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군기만 잡고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사병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육사, ROTC, 3사 출신의 신참 장교들과 대접이 너무 다른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우리는 동기들 끼리 돈을 모아 술과 음식을 사오게 한 후 성대하게 자축연을 벌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당직 사령이 달려와 술판을 걷어차면서 욕을 퍼부었다. “어떤 놈이 술 사왔어? 전원 군법 회의에 회부할 테니까 다들 각오해!” 나는 주동자임을 자처하며 앞에 나섰다. “신입 장교들이 배치되면 선배들이 어떻게 해 주는지 들었습니다. 저희들에게 선배가 없다고 이렇게 박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식 사건은 다른 장교들이 학사장교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학사장교동기회장을 맡게 되었다.
전방 부대에서 돈 쓸 일이 없었던 동기들은 한 달에 한 번 돈을 모아 나에게 주었다. 전국 동기들의 회식비용뿐만 아니라 학사장교 전체를 위해서 알아서 써 달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나를 신뢰했다. 이렇게 군대 시절을 보내면서 조직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배웠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나의 학사장교 1기와 동기애라는 네트워크는 내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과 에너지가 되었다.
첫 직장생활은 미원(현재 대상그룹)에서 시작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다짐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자”였다. 단순하게 시작한 결심이었지만 이 결심은 인생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능력을 인정받은 나는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6년 만에 과장이 되었고 과장 승진 후 첫 보직은 이천 사료 공장 총무과장이었다. 당시 공장 총무과장 자리는 막강한 자리였다. 생산과 영업 부서를 쥐고 흔들었고 예산 배정도 마음대로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기존 체제를 완전히 뒤집었다. 예산 사용권한을 각 부서로 넘기고 대신 생산과 영업을 직접 챙긴 것이다. 처음에는 물정 모르는 총무과장이 설쳐 댄다고 냉소적이던 간부들의 태도가 바뀌면서 공장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돌아가자 생산성은 2배가 되었고 이천 공장은 사내 4개 공장 가운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94년 1월 인사부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장 승진 축하드립니다. 마니커 영업부장으로 가게 되셨습니다.”
마니커는 원래 닭고기 가공과 유통업을 하던 미원의 거래 업체였는데 1993년 부도가 나자 미원이 인수한 후 경영진을 새로 짜고 있던 참이었다. 94년 1월 7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마니커로 출근해 보니 그야말로 회사 꼴은 한심했다. 영업직원은 고작 2명 남아 있었고 제대로 된 업무 현황 서류도 찾을 수 없었다. 판매량은 1/5로 줄었고 대리점은 모두 떨어져 나가서 10개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업조직을 재정비한 나는 이탈한 대리점들을 밤낮으로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매출을 늘리려면 대리점을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매출이 계속 올라가면서 그해 연말에는 닭고기 12만 마리 판매라는 기록을 세우고 회사를 성공적으로 회생시킬 수 있었다.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마니커의 닭고기 판매량은 12만 마리를 고비로 주춤거렸다. 나는 판매량을 늘리려면 닭고기 소비량의 65~70%를 차지하는 치킨 전문점 사업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업무보고 때 이것을 제안했다.
제안은 반대에 부딪혔다. 치킨점은 포화 상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은 기존의 치킨점과 전혀 다른 시장이었다. “닭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계층은 주부와 어린아이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치킨집은 모두 술집이라 이들이 이용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두 번째 장애물은 미원 본사의 차가운 반응이었다. 대기업이 소형 치킨점을 할 경우 그룹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논리였다. 나는 네 차례나 최고 경영진을 만나 설득했다. “맡겨 주십시오. 회사 돈 하나도 안 들이면서 사업을 반석에 올려놓겠습니다.”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미원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됩니다.” 이러한 산고를 거쳐 1995년 4월 마니커즈 광명점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매장의 운영은 성공적이었으나 본사의 반응은 떨떠름했고 2개월 후 본사 경영진은 미원이나 마니커라는 이름을 쓰는 사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업을 포기하기에는 내 판단에 대한 믿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회사를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1995년 7월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내 인생을 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BBQ를 시작하면서 나는 미원과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첫째 BBQ 상표권은 미원 소유로 하되 영구적 사용권은 새로운 프랜차이즈 법인이 갖는다. 둘째 새 법인은 모든 리스크를 윤홍근이 진다. 셋째 새 법인은 마니커의 판매 자회사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대신 마니커의 닭고기만 써야 한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니 가장 큰 고민은 창업 자금 조달이었다. 전 재산을 털어 1억 원을 마련하고 가까운 선후배, 친구들에게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내 이름 석 자만 믿고 지인들은 2천~5천만 원씩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여 주신 기적이었다. 회사 이름은 교회 목사님이 제네시스(성경의 창세기라는 뜻)라고 지어 주셨다. 사업의 시작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그토록 원하는 CEO가 되어서 내 뜻대로 사업을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바람 나는 일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초기에 가맹점이 빠르게 확산된 데에는 직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무리를 해 가며 전단을 돌리다 길바닥에 쓰려져 병원신세를 진 직원, 우편함에 전단을 넣다가 개한테 물리는 바람에 앰뷸런스에 실려간 직원, 24시간 운전과 제품 조리에 매달리는 바람에 손바닥에 물집이 생긴 직원, 사업초기라 경비를 아낀다며 몇 개월씩 지방 가맹점을 돌면서 여인숙에서 자고 라면만 먹은 직원도 있었다.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1996년 6월 서울 길동점을 100호점으로 개점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을 수 있었다. 창업 6개월 만의 쾌거이자 한국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단시간에 가맹점 100호점을 오픈한 아직도 깨지지 않는 신화이다.
5. 나의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 전략(10계명)
계명 1. 기업의 혼까지 이식하라. 프랜차이즈 사업은 그 중심에 ‘공동’이라는 확실한 특징이 내재되어 있다. “이 사업으로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생각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BBQ의 제 1경영 이념은 바로 이 제1계명과 직결된다. 가맹점에서 이익이 나야 본사가 살 수 있다는 말은 평범한 말이지만 진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기 혼자만 잘사는 사업이 아닌 함께 잘사는 사업 그것이 바로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계명 2. 프랜차이즈 사업은 사업 성공 모델의 확대 재생산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외형적인 스타일이나 모양은 복사할 수 있지만 그 사업 모델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사업 정신을 복제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BBQ가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선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BBQ의 이름이 걸린 모든 곳에서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 “소비자가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경영이념을 그대로 복제해 낸 데서 찾을 수 있다.
계명 3. 교육하지 않은 프랜차이즈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사업을 전혀 모르고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유능한 외식사업 전문가로 만들어 내야 프랜차이즈는 성공한다. 해답은 교육뿐이다. BBQ의 교육 인프라는 대기업 연수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시설과 규모를 갖추고 있는 치킨 대학이다. 치킨 대학은 브랜드 가맹 점주를 대상으로 기초 및 보수 교육과 내부 직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외식 산업과 관련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는 연구 센터이기도 하다. 마케팅과 서비스, 조리에 대한 이론과 실무로 무장한 가맹점 사장들이 부실한 교육을 받은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백전백승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명 4. 뿌리까지 경영 마인드를 함께 공유하라. 본사에서 기초 교육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가맹점 사장이라도 막상 점포에 가면 맥이 풀리게 마련이다. 좁은 점포 안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 본사는 가맹점 사장들이 힘들어하는 그런 부분을 채워 주기 위해 슈퍼바이저를 파견한다. 슈퍼바이저는 가맹점 사장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사업을 하도록 격려하고 본사의 입장과 경영방침이 가맹점에서 고스란히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가교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계명 5. 가맹점 사장과 눈높이를 맞춰라. 가맹점 사장의 공통점은 이 사업이 생계형 사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사는 그들의 절박함과 기대를 이해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는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BBQ 치킨을 먹는 사람이나 가맹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모두 평범한 서민들이다. 우리의 안테나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어야 한다.
계명 6. 가맹점의 친구가 되어라. 가맹점은 기본적으로 본사가 가맹점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가맹점이 된 이유는 사장 혼자서는 사업을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본사에서 사업 방법을 배워 그 전략대로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즉 통제를 받기 위해서 가맹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맹점 사장들에게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본사는 절대로 가맹점위에 군림하면 안 된다. 본사와 가맹점은 공동 운명체이고 사업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계명 7. 가맹점 사장들과 대화 채널을 가동하라. 가맹점과 본사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프랜차이즈 사업의 원활한 혈액순환과 같다. BBQ는 본사가 나서서 가맹점 사장들이 공식적으로 모여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가맹점 운영위원회, 가맹점 참여제도를 만들고 정책 결정권까지 부여하고 있다. 경영정보를 완벽하게 공개하고 결정권을 가맹점 사장들과 공유하면서 이들은 본사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주요 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만족을 느끼고 있다.
계명 8. 원칙을 포기하지 말고 사수하라. 가맹점에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원칙이 있다. 예를 들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것은 철저한 원칙으로 지켜져야 한다. BBQ가 올리브유를 사용한다는 것은 고객들에게 최고의 건강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자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윤을 늘리자고 품질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외식산업의 기본은 맛, 청결, 위생, 서비스이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는 게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계명 9.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정진하게 하라. 프랜차이즈는 사업가가 아닌 사람을 성공하는 사업가로 만들어 내는 특징을 가진 사업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BBQ는 가맹점 사장들이 본사의 경영이념으로 무장해 성공하는 사업가가 되도록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계명 10. 가맹점 수익 확대에 집중하라.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패는 가맹점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가맹점 수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맹점의 수익이다. 가맹점 사장이 이 사업을 해보니까 정말 괜찮아서 주위의 친구나 다른 가족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가맹점 확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맹점 수익을 좀 더 늘리고 가맹점을 적극 지원하고 본사가 가맹점을 위해 더 투자하라고 직원들을 들볶는다. 가맹점 사장의 만족여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6. 나의 경영론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론
2004년 12월 어느 날 대학 2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젊은이의 이메일을 받았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설명할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나는 이 당돌한 청년과 마주 앉았다. 그는 자신이 구상한 사업 아이템인 패션 김밥 전문점을 차분하게 설명해 나갔다. 제안은 거친 내용이었지만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높이 살 만 했다. 순간 12년 전의 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BBQ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치킨 시장이 포화 상태라고 모두 말렸던 것이다. 그의 적극적인 자세가 마음에 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새해부터 우리 회사에 들어와 사업구상을 펼쳐보게.” 입사한 그는 6개월의 사내 교육을 마친 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하여 임원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BBQ로 시작된 제네시스 그룹의 여덟 번째 브랜드가 얼굴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를 구슬김밥 사업 담당 팀장으로 임명했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앞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면 학력, 출신, 경력과 무관하게 발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뛰어난 창의력, 과감한 업무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 건강한 도전 정신, 유연한 사고로 무장된 인재라면 회사의 인재 시스템에 얽매이지 말고 적극 기용해야 한다. 나는 知, 行, 用, 訓, 評의 다섯 한자어로 직원들의 자질을 강조한다. 지는 사업전반을 완벽하게 알아야 하며, 행은 알고 있는 바를 실천해야 하며, 용은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하며, 훈은 아랫사람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하며, 평은 일의 결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네 가지 리더십 위에 회사의 미래를 세우려고 한다. 첫째는 비전의 리더십이다. 내가 제시한 비전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드는 국내 최고 프랜차이즈 기업”이었다. 이 목표 아래 BBQ 는 강력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오늘날의 성공을 일구어 냈다. 그 후 해외진출을 준비하면서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 세계 1위 기업”이라는 새 비전을 발표하였으며, 어떠한 외부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천 년 기업 제너시스”라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둘째는 정의 리더십이다. BBQ가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회사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해 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동종 업계 최고의 임금을 지급하고 내가 소유한 회사 주식 20%를 사원들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 이 밖에도 나는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한 직원은 어떤 경우라도 회사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셋째 기회의 리더십이다. 내 경우 창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찾아왔지만 나는 일찍이 치킨 전문점 사업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시장에 대한 전망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말하자면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전 정신이 충만한 기업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며 이것은 내가 가장 바라는 우리 회사의 문화이다. 직원들이 제안을 내놓을 경우 나는 한 가지 문제만 판단한다.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회사 전체를 위태롭게 할 리스크는 없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는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마지막으로 열정의 리더십이다. 우리 회사는 불이 꺼지지 않는 기업으로 불린다. 가맹점의 영업방식 탓도 있지만 하루 종일 일하는 내 스타일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나는 BBQ 1000호점이 개점할 때까지 전 점포의 개점식에 모두 참석했다. 매일 최소한 닭 한 마리 이상을 먹는다는 원칙도 12년 이상 지키고 있다. AI 파동을 진화하기 위해 정부관리,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를 만나는 강행군을 두 달 이상 지속한 적도 있다. 리더의 열정은 조직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열정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동력 아닌가.
창업의 성공 비결은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일에 대한 열정에 있다. 말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뀐다. 그 습관이 결국 인생을 바꾼다.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열정을 바친다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처음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희망과 함께 실패의 두려움이 존재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권한다. 첫째 본사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파워, 시스템, 성공 노하우를 활용함으로써 판매에만 전념할 수 있다. 둘째 경험이 없더라도 본사의 교육으로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다. 셋째 본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여 효과적인 판촉이 가능하다. 넷째 소자본을 가지고 안정적인 창업이 가능하다. 다섯째 이미지가 좋은 본사를 선택하면 안정적인 상태에서 장기 영업이 가능하다. 여섯째 상품, 원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
첫댓글 19회 선배라네 ^^ 참고들 하소 ^^ 우리도 본받고 열심히 성공을 위해 살아보세 ^^
상태친구 너무마니 알아서 그것도탈 아닌감 BBQ회장님 우리학교 선배인줄 새삼스럼네, 요즘 좀 그렀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