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CM의 역사-3
이정림
이정림은 복음성가만 16년째 부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CCM가수이다. 지난해 발표한 라이브1집의 히트로 최근에는 한달에 20여 차례이상 찬양집회에 초청받는 교계의 인기인으로
자리잡았으며 95년부터 시작한 일본사역을 통해 다종교국가인 일본에 예수사랑의 숨결을 불어넣는데 일조하고 있다.
* 서울 극동방송 제4회 복음성가 경연대회 입상 * "찬양하는 사람들"창단맴버 이며 리더 및 듀엣으로
* 수년간 활동 했으며 앨범은 3집까지 (찬양하는 사람들에서) * 복음성가 작곡자 (주님 사랑해요, 부셔져야하리, 우리우리
주님은, 늘 언제나 늘 가까이, 주님 아시지요 등 다수..) * 이정림의 " 라이브 앨범 " 1집: 내가 원하는 한가지
2집: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자 * 현) 서울 극동방송 " 이정림 & 이강혁 FM 가스펠 " 진행자 *** 표준 FM
(106.9 MHz)**** " 이정림 & 이강혁 FM 가스펠 " 월 ~ 금요일까지 밤10시~11시까지 * 현) 서울
충신교회 중.고등부 찬양지휘자 * 평생동안 주님만을 찬양할 " 찬양 사역자 "
김석균
1951년 5월 3일생(음) 서울 도림교회(유의웅목사) 협동전도사(음악담당) 전 서울 문일고등학교 교사 (2000년8월31일
명예퇴직) 한국 복음성가협회 초대회장 역임 복음성가 작곡가, 찬양사역자 서울극동방송 프레이즈 가든(월-수요일 밤10-11시
진행, FM방송) 기독교 TV<최미, 김석균의 내영혼의 찬양> 진행 국내외 찬양과 간증집회 수천회 인도<21년째
사역중> 찬양TAPE (복음성가 작곡집) 1집~12집 출반 찬양사역 20년 기념앨범(Collectio1,2)
출반(2000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99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Th.M 과정 졸업(2001년)
대표곡 : 사랑의 종소리, 주를 처음 만난날, 예수믿으세요, 돌아온 탕자,금 보다도 귀하다, 나의 참친구, 예수가 좋다오, 나는 행복해요,내가
너를 도우리라, 용서하소서, 쓴잔, 주님의 빛진자 등 다수
다윗과 요나단
1981년 황국명, 전태식 두 청년이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전문 풀타임 찬양사역팀을 결성하여 찬양사역의 모범이 되었다. 이후에 소리엘, 좋은씨앗,
알레듀오, 소망의 바다 등과 같은 듀오, 트리오 팀사역이 활성화 되었다. 이 들이
발표하는 곡들은 전국적인 빅히트를 치며, 모든 교회의 청년회, 학생회, 찬양행사
등에서 불려지게 되었다.
<곡들> 친구의 고백
,주님이여 이손을, 당신의 뜻이라면, 피난처, 주님의 사랑, 영원히
찬양하리, 요한의 아들 시몬아,
고백, 누구를 위함인가,
영광의 길 너 걷기전에,
예수를
따라, 빛으로 오신 예수여,
담대하라, 쓴잔,
깨끗이 씻겨야 하리,
들어라 주님의 음성, 내가 어둠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내게 오라, 주님 사랑 온 누리에, 주님의 시간에,
고개들어, 사랑의 손길,
예수 나의 주님, 주님을 사랑할수록
프로파일
'81년 찬양활동 시작 · '85년 극동방송 주최 제 4 회 전국복음성가 경연대회 PD특별상 수상 · '87년 1집 음반
출반「친구의 고백」,「요한의 아들 시몬아」... · '88년 2집 음반 출반「담대하라」,「내가 어둠속에서」... · '89년 3집
음반 출반「함께해요」,「영원한 사랑」... · '91년 BEST 음반 출반「나누어 주어요」,「주님을
느껴봐요」... 제 1 회 한국복음성가대상 중창부문 대상수상 (한국 복음성가협회 선정) 올해의 한국복음성가
중창부문 선정 (CBS 선정) · '92년 4집 음반 출반「울지말아라」,「사랑은 사랑의 응답」... · '94년 5집 음반
출반「주만 바라볼찌라」,「이사야 41:10」,「마음의 눈물」... · '96년 6집 음반 출반「주님의 손」,「푸른 감람나무」,「이런
믿음은 안돼」... · '97년 12월 한국 복음성가대상 작품대상수상 · '98년 7집 음반 출반「그런즉」,「오늘 이
하루도」,「사랑하는 자여」... <아래: 지금가지 음반들 1~9집>
황국명
목사
1963년 7월 7일 생 원천교회 음악목사 역임 크리스챤 시인협회 회원 (개인 시집 「울어야만 웃을 수 있다」 출간) 기독교
21세기 운동 복음성가 분과 위원장 극동방송, 아세아 방송 진행자 현재 도미 (워싱턴 거주) 공부중
전태식 전도사
1992년 도미 (시카고 거주) 신학 공부중 1998년 7집 앨범 발표와 함께 귀국, 활동 재개
- 우리나라 80년대 찬양단 -
찬미선교단(최용덕), 주찬양선교단(최덕신),
두란노 경배와 찬양(하스데반)
(1)찬미선교단
<개인적인 설명>
대구에서 활동하는 찬미찬양팀은 최용덕 간사의
작곡활동과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알려졌다.
이 팀은 아마 지역에서 찬양하는 팀 중 유일하게 전국에 알려진 팀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찬양팀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있고 이 친구의 친구가 지금 찬미를 맡고
있는 민호기형제이다. 나이가 공교롭게 1974년생 범띠 동갑이다. 인사만 나누었고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지금도 못내 아쉽다. 학창시절 내내 나는 찬미의 영향을 받았다.
찬미1000, 찬미 1500, 찬미2000, 그리고 월간지와 최용덕 간사님의 좋은 찬양곡들.
몇 연도부터 사역했는지는 친구에게 물어볼 것이다. 아마 1980년대 초반부터 했을
것이다.
최용덕 간사
현재, 폐교된 분교(교무실까지 교실이 8개)를 개조하여 <갈릴리 마을>이란 문패를 내걸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방문자들을 섬기고
있다. 대학 3학년 2학기 때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헌신하였고 졸업하면서 CCC 회관에서 바로 정기찬양집회를
가졌다. 그 때 회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을 시작하였다. 대구지역 선교단들을 모아서 연합으로 복음성가 대축제를 가졌고
그 때
모인 리더들이 주축이 되어서 종합선교 '찬미'를 만들게 되었다. 최첨단 컴퓨터 시대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악보를
그려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우선은 컴퓨터라는 문명화된 문화를 거부해야 하는 미련함이 있어야 하고,
1500곡이나 되는
악보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내야 하는 억척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억척스러움 뿐이겠는가? 자로잰 듯한 오선지, 그 위에 컴퓨터로
그린듯한 음표, 천편일률적으로 글씨를 옮겨적으려면 섬세하고 치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시간을 책상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끈질김과 인내력도 필요하다. 이 모든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최용덕이다.
이 한사람의 고집스러운 기질로
태어난 찬미예수시리즈 악보와 13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월 펴내는 쪽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 오랜세월(지금까지도) 많은 크리스천들의 삶에 잔잔한 파문과 도전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노래들 “나의
등뒤에서”는 한국교회의 히트곡으로 자리하였고, “가서 제자삼으라”는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에게 선교를 향한 소망을 품게 하였다. “낮엔
해처럼...”, “오 신실하신 주” 등 그가 만든 노래들은 김석균, 최덕신이 만든 노래들과 함께 한국교회에서 가장 널리 애창되고
있다. 크리스천들이라면 한 번쯤 만나고 싶어했을 사람 최용덕. 그를 20세기 한국가스펠을 이끈 사람들 네 번째 손님으로
초대하였다. 그는 현재, 폐교된 분교(교무실까지 교실이 8개)를 개조하여 <갈릴리 마을>이란 문패를 내걸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방문자들을 섬기고 있다. 문서사역과 악보사역을 여전히 진행하면서...
민호기
강도사
·1974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총신대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찬미선교단 협동간사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
사역 ·제1회 CCM대회 입상 아브라함 라보리엘 내한 공연 리드보컬 ·전, 낮은 울타리 실용음악원 보컬 강사
·갓피플 뮤직 아카데미 보컬 강의 ·총신대 영적 지도자 훈련 찬양 강의 ·대신대 신학과 겸임교수 ·CCM 싱어송 라이터
& 음반 Producer [소망의 바다] 맴버로 사역중 (vocal, composer)
(2)주찬양선교단(1981 최덕신)
1981년 5월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찬양사역을 소망하며 모여 그 해 7월 한국제자훈련원(사단법인 세선회)의 훈련에 참석, 대부분의 단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거듭남의 체험을 한 후 성경공부, 기도, 찬양연습을 정기적으로 해오던 중 찬양을 통해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소명이 점점
확고하게 되었다.1986년 첫 앨범 <그이름>(작사 : 송명희, 작곡 : 최덕신)을 발표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됨에 따라
1987년 1월 전임(full time)사역으로 전환하였으며, 1989년 1월부터 다시 조직을 새롭게 하여 단원을 공모하게
되었다.1989년부터는 해마다 주제를 정하여 그 주제에 의한 프로그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1990년 1월부터는 아시아, 미주,
유럽 등지로 사역의 영역을 해외로도 확장하고 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그 이름", "우리의
어두운 눈이", "동참" "열어주소서", "너는 내것이라"
"에수이름 높이세" "나를 받으옵소서"등의 찬양곡을 발표한
이 찬양단은 11집까지 음반을 발매했다. 최덕신, 최유신 형제가 같이 사역했으며
1집과 6집 음반은 장애자 시인 송명희의 시들을 가사로 사용했다. 최덕신,
송정미, 박종호 등의 아티스트들을 배출했다.
<아래 1집-11집 음반>
주찬양 선교단출신 아티스트
최덕신 간사
1980년대 한국의 CCM을 탄생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CCM역사에 한 획을 그은 최덕신 집사 소위 최덕신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새롭고 파워풀한 노래로 그 당시 외국곡들을 번역해 부르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로 된 CCM을 널리 전파하게 했다.
그는 형인 최유신과
같은 교회 선, 후배 10여 명으로 주찬양 선교단이라는 팀을 1981년 5월에 결성했고 그 후 뇌성마비자 송명희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되어
시중에서 '너의 쓴잔을'이라는 시에 크게 은혜를 받고 작곡을 하여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그 곡을 불렀는데, 때마침 송명희 시인이 그
방송을 청취하다 자신의 시가 곡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방송국으로 연락하여 최덕신 집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송명희 시인은 여태껏
자신이 쓴 시를 다 내어주며 거기에 곡을 작곡해도 좋다고 허락을 한다. 이것을 계기로 송명희 시인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여 주찬양
1집인 '그이름'이 1987년에 출반된다. 이 최초의 앨범이 30만장 판매의 대-히트를 기록, 한국 CCM계의 문을 크게 열었다.
이
계기로 초창기 한국의 CCM가수 송정미, 박종호 등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후 매년 88, 89, 90년 할렐루야, 오 기쁘도다,
중인들의 고백등의 새로운 앨범을 냈고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주찬양 11집까지 음반을 내며 한국, 미국, 유럽, 중국, 홍콩등 연평균 200회
콘서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지금 미국 뉴저지에 살면서 목적도 없이 이국 땅에서 방황하는 재미교포들을 위해 사역을 하고 있다. 송정미
교수
88년 뮤지컬 'Godspell'에서의 소냐의 역을 맡으면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발견, 무대에서의 경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CAM 주최 제1회 전국 대학생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참가, 노기돈의 '귀한 이름 예수'를 불러 금상을 수상하여 상금 전액을 SOUL을 통해
결핵환자를 돕게 되었다. 다음해 89년, 제8회 극동방송 주최 전국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이유정 작사 작곡의 '오직 주만이'를 불러 대상을 받게
된다. 대학 4학년 여름, 미국 덴버에서 열리던 C.A. Seminar (크리스천 아티스트 세미나)에 참가, 미국의 크리스천음악을 접한
후 커다란 문화적인 충격과 음악적인 수준차로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프리카에서 온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 'He's Got the Whole
World'를 듣고 한국에서의 음악사역자의 부름을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1990년 선교한국 대회에서 OM 선교회의 총재, 조지 바워의
설교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에 대한 음악선교의 비젼을 품게 된다.
이듬해 1991년
데뷔앨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를 발표하고 그 해 류관순 기념관에서의 2회 공연 '송정미 라이브 콘서트' 는 기념관 건립이래 그
당시 최고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다음해 92년 4월에는 KBS홀과 지방공연을 다니게 된다. 공연 후, 캐나다 토론토 YWAM의
제자훈련학교(DTS)에서 매일 시편을 묵상하며 '복있는 사람은'이라는 시편앨범을 준비하고 93년, 시편 '복있는 사람은'을 발표하면서 청년
선교에 헌신한 곽수광 목사와 결혼, 유학차 다시 캐나다로 떠나게 된다. 1994년 하와이 YWAM 의 제자훈련학교(DTS)를 마친후 찬송가 앨범
'이전보다 더욱'을 준비, 찬송가의 본고장, 부흥운동의 시발점인 미국에서 음악사역자로 존경받고 있는 마이클 카드 Michael Card의
프로듀서인 필 내쉬(Phil Naish)와 함께 만들게 된다. 믿음의 선배들이 불러온 어제의 노래들을 오늘의 음악 담아 95년 < 이전보다
더욱 - Hymns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국내에서의 수십 차례 컨서트와 북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등 해외공연을 통해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히 성숙해지고, KOSTA에서의 사역을 통해 예배사역의 흐름과 비젼 - 치유와 격려,회복시키는 사역 - 을 품게
되었다. 1998년부터 숭실대 음악원 교회음악과에서 음악사역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교회음악과 겸임 교수 직을 맡고
있으며 레슨과 학생상담 그리고 가스펠 음악계의 선배로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찬양사역자연합회 운영위원, 여성사역자 모임인 '아름다운
만남'의 리더로, CBS-FM 생방송 '송정미와 함께'를 진행하고 있다.
1991 잃어버린영혼을 향하여 1집 1993 송정미 Live Concert 1994 복있는 사람은(Psalm - 시편)
2집 1996 이전보다 더욱 (Hymns - 찬송가) 3집 1999 지금 여기에 (Here and Now) 4집 박종호
교수
춤추는 테너, 한국판 파타로티, 노래하는 거인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테너 박종호, 그는 전통적인 찬송가와 현대적인 음악 요소를 조화롭게
배합해 기성세대와 젊은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를 아우르는 음악을 추구해 왔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8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정규 앨범 10장과 8장의 라이브 앨범, 아카펠라 앨범, 오케스트라 앨범을 발표했다.
한국 CCM의
선두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호는 올해로 찬양사역 18년째에 접어드는 한국 가스펠계의 태두와 같은 존재이다. 조수미와 선화예고 서울대음대
동기동창으로 성악과 재학중 4년간 실기점수를 모두 A로 채웟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미성의 테너 박종호는 성악가의 꿈을 접고 성가를
부르는 찬양사역자로 인생의 길을 전환한다. 1989년 첫 앨범인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6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지난해
발표한 11집 바닥에 새긴 사랑까지 정규앨범 11장과 8장의 라이브, 아카펠라, 오케스트라 앨범이 통산 200만장이 넘는 한국 CCM 최고의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다. CCM 가수 최초로 올림픽 체조 경기장과 세종문화회관의 라이브 공연에서 전회 매진의 대기록과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주 순회공연을 마쳤으며 지난해는 지휘자 정명훈의 모교로 널리 알려진 미국 메네스 음대 대학원에서 Professional Study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는 온누리교회 음악성가사로,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중이다.
강명식 음악사
아직 독집 한 장 밖에 없는 신인 가수라지만 그를 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가 음악활동을 시작한지 10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이미 왕성한 활동을 통해 여느 기성가수 이상의 뛰어난 음악성을,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89년 주찬양 선교단의 싱어와 베이스 연주자로 찬양사역을 시작한 강명식은 이후 주찬양의 활동 중단 때까지 주찬양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디렉팅을 맡은 "청소년을 위한 찬양"을 표방한 주찬양 10,11집을 통해 컨템포러리한
그의 음악색깔을 유감없이 과시하였고, 1995년 이후로는 창문 2집, 시편23편 시리즈, 김명식 1,2집, 좋은씨앗 5집, 송정미 4집, 오형아
2집, 믿음의 사람들 등 수많은 CCM 앨범에서 작사, 작곡, 편곡, 코러스, 게스트 싱어 등으로 확실한 강명식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최고의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은 그였음에도, 정작 그의 첫 독집 "길(THE WAY)"이 나온 것은 데뷔 10년째인
1999년이었다. 말하자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처럼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단련받은 결과로 얻어진 정금같은 귀한 앨범이라는 소리이다. 강명식은 이 앨범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과
"참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길(THE WAY)"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만의 색깔로 맛깔스럽게 얘기해 주었고, 이 앨범은 음악으로나 메시지로나
1999년 한국 CCM 중의 으뜸이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명반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2월-1996년 4월 주찬양선교단에서 단원 및 단장(1994년 12월 ~1996년
1월) 1989년-1995년 주찬양 5,6,7,8,9,10,11집 음반에서 Singer, Guitar, 작편곡,
Producer 1993년 찬양하는 사람들 3집 - 하늘에 계신 아버지, 1995년 김명식 솔로 앨범 1집 - 영원한 사귐, 시편
23편 1집. 1996년 이무하 솔로앨범 2집 - 다시 동산으로, 오형아 2집 - Change My Heart O God
Christmasn Album - O Come All Ye Faithful 1997년 이은수 솔로앨범 2집 - 주께로 가까이, 좋은 씨앗
5집- 더 좋은 세상, 시편 23편 2집. 신형원 가스펠 앨범-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이, 창문 2집 1998년 김명식 2집-꿈, 보리떡
2 - 동행, Friends(박희봉, 유상열) - 연주 1999년 강명식 솔로 앨범 < The Way(길) > 출반 현재,
'칼라'소속 아티스트로서 음악사역자, 작/편곡자로 활동중. 예수촌 교회의 Music Director(음악사), 작,편곡가, 프로듀서,
가수
(3)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의 전신->두란노 경배와 찬양
경배와 찬양은 목요집회로 많은 젊은이들을 모았으며 대규모 야외집회를 가지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히 선포하고
젊은이들을 일어서게 하는 기회를 만들면서 한국의 경배와찬양의 큰 획을 그었다. 그전에도 경배와 찬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란노 경배와찬양은
앨범발표, 교회 내에서의 인정,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가동함으로 경배와찬양이 교회 부흥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기존교회의 교역자들에게 인식되어서
많은 교회에 찬양선교단이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편 146편과 67편,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통해 첫째, 경배와
찬양을 통한 에배의 회복, 둘째, 영적인 자유와 치유, 셋째, 전도와 세계 선교, 넷째, 구제와 긍휼의 4가지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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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식명칭)은 1987년 2월 12일 당시건축중인 서울 온누리교회의 가건물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유학중 "경배와 찬양"사역을 피부로 절감하고 온 하용인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자하는 소수의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첫 모임을
가졌다. 처음 20~30명으로 시작했던 목요모임은 3~4개월만에 100배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목요모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리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한 차레 찬양의 열풍을 경험하였다.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광주등 전국 주요도시마다 경배와 찬양 붐이 일어 나 교회마다악기를
구입하고 찬양단을 조직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로 인해 종로 낙원상가는 오랫동안 불황을 모르는 호황을 누기도 했다.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은 또한 88년부터 '경배와 찬양학교"를 열어서 매해 여름과 겨울에 많은 교회의 청년들을 훈련시켰다. 90년 이후에는 해외 상겨에까지 영역을
확장시켜 홍콩,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와 이슬람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이 한국교회에 던져준 것은
충격 이상의 것이었다. 모든 한국 교회는 두란노 경배와 찬양 오미과같은 찬양팀을 만들기를 소원했고ㅡ 교회 예배인도자들과 에배팀은 다투어 두란노
경배와 찬양을 모방하였다. 이들의 에배프로그램은 물론 이려니와 악기까지도 똑같은 것을 구비할 정도였다. 이들이 끼친 영향력만큼이나 기대도 컸다.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한 영향력이 있었던 모임이었기에 기대만큼 실망도 있었다. 개 교회에서 이루지는 경배와 찬양모임에 대해 좀더
책임감 있게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창작곡을 보급하고, 만들기를 바랬지만, "경배와 찬양을 통한 에배회복","경배와 찬양을 통한 영적 치유와
자유","전도와 세게선교","구제와 긍휼"이란 4가지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단체의 정체성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였던 것이라 경배와 찬양 사역에만
주력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R)이 글은 한국대표CCM(ccm.co.kr)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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