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시가
고대시가 혹은 고대가요는 우리 민족의 선조인 예맥(濊貊)이 한반도와 남만주 일대에 삶의 터전을 잡고 생활을 영위한 시기에서부터 향찰 표기의 향가가 발생하기 이전에 존재하던 시가입니다.
(메모 – 불 : 서양에서는 신의 영역으로부터 기원됨. 생식과 화식은 상반된 개념으로 문화적 차이를 보임. 그러나 동양이나 서양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좋으냐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음. 다만 그 나라의 고유성에 좌우될 뿐.)
이 시기는 정치 사회사적으로 부족국가 시대로부터 삼국 정립의 시기까지, 문학사적으로 원시종합예술체시대로부터 향찰 표기의 향가 발생 이전의 시기로 봅니다. 이 시기에 대한 사례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 은나라 정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나라 안에 큰 모임을 가지고 날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를 영고(迎鼓=잔치)라 이른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夫餘)
○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라 안에 모임을 가지니 이름하여 동맹(東盟)이라 한다. … 그 나라 동쪽에 큰 혈(穴)이 있는데 수혈(隨穴)이라 한다. 시월에 나라 안에 큰 모임을 가지고 수신(隨神)을 맞이하여 나라 동쪽 가에 돌아가 제사를 지내는데 신좌(神座)에 나무로 만든 수신을 모신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高句麗)
(메모 – 북방→하강신화→고조선, 남방→용출신화→제주도)
○ 항상 시월절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것을 무천(舞天=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이라 이른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濊)
○ 늘 5월이면 씨 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무리가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는데 밤낮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 명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밟고 뛰며 손발이 서로 응하니 그 절주(節奏)는 탁무(鐸舞)와 같음이 있다. 시월에 농사가 끝나면 또 한번 이와 같이 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
부족 국가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평소에도 가무를 좋아하고 부족적 제의의 뒤에 반드시 가무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가무는 가무악으로서 음악 ․ 시가 ․ 무용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원시 종합예술체이며, 악기의 반주가 따른 절주(리듬) 있는 춤을 추었음으로 보아 상당히 정제된 가무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가의 경우 노래가 교령(交靈)의 매체로 불리어지되, 한 갈래는 지고한 신격에 대한 찬송 ․ 기원적 노래요, 또 한 갈래는 주가적 노래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앞의 갈래는 신에 대한 경외(敬畏)를 갖고 칭찬과 환호, 그리고 칭명과 추수, 또는 감탄의 어법이나 청원, 탄원, 기구(祈求), 고백의 어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주가적 노래는 직설적 표현으로서 환기, 명령, 가정(假定), 서술의 어법을 갖춘 양식화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대의 주가적 노래로 <구지가>와 <해가>를 들 수 있습니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 신을 위협.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구지가> ― 4 ․ 4 – 4언구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해가>
(메모 – 시경→ 원래의 글, 시전(가르침)→주자가 해설)
(신라시대 향가)
유리왕대(24~56) : 會樂 辛熱樂 兜率歌(會蘇曲)
탈해왕대(57~79) : 突阿樂
파사왕대(80~111) : 枝兒樂
내해왕대(196~229) : 思內(詩惱)樂(勿稽子歌)
이 중 고대시가 가운데 중요한 노래인 <황조가> <도솔가> <구지가>를 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