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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19회 동기들의 즐거웠던 봄 야유회
정말로 이번에 갔다 온 봄 나들이는 참석자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즐거운 여행이었다.
4월 22일부터 1박2일 동안 다녀온 2011년 봄 나들이 스케치를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동기들을 위하여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기예보와 같이 주룩주룩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달 여 계속된 봄 가뭄을 단숨에 해갈시켜줄 수 있는 반가운 단비다. 기뻐할 농민을 생각하니 내가 농부가 된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우리가 겪을 조그만 불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버스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젊은 시절 연인들과 함께 떠나던 낭만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였다. 이는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모양이다. 버스 출발과 함께 여행 일정을 자세하게 소개한 형도 회장도 같은 심정임을 토로하였다.
버스에 올라타니 형도 마님께서 21명 전원에게 물병과 한 줄의 김밥을 손수 나누어 주었다. 나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하였기에 그냥 받아 두었지만 옆 좌석에 않은 택호와 명진이가 너무도 맛있게 먹기에 나도 김밥 한 조각을 먹어보았다. 그리고 금방 후회하였다. 왜 아침을 먹고 왔는지를 ! 이제까지 많은 김밥을 먹어보았지만 이렇게 맛있는 김밥은 처음이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내친 김에 김밥 반 줄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나중에 형도 마님에게 이렇게 맛 있는 김밥을 어떻게 장만하였는지 꼭 물어 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말자 잘 훈련된 여행가이드 마냥 형도 회장은 2일 간의 일정을 거침없이 줄줄 설명해 내려갔다. 우리가 건너갈 거가대교 침매터널(3.7km)의 한 개 함체길이가 180m, 무게가4만7천톤이라는 설명은 물론 우리가 들릴 고속도로 휴게소와 묵을 숙소, 5끼 식사 장소와 메뉴, 다섯 곳의 관광지 (해운대APEC개최지, 미륵산, 한산도제승당, 충렬사, 나전칠기 전시관) 등을 소상히 얘기하였고 내일부터는 비가 그치고 맑아진 공기와 햇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야유회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이명진 동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운전기사를 동기들께 멋쟁이 양반이라고 소개도 하였으며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멜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명진이는 감사인사말에서 내년에는 여건이 되면 집사람과 함께 올 테니 내년도 야유회 계획을 미리 알려 줄 수 없느냐는 조크도 하는 여유를 보였다.
형도 회장은 계속하여 하반기 화공과모임계획도 소개하였다.
10/21(금) 에는 양평에서 고구마 캐기를 계획하고 있으며 12/1(목) 송년모임에서는 충분한 와인을 준비해 놓겠으니 부부 함께 많이들 참석해 주시기 바란다는 얘기도 하였다.
안내 Speech를 다 듣고 난 유심덕 동기는 돌아오는 길에 이형도 회장을 총통으로 모시자는 제안을 하였고 뒷 좌석에 앉은 택호 동기 등 7명 모두가 그렇게 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의 큰 소득은 무엇보다도 매끼마다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을 고루고루 잘 찾아서 먹고 왔다는 것이었다.
소문난 언양 미나리만 먹고 자란다는 언양 쇠 불고기, 통영의 신선한 회, 살아있는 멍게를 넣은 비빔밥, 그리고 시원한 국물 맛의 복어지리 등이었다. 매끼마다 곁들이는 소주 맛은 우리들의 입맛을 한껏 돋구어 주었다.
내려가는 버스에서 정순 동기 며느리가 준비했다는 과일 디저트와 찹쌀 떡을 얻어먹으니 우리가 갑자기 효도관광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났다. 포도, 사과, 블루베리 등을 하나 하나씩 넣어 일일이 포장한 정성이 정말 대견해 보였으며 정순이 마님은 착한 며느리를 두었다고 칭송을 해 주고 싶다.
정안 휴게소에서는 철수 마님이 서비스 하는 호두과자도 맛있게 받아 먹었다.
부산을 지나 거제도로 가는 길에 최근 준공한 거가대교를 지날 때 지금 수중 48m를 지난다는 안내 말에는 정말 대단한 공사를 잘도 해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국내외 플랜트 공사를 많이 경험해 보았지만 정말 어려운 공사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이론상으로 가능하고 도면상으로는 간단하게 그릴 수 있겠으나 실제 적용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니까 말이다.
통영 근처에는 역사적인 관광지도 많지만 이번에 교과서에서만 배운 한산도 대첩의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오랜 궁금증 하나는 풀고 왔다. “ 어떻게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났다 하지만 매번 전쟁에서 연전 연승할 수 있었겠나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일본보다 우수한 성능의 화포를 가진 것이었고 소나무로 전함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조총이라는 소총이 있었으나 함정간의 일차 교전은 대포(화포)로 하였으므로 사거리가 우수한 화포를 가진 우리가 유리하였고 일본에서 흔한 삼나무로 만든 배는 연약하여 소나무로 만든 우리 배와 충돌하면 일본배가 먼저 부서지니 백전 백승 할 수 밖에 없었다는것이었다.
한려수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미륵산 꼭대기까지 가는 케이블카에는 8명이 탈 수 있는데 혼자 온 나와 나준 동기는 운 좋게도 마님 네분과 마주 앉아 수다를 떨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여간해서 사진 모델로 서지 않겠다는 마님 네분의 사진도 마음 놓고 찍을 수 있어 아주 좋았고 늙은 남편친구분들과도 같이 앉아 허물없이 수다를 받아주는 마님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미륵산 정상에 올라가니 산 아래에 박경리 선생 묘소와 기념관이 보였다. 많은 문인과 화가들을 배출한 통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전 칠기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는 통영의 자랑인 나전 칠기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었으나 사라져가는 나전 칠기의 예술을 지키려는 장인의 노력도 크게 돋보였다. 모든 것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조선, 전자, 석유화학, 엔지니어링 등 산업도 언젠가는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잘 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겠다.
오면서 가면서 버스 칸에서는 많은 얘기들을 주고 받았으며 지루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다.
현진 동기는 상미회 라는 여행사에 투자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회사 자본금까지 보조하여 여행을 알뜰히 운영하고 있으니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연락하라는 전갈이었고,
심덕 동기는 61공대 동기산악회 회장 봉사는 물론 서울시 관광 코디의 자격증을 갖고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다. “비원”은 일본 사람이 “창덕궁”을 비하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고, “이씨조선”이라는 국호도 “조선”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니 앞으로 조심해서 써야 할 말들인 것 같다.
교통법규상 가라오케를 틀어줄 수 없다는 운전기사의 말에 동기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정형, 건일, 명진이는 반주 없이 생음악으로 평소에 갈고 닦은 노래 솜씨들을 선 보이기도 했다.
리무진 버스 뒷자리 살롱 테이블에는 항상 마른 오징어와 견과류 안주를 겸한 소주 파티가 이어졌고 열띤 시국 토론들이 이어졌다. 서남표 KAIST 총장 사퇴 건이며 최근 보궐선거 판세와 사대강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예민한 정치문제와 종교문제는 서로가 자제하여 큰 Argue없이 잘 진행한 것 같다.
1박 2일간에 걸친 수다 중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 몇 가지를 전하면,
남편이 죽어서 의사가 사망 선고를 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부인이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하는 말이 “ 여보 당신은 이미 사망선고가 났어요. 아무 소리 말고 의사 말씀에 따르세요.” 했다 합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중국의 가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고 통제 불가 지경이라 합니다. 예로서 마오타이 고량주 본사에서 만드는 술도 가짜가 많다고 하네요. 뒷문으로 큰 컨테이너 트럭이 줄을 잇고 들어가고 앞문으로는 마오타이 라벨을 붙여서 돌아 나오는 수준이라 한다.
현진이는 한때 차명계좌 주인공으로 마음만 나쁘게 먹었다면 수백억원을 횡재할 수도 있었는데 기회를 놓였다는 군요.
누가 말했는데 횡재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와 같이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겠다고.
요즘 우리 나이에 자주 접하는 질문에 1. 아직도 담배 피우냐? 2. 아직도 술 먹냐? 3. 아직도 그기 가냐? 이랍니다. 부산 완월동을 지나면서 나눈 대화였습니다.
요트와 별장과 첩은 처음 가졌을 때 무척 행복(happy)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처분하였을 때는 더욱 행복( Even Happier) 한 것이다. 그러니 심사숙고 하여 욕심을 내기 바란다.
충렬사에서 코디가 이순신 장군 탄생지는 1. 충무시 2. 아산 3. 서울 충무로 중 어디일까요? 하고 물어왔는데 이를 맞힌 분은 차용 교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 ~ 놈 “ 하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놈 자(者)를 의미하는 말로 높임말 이라는 현진 이의 해설이 있은 후 우리들은 “현진이 놈” 하고 계속 높여서 불러주었다.
끝으로 한가지 첨언할 것은 현충사 참배 후 현진이~놈(者) 이 나누어준 아이스-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스-콘 값을 치르기 위해 잠자는 주인을 20분 이상 찾아 다닌 것을 생각하면 통영 사람들의 여유를 읽을 수 있겠고 충렬사 앞에서 무인가게 하나를 운영하여도 문제가 없겠다는 허망한 생각도 하여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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