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育熱(교육열)을 재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세계 1등 국가群에 끼일 것이다. 고교 진학률은 세계 1등이고, 인구 對比(대비) 대학생 비율도 1, 2등 언저리에 든다. 학교에서 받는 公敎育(공교육)이 못 미덥고 시원찮다고 해서 학원 등에 보내 私敎育(사교육)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세계 1위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들어간 사교육비는 14조원(120억 달러)으로 추산된다.
公敎育이 믿음직하지 않으니까 국내에서는 학원에 보내고, 좀더 능력이 있는 계층에서는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낸다. 2003년 한 해에만 2만 명이 넘는 중ㆍ고교생이 조기유학과 교육이민을 떠났다. 그 때문에 생겨난 교육收支 적자는 18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公敎育이 전부 엉터리는 아니다. 우수한 교사가 철학 있는 교장 및 설립자의 후원 아래 우수한 人材를 교육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진단이며 그 증거도 있다.
한 학교가 작년 한 해 동안 사법시험 34명, 행정고시 12명, 외무고시 3명 등 49명 考試 합격자를 배출했다면 어떤 학교라는 생각이 들까. 옛날처럼 경기高, 경복高, 서울高, 경북高, 경남高, 부산高, 대전高, 전주高 같은 名門高(명문고)가 있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교장 南鳳喆)가 바로 그 학교다.
이 학교에만 들어가면 名門大(명문대) 입학은 보증수표라는 말을 듣는다. 다른 학교는 어떻게 해서라도 名門大에 입학시키려고 애를 쓰지만, 이 학교는 名門大에서 학생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 가려고 한다. 심지어 외국의 名門大에서까지 직접 찾아와서 우수학생을 모셔가려고 한다.
高校별 考試 합격자 수는 最多
大元外高(대원외고)는 작년 사법시험에 34명, 행정고시에 12명, 외무고시에 3명의 최종 합격자를 배출했다. 고등학교 출신별 통계가 잡혀 있지 않아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大元外高 측에 따르면 高校별로는 전국 最多 합격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考試 합격자를 모두 합하면 司試 135명, 行試 42명, 外試 35명이다. 1987년 1회 졸업생을 배출했으니까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1991~1994년부터 계산하여 考試 합격자 배출기간이 10여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단한 실적이다.
고등학교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이용되는 수치는 서울大 등 일류 대학 합격자 수. 여기서도 大元外高는 괄목할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2003학년도 기준 서울大 합격자는 70명(재학생 57명, 졸업생 13명)이며, 연세大 142명, 고려大 128명, 이화女大에 64명을 합격시켰다. 참고로 2003학년도 졸업생(18회)은 12학급 513명이다.
요즘엔 이들 국내 대학 말고도 외국의 명문대학 합격자 수도 중요한 기준. 大元外高는 2000년부터 「SAP(Study Abroad Program)」에 따라 외국 名門大에 진학시켜 왔다. 미국의 경우, 종합대 순위 50위 안에 드는 대학, 단과대 순위 25위 안에 드는 대학은 名門大로 인정해 준다. 大元外高는 첫 해에 스탠포드(미국 종합대 순위 4위), 펜실베이니아(同 순위 4위), 컬럼비아(同 순위 10위)大 등 7개 대학에 8명을 진학시킨 데 이어, 2001년엔 13명, 2002년엔 26명, 2003년엔 43명을 합격시켰다. 특히 2003년의 경우, 미국 종합대 순위 1위인 프린스턴大에 1명, 2위인 하버드大에 3명, 역시 2위인 예일大에 1명, 4위인 스탠포드, 펜실베이니아, 듀크大에 6명을 보냈다.
大元外高 같은 학교의 존재는 제대로 된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과외도 필요없고, 조기유학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실증적인 예다.
大元外高 외에 大元학원 소속의 大元高와 大元女高도 일반고교 중에서는 성적이 상위권이다. 大元高의 경우, 올해 서울大에 12명, 延ㆍ高大 52명, 서울시내 4년제 대학에 471명이 입학했고, 대원女高도 서울大에 12명, 이화女大에 50명 합격자를 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 부친의 薰陶로 학교 운영하는 꿈 성취
이 학교를 국내 최고의 名門高로 키운 주인공은 대원학원 설립자이자 현 재단이사장 李元熙(이원희ㆍ70)씨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언론인 출신이다. 첫 직업은 공무원. 1957년 연세大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吳在璟(오재경)씨가 長으로 있던 공보처에 촉탁서기로 들어갔다. 엘리트들이 시험을 봐서 취직할 수 있는 길은 국영기업체, 은행, 신문사, 공무원 정도밖에 없을 때였다.
그는 4ㆍ19혁명이 일어난 해, 촉탁서기 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사 승진시험에 응시, 3명의 합격자 가운데 끼었다. 그런데 그게 승진시험이 아니라, 서울중앙방송(KBS) 요원 선발시험이었다. 공보부로 조직이 바뀐 후, 다시 장관으로 온 吳在璟씨는 KBS로 가기를 거부하는 李씨에게 『방송도 선진국형으로 발전하려는 시기가 왔으니 방송계에 나가면 공무원으로 있는 것보다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그는 KBS 편성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계로 轉職(전직)한 그는 문화방송(MBC) 편성과장을 거쳐 1964년 동양방송(TBC)이 開局(개국)하자, 편성국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만 30세 때였다. 그는 李秉喆 당시 삼성그룹 회장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30세 편성국장에 이어 1971년 37세 때 이사로 승진했으니 말이다. 李健熙(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당시에 동양방송ㆍ중앙일보 이사였으니까 그의 빠른 출세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의 월급쟁이 생활은 동양방송·중앙일보 상무(1974~1975년)를 거쳐 제일제당 전무(1977년)로 끝났다.
그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되자, 당연히 학교를 운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가 거액의 돈을 쏟아부을 뿐,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교육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교육자였던 부친의 정신교육 덕이었다.
충남 보령 출신인 부친 李相龜(이상구·작고)씨는 일제시대 公州高普(공주고보)와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교직으로 평생을 보낸 인물이었다. 그는 생전에 참교육을 실천, 충남도內에서는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그는 자식들을 귀하게만 기르지 않았다. 고향인 보령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한 후, 집에서 70리 정도 떨어진 전북 군산의 군산高로 진학한 李元熙씨는 방학이 되어 귀향하면 공부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부친의 명령에 따라 농사일을 포함하여 시시콜콜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당시 고향의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부친은 『사람은 육체노동을 해봐야 한다』면서 쟁기질도 시키고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도록 했다고 한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일이 쟁기로 파 엎은 논에 들어가 발로 밟아 바닥을 편평하게 고르는 정지작업이었다. 거머리가 달려들어 사정없이 피를 빨아 먹었다. 지금도 거머리에 물려서 생긴 상흔이 종아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로 뻗는 한국인이 된다」가 校訓
고등학교 때 상위 석차에 든 그에게 친척들은 一家 중 의사가 없으니 의학을 전공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했다. 李元熙씨는 어려운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부친은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대단히 흡족하게 여기더라는 것이다.
李이사장이 방송사 편성계장, 편성과장을 할 때도 부친은 『언론계는 젊었을 때 한번쯤 몸담아 볼 만한 직장이다. 하지만 사람을 길러 내는 일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기회만 있으면 그를 설득했다. 부친이 작고한 후, 李元熙씨는 그 말씀을 유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동양방송 편성국장으로 있을 때는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원의 이사로 취임, 그를 돕는 한편으로 학교운영 기법을 배우기도 했다.
학교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財源(재원)은 부동산 투자에서 생긴 이익으로 조달했다. 그는 평소 땅에 관심이 많았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는 만큼, 땅은 생명과 생산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이던 동양방송·중앙일보·제일제당 등에 근무하며 받은 월급의 일부와 보너스 등을 서울 변두리 땅에 투자했다. 1970년대 중반은 중동 달러의 유입에 따른 過熱景氣(과열경기)로 부동산 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곤 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부동산 투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농촌 출신인 그는 도시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구파발 같은 변두리 지역에 땅을 사두었다. 그게 큰 재산이 되었다.
그가 제일제당 전무를 그만두던 1977년쯤, 그의 재산은 수십억원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 가치로는 천억원臺(대)에 가까운 거액이었다. 당시 중ㆍ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財源은 50억~60억원 정도였다. 물가 폭등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고향 땅을 거의 다 팔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살고 있는 집을 저당잡히는 한편 여러 친지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한다.
그는 1977년 초, 서울 중랑구 중곡동 용마산 자락에 2만5000평의 大元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大元中ㆍ高를, 1983년 大元女高를, 1984년엔 국내 최초의 외국어고등학교인 大元外高를 개교해 교장에 취임했다. 현재 大元학원은 4개 학교에 학생수 8000명, 교직원 370명을 포용하고 있다.
大元학원의 校訓(교훈)은 「세계로 뻗는 한국인이 된다(Koreans Branching out around the World)」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격심한 세계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이사장 스스로 정한 것이다.
外國語高, 科學高 아이디어를 李奎浩 장관에게 처음 제공
지금 특수목적고등학교(特目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외국어高와 과학高가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외국어고등학교를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언론계에 있을 때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외국에 특파원을 보내면 그 나라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구사하기까지 3~4년이 걸렸다. 대학까지 10년간 영어를 배우는데, 전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교육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李奎浩(이규호) 당시 문교부 장관을 찾아가 외국어고등학교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국제화 시대에 알맞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특수한 교육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李장관은 『그런 국가적 인재를 키우려면 정부에서 나서야지』라고 했다. 李元熙씨는 『앞으로 과학기술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옵니다. 정부에서는 과학고등학교를 시작하십시오. 개인이 하기에는 실험·실습 기자재 등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라고 했다. 그 말은 들은 李奎浩 장관은 바로 과학실장을 부르더니 과학고등학교 개교를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문교부 장관의 내인가를 받은 외국어高는 곡절 끝에 개교가 몇 년 늦춰졌다. 서울시 교육위원회를 통과해서 교육감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교육부 출입기자 한 사람이 이를 미리 알고 기사를 썼다.
신문에 난 것을 보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청와대의 교육담당 비서관은 李奎浩 장관을 원망했고, 입장이 난처해진 李奎浩 장관은 李元熙씨를 불러 개교를 1년 늦춰 달라고 하소연 겸 부탁해 왔다.
학교는 다 지어 놨는데, 큰일이다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李장관도 학교 건물을 다 지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걱정하는 李장관에게 기왕 건물은 다 완성됐으니 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면 어떠하겠느냐고 건의했다. 난처한 입장을 모면하게 된 李장관은 그 자리에서 학교 이름까지 「大元여자고등학교」로 지어 설립을 인가한다는 결재서류에 사인을 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교육청에서 들고 일어났다. 외국어고등학교로 승인을 해줬지, 언제 여자고등학교로 해줬느냐면서 난리를 쳤다. 결국 학교의 문을 열기까지 2년 동안을 기다려야 했다.
교사평가제와 능력별 수업제 도입이 효과 컸다
학교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학교 운영자의 열린 思考(사고), 우수 교사, 우수 학생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수한 교사를 모셔오려면 무엇보다 대우가 좋아야 한다. 李元熙씨가 경쟁이 격심한 언론계에 있다가 교육계로 나와 보니까 요순시대 같았다. 경쟁도 없고, 열심히 해도 대우가 뒤따르지 못했다. 승진, 보너스도 없었다. 21세기를 바라보는 때에 아직 이런 사회도 있구나 하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信賞必罰(신상필벌) 중에서 「信賞」만 따로 떼어 적용했다. 열심히 가르치고, 수업도 잘하고, 학교 행정도 잘하는 그런 교사들을 공개적으로 평가해서 한 학기에 100만원 정도 되는 연구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작년에 A가 탔으니 올해는 B가 타라는 식의 나눠먹기 풍토가 있었다. 그는 그런 풍토도 개선했다.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잘하는 사람은 계속 탈 수 있게 해줘야겠다 해서 고집을 부려 이를 관철시켰다. 거기서 높은 평가를 받은 교사를 부장, 부장들 가운데서도 잘하는 사람은 교감·교장으로 승진시켰다.
李元熙 이사장은 학교 창설 때만 초대 교장을 맡았을 뿐, 유능한 인재를 골라 후임자로 앉혔다. 실질적으로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식의 평가제를 시행했더니 교사들에게 공감을 줬던 모양이다. 교사들의 연구실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당시 금지됐던 능력별 수업제를 도입한 것도 효과가 있었다. 평준화 이후, 학생들은 능력 편차가 컸다. 이들을 智·仁·勇 3개로 갈라서 반을 편성, 능력에 맞게 가르쳤다.
능력별 수업은 저항을 많이 받았다. 교육청으로부터는 물론 학교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왜 잘난 놈만 가르치느냐, 못난 놈도 가르쳐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뛰어난 학생이나, 좀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이나 모두 실은 그런 수업방식을 좋아했다.
교사들의 열의로 학생들의 실력은 갈수록 향상됐고, 그에 따라 교사들 자신도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질문에 쩔쩔맬 정도가 되었다. 교사와 학생들의 「공부하기」 풍토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학교는 급속도로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학생」키우기 위해「明心寶鑑」교육
李元熙씨가 大元外高의 초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하느님은 공평하다는 점이었다.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가슴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공부는 잘하는데, 따뜻한 가슴을 갖고 많은 사람과 더불어서 사는 지도자 기질을 가진 학생들이 드물었다. 그는 그 점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도입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明心寶鑑(명심보감)」을 가르치고 이를 국어교과의 수행평가에 반영했다. 明心寶鑑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종의 생활지침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지켜 왔던 동양적인 인간관계가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자동적으로 漢字(한자)교육이 포함된 이런 식의 가르침에 대해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아마도 산업사회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이 삭막해지니까 그런 교육에 굶주렸던 연유일 것이라고 李이사장은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醫術(의술)은 仁術(인술)」이라는 공통적 인식이 존재한다. 李元熙 당시 교장은 학생들에게 돈 벌려거든 의사가 되지 말라고 가르쳤다.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의사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다. 대신 불치병을 고치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를 할 사람은 의사가 되라고 했다. 권력을 행사하고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은 법조계로 가는 것을 양보해 달라고 했다.
말로만 해서는 설득력이 낮을 것 같아 인턴제도를 도입했다. 여름·겨울방학 내내 학생들을 병ㆍ의원과 변호사 사무실에 보내 함께 일할 기회를 부여했다. 실제로 의사, 변호사들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고 나서 진로를 정하도록 했다.
장학금을 주는 조건으로 내건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 외에 「心性이 좋아야 한다」는 대목이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인간성이 좋은지 나쁜지」는 봉사활동을 시켜 보니까 쉽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이 李元熙 이사장의 경험론이다. 학생들에 대한 人性(인성)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학교 단위의 봉사활동은 일과 후, 週末(주말), 방학 기간 에 연중 계속되며, 프로그램은 학교가 개발해 준다. 봉사활동 권장시간은 3년간 60시간이다.
李元熙 이사장이 가진 사회적 직함 중 하나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다. 과거엔 정치인이나 재벌총수가 맡던 그 자리를 2000년 4월, 최초의 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그가 스스로 스카우트 운동에 참여하고 제자들에게도 동참토록 권유한 이유가 학생들에게 남을 돕고 봉사하는 정신을 가르침으로써 지도자 자질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혼탁한 현실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싶었다.
장학재단의 자산은 약 80억원쯤 된다. 이 중에는 삼성그룹 李健熙(이건희) 회장이 희사한 30억원도 포함돼 있다. 과거 중앙일보ㆍ동양방송 이사로 함께 일한 적이 있고, 경주 李씨 같은 行列(항렬)이라는 인연을 가진 李회장이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내가 장학금 좀 내면 안 됩니까』 하고 물어왔다. 그래서 『不敢請固所願(불감청고소원: 감히 요청할 수는 없으나 대단히 원하는 바)』이라고 답하니까 장학기금으로 30억원을 쾌척했다고 한다. 장학재단 규모는 200억원이 목표다. 果實(과실)만으로 장학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금액이다.
『外高生 진학 제한은 語不成說』
「스승을 부모처럼, 제자를 자식처럼, 동료를 형제처럼」이라는 이 학교의 교육 지표도 인상적이다. 교사들이 스스로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한탄하는 때라서 특히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李元熙 이사장에 따르면 아직도 학생들의 진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는 친구에 이어 스승이라고 했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大元학원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일어나는 교육정책의 잦은 변화다. 최근에도 安秉永(안병영) 신임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교육정책 때문에 특히 大元外高는 현재 진통을 겪고 있다. 特目高는 特目高의 설립목적에 맞는 大入방식을 적용하겠다는 말 때문이다.
교육부는 「2ㆍ17 私敎育(사교육) 대책」을 통해 과학高 학생이 의대에 들어갈 때나 外高 출신이 어문계열이 아닌 학과에 진학할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大元外高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高의 경우는 理工系(이공계) 학생 감소에 대한 우려 차원에서 전도 유망한 미래의 과학자를 기르겠다는 취지에서 그런다고 이해되지만, 外高의 경우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이다.
외국어는 이제 학습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교나 무역, 법률 등의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공부도 마찬가지다. 인문계열은 물론 자연계, 예체능계에서까지 영어는 필수가 돼버렸다. 영어원서를 못 읽는 학생은 공부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어학계열로 진학해 해당 언어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돼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법학을 공부하면 국제변호사가 되어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할 수 있을 것이고, 경영학을 공부해 최고경영자가 되면 외국에 진출하거나 수출계약을 하는 데도 훨씬 유리할 것이다. 영어 또는 제2외국어를 남보다 더 잘 구사할 수 있는 인재들은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재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본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어문계열로만 진학하라고 하는 것은 인재의 死藏(사장)이므로, 外高生들이 법대, 의대, 공대 등 다른 계열로 진학하는 것을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外高의 공통된 주장이다. 다음은 李元熙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外國語高는 통역 육성하는 학원이 아니다』
─特目高 학생들이 택할 전공과목을 제한한다는데, 그러면 大元外高도 큰 타격을 입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저에게 일반 고등학교처럼 교육을 하라는 압력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툭하면 들고 나오는 것이 현재의 교육과정이 설립목적에 위반된다는 것인데, 이번 기회에 분명히 밝혀둘 일이 있습니다.
제가 李奎浩 문교부 장관을 설득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어고등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국제화 물결이 강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차피 세계화되는 시대에 살게 되는데 우리가 영어를 중·고ㆍ대학까지 10년을 배우지만 외국 사람 앞에 나서서 말 한마디 시원하게 못하는 것은 교육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어요. 제가 방송국에 근무할 때 보니까, 특파원을 하나 교체하려고 하면 너무 어려워요. 그 어려운 시험을 거쳐서 들어온 우수한 인재들이 외국에 나가 4~5년 지나야 겨우 특파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李장관에게 국제화 시대가 되면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외국어다. 외국어는 영어선생이나 통역만 하려고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어느 분야에 있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세계 무대에 가서 넥타이 하나 못 팔아먹는다. 그러니까 나라의 장래를 위해 외국어 의무교육을 하고 거기에서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설득한 겁니다.
분명이 말씀드리지만 외국어高의 설립목적은 「외국어에 재능을 가진 학생의 조기발굴과 잠재능력의 최대한 개발, 국제 경쟁력의 提高(제고)를 위한 우수인력의 양성」입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요?
『그렇죠.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었지, 일본어나 영어를 가르쳐서 무슨 통역반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알지도 못하고 설립목적에 어긋난다고 그러는데, 외국어고등학교는 상업학교나 공업학교처럼 취업학교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학교의 성격입니다. 대학교를 가는데 앞서 미리 외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국제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 보려고 만든 겁니다. 그런데 자꾸 무슨 영어나 불어 가르치는 학원처럼 생각하니 큰일입니다』
학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부
─그러니까 外高生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대나 법대를 마음대로 지원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의대나 법대를 가는 사람들은 영어를 못 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인재를 키우는 일을 획일적으로 몰고 가려는 태도는 잘못입니다. 국가라는 집을 지으려고 하면 대들보감도 있어야 하고 서까랫감도 있어야 하는데, 모두 다 똑같은 규격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잘못된 것 같네요.
『서까랫감은 서까랫감대로 길러야 되고 대들보감은 대들보감대로 길러야 되는데 그런 데에 대한 시각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매년 홍수가 난다고 큰 물줄기를 딴 데로 돌리려고만 하면 이게 돌려집니까? 큰 물길을 막으려고 하면 둑이 터지고 홍수가 나게 마련입니다. 가장 큰 물줄기가 술술 내려가도록 하고, 옆으로 잘못 빠져나가는 것에만 조그만 둑을 쌓아서 막아 줘야 물이 제대로 흐를 것입니다. 교육부가 정한 「7차 교육과정」을 보면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해놓고 外高나 科學高는 그렇게 못하게 한다니 큰 모순이죠』
─그러면 평준화가 문제군요.
『피교육자가 모두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편하게 재능을 발휘하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그게 교육 아닙니까. 그것을 자꾸 옆에서 가로막으니까 교육이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평준화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特目高나 자립형 고등학교가 시골에서 잘 됩니까? 2학년만 되면 검정고시 치르겠다고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는데 그걸 어찌 막냐 이겁니다. 왜 그러겠어요. 우등생이 열등생하고 똑같은 점수 받으라니까 그런 겁니다』
─내신성적 말씀이죠?
『내신성적 제도는 크게 잘못된 거예요. 얼마 전, 고려大에서 발표했잖아요. 고려大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조사해 보니까 秀(수)가 20개인 아이, 秀가 1개인 아이가 같은 과에 입학했다는 겁니다. 「수우미양가」 잣대가 학교마다 달라요. 잣대가 다른데다 어느 학교와 어느 학교의 학력 차이가 10배, 20배가 납니다. 학생들은 다 알죠.
그런데 교육부 사람들만 전혀 딴소리예요. 학교의 실력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획일적인 기준을 고집합니다. 그게 통하는 시대가 지나갔거든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진실되고, 가장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애들 교육이어야 하는데 전혀 공감이 안 가는 기준을 가지고 外高에서 1등한 애나 저 시골 학교에서 1등한 애를 똑같은 점수를 가지고 가라는 것은 거짓이에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배정을 안 받겠다, 포기하겠다, 이렇게 요동을 치는 것 아닙니까?』
대학에 入試를 맡기면 만사해결
─내신 성적은 매기되, 그것을 大入(대입)에 반영할 때, 학교 등급에 따라 가중치를 두자는 말씀입니까?
『대학에 다 맡기자는 거죠. 대학에 맡기면 대학이 다 알아서 합니다.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강제적으로 대학입학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를 야기하지, 대학에 맡기면 부작용이 적을 겁니다. 예컨대 고교 내신성적을 입학 査定(사정)에 적용하도록 하면 대학은 지역, 학교 간 차이를 감안하여 일정한 기준에 따라 고등학교를 평가해 등급을 매길 것입니다. 그러면 고등학교 간 경쟁을 유도하여 실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것입니다.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화살을 받을 일도 없어요. 우리 학교를 왜 C급으로 매겼냐, 우리 학교를 왜 A급으로 매겼냐 하는 그런 화살은 대학에서 받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대학은 그런 증거자료를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해버리면 끝나는 것을 왜 학생, 교사, 학부모가 납득하지 못하는 내용을 발표하느냐 그런 말입니다. 그것이 문제예요』
─앞으로는 예체능 과목까지 내신성적을 매긴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까지 내신성적을 상대평가해서 점수화한다는데, 그러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내신과외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정부는 큰 물줄기가 부드럽게 흘러가게끔 정책을 써야 합니다. 교육부는 법으로 말하면 헌법만 만들고 관련 법이나 시행 세칙은 지방교육단체나 각급 학교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또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배 아파하는 병이죠. 배 고픈 것은 참지만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듯이,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배만 아파하면 나라와 사회가 발전하겠습니까?』
─고등학교 운영제도엔 문제가 없습니까?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같은 학교가 자꾸 생겨야 합니다. 가장 나쁜 것이 뭔 줄 아세요? 상업학교, 공업학교는 교육이 완성되는 학교입니다.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야 하는데, 지금 진학하는 학교로 바뀌고 있어요. 내신성적을 좋게 해서 동계 진학이다 뭐다 하는 대학 입학 우대정책에 편승하고 있어요. 그러니 국가의 인력수급 계획에서 중간이 딱 비게 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자리가 있는데 대학에 진학하니까 생기는 현상이군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 공립, 사립 가릴 것 없이 自立型(자립형) 고등학교를 포함해서 경쟁하고 싶은 학교는 모두 학생 배정을 받지 말고 스스로 학생을 뽑아야 합니다. 다만, 지방 소도시에 여건이 나쁜 학교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교엔 학생을 배정해 줘야 합니다』
중국은「학교 주식회사」 認可, 이미 시행 중
─고교선발 방법을 양립해 나가자는 말씀이네요.
『예, 그러면 평준화도 살고, 그렇게 빨리 해줘야 우리 같은 학교도 살죠. 또 하나 가장 잘못된 것은 교사의 평가제도입니다. 必罰(필벌)은 안 해도 좋아요, 信賞만 제대로 해도 좋겠어요. 정말 열심히 하는 교사에겐 금전적 보상뿐만이 아니라 명예보상도 해줘야 해요. 그거 안 해 주면 무슨 재미로 직장생활을 합니까? 평생을 형사처벌만 받지 않으면 아무 경쟁도 하지 않고 해먹을 수 있는 직업이 아마도 한국의 교사 빼고는 지구상에 없을 겁니다. 제한적 경쟁을 도입해야 합니다』
─교육부가 학생선발권을 학교에 맡기지 않고 틀어쥐고 있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교육부가 시대에 맞게끔 발상을 바꿔주면 잘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권한을 학교에 다 줘버리면 교육부나 교육청의 직원이 반 이하로 줄어 버리니까 그것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좋은 거죠. 지금까지 작은 정부를 지향하겠다는 대통령은 많았지만, 이를 실천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국내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보따리 싸가지고 미국 가고, 캐나다 가고 뉴질랜드에 가버리지 않습니까? 바로 옆 중국에서는 학교를 주식회사로 만들도록 허락하고 있어요. 上海와 北京에서는 이미 「주식회사 학교」가 출범했습니다. 교육도 경쟁력을 갖춰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벌어 보라는 것이지요.
세계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그대로예요. 저는 무한 경쟁체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제한적이고 합리적인 경쟁의 문은 열어 줘야 교사들도 질이 높아지고 학교 경향도 현대화되고 그러지, 지금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제는 大勢(대세)인 국제화의 물결 속에 한국적인 것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죠』
『하버드大는 동화 잘 그리고, 봉사활동 열심히 한 학생을 뽑아 가더라』
─大元外高에는 외국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러 온다니 다행입니다.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모두 찾아와서 자기 학교에 오려는 학생들을 면담하게 해달라, 자기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요청합디다. 작년에도 하버드大를 지망하는 애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딱 두 명을 뽑아 갔어요. 하나는 동화 잘 그리는 애고, 하나는 외국인 숙소에서 1년 내내 봉사활동을 한 아이예요. 그런 애들만 쏙 뽑아 갔어요』
─공부는 잘했겠지요?
『물론 공부는 다 상위권이었죠. 그런 학생선발 방식이 우리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냥 성적으로 뚝 끊어 가지고 0.1점이라도 높은 학생을 뽑는데 그쪽은 그게 아니거든요. 일반적인 성적 우수자보다, 특수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인간성이 좋아야 하고 지도력이 있어야 해요. 그것도 대충대충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1위 대학답게 그런 분야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사장님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 가운데 한 분이신데,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세요? 걱정되지 않습니까? 교육차원을 떠나서 말이죠.
『시장경제체제보다 나은 이론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증명됐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 엉뚱한 쪽으로 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어요.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나라 사정도 어려운데, 자꾸 그런 제동이 들어오면 국가의 발전속도가 느려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다만 사람이 한번 잘못 생각한 끝에 그릇된 길로 들어섰다고 해서 평생 낙인 찍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풍토는 교육적 관점에서 잘못이라고 봅니다. 가정과 정부가 나서서 그들을 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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