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 문학동네
요즘 들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여운이 깊게 내려앉아 무엇인가 그 느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글쓰기에 대한 내면의 부담감인지, 아니면 글에 대한 나의 진정성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전과는 달리 책읽기를 마치면 설렘과 두려운 감정이 교차한다.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은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서야 짧은 날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숲에 대한 그의 시선은 깊고도 어둡고 묵직한 적막감으로 싸여있다. 이 작가의 책은 어렵다. 사건의 진행보다는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언어로 토해내는 문장들이 어렵고, 때론 이해하기 힘들다. 문장은 복문이 많아 다시 돌아가 곱씹으면서 읽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어떻게 사물의 끝을 보는지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숲 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여진은 세밀화를 그리기위해 민통선 안 수목원에 계약직으로 취업한다. 여진을 민통선 수목원으로 밀어 넣은 것은 밀린 월급으로 인한 생계의 막막함이 아니라 삶을 숨 조이게 만드는 그녀의 부모로부터 도망치기위한 마지막 수단처럼 보였다. 지방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비리와 상납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못한 채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불면증은 고스란히 그녀의 삶속에 파고들어 더 이상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든다. 민통선 안 수목원은 무릉도원이 아니다. 숲이란 안락함과 따스함만이 존재할 것 같은 단어의 고정된 관념을 깨뜨린다. 숲도 삶이다. 젊은 숲이 있고 늙은 숲이 있고 양육강식이 존재하는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마음의 평온함을 얻는다는 것은 어쩌면 전쟁 한가운데서 언제 올지 모르는 휴전협정을 기다리는 행위와 같은 것 같다. 작가는 숲을 인생에 비유하려고 했나보다. 숲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고 그것이 지극한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계절별로 주어진 꽃과 나무들의 세밀화 표현은 언어자체가 세밀화다. 작약을 보지 않더라도 작약의 기름진 꽃잎의 질량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가는 풍성한 언어로 표현해 놓았다. 하얀 목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흰색이 아니라 검정색을 물감을 풀어서 흰색을 표현해 낸다는 작가의 말에 색감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숲 해설가 이나모씨가 나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 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숲과 산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산은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면 숲은 어머니 같다. 사물에 대한 언어적 질량감은 글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아이의 자연관찰 책을 다시 뒤적여 보았다. 사물을 들여다보는 예리함은 없지만 풍성함은 이 책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첫댓글 독후감만 봐도 어려운책 같아요. 전 어려운책 집어들면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하지만 달빛기행님이 이렇게 정독하면서 작가의말까지 찾아읽은 책이라니 저두 꼭 읽어보고 싶어요. 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랑 천명관의 고래 요즘 재밌게 읽었어요. 읽을 책은 쌓여있는데 집중이 안되네요. ^^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작가책을 처음부터 너무어렵게 잡아서 그런지 읽는게 좀처럼 쉽고 편하진 않아요. 칼의노래에서 칼의 울림 소리인 '쟁쟁쟁'이라는 단어가 너무 인상적이여서 또 다시 읽게 되었어요... 이책에서도 그표현을 똑같이 쓰는데 '쟁쟁쟁'울리는 삶의 예기가 가슴을 찌르는것 같은 소설이라 여운이 많이 남아 글을 남겼어요
저도 이책을 읽고 마음 무거웠던 생각이 나네요 인생의 허무함이라고나 할까? 아버지의 뼈까루와밥과소금을 섞어 새의 밥으로 뿌려지는 것도 그렇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박창수이야기도 그렇고....
좋은 책은 영혼을 향기롭게 하죠. 달빛기행님이 쓰신 감상문에서도 그 향기가 느껴지네요. 그 향기가 우리가 쓰는 글속에도 스며들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