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선군 " 안도전 마을"
돌담과 양철 지붕을 얹은 키 낮은 집들이 있다.
안도전 마을은 골골이 쏟아진 물이 어우러지고 골지천과 임계천이 만나 정선의 조양강으로 흘러 남한강의 물 허리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다. 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안도전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안도전 마을로 가는 길은 청옥산 자락이 깊고 푸르게 드리워져 있어 풍광을 감상하기엔 더 없이 좋다. 흙먼지 풀풀대는 황토길의 끝, 고적대 아래 마을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고적대와 중봉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쳐 올라 모롱이를 휘돌 때마다 냇가 양편으로 돌담을 두르고 양철지붕을 얹은 키 낮은 집들이 드문드문 햇빛을 이고 있는 마을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은 탁왈수 씨를 비롯하여 몇 집 되지 않는다. 구부렁 골로 몇 걸음 떼면 오래전에 문을 닫은 도전 초등학교 내도전 분실이 보인다.
교실 한칸이 전부인 이곳은 화전민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학교이다. 지금은 내 도전의 농기구 창고로 쓰이고 있지만 산골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던 곳이었으리라. 학교는 아이들의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을 당시를
기억이라도 해내려는 듯이 당시의 물건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덩그러니 빈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 아름들이 황철나무가 운동장 곳곳에 우뚝 솟아 지나는 길손에게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
버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마소와 구유소를 지나면 버드내를 적시고 온 물과 고적대에서 장아리를 지난 물길이 만나 작은 아우라지를 또 하나 만든다. 해 질녘 아우라지에서 발을 적시고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은 오지에 온 여행자의 심연에 젖게 한다.
물이 흐르면서 내는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
정선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42번 국도를 따라가면 임계를 지나 7km를 가면 내도전 가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식당) 간판이 이정표 구실을 한다. 내도전에는 차가 들어가지 않는다. 큰길에서 10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오염이 안된 내를 따라 들어가면 맨 끝에 내도전 마을이 자리잡고있다.
2. 내린천 변의 "개인동"
밭떼기를 일구는 몇몇 농군들이 오지의 삶을 지키고 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산골의 마을들이다. 도로가 뚫리고 개량한 집들이 들어서면서 산촌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개인동이 바로 그런 곳이다. 주변 경치가 절경이다 보니 도로가 포장이 되고 별장 같은 집들이 하나둘씩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오지마을의 면모를 많이 잃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 곳을 가려면 하루를 꼬박 잡아야 한다.
강원 지방은 인제, 홍천에 삼재 불입처로서 "삼둔 5가리"가 있다는 내용의 정감록이 널리 유포되었다. 삶둔, 월둔, 달둔의 3둔과 명지가리(명지거리), 젖가리, 아침가리(조경동), 영가리, 명가리(명개리)의 5가리가 그곳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이곳은 오지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개인 약수터와 대개인동을 가는 길목은 무인지경의 심산유곡이다. 파리목으로 불리우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대개인동이 보인다.
계곡을 거슬러 1시간 가량 오르면 개인약수터가 있다. 삼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곳에 탄산수 주성분의 개인약수가 솟아나며 개울의 바닥 돌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솟아나는 약수 만큼이나 정갈하고 정성스런 수십 개의 돌무더기가 서있는 약수터의 풍경은 종교적인 느낌을 준다. 산신령에게 약수의 효험을 비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대개인동을 떠나 소개인동으로 가려면 내린천을 앞두고 산등성이를 올라야 한다. 몹시 가파르고 험한 산허리의 오솔길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른다. 이렇게 두메 산골에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 때 즈음 산 속에 완전히 갇혀있는 소개인동에 이르게 된다.
소개인동은 "속에 있는 동네" 의미의 이름처럼 산간 분지의 숨은 마을이다. 이곳은 안식교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미산리 빈지동 안식교의 독실한 교인들로 토요일을 지키며 금욕생활을 해오고 있다. 옥수수와 감자를 주로 가꾸는데 농경지의 넓이는 약3만평, 토종벌을 쳐서 생계유지에 보탠다.
▶찾아 가는길
내린천은 인제군 상남쪽에서 거슬러 올라도 좋고 원당리로 들어가서 냇물을 따라 내려가도 좋다. 상남으로 들어가는 경우 미산리 까지는 하루 한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길 찾기가 어려운 점은 없다. 대개 계곡이나 내린천 변을 따라 가면 마을을 만나게 된다.
3. 정선 발구덕
동네 곳곳에 구멍이 자꾸 생겨나 한국의 이색지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증산역에서 1k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민둥산에 다다르게 된다. 이 마을이 오지로 남아 있는 것은 동네 곳곳에 구멍이 생겨 동네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곳을 뜨게되어 폐허로 버려지는 집이 생기면서 개발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곳을 여행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을에 커다란 구멍이 여덟개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윗발구덕 마을이 자리잡은 "윗 구뎅이" 남동쪽 아래의 아래 발구덕 마을이 자리한 "아랫 구덩이" 동쪽 옆의 "큰 솔밭 구덩이"와 "능정 구덩이" 민둥산 남쪽 시루봉 근처의 "글등구뎅이" 그리고 민둥산 주변의 3개까지 합쳐 구덩이가 모두 여덟 개다. 그밖에도 자잘한 구덩이는 수없이 많다. 또한 없던 구덩이가 생기기도 한다.
때문에 밭을 갈던 소가 툭하면 발이 구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25년 전 일본학자와 공동으로 이 발구덕 마을 주변지형과 동굴을 조사한 바 있다. 조사자에 따르면 이 구덩이들은 돌리네(Doline)에 해당되며 발구덕마을은 이들 돌리네가 밀집한 카르스트 지형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돌리네란 석회암 토지의 표면에 볼 수 있는 사발 모양의 움푹 패인 땅이다.
이런 돌리네가 많아 이 마을이 점차 밑으로 꺼지게 되는 것이다. 아래가 커다란 동굴로서 지표면과 통한 굴을 통해 흙이 자꾸 빠져나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마을 사람들의 경험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쇠구뎅이는 윗 발구덕 마을의 것보다 한결 커다란 마치 포크레인으로 파낸 듯한 깊이 5m, 길이 30m의 함몰지다. 이 구덩이는 매년 장마 때마다 물이 가득 차는데 어느 순간 한 가운데에 공기가 5~6m 수면위로 치솟은 다음 순식간에 빠진다. 이 물은 초등학교 뒤 동굴로 흙탕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민둥산 주변에는 동굴이 여러개 있다. 민둥산 정상부에 깊이 71m의 삿갓굴 과 깊이 18m의 수직굴 이 있는 것을 비롯 민둥산 북쪽 지억산 의 남쪽 골짜기에는 기차도 드나들 수 있을 많큼 크다고 해서 주민들이 이름을 붙여놓은 기차굴 , 물이 많이 나온다는 뜻의 물나는굴, 증산국교 뒤 시루봉의 굴동굴 등 일일이 셀 수 없는 굴들이 많다. 동굴탐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에 따르면 이 곳은 이 굴들이 모두 하나로 통해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발구덕 마을 아래 땅속에 미로처럼 얽혀 있을 동굴은 아직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종유석이며 석순 등 동굴의 풍치가 일급인 것으로 밟혀졌다.
▶교통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열차를 타고 증산역에 하차. 증산역에서 도보로 1km를 가면 민둥산이 나온다.
4. 명주 한터 마을
오대산 송천 변에 위치한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
이 땅에 백두대간 만한 골격을 지닌 산맥이 없는 만큼 그 등허리를 파고 오른 송천이라 그 깊이를 따를 강이 없다. 이 송천가 변에 위치한 마을들은 오지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동초밭, 가락동, 소란, 한터, 자오동, 석동거리, 사이수터, 재도리, 다리새, 새터, 배나드리, 등이 송천 변의 오지인데 그중 한터 마을은 송천 의 중류에 있다. 서울에서 당일로 한터에 가려면 밤길을 걸어야 한다. 증산까지는 급행열차를 이용했지만 증산에서는 완행열차로 갈아타야 구절리에 닿게된다.
구절리는 기차가 들어가는 최고의 산간 오지로 알려져 있다. 종량동을 지나면 대기리에 도착한다. 대기리는 행정구역상 명주군 왕산면에 속하는데 한터를 한자로 표시한 이름이다. 한터에는 대기초등학교 한터 분교가 있다. 이 학교 아래쪽에는 10가구 미만의 가구가 있다.
이 마을에 사람이 둥지를 튼 것은 줄잡아 400년은 된다. 병자호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지금껏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감록에 의하면 오덕지기라는 말이 나온다. 황정덕이, 황철덕이, 장두덕이, 구비덕이, 안반덕이, 등인데 이것은 발왕산과 조고봉, 그리고 구절리의 고비덕봉이 감싸고 있는 골짜기들의 지명이다. 그 오덕지기의 중심이 한터다.
동네에는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수 백년 묵은 성황당이 있다. 서낭당에는 요즘도 음력 9월9일에 제사를 치르는데 전 주민이 정성스레 참여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을은 빈집이 늘어갔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송천을 떠나 도회지로 간 것이다.
한터에서 배나드리까지 30리 구간에는 사이수터, 재도리, 다리재 등의 서너 마을에 한두 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배나드리라는 지명은 그곳서 출발하는 뗏목에서 유래된다. 일재때 뗏목으로 송천의 소나무를 뗏목에 실어 나르던 시절에 붙여진 것이다.
송천변의 수달래는 이곳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수달래를 볼 생각에 떠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수달래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수달래가 만개하면 송천은 그 꽃이 물에 비쳐 빨갛게 타오른다. 굽이굽이 피어난 수달래를 보면 오지의 서러움과 한이 절로 풀린다고 현지인 들은 말한다.
수달래가 피는 시기는 5월 초순경, 이 장관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이 시기에 이곳을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찾아가는 길
하류인 구절리에서 상류의 수하리까는 외딴집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100리 계곡이 계속 이어진다. 구절리 에서 돌거리 까지는 한터 주민들이 10년 간 땀흘려 만든 도로가 있어 차량을 그곳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 걸어서 갈 경우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없는 길이어서 걷기에는 무척 편하다.
5. 삼척군 하장면 "한소리"
곡식도 찧고 고추도 빻는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
정선에서 백전리행 버스를 타고 백전리에 내려 도보로 5km정도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한소리 마을은 마을 초입에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태백산의 정기를 가득 담은 물이 용솟음쳐 솟아나는 곳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그곳을 용소 라고 하는데 용이 솟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직경 30cm의 소에서 검푸른 물이 시간당 10톤씩 솟아난다. 그 위에는 물이 전혀 없어 말라붙은 계곡이 있을 뿐, 이 물은 태백의 청정수로 물의 힘이 저절로 물레방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레방아를 이용해 곡식을 찧어오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산촌의 풍경을 대하게 된다. 지붕은 함석지붕으로 고쳤지만 집 몸체는 그곳 지방에서 많이 나는 나무를 이용해서 지은 너와집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산자락에 낮게 드리운 집들과 고랭지 채소가 자라고 있는 밭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해발 800m의 고지의 경사면에 넓게 밭이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해발 1,307m의 대덕산이 솟아있다.
대덕산 넘어 창죽동에는 한강의발원지인 검용소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굴과 구멍이 많은 동네이다. 물 나오는 굴도 5~6개나 된다. 소의 콧구녕처럼 생겼다는 쇠콧구녕굴, 장수가 나왔다는 장수굴, 굴골이라는 석회동굴등 동네가 구멍과 굴 투성이다. 용소 아래쪽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숫용소라는 석회동굴에서 는 장마때만 물이 나오고 암용소 는 장마때 물이 넘친다.
▶찾아가는 길
정선에서 동면을 가는 버스를 타고 백전리에서 하차한다. 백전초등학교가 있는 곳에서부터 버스가 들어가지 않아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한소리 쪽으로 길을 잡아들면 외길을 따라 5km 걸어들어 가면 한소리에 닿게 된다.
6. 영월 문산리
동강 변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 오지마을
동강은 풍부한 유량과 넓은 강폭을 이루고 있지만 주변의 산세나 지형으로 따지면 강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극심한 양안이 검은 절벽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면 그 절벽 아래는 흐름이 멈춰진 듯 소 깊은 웅덩이가 버티고 있다. 절벽에서 보면 동강은 어느덧 없어지고 첩첩한 산줄기만 시야에 가득 잡힌다.
이 강변에 자리잡은 마을이나 이 지류를 거슬러 올라 주변 산 속 계곡으로 파고든 마을들이 여지껏 오지로 남아있는 것은 이렇듯 험한 주변의 산세 탓이다. 한적한 풍경의 동강변에 위치한 섭새 마을을 지나 동강을 건너 거운리를 들어서게 된다.
거운리 에서부터 동강을 버리고 서쪽 산록의 절운재를 넘어 문산 나루터로 내려서게 된다. 버스의 종점 문애리. 이곳에서 문산리로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야한다. 동강 건너편에 있는 문산리 본동 나루터 쪽으로 소리를 질러 배를 보내달라고 외치면 배가 건너온다. 마을 사람들이 월급을 주고 월급을 주고 사공을 고용한 배라 마을 사람들에게는 배 삯을 받지 않지만 외부인에게는 약간의 배 삯을 받는다.
배를 건너 도착한 문산리. 오지마을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을 앞을 길게 흐르는 동강, 그 뒤를 굽어보듯 치솟은 검은 절벽, 자갈밭과 하얀 모래톱 위로 넓게 펼쳐진 옥수수 밭과 고추밭, 그리고 마을마다 무슨 성루처럼 세운 황토빛의 건조막 등이 한데 어우러져 보기 좋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마을은 70년대 들어와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회지로 나가는 사람이 줄을 이어 20여 가구만 살고 있다. 절운재를 넘는 버스가 10년 전에 생겨 통행의 불편함을 해소하였고 그 길을 따라 전기도 들어와 전파매체도 보급되어 오지물을 어느 정도 벗었지만 비가 조금만 뿌리거나 눈이 오면 10리 밖 절운재 남쪽 장화동 까지만 버스가 다녀 문산리 주민들은 아직 오지 삶을 감내해야 한다.
절운재가 막히면 진탄 나루터나 달운으로 넘어가는 15리 산길을 걸어가야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로 들어오는 버스편으로 타지방 나들이를 할 수 있다. 교통의 불편으로 인해 오지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0년 전만 해도 주 농사가 담배였는데 고추농사로 작물을 바꿔 마을은 온통 고추밭이다. 동강 변의 경치를 보고 싶다면 강변을 따라 문희동까지 걸어 갈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영월 버스터미널에서 문애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길이 끝나고 나루터가 이어지는데 문애리에서 강 건너편에 있는 배를 보내달라고 하면 배가 오는데 항상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해야한다.
7. 연곡 가마소
마을 복숭아 꽃, 살구꽃이 흐트러지게 피는 고향의 봄과 같은 마을
강릉에서 동해바다를 끼고 주문진 쪽으로 30리를 가면 바다로 흘러 들어오면 큰 개울이 나온다. 오대산 노인봉 일대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 오는 연곡천 이다. 이 연곡천변에 위치한 이 마을을 가려면 어성전을 통해 가야 한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가마소 마을로 가는 푯말을 보고 외길을 따라 줄곧 가면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 가는 길목에는 우말과 가진동이 있고 머구재를 넘으면 가마소 마을이 오대산에 푹 싸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개 마루에서 내리막길을 휘돌아 가다보면 가마소 윗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뒤에 솟은 두루봉. 그 기슭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은 길쭉한 가마소 마을을 적시고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흐른다.
마을 어귀에는 삼삼초등학교 부연분교가 보인다. 빨간 지붕의 학교는 학생수가 다섯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홍철수, 선민자 부부교사가 정성tm럽게 교정을 가꾸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학교의 담은 돌을 주워다가 쌓은 돌담이다. 담 주변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어 지나는 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학교에서 점심 한끼를 해먹고 다음 여행지로 가면 좋다. 윗말을 지나 5리쯤 걸으면 아랫마을. 예전에는 가마소 약수터라고 불렀는데 행적적인 지명이 부연동이 되면서 부연약수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약수는 첩첩 산중의 벼랑밑의 개울에서 물이 시작된다. 이 약수를 발견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마을 사람에 의해서다. 개울가에 있던 마을 사람이 토종벌들이 자꾸 한 지점에서만 물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상하게 생각이 되어 그 지점으로 가보니 탄산수인 약수 가 샘솟고 있었다 한다. 물맛이 짜릿하며 톡쏘는 맛이 난다. 탄산약수라 위장병에 좋고 소화를 도와주는 특성이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 모두 합해 마을주민은 10여 가구,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동요 '고향의 봄'과 같은 마을이다.
동네 안으로 맑은 내가 흐르는 이 주변은 야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맑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이 마을의 맑은 정기가 가슴 속 깊이 잦아든다.
▶찾아가는길
양양으로 일단 간 다음 어성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qnduds동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고갯 마을를 넘어 마을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3시간, 총 거리가 12Km이다.
8. 삼척 " 덕풍마을 "
삼척군 가곡면 풍곡리 에 위치한 덕풍마을은 들목이 병의 목처럼 좁고 그 품속이 또한 병 내부처럼 넓어지는 특이한 계곡이 있는 마을이다.
무인지경의 협곡이 20리나 뻗어 있고 마을 위쪽으로는 30리나 되는 원시계곡이 펼쳐지는 극지에 덕풍마을이 있다. 덕풍마을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5백년 전. 주민들은 형극의 땅으로 자신들의 고향을 원망하지만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외지인들은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무릉도원으로 예찬하는 곳이다. 태백에서 호산을 경우하여 풍곡을 가면 된다. 풍곡을 가는 길목은 가고천을 줄곧 왼쪽으로 끼고 낡은 시외버스가 달린다.
삼척은 그 어떤 곳보다 계곡이 풍부하다. 가곡천변의 수려하고 깊은 계곡미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치가 줄을 잇는다. 차량통행이 드문 도로라 시원하게 달리게 된다. 골짜기가 풍부하다는 뜻인 풍곡, 심산유곡에 막힌 오지이다. 종점인 풍곡에서 덕풍마을을 가는길은 덕풍계곡을 그대로 거슬려 오르도록 나있다.
제법 차가 다닐수 있도록 길이 넓어지는 곳이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에 계곡을 건너야 하고 계곡 양쪽이 절벽으로 맞물린 곳에서는 서너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소로여서 경운기나 소형 지프등 차가 지나갈 수가 없다. 덕풍을 가고 싶다면 오로지 이십여리를 걷는 수밖에 없다.
마을을 가는 길목은 야생봉숭아와 살구나무가 유난히 많아 이들 나무가 꽃이 피는 5월은 무릉도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곤 한다. 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수림이 저마다 분수를 지켜서 조화를 이루어 이름답게 덕이 넘쳐 보인다. 5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는 동안 인 가를 하나도 만날 수 없다.
여기서 산굽이를 돌면 스님의 칩거지인 산호종사를 만나게 된다. 고개를 더 돌아나가면 덕풍마을이 나온다.
덕풍마을은 1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3,4대씩 대물려 덕풍에 산 토박이다. 조선 중기때 피난지를 찾아서 선조들이 덕풍마을로 들어온 것은 5백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 분교를 세울 정도의 학생이 되질 않아 분교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왕복 3시간를 걸어 학교에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전적으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한다. 벼, 콩, 황옥등이 주 농사다. 전기가 들어오고 하여 문명의 세례를 받고는 있지만 도로사정이 풀리지 않아 여전히 오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찾아기는길
서울이나 영서지방에서 접근하는 경우에는 호산 쪽보다는 태백시를 경유하는 것이 편리하다. 태백시에 서 덕풍마을의 들목인 풍곡리까지는 하루 10회 직행버스가 다닌다. 풍곡에서 덕풍까지는 걷는 수밖에 없다. 20리 거리로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곡으로 뚫린 외길이므로 특별히 길 찾기에 어려움은 없다.
계곡을 탐험하고 싶다면 덕풍에서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소골 입구가 나온다. 원시성이 살아 있는 협곡이다. 용소골에서는 지나가기 힘든 낭떠러지와 폭포가 여러 차례 가로막게 되므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9. 정선 단임마을
넓은 밭에 온통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단임마을로 가는 길은 길이 매우 좁고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가 다니지 못한다. 지프차나 승용차는 이 길을 다닐수 있다. 걸어서는 2시간 차로는 30분 정도.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화전민이 살았다는 집터가 보인다. 지금은 모두 떠나 버려 흔적만 남아 있다.
길가의 외딴곳에는 토종벌을 치는 노부부의 집이 있다. 19살 때 시집을 와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할머니는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토종벌을 쳐서 7남매를 출가시키고 이만큼이나 살게 되었다며 여전히 벌을 치느라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벌통을 만드는 나무는 10년 이상 된 피나무로 만드는데 이 나무를 택하는 이유는 자라면서 속이 비어 벌통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70cm 정도 의 크기로 잘라 속으리 완전히 파내어 양지바른 곳에 설치하여 가을에 꿀을 딴다고 한다.
산모퉁이를 몇 개 돌아 들어가면 폐교된 학교가 보인다. 숙암초등학교 단임분교인 것이다. 이 학교는 80년도에 폐교가 되어 거의 허물어져가고 있다. 창문은 하나도 없고 흙벽은 떨어져 구멍이 나 있다. 학생들이 뛰어 놀던 운동장은 온갖 잡풀이 무성하여 쓸쓸함만 더해줄 뿐이다. 학교의 모습만 보아도 이곳이 오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산자락에 들어선 폐교 주위에는 5채의 집이 있는데 모두 떠나간 빈집들이다. 이곳의 유일한 주민인 이영광씨. 있는 이곳 마을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대의 곳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계절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이곳을 가끔씩 들르는 정도라 엄밀히 말하면 단임마을의 주민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북에서 태어나 30년 전에 귀순했다는 그는 서울과 춘천에 이곳에 온지 10년쯤 되었다. 남한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이곳처럼 그의 마음에 쏙드는 곳은 없다고 한다. 그가 이 마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의 눈빛만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백두산이 보이는 혜산이며 그곳과 비슷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 전국을 떠돌다가 발견하게 된 곳이 바로 단임 마을이다. 9월은 메밀꽃으로 별천지가 된다. 넓은밭에 온통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밭의 뒤편은 초록의 산이 둘러 있어 초록과 하얀색이 멋진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내곤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아우라지'가 있다. 두 갈래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 들어오는 구절천과 동쪽의 임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임계천이 만나 아름다운 내를 이루고 있다.
▶찾아가는 길
단임마을을 가려면 일단 정선을 가야 한다. 정선에서 숙암으로 간 다음 오대천 다리를 건너자마자 난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 길은 외길로 나있어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된다. 오대천 다리에서 단임마을 까지는 걸어서 3시간정도. 지프나 소형차가 다닐수 있는데 차량으로 갈 경우는 30분 소요. 단임천을 계속 끼고 마을 어귀까지 걸어가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10. 정선 "연포, 소사마을"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오지 신세를 선천적으로 타고 난 곳
지형적으로 볼 때 동강이 정선에서 시작되고 정선 포구로 유입되면서 끝나게 되는데 이 마을들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선 쪽에서나 영월 쪽에서나 모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볼때는 정선군과 영월군 그리고 평창군의 경계가 갈라지는 백룡동굴에서 2Km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다. 때문에 이마을을 들어가려면 정선이나 영월 평창 어디서건 1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탄다음 산길을 서너시간 걸어야 마을에 당도할수 있는 산간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을 가려면 신동읍 예미리를 경우해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을 접어들어야 한다. 협곡으로 들러서서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게 되면 동강과 만나게 된다. 길은 오직 외길.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 뿐이다. 강의 양안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세워져 있어 이방인의 기를 한껏 꺾어 놓는다. 서쪽에 험준하게 솟아오른 신병산을 우회할 수밖에 없다.
신병산 동쪽에 원덕천이라는 마을을 경유하여 동쪽 산록을 타고 소동을 지나 2시간 남짓 걸어가면 소사마을 어귀에 다다르게 된다.
토벽의 담배 건조막을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소사마을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외지인을 맞는다. 10가구 정도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전기는 일찍부터 들어왔다. 동강 따라 전신주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여 79년에 전기가 들어왔고 전화는 86년에 가설되었다.
소사마을의 강 건너편에 연포마을이 있다. 마을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이 두 마을 건너다니기 위해 삽다리가 놓여 있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삽다리란 소나무로 만든 다리로 장마 때가 되면 동강물에 휩쓸려 다리가 없어진다. 두 마을 사람들은 두레를 통해 장마가 끝난 뒤 다리를 다시 놓고 하는 식으로 다리를 매년 만든다.
다리가 떠내려가는 장마 때에는 나룻배를 타고 왕래를 해야 한다. 연포에 있는 고성초등학교 연포분교로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배를 타고 등교를 하게된다. 소사의 강변은 풀밭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야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유독 굴이 많은 동네라 밤이면 먹이를 찾아 나온 박쥐들이 냇가를 떠돌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냇가에서 보면 연포마을이 건너다 보이고 초등학교의 뒤에는 세 개의 봉우리에 달이 뜨는 모습은 가히 고혹적이다. 봉우리마다 달이 저마다 떠서 달이 세 번이 뜨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를 경유하여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미에서는 운치리까지 가는 마을 버스가 있다. 그 버스를 타고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좌측에 이정표가 있다. 6.4Km 정도 도보로 걸어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이 비포장도로는 지프차의 통행이 가능하다. 내용출처 : [도서] "에꼴"의 7월호 바캉스 별책부록 "젊은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국내 오지로의 모험,배낭 여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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