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진도로의 여행 1부
섬은 섬이라는 말 자체로 황홀한 느낌입니다.
둥둥 떠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어디로 흘러간 것 같기도한 섬 아직도 안녕하신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의 오월진도로의 여행은 시작됩
니다.
여러분을 대신한 이 여행을 아니 모두 품은 여행을 떠납니다.
2003. 5. 6. 청주 -> 진도
출발하기 전 테레비 기상예보에는 오늘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다소 불편하겠지만.비를 따라가는 여행도 나쁘진 않습니다.
아침 8시 시계탑에서 조치원행 좌석 버스를 탔습니다. 요금은 1380원 조치원역에서 광주행으로 알아보니 2시간 뒤라서 목포로 가면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답니다.
대중만치고 9:35 분 목포행 무궁화호를 끊어 둘째에게 전화걸었더니 불통. 서울로 전화해 인터넷 검색을 부탁 후 가까운 서점에 들려 전라남도 지도를 빌려 살펴보니 가능한 것 같았고 이내 서울서 온 전화는 검색 결과 30분마다 목포에서 진도행버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왜 좀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하고 이렇게 헤메지?" 나 스스로 대답합니다. "그것도 재밌잖아 젠장."
기차표 금액 12500원, 한국일보 하나 샀습니다.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 연재 소설 때문입니다. 지난번 조사에 의하면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에 뽑힌 그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습니다.
세시간 사십분의 기차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1-15번 좌석 기차 제일 꽁지입니다. 촉촉히 비내리는 남도를 향해 기차는 갑니다. 넓은 들이 시원합니다.
익산역입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니 이 기차는 세계화 된 것이군요. 익산은 백제시대 미륵사지로 유명합니다. 부서져버린 백제탑을 해체 복원하기 위해 장기 레이스에 들어간 우리 고고학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땅입니다.
논산 훈련소 후반기 교육을 이곳에서 받고 더운 여름 몇십리를 뛰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작년 오월달에도 흑산도 여행 때문에 목포로 갔었지요 그때는 버스를 이용했지만 일년만의 해후(?)에 묘한 느낌입니다.
가끔 노란꽃이 보이는 것은 장다리 무꽃입니다.
아직은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나 백로들이 천천히 어정대는 것이 평화롭습니다.
"18번홀 과감한 퍼팅 박지은 LPGA 우승이란 커다란 글씨와 캐디를 껴안고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그런 과감한 퍼팅이 필요하겠지요.
물론 실력이 있는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짐을 싸면서 면도기를 집었다가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사흘쯤 방치해둔다 한들 어쩌랴 하는 심보가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이랄까요.
여기 전라도 땅은 아무래도 붉은 황토와 동학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흰옷 입고 싸우다가 사라져간 농민들의 아픔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한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여행에 가져온 책은 "한국식물도감" 한권입니다. 풀과 나무의 사진과 설명이 혹시 지루해질 시간 공간이 생긴다면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뻐기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사전이 재밌습니다. 하나하나 읽어가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러 괜찮은 것을 줍기도 하구요. 오래 전에 후배가 딸 이름을 지어달라기에 국어 사전 읽기
를 시작해 "약비" 란 이름을 발견해 내어 "김약비"란 이름을 지어 줬었지요. 해석란에는 약이되는 비라고 적혀 있었지요. 세상에 약이되는 비로 내린다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얘기를 하고보니 결국 뻐기는게 된 듯합니다.
12:15분에 식당차로 건너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칠천원, 만원 도시락 두종류만 있는 메뉴더군요 혼자서 먹는 점심은 재미없었지만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식당 아가씨는 꽤나 지루한지 엎드려 시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표현이 너무 살벌했나요.
이제 삼십오분 뒤엔 목포입니다. 손님도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 졸고 있고 아이들은 지루한지 사잇길로 왔다갔다 합니다. 하늘이 훤해지는 걸 보면 비구름이 물러가는 모양입니다. 들판이 새파랗습니다. 보리밭이군요 꽤 긴 시간이었는데도 별로 지루하지 않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 거제, 다음 세 번째로 큰 섬이랍니다. 1시 20분 유달산이 보입니다.
역안내에게 물어보니 시외버스 주차장까지는 택시로 오천원이랍니다. 버스 1번을 타면 720원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목포시외버스 터미널 진주 직행 버스입니다. 1시 50분 출발 한시간 정도 걸린다니 세시에는 진도에 닿겠군요. (차비 4400원)
"임진왜란 이후 최대세일" 목포사람들은 허풍이 심한가요. 이런 프랭카드가 보입니다. 언듯언듯 바다가 보입니다.
여기는 운림산방 마루입니다. 기와로 잘 지은 집이 앞에 보이고 짚으로 곱게 이은 이쁜 초가집이 훨씬 정겨워 이곳을 택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쩌면 소치선생님도 여기 사셨겠지요.
오래된 돌절구, 돌확이 마당 구석에 보이는 것이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확장 공사를 하느라 사방을 파헤쳐놔서 운치는 없지만 앞뒤의 나즈막한 산에 쌓인 집터는 문외한이 보아도 길지인 듯 싶습니다. 마사로 다져진 뜨락, 집을 싸고 도는 작은 도랑물, 늙은 배롱나무
자세히 살펴보면 화가의 안목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진도읍내에서 여기까지 오는 버스는 720원이지만 한시간 반뒤에 출발이라서 택시를 탔습니다. (6000원)
울돌목이라 하는 진도대교가 걸린 명량은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선과 싸워 이긴 곳으로 물살이 거세 사장교(양쪽에 기둥을 세워 물로 이은 다리)로 세워진 다리로 순식간에 지나와 이내 넓은 들과 산이 보여 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소치 허유 선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하로 우리나라 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흥사의 초의선사와도 깊은 교의가 있었습니다. 시, 서, 화에 뛰어나 삼절이라 칭송받았는데 아직도 고서화에서의 비중은 대단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좋은 작품과 그저그런 작품의 차이가 심하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많은 작품을 요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곳에 돌아온 49세 이후 죽기까지 40여년간 그가 살았던 곳은 한때 퇴락하였으나 그의 후손 남농 허건이 재건한 곳입니다. 추사에게서 압록강 동쪽에서 가장 그림 잘 그리는 사람으로 평가 받은 그였지만 그것을 대대로 잘 지켜 가긴 쉬운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내수의 운보 김기창 선생의 경우 아들대까지도 이어지지 못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새소리가 좋습니다. 나무 우거진 산이 가까이 있어서 인지 여러 새소리가 바람 소리에 실려 들립니다.
작고 아담해도 그대로 두었으면 좋을 것을 복사그림 전시하려고 어마어마한 현대식 건물을 짓는 안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안을 채우지 못하고 껍데기에 집착하는 것이 저와 비슷합니다. 유적지에서 느끼는 안쓰러움입니다.
진도는 우리나라 역사만큼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품고있습니다. 후삼국시대에 견훤과 세력을 다투던 왕건은 909년에 진도일대를 장악하여 고려를 세우는데 결정적 우위를 차지 하였고 고려 원종 11년에는 삼별초군이 몽고군에 투항한 고려조정에 반기를 들고 진도에 들어와 대몽항쟁을 벌였지요.
별초란 오늘날의 특수부대로 사병형태로 조직되어 좌별초, 우별초
로 나뉘고 몽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도망쳐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된것입니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에 패한 후 제주도로 가자 진도사람 1만여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13년만에 돌아오고 지산면과 임해면에 목마장이 만들어져 몽고군의 군마 사육장 역할을 하였지요.
1350년에는 왜구들의 등살에 군민이 모두 섬을 버리고 영암땅으로 피난 했다가 87년 뒤 세종 19년에야 귀향을 하는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입니다.
그러나 진도는 이런 아픔만 있는 섬은 아닙니다. 진도의 멋과 흥이 담긴 바닷물이 갈라지는 영등살축제(모세의기적), 씻김굿, 강강술래, 진도북놀이가 있으며 그 유명한 진돗개도 진도를 빛내는 명물입니다.
오늘은 오느라 힘들었으니 운림산방만 보고 올때는 공용버스로 읍내로 돌아와 언제 잃어버린지 모르는 안경을 사러 시내에 있는 '아주 안경원'이라는 곳을 들려 안경을 샀지요.
마침 주인양반에게 이곳 여행에 대해 조언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여 장장 두시간이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뚱뚱한 아줌마 레지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면서 말입니다. 안경값은 만원받고 차값은 오천원이나 쓰는 것 보니 인심도 좋았습니다.
마침 저와 비슷한 연배로 띠를 맞춰보니 동갑이더군요. 이럴때는 그저 있는데로 툭털어 놓으면 금새 친구가 될 수 있다는걸 오랜 경험에의해 알고 있으니 이내 가정이야기, 아이들이야기, 취미. 여행 등 서로의 관심사를 안주삼아 맛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행이란 바로 이렇게 우연히 만난 사람과도 금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고마운 인사를 하고 띠동갑끼리 손을 꼭 잡으며 안녕을 했지요.
저녁을 버섯마을 사골해장국으로 먹었습니다. 오천원, 저녁식사 후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대동모텔 509호에 들었습니다. 하룻밤 이만 오천원
왜 여행기에 유치하게 자꾸만 돈이야기냐구요? 그건 혹시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상태를 바로 전하기 위해서지요. 의외로 그런 현실적인 정보가 좋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어쨋거나 이 여행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근거로 쓰고자 합니다. 다소간 운치가 감하더라도 말입니다.
목욕 후 편지지 열장째 쓰는 중입니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갑니다. 조용한 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군요.
오늘 배낭에 넣은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속옷한벌, 반바지, 반팔옷하나, 양말하나, 휴지, 편지지, 만년필, 만년공구 하나, 전화기 이상입니다.
사실 전화기는 집에 두고 와야 하지만 고심 끝에 가져왔습니다. 오늘 통화는 다섯통이구요 내일은 삼별초 흔적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진도아리랑 흔적도 알아보구요.
자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첫댓글 가본곳인데도 다음이궁굼하답니다
저도 몇년전에 K.B.S 에서 모집한 모임에 응해 간적이 있었어요.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얼마나 오래동안 썼을까를 생각하면 읽는마음이 쓰는마음과 일치되기를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결코 짧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무척 깔끔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생동감있는 여정이 잘 담겨있어 뿍 빠져 읽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여행기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직접 다녀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생동감이 있어 더욱 좋구요. 잘 읽었습니다.
이글 복사했다가 혹시 진도 갈일 있으면 보면서 다녀야겠어요. 저도 선생님과함께 진도를 다닌 기분이 드는군요. 가슴도 따뜻하고 지식도 되고~~ 여행기의 모범 답안같기도 하고 저도 담부터는 꼭 메모하며 다녀볼까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