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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9:1-11> 에스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이마에 표를 그리라, 여호와의 분노,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1. 말씀배경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남 유다도 3번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불타고 왕은 잡혀가 죽고 나라는 바벨론 속국이 되고 맙니다.
여호야김 왕 때 1차 침략으로 다니엘이 잡혀가고 (BC 605), 그의 아들 여호야긴왕 때 2차 침략을 받고 에스겔이 잡혀 갑니다 (BC 597).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때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함락되고 맙니다 (BC 586).
에스겔서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제사장 에스겔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때의 나이가 서른 살, 곧 여호야긴 왕이 잡혀 간지 5년째 되던 해입니다(겔1:1-2). 그러니까 BC 593년입니다.
▶ 그가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 있을 때에 네 생물 (그룹)과 함께 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그들이 듣듣지 아니듣든지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라” (겔2:5, 3:11)
네가 그들에게 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의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다” (겔3:16-21), 이러니 안전할 수가 있나요?
그리고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된 두루마리 책을 먹게 합니다 (겔2:8-3:3)
이것은 그가 전해야 할 내용이 애가, 애곡, 재앙이 담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의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영적 위기를 맞고 있는 시대에서 주의 종들이 선포해야 하는 여호와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주기 위하여 회개를 가져오는 애가, 애곡, 재앙의 말씀이 아니라 축복만을 선포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종말에 곧 재앙이 닥쳐오는데 “평안하다 안전하다” (살5:3)를 외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에스겔에게 특별한 예언적 행동을 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어떤 심판이 주어지는지 시청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특별한 예언적 행동을 하게 합니다.
① 토판 위에 예루살렘을 그리게 하고, 성이 포위를 당한 모습과 사다리, 토둔, 공성퇴, 철벽 등 공격용 무기를 그리게 합니다. → 이것은 예루살렘 성이 장차 어떻게 포위당하고 공격을 당하여 멸망 당할 것인가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겔4:1-3).
② 또 북이스라엘이 지은 죄로 인하여 왼쪽으로 390일을, 남유다가 지은 죄로 인하여 40일을 줄로 동여 매인 상태로 지내게 합니다 (겔3:25). 죄를 지은 햇수 1년을 하루로 계산한 것입니다 (겔4:4-8). 에스겔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들의 죄의 댓가를 치루기 위하여 묶이신 예수님의 묶임과 같습니다.
→ 이것은 포로가 되어 잡혀가면 이토록 묶인 것과 같이 자유가 없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사탄에게 묶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햇수에 비례하여 말입니다. 그 기간도 강도도 죄의 경중과 기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③ 또 390일 동안은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먹되 하루에 이십세겔씩 (11.4g x 20 = 228g) 먹게 하고, 물은 육분의 일 힌씩 (0.6리터) 먹게 했습니다. 더구나 인분 불에 구워먹게 했으나 에스겔의 간구로 쇠똥으로 구워 먹게 됩니다. 소규모의 양식과 물입니다.
→ 이것은 포로생활이 되는 동안에 이렇게 음식과 물을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겔 4:13,16).
죄를 지으면 실제적인 양식도 부족할 수 있지만 영의 양식, 영적 생수를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④ 또 날카로운 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깍아서 1/3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전염병과 기근), 1/3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칼에 죽음), 1/3은 바람에 흩으라 (도망간 자 칼에 죽음)고 하셨습니다(겔5:1-2,12).
→ 이것은 멸망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전염병과 우주적인 재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⑤ 장차 포로가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처소를 옮기는 행동도 하게 했습니다 (겔12:3-7)
아무튼 에스겔은 특별한 예언적 행동을 통하여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게 장차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벗은 몸과 발로 3년 동안 그렇게 다니게 했습니다 (사20:1-6).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어렵습니다.
3.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야 하는 것입니까? (우상숭배의 증거)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죄의 실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겔8:3)
몸이 간 것이 아니라 영이 이끌려 간 것입니다. 환상을 본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것처럼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1) 환상 가운데 먼저 본 것은 그가 예루살렘 안뜰 북문에 이르니 질투의 우상의 자리가 있었고 제단문 어귀 북쪽을 보니 “질투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 북문쪽은 제물을 잡는 곳입니다. 이곳에 우상이 들어선 것 것입니다.
질투의 우상은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란 듯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안은 아니지만 뜰안에서 이런 우상을 세워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마음의 성소 주변에 또 다른 우상을 세워놓고 섬기는 모습입니다. 크게 가증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겔8:6)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멀리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를 지으면 우리들 마음의 성소에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사탄이 쑥 들어가 자리할 것입니다.
종말에는 짐승의 우상이 성소에 자리할 것입니다 (단111:31, 12:11, 마24:15)
2) 성전 뜰 문에 이르니 은밀하게 담을 쌓고 그 안에서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려 놓고 향로에 향연을 피우고 장로 중 70명이 어두운데서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요시야왕 때 율법책을 낭독하고 성전 정화작업을 한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를 포함되어 있습니다 (칠십 장로들).
오늘날 교회 장로와 같은 지도자들의 타락입니다.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을 받던 그의 후손들까지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니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베발론 종교에서 온 것들입니다. 바벨론 종교에서 담부스는 신의 아들입니다. (니므롯, 세미라미스, 담무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신이 있는 종교는 대부분 바벨론 종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바벨론의 담무스 월 (제4월, 태양력 6~7월)에 이 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교의식입니다. 오늘날도 여황을 섬기는 바벨론 종교가 성행합니다. 기독교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성모나 하나님의 어머니나 여황을 섬기는 것은 없습니다.
4) 또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백성의 고관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모습입니다(11:1). 성전을 등지고 말입니다. 빛의 신,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 종교에서 온 것입니다.
▶ 이런 모습이 예루살렘 성이 불타기 직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모습이었습니다.
1,2차 포로로 잡혀가는 아픔을 경험했으면 오히려 하나님께 회개하고 더 나아가야 하는데 우상숭배가 더 극심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겔8:12, 9:9) 그래서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는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끝났도다, 끝이 이르렀다, 끝이 왔도다“라고 선포합니다(겔7:2-3,6)
→ 성경은 그들을 패역한 백성(족속)이라고 했습니다. ”패역“(마라드)는 반역하다, 반항하다, 반란을 일으키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도 반역죄는 죽음으로 다스립니다.
▶ 이런 모습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회 성전에 거룩함이 없어지고 마음의 성전도 세상 것들로 가득차 있는 모습 말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고 부르짖더라도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에스겔 8: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망하게 됩니다 (겔33:21).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은 백성이 있습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사랑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4. 구원받을 백성, 곧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게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분노로 손에 죽이는 무기를 들은 여섯 사람이 등장합니다. 천사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나가면 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 속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게 하는 것입니다 (겔9:1-4). 이마에 그 표를 받은 자는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들과 같습니다 (계7장)
그들이 누구인가요?
▶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들입니다 (겔9:4).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을 때에 그들은 자신을 지키고 그들의 좌상을 보면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입니다. 마치 사데교회에 그 옷을 더렵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계3:4)
우상숭배를 하지 않은 그들은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 저는 최근에 18세기 모라비안 신앙공동체의 내용을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자신들의 경건한 복음주의적 신앙을 지키다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많은 죽임을 당했고 독일의 진센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피난가서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면서 세계선교를 위하여 헌신한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이 다시 한번 모라비안들이 일어날 때라는 감동도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적그리스도들의 활동을 보면서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넘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함께 울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울어야 합니다.
→ 제가 개척한 직후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교 열정이 있는 한 장로님과 제가 교회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조명이 번쩍 번쩍 하는 가운데서 마치 카바레처럼 춤을 추고 노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교회를 봉고차를 타고 떠나는 꿈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일부 교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는 교회가 마치 세상 카바레와 같은 모습이 아닐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너무 부자가 돼서 비대해짐으로 힘이 없어지고 코로나의 작은 충격에도 흔들 흔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 어둠의 시대에 마음 아파하는 자들에게 오늘날도 그 표를 그려주시는 것입니다.
”표“는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타우“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끝 자인 ”타우(타브)“를 그리라는 것입니다.
이들 외에는 더 이상 구원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이 구원의 막차를 타는 것입니다. 또 고대 히브리어 타우는 십자가 모양인 ”+“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의 이마에 그려진다는 것이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자들의 이마에 찍히는 표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 옆으로 누우면 ”x“가 됩니다. 올바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교회에 세워져야 합니다. 세우는 것은 회개와 탄식의 눈물로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주님 나라를 위하여 우십시오, 죄 때문에 우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우십시오, 교회를 위하여 우십시요“
여기서 탄식하며 우는 것은 히브리어 원어적으로 신음하면서 울부짖는 것입니다. 통곡하는 것입니다.
▶ 이마에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은 여호와의 분노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늙은 자, 젊은 자,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까지 다 죽게 되는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겔9:8)
성경은 대체로 어린이와 여자는 보호의 대상입니다. 멸망의 단계에서는 그런 보호, 긍휼도 없어진 것입니다.
에스겔의 중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이 심판은 준행됩니다 (겔9:8)
▶ 그 심판의 출발은 성소부터 시작이 됩니다 (겔9:6)
왜 그렇까요? 그 성소는 여호와의 이름이 걸려 있는 성소가 더렵혀졌기 때문입니다 (겔5:11). 여호와의 이름으로 포장된 우상숭배가 많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호와를 섬기고 한편으로는 우상을 섬기는 모습도 많습니다. 짬뽕신앙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걸려 있는 성전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그곳이 가장 더렵진 상태를 견디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부터 시작합니다.
▶ 그리고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합니다. (겔9:6)
앞서 보았지만 장로들, 제사장들,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늙은이는 나이로 보는 차원도 있겠지만 영적 장로들, 어른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먼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어른이라고 부름을 받는 자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오래 신앙생활 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지도 못하면서 거창한 타이틀을 지니고 온갖 감투를 다 쓰고 있는 지도자들인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는 더 많이 요구할 것입니다. 더 많은 거룩과 열매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지 못하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번이나 그룹(생물)과 함께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그룹은 요한계시록 4장에서도 등장하는데 심판을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심판이 확실하고 임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에스겔 33:21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불탄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하니 불로 소멸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근거지는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안 계시면 성전이 아닙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1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은 겔40장부터 새롭게 세워질 에스겔 성전을 환상 가운데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아마 제3성전의 이름으로 세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구약적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에스겔 성전을 세우시면 됩니다.
제3성전이 세워진다면 종말에 그 성전 안에 짐승의 우상이 놓이게 될 것입니다 (마24:15)
▶ 예루살렘의 멸망은 마지막 때 종말에 있을 심판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 종말적인 심판을 앞두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 각 나라는 군비경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기후변화로 도처에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핵전쟁으로 세계는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유성이 떨어져서 또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고 (마24:29).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벧후3:10,12).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고 죄악의 도성이 된 현실을 바라보고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코로나로 예배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고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교회서 받아주지도 않는 현실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신음하며 통곡하며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이 눈물이 예루살렘 멸망을 놓고 우시는 예수님의 눈물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우리들이 울지 않으면 교회를 받치고 있는 돌들이 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것들이 다 무너지게 되니까요? (눅13:2, 19:40) 주님의 눈물을 흘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